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1화
“듣기 싫으니까 돌아가.”
이곤은 내 어깨를 밀쳐 내며 아직도 미약한 폭약 소리가 들려오는 뒤쪽을 가리켰다.
“당장 돌아가라고. 네가 있을 곳으로.”
그의 경고가 어쩐지 미묘하게 들렸다.
밖에서만 해도 나를 잡으려 그렇게 안달을 내더니 왜 지금은 자꾸만 돌아가라고 할까.
단지 우물에 골을 못 시키게 하려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여기서 결판을 짓는 게 낫지 않나.
차오르는 의문을 뒤로한 채 나는 내 어깨를 밀치는 그의 손을 쳐냈다.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어.”
그 말에 자극받았는지 그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그냥 좀 들어……!”
이곤이 날카롭게 소리를 친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곤?”
이곤의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남성의 것이면서도 노이즈가 낀 듯 기괴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려는데, 이곤이 내 시야를 가로막으며 돌아섰다.
언뜻 보아 하니 이곤과 마찬가지로 갈색 로브를 입은 이가 서 있었다.
“뭐야, 철탑 앞에서 폭발음이 들리는 거 같던데. 너였…….”
로브를 쓴 남자는 뒤늦게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을 발견했는지 주변을 살폈다.
나 역시 그 시선을 따라 주변을 훑었다. 이곤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흙바닥을 적신 혈흔으로 볼 때 소환사는 온전치 못한 상태로 아웃된 것 같았다.
주변을 살피던 남자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천천히 쓰고 있던 로브를 내렸다.
“…….”
소환사와 달리 그는 아는 얼굴이었다.
S급 에스퍼 민형기였다.
핏자국을 보고 상황을 취조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예상과 달리 민형기는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이거 왜 이렇게 됐냐? 전 세계로 송출된다면서. 문제 일으키면 가만 안 둔다고 내가 말 안 했던가?”
순식간에 서늘한 냉기가 돌았다. 먼발치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잦아들며 입 밖으로 입김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한기를 느낀 내가 날을 세우자 이곤이 그에게서 나를 가리듯 서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송수신 오류가 떴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음, 그래?”
이곤의 흔들림 없는 모습에 그는 별 의심 없이 도로 냉기를 거두었다.
“그것보다 왜 돌아오셨어요. 철탑은 제가 지킬 테니, 타 길드 마무리하셔야죠.”
“그래야지.”
자기 머리칼을 흐트러트리며 뒤돌아선 민형기가 문득 생각난 게 있는 듯 급하게 걸음을 멈췄다.
“아 맞아. 내 정신아. 말할 게 있어서 온 거였는데.”
민형기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이 걸어 나온 방향을 향해 말을 이었다.
“저 안에 있는 새끼도 제정신 아닌 거 같더라고. 이제 보니 이거처럼 터지는 거 아닌지 몰라.”
바닥의 핏자국을 가리키며 내뱉는 그의 말에 이곤의 미간이 좁아 들었다.
“용준 씨 말하는 건가요.”
“그래. 너희 센터에서 준 약 먹은 새끼들은 어째 하나같이 문제냐? 너나 그 가이드 새끼도 문제 있는 거 아니지?”
“말조심하세요.”
“왜 송신 오류라며.”
“그러다 나중에 말실수할 수 있습니다. 습관 되는 거 순식간이에요.”
이곤의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
이곤의 등 뒤에 있는 터라 민형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목소리나 흘러나오는 에너지만으로도 둘의 대화가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곤의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주먹을 꽉 쥔 것을 보니 참을성에 한계가 오는 모양이었다.
“먼저 가 있으시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이곤은 용케도 인내하며 말을 이었다. 민형기는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제야 순순히 자리를 떠나는 것처럼 보이던 그는 세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아. 그런데 말이야.”
그와 동시에 민형기의 발 아래로 서리가 끼더니 그가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뒤에 있는 그거. 그것도 타 길드 아니냐? 없애야 하는.”
S급 헌터 민형기. 강력한 냉기를 사용하는 헌터라 많은 길드에서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길드를 전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도무지 제어할 수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실력만 월등하면 제어가 어렵더라도 억만금을 주고 데려가려 하겠지만, 민형기는 경우가 달랐다.
그는 자기 기분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앞뒤 분간을 전혀 하지 못하고 날뛰었다.
그걸 증명하듯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에스퍼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가 수용소에 수감되기 전까지만 해도, S급을 가둘 수 있는 시설이 한국 내에 있는가 의혹들이 많았지만 그가 직접 증명해 주었다.
항간에서는 시설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용도로 그가 뒷돈을 챙겼을 거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알 수 없었다.
민형기는 말 그대로 자기 꼴리는 대로 움직였으니까.
“이쪽은 쓸모가 있으니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먼저 돌아가세요.”
이곤이 단호하게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 행동에 민형기의 눈이 커졌다. 불길했다. 척 보기에도 식욕이 돋는 음식을 눈앞에 둔 포식자의 얼굴이었다.
소문의 진상이 뭐든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이곤의 로브를 뒤에서 당겼다.
“위험한 거 같은데.”
“가만히 있어.”
민형기는 그런 우리 모습을 바라보더니 엄지를 주먹 쥔 검지와 중지 사이로 빼 보이며 씩 웃었다.
“쓸모가 그쪽인가?”
“더러운 새끼.”
참지 못한 나는 이곤의 옆구리를 밀치며 얼굴을 드러냈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내 표정에 민형기가 구미가 당기는 표정을 지었다.
“야, 네가 저쪽 가라. 내가 얘 상대하련다. 이쪽이 더 재미있어 보이니까.”
이곤이 혀를 차며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나서지 말고 빠지란 말 안 들려?”
“너도 내 말 안 듣는데 나라고 들어야 해?”
“뭐?”
이곤의 아랫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솟구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민형기가 제자리에서 주먹을 뻗었다. 냉기가 고드름 같은 형체를 얻고 빠르게 날아왔다.
동시에 이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연기에 닿자 고드름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찰나에 만들어 낸 형태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드름의 모양은 장인이 조각한 듯 정교했다.
“어이쿠 지루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런데 아직도 통신 오류인 건가?”
“……그게 지금 왜 중요한가요?”
이곤이 이를 아득 물었다. 그의 몸에서 또다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민형기는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그럼 중요하지.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몰라야 하니까.”
민형기의 눈동자가 은은하게 색을 밝혔다. 이곤의 동공이 커진 순간 그가 나를 뒤로 팍 밀쳐 내며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서 있던 자리 위로 섬뜩하게 생긴 얼음송곳이 솟아올랐다.
게다가 어느새 근방 바닥이 빙판으로 변해 있었다. 주변이 불바다인데 자신의 활동 반경을 전부 빙판으로 만들 만큼 대단한 실력이었다.
감탄할 틈도 없이 이곤과 민형기가 맞부딪혔다.
실로 민형기는 몸 전체가 무기였다. 이곤의 주먹이 닿는 곳에서 얼음 가시가 솟아났다.
이곤은 당황하지 않고 검은 연기로 제 주먹을 휘감으며 대미지를 줄였다.
이곤의 능력을 이리 길게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같은 2군 소속이면서 매일같이 1군에 불려 가는 게 의아했는데, 곁눈질로 보아도 2군에 있을 실력자가 아니었다.
나는 작게 실소했다.
“전부 속았다고 뭐라 하더니, 속은 건 나인 거 같은데.”
공중에서 공방을 벌이던 이곤이 바닥으로 떨어진 찰나 민형기의 빙판을 밟았다.
마치 덫을 밟은 듯 순식간에 냉기가 솟아올라 그를 감쌌다. 이내 이곤의 하체가 얼음에 갇혔다.
이곤의 움직임이 봉쇄되자 민형기가 날아들었다.
오래 능력을 단련한 자들이니만큼 예술적인 공방이었다.
집중 공격팀에서 어린 헌터들이 대인전에 열광하던 게 떠올랐다.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응원하는 말이 승리하길 바라며 두 손을 모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은 직접 필드를 뛸 때와는 다른 재미를 주었다.
눈앞의 전투를 보고 있으니 꼭 그때의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인전과 명백히 달랐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죽음을 야기할 수 있었다.
“건방을 떤 대가는 받아 가야지!”
신이 난 민형기가 얼음 결정에 갇힌 이곤의 다리를 썰어 내려는 순간, 빙판 밖에 있던 내가 그에게 날아들어 힘껏 걷어찼다.
힘을 다한 일격에 민형기가 철탑으로 튕겨 나갔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철탑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 이곤을 붙잡고 있던 얼음 결정이 사라지며 빙판이 녹아 없어졌다. 민형기가 기절했다는 소리였다.
자고로 빙(氷) 능력을 사용하는 에스퍼는 그 몸 역시 얼음처럼 예민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단순히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답이었다.
예상한 결과였지만 먼지가 걷힌 뒤 완전히 녹다운 된 민형기를 보니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몸이 가벼웠다. 목걸이를 슬쩍 만졌다. 이 목걸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생각이 많아지는데 빙결에서 빠져나온 이곤이 나를 올려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이러고서 잘도 양하나인 척을 했네.”
털이 바짝 선 고양이처럼 이를 가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이렇게 입이 걸었나 싶었다.
이곤이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이제는 속일 생각이 없나 봐. 입이랑 행동이 따로 노는 자칭 양하나 씨.”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