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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3)화 (133/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3화

퀸백 길드원들은 끝내 이실직고했다. 두 놈의 다리를 분질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 그들이 말한 방향으로 뛰어왔다.

바위 틈새로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입구가 나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꼭 깨진 그래픽처럼 오묘한 색의 환영이 일렁이고 있었다.

트랩이었다. 본능적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밀어 넣은 거 아냐. 지 발로 트랩 안으로 뛰어 들어간 걸 어떻게 해!’

겁에 질린 눈동자를 보면 거짓을 말하는 거 같지 않았다.

강우신이 스스로 이 안에 들어갔다고?

이해되지 않아도 통신이 끊기기 직전 두 다리로 멀쩡히 달리던 모습을 보았기에 당장은 그 두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무사하겠지. 화면으로 보았을 때 허리춤이나 소매에 피가 묻어 있긴 했었지만, 조금 시간이 된 듯 말라 있었다. 그러니 그 피가 강우신의 피는 아닐 터였다.

“……아니어야 하지.”

그렇게 읊조리고는 천천히 트랩 안으로 들어섰다.

트랩 안에 들어오니 급격히 멀미가 났다.

트랩을 조심하라며, 일단 들어서면 밖과의 통신이 모조리 끊긴다는 괴담 같은 안내만 들은 터라 황량한 내부를 떠올렸는데, 들어와 보니 숲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게이트로 별의별 곳을 다 다닌 입장에서 왠지 김빠지는 풍경이었다.

그래서 안심해 버렸다. 금방 강우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이상하단 걸 알아차렸다. 계속 걸었는데도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어셋은 예고대로 먹통이었다.

나는 자리에 서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힘만 빠지겠군.”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걸음이라면 움직여 봤자다. 숲의 구조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강우신.”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낯선 공간에 마음이 조급해질 법도 한데, 우신이 이 안에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처음 트랩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시계도 멈췄다. 이를 확인하고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십 분쯤 지났으려나.”

여유 부릴 시간은 없었다. 때를 놓치면 우신과 함께 여기 발이 묶이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

양하나의 몸으로 사는 데 어떤 불편이 있는지 물어 온다면 한참을 떠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새롭게 알게 된 것 역시 많았다.

무엇보다 죽어도 후회 없다 여긴 지난날들이 실은 후회로 가득하단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도 지금만큼은 이 무력한 몸이 조금 후회스럽네.”

성시현일 때의 힘을 온전히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이 트랩 안에서 강우신을 찾아내고 탈출하는 것까지도 가능할 텐데.

그 순간 목걸이가 내 바람과 공명하듯 뜨거워졌다.

필드에 들어온 후 계속해서 힘을 한계치까지 사용해 왔다. 그럼에도 기절하거나 정신을 잃지 않았던 건 전부 이 목걸이 덕분이었다.

가경의 서포터 목걸이. 이 안에 어떤 에너지가 담겼는지 묻지 않아도 알 거 같았다.

원래라면 내 모든 힘을 끌어내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제대로 시도해 본 적은 없기에 이후 어떻게 될지는 도박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임시 가이드일 뿐이잖아요.’

남의 눈에는 내 행동이 과해 보일까.

에스퍼에게 가이드가 생기면 모든 사고의 흐름이 가이드를 중심에 두고 재구축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눈에 내 행동이 그런 식으로 해석되는 게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단호히 그것 때문이 아니라 답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속이 들끓고 불안한 건 강우신이 내 가이드라서가 아니었다.

그가 내 가이드가 아니라 해도 나는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 말이다.

그 생각을 끝으로 주변이 환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몸을 짓누르는 듯한 강한 에너지에 서 있는 땅까지 깊게 파였다.

질끈 눈을 감았다 뜨자, 데이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숲속 공간 어딘가에서 살아 있는 자의 에너지 파동이 느껴졌다.

나는 곧장 다리에 살짝 힘을 주어 바닥을 차고 그곳을 향해 뛰었다. 계속해서 같은 곳을 맴돌게 하던 시스템을 강제로 가로지르자 그 반작용인지, 토할 것같이 머리가 흔들렸다.

무시한 채 달려 나가다 거대한 나무 앞에서 멈춰 섰다.

아까 있던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뿌리가 깊고 몸통이 두꺼운 거대한 나무였다.

수백 년을 살아온 듯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뻗은 가지가 하늘을 감추는 모양새였다. 그 밑으로 내리뻗은 녹음 아래 내가 찾아다니던 남자가 누워 있었다.

“…….”

눈을 감고 고요하게 누워 있는 모습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한 발자국 천천히 내디뎠는데, 풀을 밟는 소리에 우신의 눈꺼풀이 떠졌다.

그는 그간 있던 육탄전과 무관해 보이는 평온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그리고 서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 꿈이라도 꾸는 겁니까?”

“…….”

“죽을 때가 되니 선배가 절 데리러 왔나 보네요.”

항상 여유로운 얼굴을 하던 사람이 몽롱하게 젖은 눈으로 날 빤히 보았다.

그는 많이 피로해 보였다.

왜 하필 트랩 안으로 뛰어든 것인지, 만나면 한 소리 하려고 했는데 막상 평화를 찾은 얼굴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응석 부리듯 미소 지었다.

“아무렴 그래야죠. 저를 혼자 두고 갔으면서.”

“…….”

“보고 싶었어요, 선배.”

진심 어린 말에 저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대로 놔뒀다가는 혼자 더 무슨 말을 할 줄 몰랐다.

나는 혀를 차고는 그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꿈 아니니까 정신 차려요.”

선명한 내 목소리에 우신의 눈동자에 서서히 이채가 돌더니 그가 놀란 듯 상체를 일으켰다.

“……양 헌터? 여길 어떻게.”

“그건 내가 할 말 아닐까요. 도대체 여길 왜 들어와서.”

내 다그침에 우신의 표정이 축 가라앉았다. 냉랭해지는 분위기에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가 구하러 올 줄 알고 여기 들어온 겁니까.”

내 말에 우신이 어이없다는 듯 옅은 웃음을 뱉어 냈다. 나도 따라 픽 웃었다.

“일어날 수 있어요?”

그 말과 함께 우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그가 단호하게 답했다.

“멀쩡합니다. 그것보다 그 모습은…….”

그동안에는 힘을 감응할 때 눈동자만 변했는데, 이번에는 최대치의 힘을 감응한 탓인지 머리칼이 꿀벌색을 띠며 은은하게 빛났다.

그의 안위만 걱정하며 달려오느라 정작 내 모습을 숨길 생각을 못 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그런 이야기라면 일단 나가서…….”

“그게 아니잖습니까. 괜찮은 거 맞아요? 아무리 보조석이 있다고 해도 가이딩 없이 무리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우신이 내 손목을 그러쥐며 말했다. 손을 댄 순간 본능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는지 그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와 동시에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그의 눈빛을 못 본 척하며 시선을 돌렸다.

“잔소리는 나가서 들을 테니 일단 가요. 공간이 무너져서 완전히 갇히기 전에.”

내 말에 우신이 놀란 듯 되물었다.

“공간이 닫히고 있습니까?”

중계에 문제가 있었다지만 최종 승자인 성은 길드 소속이면서 예감도 못 한 얼굴이었다.

“네, 그러니까 트랩 안에 있으면 안 돼요. 적어도 트랩 밖으로 나가서…….”

그를 일으킬 생각으로 우신의 팔뚝 쪽으로 손을 뻗는데 인중을 타고 무언가 흘러내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곧장 윗입술에 닿는 건 코피였다. 나는 손을 거두어 코를 막았다.

“이게 왜…….”

멀미가 심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강우신이 재빨리 내 허리를 받쳐 제 쪽으로 끌어안았다.

손끝이 떨리는 걸 보니 한계치를 넘어선 에너지가 정신을 붕괴시키는 모양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사색이 된 강우신이 서둘러 가이딩을 시작했지만, 폭주할 듯 차오르는 힘이 가이딩을 방해했다.

우신의 안색도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어 냈다.

밀려난 우신이 울컥한 듯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어요, 죽고 싶은 겁니까?”

“살려고 이러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우신의 허리춤을 잡았다.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우신을 데리고 나가야 했다.

그를 잡아끌자 강우신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양하나 헌터!”

그가 불쑥 소리쳤다. 이토록 언성을 높인 적은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행동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봤다. 우신의 이마 위로 핏줄이 솟아나 있었다.

“그 몸으로 어떻게 저를 챙기겠단 겁니까. 제발 몸 상태를 봐 가며 행동해요.”

“…….”

우신의 말을 묵묵히 듣던 나는 소매로 코를 막고는 주변을 살폈다.

시시각각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를 업고 가는 건 더 이상 무리였다. 우신이 두 갈래로 흔들려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코를 틀어막은 소매가 전부 붉게 물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트랩 안에서 헤매게 생겼다. 나는 물 없이도 몇 주 버틸 수 있지만, 강우신은 아니었다.

생각 끝에 출구를 찾아 시선을 옮겼다. 육안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직선거리 끝에서 출구의 형상이 느껴졌다.

마지막 힘을 다해 밀어 낸다면 딱 내보낼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힘과 거리를 계산하는데 우신이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아서는 저를 쳐다보게 했다.

그러고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생각 하는 겁니까.”

내 계획을 직감한 듯 우신의 목소리가 애달프게 떨렸다.

“아니죠……?”

“…….”

“대답해요.”

“뭐가요.”

그리 대꾸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내 물음에 우신 역시 바짝 마른 입술을 짓씹으며 답했다.

“지금 설마 나를, 아니 나만 트랩 밖으로 내보내려는 거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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