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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2)화 (132/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2화

내 말에 이곤의 눈이 미묘하게 휘어졌다. 이내 그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불쾌한 미소에 나는 따지듯 물었다.

“뭐가 웃긴데.”

“너는 애초에 양하나 흉내를 낼 생각이 없었구나 싶어서.”

“…….”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니. 절대로 양하나가 할 말이 아니잖아.”

직전까지 웃고 있던 이곤의 눈이 슬프게 휘어졌다. 불쑥 가경의 말이 떠올랐다.

‘너를 가장 믿어서 배신감이 클 사람이 바로 이곤인데.’

그때 이곤은 연구실에 자신들을 남겨 놓은 채 떠나는 양하나를 보며 어떤 기분이었을까.

‘강우신은 성시현을 뭐라고 생각할까.’

‘……모르긴 몰라도 강우신 가이드에게 성시현 에스퍼는 좋게 쳐 줘야 배신자 정도가 아닐까. 나라면 그럴 거 같아.’

언젠가 그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강우신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배신자’라는 말만이 강하게 남아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건 이곤이 양하나에게 하는 투정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제야 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네가 하수도에서 그 비슷한 말을 할 때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

“궁금한 거?”

“그래.”

나는 이곤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곤, 너는 양하나가 좋은 거니, 싫은 거니.”

이곤의 눈이 커졌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천천히 끔벅이더니 이내 표정을 굳혔다.

“무슨 상관이야. 진짜도 아닌 주제에.”

‘아주 단단히 비뚤어졌네.’

마른침을 삼키는데 이곤이 냉정하게 식은 눈을 한 채 말을 이었다.

“궁금한 척하지 마. 네가 진짜 묻고 싶은 건 다른 거잖아.”

“다른 거?”

되묻는 목소리에 일순 침묵이 감돌았다. 무언가 말하기를 주저하던 이곤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강우신은 어디 있을까.”

“뭐?”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네가 강우신에게 집착한다는 건 알거든.”

“…….”

“예상했잖아, 날 본 순간 여기 그놈도 있을 거라는 걸.”

어느 정도는 그랬다. 여기서 이곤을 처음 본 순간, 민형기의 입에서 가이드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당연하게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는데, 설마 이곤이 먼저 말을 꺼낼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곤은 그런 내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말을 이었다.

“계속 단독 행동하려고 해서 탑에서 멀찍이 묶어 놨어. 눈을 피할 수 있는 트랩 근처에.”

트랩이라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순간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자정을 알려 드립니다. 철탑 꼭대기 층에 우물이 생성되었습니다. 구를 골인시킨 팀의 승리입니다!]

알림과 함께 생중계 장면이 흘렀다. 중간중간 통신이 불안정한 듯 화면이 흔들렸지만, 화면에 떠오르는 얼굴은 확인할 수 있었다.

중심에서 싸우고 있는 오델리아의 멤버들과 퀸백 길드. 그리고…….

화마에 휩싸인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전투 현장들이 빠르게 스치던 그때, 갑자기 화면 위로 숲이 등장했다.

흩어진 소수의 퀸백 길드원들이 누군가의 뒤를 쫓고 있었다.

쫓기는 이의 얼굴이 서서히 선명해졌다.

동시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쫓기는 건 강우신이었다. 무언가에 베인 듯 뺨에 상처를 단 채 우신은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가 차게 식었다.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기도 전에 화면이 지지직거리더니 꺼졌다.

“타이밍하고는. 내가 뭐랬어. 돌아가라고 했지? 진작 내 말을 들으면…….”

이곤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몸이 저절로 숲 쪽으로 향했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뛰려 하자 이곤이 내 팔을 낚아챘다.

“어딜 가려고. 설마 지금 강우신한테……!”

그가 내 팔을 끌어당기는 순간 주저 없이 홀스터에서 권총을 빼 들어 그의 가슴께로 들이댔다.

“놔.”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장전했다. 냉정이 사라진 내 얼굴을 보며 이곤은 차분히 잡은 팔을 놨다.

“너 지금 가면 철탑의 우물에 내가 골 할 거야.”

나는 허, 하고 비웃음을 뱉어 냈다.

“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너 도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

허를 찔린 듯 이곤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마를 쓸어 올렸다.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하던 그의 눈빛이 이내 사납게 변했다.

“지금 저기서 개고생하고 있는 네 팀원. 저거 전부 너 때문에 저러고 있는 거 아니야?”

“…….”

“남의 몸 함부로 빌려 쓰는 거면 얌전히 행동해.”

“입 다물어. 이곤.”

그에게 총을 맞았던 어깨가 시큰거리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폭발음은 민형기가 기절한 시점부터 멈춰 있었다. 이어셋을 빼고 있는 탓에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짜증스럽게도 이곤의 말이 맞았다. 내가 여기서 자리를 이탈했다가는 승리는 영영 물 건너간다.

하지만 그대로 철탑을 오르기에는 강우신의 모습이 눈앞에서 자꾸만 아른거렸다.

나는 총의 방아쇠 위로 손가락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나에 대해 잘 아는 듯이 나불거리는데, 강우신 이름을 입에 올렸을 때 이렇게 될 거라는 것도 알았겠지.”

그 말과 함께 이곤에게서 빠르게 떨어진 뒤, 총구를 내려 그의 허벅지를 조준해 쐈다.

탕-

총알 한 발이 정확히 그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이곤은 단말마와도 같은 비명을 내뱉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골을 하든 뭘 하든 해 봐. 그 다리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만 남기고는 빠르게 숲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중앙의 철탑에서 멀어지자 한없이 사위가 고요해졌다. 폭약의 냄새와 비명, 사방을 집어삼키던 화마의 불길 따위와 멀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고요해지는 만큼 머리가 복잡해졌다.

크게 부상당한 채 이송된 고우주나 이 팀장, 오델리아 팀원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약속한 걸 지킬 수 없게 되니 죄책감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럼에도 내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 도로 낀 이어셋에서 노이즈가 났다. 곧 통신이 정상화되었는지 이 팀장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 팀장 역시 내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뛰던 걸음을 천천히 멈추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그럴 생각 없었는데, 입에서 불쑥 사과부터 튀어나왔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이 팀장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내가 아무런 대답을 않자, 그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성은 길드가 골했어요.

끝끝내 이곤이 골을 한 모양이었다. 그 다리로 기어코 그 높은 철탑을 오르다니.

원래라면 골과 동시에 알람이 떠야 했는데 웬일인지 조용했다. 강우신의 위치를 보려 해도 이제는 아예 생중계 화면이 뜨지도 않았다.

“통신이 안 좋아요. 생방송 중계도 그렇고.”

-머지않아 필드 밖으로 옮겨질 겁니다.

게임이 끝나면 필드 위의 헌터들은 순차적으로 현실로 이송됐다.

-트랩은 논외라는 거 알고 있겠죠.

트랩에 들어가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입장 전 본 필드 소개 영상을 되짚어 보았다. 커다란 가상 세계를 만들며 발생한 버그나 허점을 한 장소에 모아 둔 게 바로 트랩이었다.

새카만 균열처럼 보이는 트랩 안으로 들어가면 프로그램의 관리 영역을 이탈하게 됨으로써 밖에서 도울 수 없게 됐다.

“네.”

내 대답에 이 팀장은 목소리가 흔들렸다.

-송신이 끊기기 전에 봤어요. 트랩으로 몰이사냥당하던 강우신을. 지금 그 남자를 구하러 가는 거겠죠.

“…….”

-그 몸으로 트랩에서 나오는 건 힘들 수 있어요.

“알고 있어요”.

내 단호한 대답에 조이현이 말을 가로챘다.

-골 못 했다고 혼내지 않을 테니, 빨리 돌아와요. 강우신 가이드 정도면 센터에서도 찾으려고 나설 테니까.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숲길을 내달리는 동안 이성을 다잡으려 다리를 주먹을 내리쳤지만, 끝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강우신과 같은 장소에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몸이 들끓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자, 김형도가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임시 가이드일 뿐이잖아요. 옛날엔 가이딩 없이 오랫동안 잘 버티며 살아왔다면서요.

김형도의 날카로운 질문이 가슴에 떼려 박혔다.

내가 강우신에게 강하게 집착하는 이유. 그게 뭘까.

단순히 그가 내 가이드라서?

김형도의 말처럼 지금껏 가이드 없이도 잘 살아왔다. 그러나 필요를 떠나 그를 저버릴 수가 없다.

머릿속이 혼란해지며 귀에 이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팀장이 두 사람의 이어셋을 뺏어 드는지, 이어셋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내 이 팀장의 목소리를 끝으로 통신이 끊겼다. 통신이 끊기기 직전, 아주 미약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이 팀장의 말이 들렸다.

나는 이 팀장의 마지막 말을 따라 나직하게 읊조렸다.

“이번엔 살아서 돌아와라.”

그 말을 곱씹는 동시에 숲 끝자락에서 강우신을 몰아세우던 퀸백 길드의 사람들이 보였다.

장총을 든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주저 없이 단검을 꽉 쥐고 달려들었다.

불시에 날아든 내 공격에 두 사람은 놀란 듯 장총을 빠르게 장전했다.

“어디 있어.”

나는 한 사람의 팔을 뒤로 꺾고, 다른 한 사람의 총구를 향해 단검을 날렸다. 총의 탄알이 모두 불발됐다.

당황한 퀸백 길드원이 제 총구에 꽂힌 단검을 어떻게든 빼내려 몸부림쳤다.

“강우신은 어디 있냐고.”

눈을 마주친 퀸백 길드원들은 눈짓을 주고받고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뒤로 꺾고 있던 팔을 그대로 부러트렸다.

뼈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붙잡혀 있던 남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그를 놔주자, 남자가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다른 길드원은 제 앞에 쓰러진 동료의 모습에 당황해 뒷걸음질 쳤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들고 있는 장총의 총구를 잡고 단검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물었다.

“마지막이야. 강우신,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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