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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5)화 (145/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5화

승리한 에스퍼는 로비에서 숙소 키를 받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키가 필요했다.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이곤이 내 손목을 잡고는 에스퍼의 뒤를 따랐다.

그 손에 이끌린 채 도박장을 빠르게 가로지르던 나는 작게 속삭였다.

“키도 없으면서 어떻게 따라가려고.”

“없긴 왜 없어.”

그 말과 함께 이곤이 자연스럽게 명품을 두르고 앉은 사람의 가방 안에 손을 넣어 키를 꺼냈다.

상대는 도박에 열중하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여기 있는데.”

나는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내가 1, 2군 넘나들면서 게이트 의뢰만 다닌 게 아니니까.”

센터에서 게이트 외의 진압 업무를 주기도 하지만 내가 알기론 이런 노하우가 생길 만한 업무는 없었다.

이곤의 말이 어쩐지 자조적으로 들렸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경기에서 승리한 에스퍼는 키를 든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을 먹은 직후부터 에너지가 몸 밖으로 흘러나오더니 이젠 아예 온 주변에 살기를 뿌리고 다녔다.

그는 흥분이 잘 가라앉지 않는 듯 젖은 수건을 머리에 얹고 땅만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주시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봤지. 경기 후반부에 투기장 관리자로 보이는 남자가 던진 유리병에 든 약 먹는 거.”

이곤은 내가 먼저 말을 건넨 게 의외라는 듯 힐끗 내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봤지.”

“아무리 봐도 그게.”

“그래, 에스텔이야.”

이곤의 말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곧장 에스퍼가 탔다. 우리는 잠자코 남자가 탄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층수를 확인했다.

“18층.”

이곤이 얻은 카드로 엘리베이터에 오른 우리는 18층에서 내렸다. 다행히 남자가 어느 방에 묵는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곳에서 불길한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책 없이 따라온 터라 역시나 안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박희민의 말처럼 우선은 철수하는 쪽이 맞았던 걸까, 생각이 많아지는데 옆에 서 있던 이곤이 당당하게 노크했다.

똑똑-

그 모습에 당황한 나는 이곤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려고!”

이곤은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님, 프런트에서 왔습니다. 경기장에 두고 간 게 있어 전달해 드립니다.”

“야, 이곤.”

“손님.”

이곤은 개의치 않고 강하게 문을 두들겼고 이내 그 소란에 못 이긴 듯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죽상이 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나기 무섭게 그 사이로 이곤이 불쑥 손을 넣어 남자의 얼굴을 한 손에 쥐었다.

“너 뭐야!”

당황한 남자가 힘을 쓰며 바둥거렸지만 이곤은 그를 빠르게 밀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나는 혀를 찼다.

“아주 멋대로네. 미친놈.”

그렇게 읊조린 뒤, 나 역시 안으로 따라 들어섰다.

문을 닫고 들어오자마자 라텍스 장갑을 끼고 남자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소지품까지 하나하나 이 잡듯 뒤졌지만 아까 경기장에서 관리자가 건넨 유리병이나 알약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

되레 다른 마약들만 손에 집힐 뿐이었다. 내가 방을 헤집는 사이 이곤은 소파에 남자를 눕히고 양손을 커튼 끈으로 포박했다.

로비에서 그가 내비친 자신감이 허황된 게 아니란 걸 증명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이내 이곤은 허리를 펴곤 날 쳐다봤다.

“찾았어?”

“전혀.”

나는 남자의 가방을 거꾸로 떨어 보이며 그렇게 답했다.

그러자 이곤이 무릎으로 남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며 곤란한 얼굴을 했다.

“읍읍.”

나는 억지로 수건을 문 채 말 못 하는 놈을 내려보다 입을 열었다.

“그거 풀어 줘. 물어봐야 할 것도 있으니.”

이곤은 잠시 고민하듯 남자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수건을 빼자 남자는 거세게 기침을 토해 냈다.

“시발, 너희 뭐 하는 새끼들이야!”

화가 단단히 난 듯 남자는 우리를 죽일 듯 노려봤다. 그 시선에 나는 괜히 모자를 눌러썼다.

그런 나와 달리 이곤은 남자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약 어디 있어.”

“무슨 개소리야. 지금 약 찾겠다고 여기서 이 지랄인 거야? 약은 꾼한테 가서……!”

이곤이 다시금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우리가 그따위 약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여? 다시 눈 크게 뜨고 잘 봐.”

남자는 정신을 차린 뒤에야 우리가 에스퍼인 걸 깨달은 듯 동공을 키우더니 웃음기를 머금고 입을 뗐다.

“뭐야. 설마 에스텔이라도 구해 보겠다고 온 거냐. 요즘 언론 타면서 하찮은 새끼들한테까지 모조리 알려졌다더니.”

남자는 반쯤 풀린 눈으로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아무나 신한테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입이 찢어져라 웃는 모습에 그제야 탁상에 놓인 약병이 보였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마약을 한 모양이었다.

“이거 대화 안 통하겠는데.”

그렇게 읊조리며 남자에게 다가가자 이곤이 놀란 듯 나를 올려다봤다.

“위험하니까, 거기서…….”

“꽉 잡고 있어.”

그 말과 함께 남자의 몸에 손을 댔다. 그대로 순식간에 안으로 침투해 그의 에너지에 닿았다.

그 순간 입이 절로 벌어졌다.

사색이 된 내 표정에 이곤도 덩달아 긴장해서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뭐가 느껴져? 그렇게 심각해?”

나는 입을 다물며 그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 반대야. 아무것도 없어.”

“…….”

“아까 경기장에서 보였던 폭발적인 에너지는 이미 이 몸 안에 없어.”

민지민에게서 받은 보고서 내용을 되짚어 보았다. 에스텔의 증상에 대한 설명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초기 복용 시 힘의 지속 시간이 길지 않다. 장기 복용으로 넘어가며 힘의 지속 시간이 길어지는데 그때 부작용이 찾아온다.

그러니 눈앞의 이놈은 아직 한낱 피라미라는 소리였다.

이곤 역시 같은 생각인지 기운 빠진 얼굴이 됐다.

그런 우리 두 사람의 사정을 모르는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구원받고 싶으면 그에 합당한 모습을 하고 왔어야지.”

“…….”

“그럼 혹시 알아? 내가 너도 구원해 줄…….”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곤이 강하게 그의 안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대로 남자의 고개가 툭 꺾였다. 이곤은 제 주먹 위로 묻은 피를 카펫에 닦아 내며 무심히 말을 이었다.

“벌레가 있어서.”

그렇게 읊조리곤 기절한 남자를 소파에 대충 눕히고 일어나는데, 이곤의 한쪽 귀에 걸린 이어셋을 통해 정체 모를 소리가 흘러났다.

-으아악!

그 소리가 하도 커 옆에 있는 내게도 들렸다. 나는 단번에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리고는 이곤의 팔뚝을 잡았다.

“뭐야, 지금 그 무전. 박희민 가이드 목소리 아니야?”

내 날카로운 물음에 이곤은 서둘러 이어셋의 버튼을 눌렀다.

“이봐, 박희민. 무슨 일이야?”

-…….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분명 이곤이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나가는 길에 문제가 생긴 건가.

하지만 경비원에게 신고받은 건 나뿐이었다. 눈치 빠른 희민이 경비원들에게 걸린다는 게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다.

먼저 몸을 움직인 건 이곤이었다. 그는 곧장 문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내 물음에 이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

“아까 링에서 이긴 에스퍼는 숙소로 돌아왔어. 그럼 진 에스퍼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 그게 지금 박희민 가이드랑 무슨 상관인…….”

“나오기 전 박희민 가이드가 그쪽에 관심 가지는 것 같았거든. 퇴근이니 뭐니 해도 날카롭게 주변을 보고 있어.”

그 말에 지하를 떠나기 전 광경을 되짚어 보았다. 분명 경비원들이 피떡이 된 남자를 일으키는 걸 봤다.

“집히는 데라도 있는 거야?”

“기억나? 아까 암막 커튼에 가려져 있던 붉은 철문.”

“…….”

“어설프게 숨겨 둔 그 문을 경비원들이 돌아가며 지키고 있었어.”

“지하로 통하는 입구도 그렇게 허술하게 뒀으면서 말이지.”

“그래,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가장 첫 번째로 확인할 곳은 거기라는 뜻이지.”

“…….”

말을 끝맺자마자 나와 이곤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곧장 비상계단으로 뛰어갔다.

* * *

박희민은 경기에서 이긴 에스퍼를 따라가는 이곤과 양하나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봤다.

말릴 새도 없이 나아가는 두 사람은 방금까지 다투던 것에 비해 손발이 잘 맞았다.

그 찰나 이어셋을 통해 이곤과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희민 가이드는 먼저 입구를 통해 나가 있으세요. 저것만 확인하고 양 헌터 데리고 나갈 테니.

-누굴 짐짝 취급해. 나는 내가 알아서 해.

그 무전을 끝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지하를 빠져나갔다.

희민은 약간 뾰로통한 얼굴이 됐다. 짐짝 취급을 원치 않는 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다 약자 포지션이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자신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뛰어난 가이드였다.

양하나를 만나고부터 일이 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일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 그 에너지가 어떻게 C급이야. S급 정도는 돼야지, 그럼.’

희민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먼저 양하나의 특별함을 알아봤다는 생각에 팔짱을 끼고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경기에서 패한 에스퍼가 초주검이 된 채 끌려가는 게 보였다. 그는 예상대로 붉은 철문 쪽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그 안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건 확실했다.

‘그런 곳에 위급해 보이는 에스퍼를 데려간다라.’

박희민은 주변을 살폈다. 관객들은 패한 에스퍼에겐 무서울 정도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저 다음 경기를 기다릴 뿐이다.

순간 감이 날카로워지며 팔뚝에 닭살이 돋았다. 그는 감 하나만큼은 아주 기가 막혔다.

그리고 보통 제가 냄새를 맡은 일은 큰돈을 불러모았다. 희민은 찰나의 고민 끝에 그쪽으로 향했다.

“일단 확인만 해 보자고.”

그리고 눈치를 보며 문을 열었다. 안에는 긴 복도가 이어졌다. 복도 끝에서 경비원들이 어느 방문을 열고 그자를 넣고 나오는 게 보였다.

희민은 그들이 눈치 못 채게끔 복도로 들어서 근처 빈방에 잠시 몸을 숨겼다.

그 뒤 숨을 죽이고 세 사람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그들이 경기장 쪽으로 빠져나가는 걸 확인하고야 나왔다.

그리곤 끝방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끝방 문에는 팻말이 하나 달려 있었다.

[직원 외 출입 금지.]

아주 수상쩍은 냄새가 났다.

그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잠시 생각하던 희민은 고민 끝에 결국 천천히 문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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