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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3)화 (143/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3화

“못다 한 말이요?”

내 물음에 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 헌터가 기다리라면 그게 얼마건 기다릴 겁니다. 다만 이제는 가만히 기다리진 않을 겁니다. 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기다릴 거예요.”

“선전 포고처럼 들리네요.”

“비슷한 맥락이라 봐도 좋을 거 같네요.”

띵동-

그때 타이밍 좋게 초인종이 울렸다. 우신은 문 쪽을 힐끗 보고는 올 사람이 있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다영 헌터예요. 제가 일을 좀 부탁했거든요.”

우신은 내 입에서 나온 부탁이라는 단어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자리 비키겠습니다. 인기 많은 내 에스퍼 얼굴 한 번 보기 어렵네요.”

“그건…….”

“저한테도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보러 올 테니까요.”

그 말과 함께 우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두어 걸음 거리를 두고 현관으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한 우신은 나를 돌아보더니 씨익 웃었다.

덩달아 미소 짓는데 순식간에 그의 입술이 내 이마에 붙었다 떨어졌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자 우신이 입술을 움직여 소리 없이 말했다.

‘이 정도는 봐줘요, 저 많이 참고 있거든요.’

곧장 그가 문을 열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던 다영이 불쑥 튀어나온 우신에 잠시 당황한 듯 뒤로 주춤거리며 길을 비켜 줬다.

우신은 그대로 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이마를 가만히 매만졌다.

‘……참고 있는 게 누군데.’

다영은 우신이 완전히 사라진 것까지 확인하곤 나를 쳐다봤다. 그녀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 말 조금 바보 같지만 두 분 사귀세요?”

“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다영의 표정에 번뜻 우신의 미소 띤 얼굴을 떠올렸다.

평소의 우신은 표정이 없는 편에 속했다. 그 탓에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웃기만 해도 신기해하는 듯했다.

“아까 강우신 가이드 표정이 많이 밝았나요?”

그 점을 떠올려 묻자, 다영이 잠시 당황한 듯 제 아래턱을 매만지다 답했다.

“뭐, 사실 강우신 가이드는 양 헌터랑 있을 때면 대체로 밝았던 것 같아요. 그것보다 양 헌터 표정이 좋아 보여서요.”

나는 그제야 우신 못지않게 내 얼굴에도 진득한 웃음이 달라붙어 있음을 깨달았다.

다급히 내 의지와 다르게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손으로 가렸다.

다영은 그런 내 모습이 신선하다는 듯 웃더니 들고 온 가방을 능숙하게 탁상 위에 올렸다. 무게가 꽤 나가는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테이블로 향하는데 호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민지민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말씀 없이 벌써 팀원을 짰길래 그편으로 자료 보냅니다. 내일 첫 현장 파견인데 일찍 일찍 주무시고요^^]

내 시선은 곧장 다영이 들고 온 서류 가방으로 향했다.

“뭐 받은 거 있습니까?”

“아, 제 방 앞에 이게 놓여 있긴 했습니다. 받는 이에 양 헌터 이름이 쓰여 있어서 가져는 왔는데…… 민지민 헌터가 보낸 건가요?”

다영이 눈치채고는 되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페이퍼 나이프를 꺼내 유독 얇은 하얀 서류 봉투의 윗단을 잘랐다.

곧 종이 몇 장이 힘없이 너풀거리며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종이의 말머리에는 특수 마약반이라는 팀명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 이 몇 달간 민지민이 조사한 ‘에스텔’에 대한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보도된 방송만 보면 이미 신마약에 대한 조사는 끝물이고 마치 내가 그 위에 숟가락을 올리는 것처럼 묘사했는데 실상은 달랐다.

다영이 종이를 들고 소리 내 읽었다.

“에스텔. 에너지 보충 마약으로 흡입 시 단숨에 각성 효과를 야기함. 경우에 따라 A등급 이상의 폭발력을 보이며 개인의 역량에 따라 순간 집중도를 높여 학습 능률을 올린다.”

“…….”

“부작용으로는 사용 이후 급격한 집중력 저하, 착란, 심할 경우…….”

종이를 쥔 다영의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놀란 듯한 표정을 한 그녀가 나를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부 괴사. 육체 파괴.”

지난 길드전에서의 일이 떠올렸다. 눈앞에서 피를 쏟아 내던 한정우의 모습이.

“꼭 그거 같네요. 몸 안에 거대한 시한폭탄을 가지고 다니는 거.”

다영의 말이 딱 맞았다.

신마약은 압도적인 힘을 선사하는 대신 그만큼 폭발적인 후유증을 안겨 주었다. 몸 안에 폭약을 농축해 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며, 그로 인해 예고 없이 복용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나는 계속해서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끝에 몇 글자 정도 민지민의 사견이 적혀 있었다. 그중 한 가지 사실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게 7년 전 연구의 ‘성과’라고?”

이걸 감히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파멸할 것을 알고도 이걸 복용한 헌터의 정신세계가 궁금해졌다. 그 정도로 위험한 맹독이었다.

7년 전 수많은 희생을 낳은 연구가 이런 맹독을 만들기 위함이라니.

그걸 누가 감히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 다영도 본인이 보던 서류 끝에서 무언가 발견했는지 나를 불렀다.

“이건 양 헌터가 직접 봐야 할 거 같은데요. 이런 게 쓰여 있어요.”

나는 곧장 다영이 건넨 종이를 받아 들었다. 급하게 적어 넣은 듯 펜으로 쓴 것이었다. 종이 위에는 날카로운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양 헌터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내 대리인은 내가 보낼게요.]

“보내겠다는 건 아무래도 현장 파견을 말하는 거겠죠.”

“아마도요.”

“그럼 대리인이라는 건.”

다영의 목소리가 걱정스럽게 변했다. 센터라면 언제든 틈을 보아 전처럼 말도 안 되는 죄목을 달 수 있었다.

대리인은 그런 내 행동의 꼬투리를 달 감시자였다. 다영의 걱정이 이해됐기에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보였다.

“걱정 마요. 일단 미디어에 노출됐으니 당장 저를 함부로는 못 할 거예요. 센터의 위신도 있으니.”

* * *

특수 마약반의 첫 현장 파견 장소는 민지민이 지정해 준 강원도 소재에 있는 도박장이었다.

다영이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마약사범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아직 다리가 다 낫지도 않은 사람을 데려가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연구실 출신 헌터들을 찾아 에스텔에 관한 자문을 구해 달라 했다.

내 부탁에 다영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우선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보겠다 답했다.

그렇게 단독 임무로 시외버스 첫차를 타고 홀로 강원도로 향했다.

게이트가 유독 잘 생기는 우범 지역들이 있다. 강원도에서 몇몇 도시들이 그러했다. 개중엔 거듭된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해 복구 불능 판정을 받기도 했다.

땅을 고르고 다시 건물을 세워 봤자 언제 다시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질지 모른다는 거다.

덕분에 집값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그런 자리를 가장 먼저 사들이는 건 보통 다른 꿍꿍이가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인적이 드문 폐허에서 은밀한 일들을 수행해 나갔다.

이 도박장도 그 꿍꿍이가 실현되는 장소였다.

수입되는 신마약 유통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으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이었다.

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의 바닥은 모두 대리석으로 깔려 있었으며, 금빛 조형물 장식들이 가득했다.

그 복도를 따라 걸으니 서서히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끝에 서자 2층 난간 아래로 거대한 도박장이 보였다.

포커, 마작을 즐기는 층들이 각각 나뉘어 있었다.

“제대로 대규모군.”

이런 곳에서 신마약이 돌고 있다면 나 혼자 확인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무엇보다 출입이 지나치게 쉬웠다. 초입에 문을 지키는 가드가 둘 정도 서 있긴 했다.

두 사람 역시 에스퍼 인듯했지만, 따로 들어가는 사람을 검문하지도 신분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낡은 금속 탐지기가 있긴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나는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거닐었다. 도박장 특유의 눅눅한 활기가 가득했다.

그 층을 쭉 돌아본 나는 층계 옆에 붙은 안내판을 살폈다.

내가 선 층 위로 도박장이 4층 정도 더 있었고, 그 위로 십여 층이 숙소였다.

숙소까지 모두 확인해야 할까, 내부를 볼 수 없으니 cctv를 확인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고민하며 층계로 이어진 철문을 열었다. 걸어서 위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 순간 위로 향하는 층계 옆으로 지하로 통하는 층계가 눈에 들어왔다.

초입에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긴 했지만, 펜스에 먼지 한 톨 없는 게 방치되기는커녕 이용 중인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걸어가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다봤다. 아래가 새카매 빛 하나 스미지 않았다.

“어디로 통하는 거지.”

앞에서 본 안내판에는 지하에 관한 정보가 쓰여 있지 않았다. 펜스 역시 있으나 마나 해 되레 눈에 띄었다. 가드는커녕 CCTV 하나 없다는 사실이 구린내를 풍겼다.

나는 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이어지는 계단의 단은 높고 폭은 좁았다. 생각보다 지하가 깊은 듯했다. 그렇게 아치형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문이 보였다.

방음 처리된 문인지 철문이 무척 두꺼워 보였다.

‘이런 곳에 방음 문이 왜…….’

불길한 마음으로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 즉시 열린 틈으로부터 뜨거운 열기와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들어선 내부는 어둡고 음습했다. 그리고 위층 도박장에 있던 이들 못지않은 수의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그들은 중앙을 둘러싼 채 손에 땀을 쥐고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뭐 해, 지금이야! 사정없이 조르라고!”

“죽여, 죽여 버려!”

“으아악!”

군중이 만들어 내는 함성 사이에 격렬한 타격음과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익숙한 풍경이었다. 센터의 집중 공격팀에서 보았던 대인전을 떠올리게 하는 투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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