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30화
마치 몸 안에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팽창하는 피부에 남자도 당황했는지, 그가 내 손목을 놓고는 제 몸을 더듬었다.
“이게 왜, 왜 하필 지금……!”
불길함에 일어나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는데 피부 곳곳이 붉어진 그와 번뜩 눈이 마주쳤다.
더 이상 노랗게 빛을 발하던 동공은 없었다. 탁하게 변한 눈동자에 붉게 핏줄이 서 있을 뿐이었다.
“이거 너가 그랬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뭘 해.”
“그게 아니면 지금까지 멀쩡하던 게 왜!”
남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가까스로 당혹감을 지우고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달려오던 남자가 피를 울컥 토해 냈다.
바닥에 피가 고일 정도였다. 이내 입가가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공허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말하려는 거 같았지만, 소리를 내기도 전에 그의 몸이 빛났다.
곧이어 그의 몸 안에 응축되어 있던 에너지들이 총알처럼 내게로 쏘아졌다.
손을 뻗어 막으려는 그때, 갈색 로브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좀처럼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따뜻한 온기가 나를 감쌌다.
머리통을 감싸는 손길에 나는 가만히 두 눈을 끔뻑였다.
묘하게 익숙한 향이 났다. 나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가 왜 여기…….”
직전까지 상대하던 소환사와 같이, 성은 길드의 상징인 갈색 로브. 내 시선을 느끼고 순순히 로브를 내리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긴장감과 당혹감에 굳어 있던 입가가 분노에 의해 떨렸다. 나는 입술을 짓이기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곤.”
이곤이 선득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양하나가 사라진 이후 감시과의 추적조가 총동원됐지만, 좀처럼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당시 현장에 지원 나온 누군가가 그녀를 빼돌리는 것을 봤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했다.
현장 지원 온 헌터들이나 길드는 필히 입장 명부를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상 게이트의 브레이크로 절차가 어그러진 채 급히 진행됐었다.
다시 말해 신원도 확실하지 않은 길드 혹은 헌터들을 되는대로 받아, 양하나를 빼돌린 이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그 일로 센터의 게이트 관리 방식에 따르는 맹점이 한참 매스컴을 탔다.
그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고 싶은 건지, 우신은 두 달 가까이 퍽 하면 불려 나가고 있었다.
일주일이면 끝날 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신은 개인 면담실에서 문을 마주 보고 앉은 채였다. 혐의가 없다고 판정된 탓에 더 이상 취조실에 그를 잡아 둘 명분이 없게 되자 그들은 면담을 빌미로 그를 불러냈다.
면담의 이유는 뻔했다. 강우신이 도주자 양하나의 전담 가이드이니만큼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인정해 달라고 할 때는 기를 쓰고 임시를 붙이더니 이럴 때는 각인이라도 한 사이 취급했다.
그렇게 아침에 시작된 면담은 도돌이표를 만난 듯 반복되다 겨우 오후 나절에 끝이 났다. 그러나 금방 다시 붙들려야만 했다.
“집공팀 헌터가 면담 신청했습니다.”
우신은 속으로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했다.
‘집공팀 헌터?’
불명확한 지칭을 되짚으며 우신은 팔짱을 낀 채 앉아 문을 노려보았다.
지난주 퇴원한 한지원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곧이어 등장한 꼴도 보기 싫은 얼굴에 우신은 대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이곤이었다.
이곤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마치 서운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대놓고 싫어하는데요.”
“우리가 서로 반가워할 사이는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목적은 같으니 합심하면 잘 통할 것 같은데.”
우신은 그렇게 말하는 이곤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잘도 지껄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마주하고 있으니 절로 기분이 잡쳤다. 집공팀 헌터의 면상도 확인했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손으로 탁상을 짚는데, 이곤이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가 길드전에 출전하는 것 같습니다.”
“…….”
우신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이곤을 쳐다봤다. 놀란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정에 이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미 알고 있었군요.”
강우신은 무혐의로 풀려난 이후로도 계속 감시과의 눈을 피해 양하나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마지막 그녀를 목격한 이들의 제보까지 들었을 때, 그녀가 힘을 또다시 극한까지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걱정이었다. 제 가이딩이 반드시 필요할 상황일 텐데 그녀의 곁으로 갈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야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정작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줄 수 없다니.’
주어진 정보는 그뿐. 꼬리를 길게 남길 그녀가 아니었기에 우신에게도 그녀를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녀의 위치를 모르고도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 방법에 따라 저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양하나가 길드전에 나간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
‘길드전에 나간다는 건, 길드 용병이라는 건데.’
우신은 하나가 기댈 만한 길드를 떠올려 보았다. 곧장 한 곳이 생각났다.
이곤은 생각에 잠긴 우신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가 아는 정보를 하나씩 흘리며 반응을 볼 생각이었는데, 생각처럼 표정 위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양하나 앞에서는 제법 표정이 다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와 똑 떨어트려 놓고 보니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곤은 그의 속내를 추측하는 일은 그만두고 말을 이었다.
“양 헌터가 걱정되지 않습니까.”
“떠보는 건 그쯤 하시죠.”
“길드전에 함께 나갑시다. 제가 오늘 따로 시간을 내 강우신 가이드를 찾아온 건 그걸 제안하기 위해서입니다.”
“헛수고하셨군요. 제 대답은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머리가 그 정도로 나쁜 건 아닐 텐데.”
“제 제안이야 거절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상부에서 명령 떨어지면 도살장 끌려가듯 가게 돼 있지 않습니까? 그 전에 사람처럼 걸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겁니다.”
그 말에 우신의 얼굴 위로 그림자가 졌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는 듯 목선을 타고 근육이 움찔거렸다.
탁상 위에 놓인 커다란 손으로 금방이라도 이곤의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이곤은 그의 손끝을 내려다보다 말을 보탰다.
“힘을 무분별하게 쓰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랬다가는 센터에 끌려오기도 전에 몸이 못 버틸 거 같은데.”
“…….”
우신은 초연한 얼굴을 하고 가만히 앉아 저를 올려다보는 그의 낯짝을 응시했다. 그러다 끝내 분노를 못 참고 이곤의 멱을 잡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이곤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나직한 음성으로 답했다.
“양하나 일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것 같은 얼굴은 하지 말아요. 그럴수록 곤란해지는 건 양하나일 테니.”
이곤은 그 말과 함께 강우신의 손을 쳐내고 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저도 그쪽이랑 웃으며 일할 생각 없습니다. 그러니 어렵게 생각 마세요.”
“…….”
“저는 그 몸을, 그쪽은 안에 든 걸 원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우린 각자 서로에게 중요한 걸 지키는 겁니다.”
* * *
나는 강하게 내 뒤통수를 감싸 안은 이곤의 가슴팍을 밀어 냈다.
순순히 뒤로 밀려난 이곤은 내 앞을 가로막느라 지저분해진 로브를 털어 냈다.
그 일련의 행동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탓에 문득 그와 내 사이에 있었던 지난 일들이 꿈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이곤이 조곤조곤한 어투로 헛된 허상을 깨트려 줬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런 상태로.”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네가 왜 길드전에 있는 건데. 설마 나 잡겠다고 여기까지 따라 들어왔니?”
성은 길드. 길드전 접수 시기에 맞춰 갑자기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곧장 머릿속에 성은 길드의 멤버 구성원에 가이드가 하나 있단 말이 스쳤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곤을 쳐다봤다.
“설마, 강우신도 여기 있는 거야?”
“…….”
이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심장박동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는 거 같았다.
“대답해, 이곤.”
“내 이름 부르지 말랬지.”
일순 잊고 있던 하수도 아래서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속삭였다.
“들었어. 네가 내 머리카락이라며 증거를 제출했다고.”
사실 그 과정에 관해 설명해 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추측일 뿐이었다. 집에서조차 흐트러짐 없이 지내는 내 흔적을 챙겼을 법한 사람은 당일 내게 접촉한 그뿐이라고.
나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
“왜 그랬어. 아니라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내 말을 묵묵하게 듣던 이곤이 픽 웃었다.
“그래 잘 알지. 네가 마약을 하지 않았단 걸.”
“…….”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는 생각 안 해?”
이곤은 섬뜩할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더 가깝게 다가오더니 귓가에 속살거렸다.
“마약을 했다는 건 납득이라도 쉽지……. 안에 든 영혼이 바뀐 거 같다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믿겠어.”
이미 내가 자신이 알던 양하나가 아님을 확신하는 목소리였다.
이곤은 하수도에서부터 내가 양하나가 아니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의심에 확신을 심어 줬겠지.
그게 누구인지는 길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았다.
“민지민이지? 네가 그때 그랬잖아. 민지민에게서 한영원에 대해 들었다고.”
“……글쎄.”
“그거면 대답 됐어. 네가 왜 걔 말을 믿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눈으로 본 것만 믿어, 이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