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4화
“그것 말고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 줘요. 염두에 둘 테니, 시간이 없지만.”
내 대답에 우신의 표정이 굳었다. 머리를 얻어맞은 듯 그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우신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바라보던 출구 쪽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려 했다.
그 모습에 나는 서둘러 그의 옷가지를 잡았다.
“뭐 하는 짓이에요. 내 말 못 들었어요? 시간이 없다고!”
“양 헌터야 말로 내 말 기억 못 합니까?”
힘으로 돌려세운 우신의 얼굴이 처참했다.
“내가 분명 말하지 않았습니까.”
“…….”
“날 구할 생각 말라고, 남을 구하려 하기보다 스스로를, 자신을 구하라고.”
우신의 목소리 끝이 젖어 들었다. 우신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목소리가 작아졌다.
“나를 구해 줘도……. 나는 하나도 안 고맙다고요. 정말 하나도요.”
‘이 울보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커다란 몸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원망할 겁니다.”
“…….”
“그러니 제발 힘이 남았을 때 가요. 나를 두고 제발 가요. 가.”
그가 왜 이렇게까지 절박한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슴에 거대한 못이 박힌 듯 아팠다. 최선을 다해 나를 회유하고 보내려는 모습에 목이 타들어 갔다.
내가 강우신을 이렇게 만든 것 같아서.
훌쩍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날의 기억이 다 큰 남자를 그 자리에 묶어 둔 듯했다.
나 역시 두 번째 삶에서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최선이라는 변명에 숨어 답답하고 이기적인 선택만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곱씹으며 조심히 우신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내 손의 온기에 우신이 말을 뚝 멈췄다.
“……양 헌터?”
“안심해요. 강우신 가이드만 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요.”
“나만 보내지 않을 겁니까?”
바보 같은 물음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일은 과거에 했어야만 하는 일이다.
바로 6년 전 어떤 게이트에 두고 온 어린 강우신과 나 자신을 구하는 일.
나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우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미안해요.”
내 사과에 불길한 예감이 든 듯 강우신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그가 무어라 입술을 떼기도 전에 그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이기적이라서, 혼자 책임지게 해서 미안해요.”
“…….”
“그러니 강우신 당신이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돼요.”
그 말과 함께 강우신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갰다. 벌어진 입가를 통해 그의 온기가 흘러들었다.
폭발하려는 듯 울렁이는 에너지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 고요해진 순간, 내 뺨 위로 우신의 뜨거운 눈물이 닿았다.
7. 고백
이곤은 병실 침대에 걸터앉아 허벅지 위의 붕대를 새것으로 감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작은 창들은 모두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센터 감시동에 있는 조사인 병실이었다.
치유계 에스퍼 덕분에 총상은 금방 나아, 더 이상 붕대를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이곤은 어쩐지 상처를 마주할 수가 없어 도로 붕대를 감았다.
때마침 켜 둔 티브이의 화면이 밝아지며 활기찬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났다.
-바로 그제 일주일간의 치열한 공방을 끝으로 길드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최종 골을 시킨 우승팀은 성은 길드로 길드전 사상 초유의 압도적 피지컬 차이를 보여 줬는데요.
앵커의 멘트 끝에 화면 위로 성은 길드의 다섯 팀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끝에는 이곤과 강우신의 증명사진이 나란히 올라왔다.
-센터에 소속된 이곤 헌터와 강우신 가이드가 용병이 아닌 비정규 루트로 참여한 것이 밝혀지며 공정성에 대한 이의 제기가 나왔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차 기자님을 모셨습니다.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재경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그건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길드전은 지금까지의 어떤 경기보다도 더 많은 난투전이 벌어지며 부상자가 상당했습니다.
-그럼 결과가 번복될 일은 없는 걸까요?
앵커의 질문에 차 기자는 잠시 카메라 쪽을 뚫어져라 응시하다 답했다.
-아니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성은 길드의 우승이 무효 처리가 되며 다음으로 가장 포인트를 많이 먹은 길드가 우승팀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차 기자의 말에 앵커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빠르게 말을 이었다.
-성은 길드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포인트를 먹은 길드라면 역시 그 길드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앵커의 신호와 함께 오델리아의 길드원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그중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양하나의 입사 초기 사진이었다. 그 사진 아래로 작게 ‘용병’이라 적혀 있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같이 어두운 표정의 사진은, 이곤에게만큼은 아주 익숙한 ‘원래’의 양하나의 얼굴이었다.
-오델리아 길드는 초반부 외곽을 타고 천천히 중앙으로 들어오는 전략을 취했는데요. 덕분에 5일째가 되는 날까지 취득 포인트가 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그걸 뒤집고 마지막 날 2등까지 올랐습니다.
중앙에서 퀸백을 상대로 선전하는 오델리아의 모습이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모두 정확하게 타격 조끼만을 노려 빠르게 아웃시키고 포인트를 가져가는 방식을 취했는데요. 참으로 영리한 방식이었죠.
포인트 획득 현황 그래프가 마지막 날 중앙 전투를 기점으로 빠르게 오르는 걸 보여 줬다.
-오델리아 길드 하면, 역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양하나 헌터가 아닐까 합니다. 센터의 수배 대상인 신분으로 두 달여 간 모습을 감췄었는데요. 그 공백을 깨고 갑자기 길드전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대단한 경기력을 보여 줘 여러 의견이 따라붙고 있는데요. 중독자라면 보일 투약 흔적은커녕 안정적인 컨디션으로 대활약하며 재검사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말들이 센터 게시판을 도배해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라고 하죠.
기자의 말과 함께 영상은 양하나의 전투 하이라이트로 넘어갔다.
이곤은 멍한 얼굴로 화면 너머의 양하나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자꾸만 마지막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이곤, 너는 양하나가 좋은 거니 싫은 거니.’
모르는 척 밀어 두고 있던 질문을 그녀가 주저 없이 끄집어 올려 물었다.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듯한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그런 얼굴로 잘도 총을 쏘고 말이다.
이곤은 저도 모르게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글쎄…… 정말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자신을 두고 떠나가던 어린 하나의 뒷모습이 점점이 떠올랐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애타게 흐느끼던 어린 날의 제 모습과 함께 말이다.
그때, 앵커의 목소리가 작게 줄어들었다. 놀란 이곤이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 했더니.”
“……왔습니까.”
“저게 보고 싶은가. 지금 상황에.”
언제 들어온 건지 민지민이 서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비웃음이 묻어났다. 민지민은 리모컨을 테이블 위로 도로 올려 두고는 가깝게 다가왔다.
“부상은.”
이곤의 허벅지 위에 엉망으로 감겨 있는 붕대를 보고 묻는 듯했다.
이곤은 걷어붙이고 있던 바지를 내리며 답했다.
“멀쩡합니다.”
“그래 보이더군.”
민지민은 그리 답하며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시선이 자연히 무성 영화처럼 화면만 지나가는 티브이로 향했다.
민지민은 그걸 빤히 보다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민형기에게 들었어.”
“…….”
양하나의 예상과 다르게 골을 한 건 이곤이 아니었다.
이곤은 곧장 하나를 따라가려고 했다. 자신에게 총을 쏘고 내달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정말 강우신을 따라 트랩에라도 뛰어들 얼굴이라서.
그러나 그녀를 막아서려는 순간 민형기가 이곤을 덮쳐 왔다.
그가 벗은 로브로 뒤에서 목을 졸랐다. 진작에 깨어나 기절한 척하며 때를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장난스러운 어투로 어디를 가냐며 이곤을 닦달했다.
“골해야지, 계집애 뒤를 왜 따라가. 죽이지도 못할 거면서.”
“이거…… 윽, 놓으시죠.”
로브를 잡은 이곤의 손에서 검은 에너지가 일렁였다. 그걸 본 민형기가 손에 힘을 풀자 이곤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바닥에 무릎 꿇은 이곤이 제 목을 매만지며 기침을 토해 냈다.
민형기는 그를 뒤로한 채 빠르게 탑을 올랐다.
그러고 머지않아 골 사인이 울려 퍼졌다.
이곤은 그때를 떠올리고는 화를 억누르듯 되물었다.
“민형기 헌터가 자신이 멋대로 움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던가요.”
성은 길드의 전체 명령권은 이곤에게 있었다.
물론 민형기를 완전히 통제하리란 기대는 없었지만, 양하나를 공격한 건 명백한 명령 불이행이었다.
민지민은 이곤을 빤히 쳐다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양하나를 지키려고 민형기에게 달려들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민지민의 말에 이곤이 표정을 굳히자 그가 입매를 올려 웃었다.
“장난이니까 힘 빼지. 마지막 작전이 엉키긴 했지만, 나는 만족해. 다 확인했으니까.”
“한정우 헌터, 양하나와 전투 중 몸 안의 장기가 터졌습니다.”
이곤 역시 철탑 위에서부터 양하나와 소환사인 한정우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까지도 말이다.
그 자체로도 큰 충격이었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어느 매스컴에서조차 한정우 헌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 나오는 티브이 프로그램 화면에서도 성은 길드를 이야기할 때, 한정우 헌터의 사진만 지워져 있었다.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