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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1)화 (141/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41화

* * *

“그러니까 7년 전 폐기된 연구가 다시 진행되고 있고, 부작용 있는 마약이 시중에 떠도는데 그 배후로 양하나 헌터가 지목됐다는 건가요?”

내가 한 말을 속사포처럼 정리하는 다영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영 헌터가 한 줄 정리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네요.”

내 한가한 반응에 다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다영은 답지 않게 흥분해서는 좀처럼 자리에 앉지 못하고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양 헌터에 대한 오해가 풀려 다행이라 생각됐는데 오히려 새로운 게이트의 시작인 거 같단 말이죠.”

다영은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리다 우뚝 멈춰 서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사실을 양 헌터에게 순순히 알려 줬다는 게…….”

“수상하죠?”

다영이 내 쪽을 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저도 그 점이 걸리긴 해요.”

“이건 냉정히 봐도 꿍꿍이가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걸리는 게 있어요.”

“뭐죠?”

“정말 7년 전 연구가 재개되었다면 미각성자들을 대상으로 약물이 퍼졌어야 해요. 안 그런가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원래 진행되던 연구는 각성 연구였으니까.

“하지만 길드전에서 일어난 현상은 달라요. 이미 각성한 헌터의 힘을 더 강력하게 하는……. 그래요. 마치 양 헌터에게 씌워졌던 누명과 같은 결이죠.”

민지민과의 면담을 마치고, 곧바로 다영을 찾아왔다. 그녀의 통찰력이 뛰어나다 생각해 고심 끝에 털어놓은 거였다.

예상대로 처음 이야기를 듣고 당황해하던 낯빛이 점차 차분해지더니 금방 핵심을 파고들었다.

내가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자, 다영은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걱정스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거예요?”

“부담스럽다면 미안해요. 안 그래도 저 때문에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서도 고생했는데.”

내 말에 다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잠시 제 속마음을 말하기를 주저하던 다영이 마음을 굳혔는지 입술을 떼었다.

“저는 좋아요. 양 헌터가 종종 저를 찾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협업을 바란 거지 곁을 주는 건 아니었잖아요.”

속마음을 한 글자씩 눌러 말하던 다영은 나를 힐끗 보고는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이건…….”

그 뒷말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흐린 다음 말을 꺼냈다.

“곁을 주는 거 같았나요. 진실을 듣는 게 부담스럽진 않고?”

내 말에 다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기뻐요.”

그동안 함부로 진심을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걸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전보다 문제가 복잡해지곤 했다. 차라리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게 더 낫다 여기다 보니 침묵이 습관이 됐다.

내 마음이 편하자고 선택한 것이긴 하나, 그게 결과적으론 타인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해 왔는데.

‘지독할 정도로요. 평생을 선배만 눈에 담았으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이 근래 돼서야 알았다.

내 두 뺨이 붉게 물들자 다영은 당황해서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 그러고 보니 지원 헌터도 같이 오고 싶어 했어요. 양 헌터 만나기가 통 어렵다고.”

“아, 그런가요? 전화할 땐 영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데. 요즘 훈련을 무리하게 했다고”

그리 답하자 다영이 픽 웃었다.

“완전 멀쩡해요. 그냥 양 헌터한테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양 한터 앞에서는 은근 애 같은 구석이 있네요.”

지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다영의 모습을 보던 나는 새삼 깨달았다.

“그새 친해졌나 봐요.”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다영이 놀란 듯 손을 휘저었다.

“아니, 그냥 친해졌다기보다는 게이트 현장 사고 이후 문병을 와 줘서.”

그 말에 다영의 다리로 시선이 갔다. 큰 상처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미세하게 움직임이 어색해 보였다.

다영은 내 생각을 알아채곤 다리를 숨기듯 굽히며 의자에 앉았다.

“이제 슬슬 방송 시작하겠네요.”

그 말을 듣고 바로 티브이를 켰다. 타이밍 좋게 막 시작한 <헌터 정보통>의 시그널 사운드가 경쾌하게 울렸다.

보도국에 입장 표명을 할 줄 알았던 민지민은 의외의 채널명을 알려 줬다.

그게 바로 헌터 정보통이었다.

이슈만 된다면 무엇이든 소재 안 가리고 방영하기로 유명한 정보 프로그램이었다.

이번 길드전의 중계권을 따내 익히 알고 있었다.

동시에 김형도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방대한 자료를 내보내는 만큼 증명되지 않은 정보도 더러 섞인 방송이라고.

긁어 부스럼 만들기, 커뮤니티에 먹이 줘서 시청률 올리기가 특기이니 조심하라는 말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하필 민지민이 요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성은 길드에 대한 입장 표명을 그 방송을 통해 할 줄 몰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곧 익숙한 얼굴의 사회자와 이공팔이 인사를 했다.

-금일 특집으로 다루기로 한 성은 길드에 대한 방송 전 긴급 속보가 들어와 순서를 바꾸게 되었는데요, 바로 오늘 0시 기준 센터 각성 센터로부터 대한민국의 새로운 S등급의 헌터를 알려 왔습니다.

상기된 사회자의 말에 내 얼굴 위로 서서히 그림자가 졌다. 반면 다영은 놀란 듯 입이 벌어졌다.

“새로운 S급 각성자라니.”

다영의 감탄사가 채 이어지기도 전에 사회자가 말을 꺼냈다.

-이번 S급 각성자는 십여 년 만에 이뤄진 C급 헌터의 재각성이라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재각성? 몇 해 전 강우신 가이드의 재각성만큼이나 놀라운데요. 게다가 이번에는 에스퍼 쪽이라니.”

다영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센터 소속일까요? C급 헌터라면 2군에 있었을 수도 있는데 저희도 알 만한…….”

다영이 질문을 늘려 갈 때 화면 상단에 사진이 떠올랐다. 지겹게 봐 온 양하나의 입사 때 사진이었다.

‘저 사진은 볼 때마다 우울해 보이네.’

그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는데, 옆자리의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놀란 내가 시선을 돌리자 나보다 더 기겁한 눈을 한 다영이 떡 벌어진 입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저 사진……. 저거 양하나 헌터 아닌가요?”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단은요.”

“일단이 아니라 재, 재각성에 S급 에스퍼라니 저 이야기가 지금 전부…….”

다영의 눈동자가 공허하게 비어 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이미 난 협상을 끝마치며 민지민에게서 검사 결과에 대해 들었다.

정신 감응을 사용한 두 번째 검사에는 모든 능력치가 본 기계가 잡을 수 있는 수치를 한참 웃돌아 있었다며, 이런 형태의 그래프를 보는 건 두 번째라는 연구원들의 후일담까지 덧붙이며 민지민은 건조한 투로 검사 용지를 읽었다.

말에는 아무런 악센트가 없었다. 다만 기묘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민지민은 그 말끝에 재검을 위해 한 번 더 연구실을 방문하라고 일렀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혼잣말하듯 결백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연구실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남 일처럼 취급하고는 자리를 떴다.

나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어요.”

다영은 좀처럼 당혹감을 지우지 못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침착한 편에 속하는 다영의 반응이 이 정도니 벌써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사회자들 역시 흥분감을 숨기지 못하고 말을 주고받았다.

-이공팔 사회자님이 이번 길드전뿐 아니라 올 초 센터에서 주관한 심사의 사회를 맡기도 했는데요. 양 헌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사회자의 질문에 이공팔이 거들먹거렸다.

-C급이라기에는 상당한 자신감과 반항기를 가졌다는 게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런 헌터는 대개 무리하다 일찍이 단명하거나 능력을 살려 새로운 역사를 세우기도 했는데, 양하나 헌터가 바로 후자의 떡잎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와는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눠 본 적 없는데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듯 말했다.

때마침 이공팔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그가 앵글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만 그 힘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우리가 심도 있게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공팔의 말에 사회자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녀가 마약사범으로 쫓기던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군요. 분위기를 이어 바로 오늘의 본 주제였던 성은 길드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곧 화면 위로 성은 길드의 두 주역의 얼굴이 나란히 떠올랐다. 한 얼굴은 눈에 익은 소환사 한정우였다.

-경기 내내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던 두 헌터가 한 명은 중환자실로, 다른 한 명은 길드전에서 즉사하며 의문점을 안겨 주었는데, 검안에 따르면 두 사람의 체내에서 신 마약인 에스텔이 발견됐습니다.

“에스텔.”

나는 가만히 신마약의 이름을 읊조렸다. 사회자의 말에 이공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에 따라 재각성자인 양하나 헌터가 무혐의 입증 차원에서 자진해 새롭게 꾸려진 특수 마약반에 투입된다고 합니다.

“네?”

계속해서 다영의 얼굴 위에 떠오르던 의문이 이번에는 내 입에서 흘러났다.

-양하나 헌터를 주축으로 한 특수 마약반의 출현에 어떤 새로운 바람이 불지…….

“이게 지금 무슨.”

번뜩 민지민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걸 보면 양 헌터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고작 재검사로 끝내기에는 민지민 쪽 손해가 더 크지 않나 싶었지만 설마 이런 짓까지 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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