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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5)화 (135/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5화

이곤은 경직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게 그때 말했던 그것과 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래.”

민지민은 피곤한 듯 제 목덜미를 쓸어내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네 눈으로도 봤겠지? 민형기를 제압하는 양하나 모습.”

통신이 끊긴 와중에도 민지민은 모두에게 하나씩 지급해 둔 바디 캠으로 녹화된 상황을 전부 확인했다.

아직 그가 회수하지 못한 건 강우신의 바디 캠뿐이었다.

민지민은 나른한 얼굴로 티브이를 바라봤다. 티브이에서는 한창 양하나의 마약 의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보던 민지민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건 단순히 마약 같은 게 아니야. 아니고말고.”

그의 하얀 얼굴은 산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창백했다.

“이곤 헌터도 똑바로 새겨 놔, 그거 몸 안에 괴물을 품고 있어.”

“…….”

“사적인 감정은 빼고 제대로 보라고, 그건 더 이상 네가 알던 양하나가 아니니까.”

경고하듯 말을 마친 민지민이 가려는 듯 소파에서 일어나는데, 이곤이 불쑥 입을 열었다.

“민지민 헌터님이 보기에는 그 안에 든 게 정말 괴물 같으십니까?”

이곤의 물음에 민지민이 선 채로 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텅 빈 눈동자 안으로 이곤을 담던 그가 나직하게 되물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티브이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영상처럼 방 안의 두 사람은 소리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먼저 시선을 피한 건 이곤이었다.

“아니에요. 말이 헛나왔네요.”

그의 대답에 지민은 ‘싱겁네’ 라며 읊조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문으로 향했다.

“징계는 피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니 며칠 이 안에서 머리 식히고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인터폰으로 말하고. 웬만한 건 다 넣어 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지민이 문을 닫고 나갔다.

다시 혼자 남은 이곤은 닫힌 문만 한참 바라보았다. 때마침 화면이 전환되며 길드전이 끝난 직후의 현장 모습이 비쳤다.

대부분 필드 밖으로 소환된 이후의 모습들이었는데, 어느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제 몸집에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남자를 업은 양하나였다.

그녀는 천천히 이동진 밖으로 걸어 나오고서야 마침내 긴장이 풀린 듯 쓰러졌다.

정신력만으로 버티는 것 같다며 앵커의 입 모양을 따라 자막이 흘러나왔다.

그 뒤로 이어진 한 멘트가 유독 이곤의 눈에 오랫동안 남았다.

‘끝까지 내 사람을 챙기는 강력한 애정.’

그런 낯간지러운 말이 자꾸만 이곤의 마음 저편에 있는 기억을 자극했다.

혼란이 거대한 파도처럼 마음에 부딪혀 왔다. 이곤은 생채기 가득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그렇게 얼마간 소리 없이 어깨만 떨었다. 이곤은 어떤 소리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 * *

트랩 안에서 우신은 사지를 결박당한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끌어안은 건 양하나였다.

‘내가 이기적이라서,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요.’

그렇게 말한 양하나는 숨결을 뱉어 내며 제게 천천히 입 맞췄다.

우신이 그 감각에 몸을 맡기려는 찰나, 하나가 제 가슴께를 강하게 밀쳤다.

몸이 붕 뜨더니 이내 저만 트랩의 문밖으로 밀려났다. 양하나만 안에 놔둔 채로.

우신은 점처럼 작아져 가는 하나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실루엣 위로 시현이 겹쳐 보였다.

또다시 혼자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절망감에 비명을 지르는데 눈이 떠졌다.

“…….”

병실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그의 손등 위에 링거가 연결돼 있었다.

우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가만히 6년 전의 기억과도 같던 꿈을 회고했다.

머리가 침착해지니 꿈과 다르게 저를 업고 함께 트랩 밖을 빠져나가던 양하나의 작은 어깨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방금 꾼 꿈은 현실이 아니란 소리였다.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양하나를 직접 제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분명 한계를 넘었다. 자신까지 업고 나온 탓에 필드를 빠져나온 그녀의 안위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의 전담 가이드인 자신이 지금껏 태평하게 누워 있었으니 말이다.

‘저는 그 몸을, 그쪽은 안에 든 걸 원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우린 각자 서로에게 중요한 걸 지키는 겁니다.’

싫은 얼굴이 떠올라 손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우신은 이를 악물고는 손등에 이어진 링거를 뽑아냈다.

당장 양하나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빠르게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은 순간, 손잡이가 멋대로 돌아가더니 문이 바깥쪽으로 당겨졌다.

문이 벌컥 열리는 탓에 속절없이 문 너머의 사람과 마주하게 됐다.

차분한 검정 머리칼이 내려앉은 둥근 머리통이 보였다.

그걸 보자 우신의 떨림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제 우려와는 달리 평소 같은 얼굴을 한 양하나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 * *

우신을 업고 어떻게 트랩을 빠져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빠르게 정신이 들었다. 지쳐 쓰러지면 보통 며칠은 의식을 찾지 못하는데 반나절도 되지 않아 눈이 떠졌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머리맡에 의자를 두고 앉은 민지민이었다.

나는 그를 힐끗 보고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강우신 가이드는요.”

내 물음에 민지민이 픽 웃어 보였다.

“애틋하네요. 우리도 오랜만에 보는 건데 보자마자 다른 남자부터 찾는 건 좀 서운한데.”

그의 말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폭주 직전까지 갔음에도 몸이 한없이 가벼웠다.

전부 우신의 가이딩 덕분이었다. 마지막에 입을 맞춘 그 순간 엉망으로 부서지던 것들이 제자리로 빠르게 되돌아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나는 손목을 가볍게 문지르며 침상에 걸터앉았다.

“같은 병동에 있긴 합니까.”

“곧 조사인 병동으로 이동될 겁니다. 당신도 마찬가지고.”

“나는 그렇다 쳐도 왜 강우신까지?”

정말 모르겠다는 내 표정에 민지민이 한쪽 입꼬리를 당겼다.

“센터 몰래 신분을 속여 길드전에 참가했지 않았습니까.”

“…….”

“하나같이 소속감이 없어서 어떻게 하려고. 강우신 가이드도 이곤 헌터와 마찬가지로 그냥은 못 넘어갑니다. 처분이 내려올 때까지 조사인 병실에 있어야죠.”

민지민은 보란 듯 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혹시 모르잖아요. 두 사람 다 사랑에 눈이 멀어 그런 짓을 벌인 걸지도. 그럼 길드전 참여뿐만 아니라 지명 수배범을 빼돌린 데 합심했을 수도 있고.”

그는 말도 안 되는 죄명을 붙이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갔다.

“이거, 징계받는 꼴이 볼만하겠는데요.”

비열한 새끼.

두 사람을 제멋대로 휘두른 게 누구인지는 뻔했다.

그런데 정작 그 당사자가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밀며 두 사람의 단독 행동인 양 나와 묶었다.

분노에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

바라던 반응이라는 듯 민지민은 분노에 찬 나를 빤히 쳐다봤다. 화를 돋우려는 게 꼭 내가 제 앞에서 힘을 써 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진정하기 위해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강우신 가이드 정신은 돌아왔습니까?”

“아직 반나절밖에 안 됐습니다. 돌아온 당신이 정상이 아니지.”

그의 말을 끝으로 병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강우신 가이드 정신이 들 때까지 일반 병동에 놔둬요. 저도 마찬가지고.”

“본인 처지를 잘 모르나 봅니다. 두 달 넘게 지명 수배돼 쫓기던 사람이 길드전 용병으로 참가해 놓고 저한테 딜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민지민의 말에 나는 이를 아득 갈았다.

누구 때문에 그 개고생을 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위에 군림하려 드는 저놈을 묵사발 내고 싶었다.

“마약 재검해도 성분 검출되지 않을 겁니다. 또 조작한다 해도 길드전에서 저를 본 사람이 많아요. 믿지 않을 겁니다.”

민지민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나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재각성 검사를 하죠.”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의욕이라고는 없는 듯 행동하던 민지민이 내 말에 솔깃했는지 허리를 곧추세웠다.

“지금 재각성 검사라고 했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걸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어떤 도덕도 선도 없이 움직이는 그는 통제력 없는 아이와도 같았다.

나는 두 눈을 빛내는 민지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헛짓거리하는 것보다 훨씬 원하는 걸 빠르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뜻대로 따라 줄 테니, 강우신과 이곤 두 사람의 징계는 네 선에서 어떻게든 없던 일로 하세요.”

“내 선에서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하도 크게 사고를 친 거라.”

그가 장난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눈매를 접어 웃었다.

“그 정도 깜냥도 안 되면서 까분 거였으면 여기서 그냥은 못 나가지.”

내 말에 그의 올라간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난 이래서 당신한테서 눈을 못 떼겠어. 좋아, 양 헌터 뜻대로 해 줄게. 어디 원하는 대로 해 봐.”

* * *

“……양하나 헌터?”

우신이 가만히 내 이름을 읊조렸다. 그 목소리가 사념 속에서 날 건져 냈다.

강우신의 얼굴을 보고 나니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혼잣말처럼 부르면 대답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됩니다.”

그리 말하며 시선을 내리자 우신의 손등 위로 흐르는 소량의 피가 보였다. 그의 뒤편을 보니 링거를 아무렇게나 당겨 뺀 모양이었다.

다시 보니 아직 안색이 좋지 못했다. 꼭 지독한 악몽에서 헤맨 듯 허옇게 질린 얼굴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쥐며 입을 열었다.

“어딜 가려고 이렇게 급하게 나왔어요.”

“…….”

“절대 안정이니까, 돌아가서…….”

그를 다시 침상으로 데려가려는데 우신이 먼저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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