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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7)화 (137/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7화

우신이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대한민국 센터의 에스퍼를 모티브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크게 흥했다.

그 인기에 발맞춰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의 어린 동생은 매일 같은 시간에 티브이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우신은 집중한 동생 수빈의 시선을 따라 티브이로 고개를 돌렸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땅을 가르고 하늘을 나는 에스퍼의 모습을 신화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유치해.’

요즘은 학교에 가든 학원을 가든 에스퍼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우신이 사는 도시는 게이트 오픈이 없던 청정지구였음에도 말이다.

이곳 태생인 우신에게 몬스터니, 에스퍼니 하는 것들은 모두 현존하지만 낯선 존재일 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우신의 눈에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을 과장되게 그려 낸 애니메이션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턱을 괴고 앉은 우신이 흥미를 잃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수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났다.

“반짝반짝 별님 언니!”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이자 실존 인물이라는 성시현이라는 캐릭터가 극적인 타이밍에 등장한 것이었다.

힘을 쓸 때면 별빛으로 물드는 머리칼에 수빈은 그녀를 별님이라는 저만의 별칭으로 부르곤 했다.

우신은 화면 너머에서 혼자 발광하는 그 별님이라는 캐릭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투지에서 혼자 저렇게 빛나면 안 좋은 거 아닌가?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카멜레온처럼 주변 색에 동화되는 게 최적이지.’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때마침 엄마가 돌아왔다.

손에 뮤지컬 표를 들고서.

“이게 뭘까요? 우리 수빈이가 좋아하는 센터 헌터즈 뮤지컬이지! 우신이도 다음 주에 다 같이 보러 가자.”

반가운 소식을 듣고 엄마의 품에 안기는 수빈의 모습을 보며 우신은 별수 없다는 듯 답했다.

“네.”

우신은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클리어 장면을 다시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지금까지 그랬듯 그 모든 게 자신과는 아주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다.

게이트 브레이크에 휩쓸리기 전까진 말이다.

* * *

이 근방의 아이들은 다 몰린 듯 로비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우신은 한 손에 수빈을, 다른 한 손에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서둘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빈이 로비에 설비된 뮤지컬 굿즈를 보고 싶다고 얼마간 칭얼거렸지만 그걸 구경했다가는 인파에 깔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 공연장 안에 들어오자마자 막이 오르며 수빈의 시선을 빼앗아 갔다.

티브이 애니메이션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우신으로선 헌터즈의 이야기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야기는 단순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로 분장한 사람들이 튀어나와 도시를 파괴하면 에스퍼가 나타나 처단했다.

어린이용 뮤지컬이었기에 이해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등장하는 에스퍼의 이름들을 꿰고 있는 수빈과 달리 캐릭터를 모르는 우신은 그들의 영웅담이 지루할 뿐이었다.

그래서 무대를 보다 졸기까지 했다. 그러다 수빈이의 외마디 소리침에 번뜩 졸음을 떨쳐 냈다.

“별님 언니!”

우신이 유일하게 아는 이름이었다.

‘분명 금발의 여자였지. 홀로 빛나던.’

그 생각과 함께 눈을 돌렸다. 마침 무대 위에는 외국인처럼 찰랑찰랑한 금발 가발을 쓴 배우가 서 있었다.

먼발치에서 봐도 가발인 게 티가 나 어쩐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애들 뮤지컬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야.”

우신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읊조린 순간 타이밍 좋게 인터미션을 맞이해 조명이 켜졌다.

-15분 휴식 뒤 다시 2부가 재개됩니다.

우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신아. 어디 가려고?”

엄마의 물음에 그는 화장실이요, 하고 답했다.

“혼자 갈 수 있겠어?”

우신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로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시작 전보다 로비에 사람이 없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굿즈가 늘어진 중앙 로비를 지나야 했다. 로비를 지나던 때, 가판대 뒤에 붙은 포스터에 눈이 갔다.

건물 초입에 붙은 뮤지컬 포스터와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무언가 달랐다. 우신은 저도 모르게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그럴싸한 포즈를 한 배우들 포스터 틈바구니에 홀로 반쯤 돌아선 채 찍은 이의 포스터가 있었다.

어둑한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준비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화질도 나쁜 사진이 단번에 우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여자는 곧게 편 등허리와 힘 있는 눈동자까지 모든 게 그린 듯 근사했다.

그 모습에 매료된 우신은 멍한 얼굴로 포스터를 한참 쳐다봤다.

그러자 직원이 말을 걸었다.

“성시현 헌터님이야.”

“네?”

놀란 우신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직원을 올려다보자, 그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팬인 거 같은데 한 장 줄까?”

“…….”

잠시 후 우신은 어색한 얼굴로 둥글게 말린 포스터가 든 쇼핑백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왔다.

‘수빈이 주려고 산 거야. 수빈이가 좋아하는 사람인 거 같으니까.’

우신은 자꾸만 아무도 묻지 않은 변명을 되뇌었다.

그렇게 뒤늦게 볼일을 보고 인터미션 종료 안내에 서둘러 손을 씻었다.

빨리 돌아가서 뮤지컬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쩐지 유치하게만 느껴지던 모든 게 궁금해졌다. 포스터 안의 사람이 어떤 역할인지, 어떤 대사를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우신의 몸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쇼핑백에서 튕겨 나간 포스터가 아무렇게나 바닥을 굴러다녔다.

그 순간 깨달았다.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신은 바닥에 넘어지며 그대로 화장실 타일에 머리를 부딪쳤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엄마와 수빈이의 얼굴이 스쳤다.

혼란한 상황에 저를 찾고 있을 두 사람에게 생각이 미치자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우신이 다시 눈을 번뜩 떴을 때는 사방이 깜깜한 암흑이었다.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천천히 주변을 매만지던 우신은 이내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휴대폰이 만져졌다.

서둘러 휴대폰의 플래시를 켰다. 빛이 들며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것도 잠시 우신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우신은 아직 처음 정신을 잃은 화장실 안이었다. 다행히 우신의 머리 위의 선박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 준 덕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사방이 엉망이었다.

벽이 무너진 터라 화장실 너머로 중앙 로비가 보였다.

우신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손이 덜덜 떨려 앞을 비추는 빛까지도 흔들렸다.

분명 정신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빼곡한 사람들로 온기가 가득했던 장소였는데, 지금은 온기는커녕 빛 한 점 없는 암흑이었다.

게다가 모든 것이 허물어져 있었다. 우신은 발목이 불편한 듯 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며 중앙 로비 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누구 없어요?”

아주 자그마한 소리였지만 공간을 타고 소리가 크게 울렸다.

무너진 철근 너머로 빛이 보였다. 우신은 불편한 다리를 움직이며 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불빛은 산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건물 하나를 불쏘시개 삼아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우신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니 뉴스에서나 봤던 광경에 자신이 아직 꿈을 꾸는 게 아닐까 하며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불타오르는 건물 너머로 보이는 사람의 형상에 입을 다물었다.

멀지만 사람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어딘가 하나 뜯겨 나간 형체였지만 말이다.

그제야 주변의 참상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너진 건물 주변만 둘러봤음에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우신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아무리 청정 지역에서 자랐다 한들, 우신은 게이트 브레이크 대비 안전 수칙을 모두 이수했기에 알 수 있었다.

단순 사고를 당한 사람의 시체들이 아니라는 걸.

또한 아직 모든 게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도 말이다.

그 모든 걸 인식하자마자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들었다.

우신은 발이 닿는 대로 이동했다.

먼발치에서 시체를 본 것만으로도 속이 매스꺼워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아 혀를 깨물고 학교에서 배운 안전 수칙을 떠올렸다. 엄폐물이 많아 몸을 숨길 수 있는 곳, 머리를 감싸고 체온을 유지 시켜 줄 담요.

우신은 비교적 덜 무너진 어느 사무실로 들어와 담요를 뒤집어쓰고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어떤 정신으로 거기까지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겨우 이성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정신을 잃은 시점으로부터 9시간 가까이가 흘러 있었다.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이 몇 달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으면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지만, 눈을 뜨고 고독한 적막을 견디는 것 역시 또 다른 지옥이었다.

우신은 자꾸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담요에 코를 묻었다.

배운 대로라면 게이트 브레이크 직후 헌터가 현장에 투입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난장판 속에서 과연 그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 줄 수 있을지 우신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거대한 철근을 밀어 내는 소리가 들렸다.

우신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다시 소리가 멎었다.

인기척에 반색했던 표정이 삽시간으로 어두워졌다. 그게 사람의 인기척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이 든 것과 동시에 서서히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몬스터 중에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놈도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숨을 죽이고 숨는 것에만 집중하라던 문구를 떠올렸다. 생존자를 수색하는 건 헌터의 일이라고.

하지만 반나절이 넘어가도록 자신을 찾지 못한 헌터가 정말 이곳에 와 있긴 걸까, 의심이 들었다.

폭풍처럼 불안감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이내 제 근처까지 와서는 뚝 멈췄다.

우신은 침묵 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바로 코앞에 와 있는 두 다리가 보였다.

시선이 검은 군화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쩐지 주변이 밝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래시를 켜지 않았으니 벌써 날이 밝아 오는 걸까. 아직 밤중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센터 공격 1팀 소속 성시현 헌터입니다. 위급 상황이기에 신속히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상대가 우신을 번쩍 안아 들었다. 우신은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안는 게 처음이었다.

낯선 상황에 놀라고 있던 때, 우신은 자신을 안아 든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흘러내린 머리칼이 금빛 물결처럼 아름답게 출렁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우신은 단번에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수빈이가 입이 닳도록 말하고 다니던 존재, 포스터 속 고요한 빛.

“별님.”

우신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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