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29화
“괜찮습니까?”
이 팀장은 곧바로 우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조이현은 암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고우주가 위급한 상태라 필드 밖으로 보냈습니다.”
“……계속 상황을 듣고 있었습니다. 송신 장치가 고장 나 들리기만 하더군요.”
“그런가요.”
이 팀장은 조이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말을 이었다.
“서둘러 마무리하고 나갑시다.”
“마무리라뇨.”
내가 의아스러운 얼굴을 하자 그가 답했다.
“말했지 않았나요. 길드전은 데스매치가 아닙니다. 마지막 날 철탑에 나타나는 우물에 구를 넣는 팀의 것이지.”
이 팀장은 말을 맺자마자 생중계 화면을 불러냈다. 어느새 화면 상단의 숫자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저건……!”
“우물이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15분도 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애먼 길드들만 치고받고 하느라 희생한 채 성은 길드의 승리로 끝날 게 뻔했다.
나는 우릴 불러모은 소환사를 떠올렸다. 모두를 장기 말처럼 사용한 그의 길드에게 그리 쉽게 승리를 내줄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이 멤버로 철탑을 오르는 건 자살행위에요.”
형도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의 말처럼 길드 전원이 철탑에 오르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 입을 열었다.
“멤버 전원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조이현이 내 옆구리를 툭 쳤다.
“무슨 말을 하려고, 또.”
“단지 구를 우물 안에 집어넣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이 팀장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오를게요.”
“네가 그 몸으로 무슨…….”
조이현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까 나와 접촉한 순간 내 에너지 상태를 간파한 모양이었다.
김형도 역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양 헌터 저와 약속했잖아요. 그 능력은 길드전 동안 단 한 번에 국한하여 사용하기로.”
나는 두 사람을 외면한 채 이 팀장을 바라봤다.
내가 아는 이 팀장이라면, 팀원들의 안위를 첫 번째로 생각하되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되레 당한 건 더 크게 돌려주는 사람이었다.
소환사에게 휘둘린 데다 막내를 다치게 했다. 이 팀장 역시 몸이 간질거렸을 거다.
몸 안에서부터 힘이 끓어올랐다.
이제 더 이상 감응이 힘들지도 않았다.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에너지가 몸 안을 휘돌았다. 그 모습에 형도가 혀를 내둘렀다.
이 팀장은 제 등에 업힌 박이설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박이설은 졸음이 오는지 눈을 끔벅이다 답했다.
“딱 한 번이요.”
이 팀장은 나를 보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퀸백 길드의 시선을 끌 겁니다. 그사이 양 헌터가 우물에 이걸 넣어요.”
이 팀장은 그 말과 함께 오델리아의 심볼인 뻗어나는 가지 형상이 그려진 구를 건넸다.
“우린 그때까지 이곳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틸 겁니다. 혼자서 할 수 있겠어요?”
그의 말에 나는 구를 받아 들며 답했다.
“물론이요.”
* * *
내가 화마에 휩싸인 마을의 골목길을 빠져나와 철탑에 가까워질 때쯤 등 뒤에서 거대한 나무뿌리가 솟아났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크기였다. 나는 그것을 힐끔 보고는 더욱 속력을 올렸다.
철탑이 보였다. 다행히 주변에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곧장 출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둠 속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어둠을 비집고 흑호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몸집을 이기지 못하고 철탑의 입구가 조금 부서졌다.
나는 흑호와 거리를 두고 소리쳤다.
고우주를 물었던 흑호와는 무늬와 크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놈이 비슷한 개체를 한 마리 더 소환해 온 모양이었다.
“나와.”
내 말에 응하듯 어둡게 그늘진 내부로부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히죽거리는 얼굴을 마주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재밌니?”
“물론.”
대답과 함께 또다시 흑호가 달려들었다.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꿈쩍 않고 있다 흑호가 아가리를 벌리는 순간 양 송곳니를 잡고 그대로 비틀어 날렸다.
거대한 흑호가 풍선처럼 멀리 날아갔다. 내가 그것을 날린 곳은 아직 불타는 건물 쪽이었다. 그 안으로 던져진 흑호는 불길 속에 서서히 꺼져 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는 놀란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고는 손뼉을 쳤다.
“진작 그러지 그랬어. 팀원이 그 꼴이 되기 전에.”
“미친 새끼.”
쥐고 있는 단검에 에너지가 전이되며 순식간에 금빛으로 물들었다.
자리를 박차듯 뛰어올라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소환사인 이상 소환수를 잃은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잔꾀를 부리기 전에 단숨에 조끼를 박살 낼 생각이었다.
그 각오로 팔을 휘둘렀으나 내 단검은 그의 심장에 닿기 직전 허공에서 멈췄다. 남자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를 막다니. 분명 불가능해야 하는데…….
동시에 그의 홍채가 호박색으로 빛났다.
내 팔을 잡은 그의 손등 위로 핏줄과 근육이 과하게 불거졌다.
“너 이게 무슨!”
남자는 주저 없이 내 손을 꺾었다. 단검을 떨군 나는 침음을 삼키며 그의 얼굴을 돌려차 겨우 벗어났다.
손목뼈가 으스러졌다.
“윽.”
서둘러 멀쩡한 손으로 보조 무기를 쥐는데, 그는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듯 선 자리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졌다.
“진짜 신기하네.”
그가 뜬구름 잡듯 말했다.
“너, 정말 약 안 했어?”
“뭐?”
“약 안 했냐고. 되게 익숙한 냄새가 나거든. 너한테서.”
“…….”
나는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분명 지금 이 모습도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을 것이었다.
전투 중인 헌터의 목소리까지 송출되는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방송 중임을 의식해 내게 유도 신문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다.
되레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그 우스운 말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눌러 답했다.
“약 안 했어. 이 개자식아.”
그리 말하자 그는 손뼉을 치며 깔깔 웃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빠르게 권총을 꺼내 들어 조준하는데 그가 손바닥으로 내 총구를 막았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힘이 실린 탄은 그의 손바닥을 통과해 철탑에 박혔다. 그는 손바닥을 방어하지 않았다.
탄이 살갗을 뚫은 탓에 손이 피로 점철됐다.
부상에도 태연한 모습에 의구심을 품기도 전, 그가 불쑥 내 귓가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나만 들릴 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했거든. 그 약.”
그 말과 함께 상처에서 샘솟던 피가 빠르게 멎었다.
“…….”
내 귀를 의심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목을 강하게 쥐고 졸랐다.
아까 내 손목을 잡았던 때처럼 그의 팔 근육이 순식간에 부풀었다. 목을 강하게 조르는 힘에 입 밖으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침이 흘렀다.
“……으윽”
“항복하면 놔줄 수도.”
나는 미친 듯이 그의 팔뚝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혼잣말을 이었다.
“응, 사실 뻥이야.”
그는 제 손안에서 허덕이는 내 모습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히죽거렸다.
나는 주먹을 내려치길 그만두고 그의 양 팔뚝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손바닥에 힘을 응축시켜 단숨에 발산했다. 그제야 남자가 요란하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내가 붙잡았던 부위의 천이 타들어 가 붉게 쭈글쭈글해진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 틈에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목을 쥐어짜듯 조이던 탓에 절로 기침이 쏟아졌다.
제 양팔을 부여잡은 남자가 도끼눈을 뜨고는 나를 쳐다봤다. 왼쪽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여기서 둘 중 하나는 죽어 보자는 거지?”
“그냥 네가 비키면 될 문제 아닌가.”
남자는 내 말뜻을 못 알아듣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나는 피 섞인 침을 뱉어 내고는 말을 이었다.
“자백한 김에 센터까지 내가 끌고 가 줘?”
“그럼 네가 잡히지 않을까? 도주자 양하나 헌터.”
“……무슨 마약이야, 그거.”
단순히 에너지를 강화하는 마약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각성 마약은 모두 일시적인 효과를 가진 게 전부였다. 잠깐 힘을 끌어 올릴 수야 있지만, 타고난 에너지처럼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번 유제이나 눈앞에 있는 이 남자까지.
온·오프 버튼이 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에너지의 파동을 바꾸는 것은 물론, 원래 자신의 힘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둘렀다.
그건 이론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말. 그게 아까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심각한 내 표정에 남자는 제 아래턱을 매만지다 답했다.
“마음이 내키면 말해 줄게. 나 생각보다 입이 가볍거든.”
남자는 그 말과 함께 기지개를 켜고 몸을 길게 늘이더니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가 내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그러고는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각지 못한 공격에 당황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가진 에너지에 비해 실력이 형편없었다.
기술만 두고 보면 골목길 불한당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단숨에 내 몸통 위에 올라탄 그를 내 아래로 뒤집었다.
“약속 지켜, 가벼운 입으로, 그 힘이 뭔지, 말하겠다는 거.”
한마디씩 뱉을 때마다 힘을 실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남자는 얼굴이 엉망이 되는데도 실실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그게 무척 꺼림칙하다고 느껴졌다. 그 순간 남자가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또다시 그 불길한 에너지를 방출하려고 했다.
놀란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도 전, 그보다 먼저 에너지를 방출해 그의 힘을 받아쳤다.
그 직후 내 손목을 잡은 남자의 팔목을 따라 핏줄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