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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28)화 (128/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28화

“정신 차려요. 아직 주변에 다른 길드가 있다면서. 여기서 나가면…….”

“고우주 상태가 나빠 보여.”

“그러니까 더 냉정해져야죠!”

“나 때문에 표적이 됐어. 내가 얌전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식으로 말하는 바람에.”

조이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말처럼 유성우 길드와의 대결에서 두 사람의 페어가 전혀 맞지 않았다.

원체 조이현은 고우주의 합류를 반대했으니 예상한 일이긴 했다. 물론 악의를 품고 반대한 게 아니란 것은 알았다.

이천 게이트에서도 그렇고 그는 유독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에게 약했으니까, 정말 고우주를 걱정한 반대라 생각했다.

다만 그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

어째서 고우주가 개인 행동을 했나 했더니 전부 이유가 있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미간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자책은 늦었어요. 고우주를 무사히 되찾은 다음 직접 사과해요.”

그의 손목을 강하게 그러잡으니 조이현도 서서히 냉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 흑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너편 지붕으로 건너가려는 듯 앞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혹여 놓칠세라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는데 멀리서 총알이 날아와 흑호의 머리를 날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자연스레 물려 있던 고우주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높이에서 떨어졌다가는 탈락할 만큼의 대미지를 입는 것은 물론 목숨이 위협적이었다.

눈앞의 광경에 조이현은 내 손을 강하게 뿌리치고는 마을 중심가로 뛰어들었다.

온 힘을 다해 뛴 조이현이 간신히 고우주를 받아 들고서는 바닥을 굴렀다.

흙먼지가 일며 두 사람이 쓰러졌다. 아픔도 못 느끼는 듯 조이현은 벌떡 일어나 고우주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야, 고우주! 정신 차려.”

“…….”

“고우주!”

흥분한 조이현이 고우주의 뺨을 때리자 고우주가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괜찮으니까, 제발 때리지는 마요.”

“이 새끼가 사람 놀라게…….”

안심하듯 미소 지은 조이현은 축축한 촉감에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고우주가 꺼질 듯한 숨을 내쉬었다. 가쁜 호흡에 당황한 조이현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어셋을 눌렀다.

-고우주 찾았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위독합니다. 서둘러 치료해야 해요.

다들 어디로 흩어져 있는지 무전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 대신 먼 곳에서 폭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였다. 아마 팀원 모두가 타 길드원과의 전투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뒤이어 머리 위의 지붕 위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의 발소리였다.

나는 시선을 그리로 돌렸다.

어느새 지붕 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장대 총을 들고 있었다.

불바다가 된 난투에서 살아남은 길드원들이자 흑호의 머리를 터트린 장본인들이었다.

“우주야. 고우주.”

조이현은 완전히 패닉에 빠진 듯 주변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미 포위돼 도망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다 한들 이대로 당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축 늘어진 고우주를 바라보다가 그를 안고 있는 조이현의 목덜미를 잡고 일으켰다.

내 힘에 딸려 일어난 조이현이 신경질적으로 내 손을 쳐냈다.

“이거 놔, 지금 상황 안 보여? 얼마나 위독한지……!”

“보여요. 보이니까. 정신 차려요.”

덩달아 내 목소리도 커졌다. 나는 이를 아득 물고 그의 가슴께를 밀쳤다.

조이현이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개의치 않고 고우주의 몸통 위에 올라타서는 조끼 위로 손을 얹었다.

“너 지금 도대체 뭐를.”

우리 팀원 중에는 치유계가 없고, 당장 의료 키트도 없었다.

이대로 고우주를 데리고 있어 봤자 남은 전투에 모래주머니 같은 처지였다. 자칫하면 데뷔전에서 목숨을 잃은 재수 없는 헌터로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다.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고우주의 조끼에 힘을 가했다. 고우주가 버텨 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내 일격에 고우주가 피를 토했다.

“양하나!”

동시에 조이현이 소리쳤다.

입가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고우주의 몸이 점차 흐려졌다. 의도대로 탈락 대미지가 다 찬 모양이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리려면 필드 밖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어요.”

탈락 처리가 되면 대기하고 있던 현장 요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그러니 이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제야 조이현 역시 내 뜻을 알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필드에 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우주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잘 버텨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철컥-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지붕에 서 있던 이들이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같이 눈에 살의가 가득했다. 갑작스레 벌어진 난투로 흥분한 상태인 듯했다. 나는 조이현에게만 들릴 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배리어 칠 수 있습니까? 저 탄알을 소나기처럼 전부 맞았다가는 우주 생사를 알기도 전에 우리가 이승에 없을 거 같은데.”

“너도 농담 같은 걸 할 줄 아네.”

“농담이면 좋겠죠.”

“……칠 줄 알아.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좋아요. 제가 신호를 주면 정면 배리어를 부탁드립니다. 규모는 작아도 되지만 대신 견고하게.”

그 말과 함께 스코프 너머로 이곳을 건너보고 있는 이들을 마주 응시했다.

흑호가 서 있던 지붕 중앙에 자리한 점프슈트를 입은 긴 머리의 여자만 총의 모양이 달랐다.

고글을 쓰고 있었지만, 곧바로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요 며칠 저녁마다 길드전 경과를 챙겨 본 덕에 그녀의 무기가 눈에 익었다.

그녀는 퀸백 길드를 이끄는 수장으로 쏜 총알이 유도탄처럼 대상을 끈질기게 추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마 흑호를 격추했던 총알 역시 그녀가 쏜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그녀는 내가 고우주를 필드 밖으로 내보낼 때까지 기다렸다.

미리 공격했으면 현상금을 더 챙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헌터 정보통에 의하면 공정함을 중히 여기는 인물이라더니 그저 듣기 좋은 평을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그녀가 우리를 공격하는데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가 크게 소리쳤다.

“사격 준비!”

우렁찬 소리에 길드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총구를 이쪽으로 돌리며 방아쇠 위로 손을 올렸다.

나 역시 조이현에게 낮게 경고했다.

“준비하세요. 최대한 면적 작게요.”

그녀의 총구가 나를 겨냥했다. 나는 등 뒤로 조이현의 손목을 잡았다.

새벽에 감응한 고우주의 힘은 이미 이곳까지 달려오며 모두 소진했다.

이제 내가 감응할 만한 이는 조이현뿐이었다.

하지만 배리어가 우선이었다. 내가 조이현의 힘에 감응하게 되면 아무리 그라도 힘이 분산돼 힘들 것이다.

“견고하기만 하면 되니 욕심내지 마요.”

“벌써 그 말 세 번째야. 나도 알아.”

이내 귓전을 울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슛!”

조이현과 나는 동시에 배리어를 펼쳤다. 순식간에 총알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지붕 위 헌터들의 저격이 끝날 때쯤 기다렸다는 듯 후방에 숨어 있던 이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예기치 못한 공격에 배리어가 크게 흔들렸다.

“윽, 이거 깨질 거야.”

그 타이밍에 기다렸다는 듯 지붕 위의 헌터들이 탄을 갈았다. 손발이 척척 맞듯 빠른 공수 전환이 그들의 장점이었다.

다시 공격이 시작되면 배리어는 더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내게 남은 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필드에 들어오기 전 들었던 김형도의 경고가 귓가를 스쳤다.

‘이천 게이트에서 봤던 그 황금색 에너지 말입니다. 자세히 묻진 않겠지만 그거 에너지 소모가 큽니다. 그러니 긴급한 상황에 딱 한 번만입니다. 강우신 가이드가 없는 이상 몸이 버틸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미 유성우와의 전투에서 그 힘을 사용해 버렸다.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그 순간 목걸이가 뜨겁게 느껴졌다. 심장 가까이 닿은 보석이 수호신 역할을 해 주는 듯 뜨거운 감각에 절로 불안이 가라앉았다.

“이제 깨져요!”

후방의 연사 공격이 끝나고, 배리어가 사라져 갔다.

그대로 조이현과 접촉하고 있던 손을 뗐다. 지붕에 선 퀸백 길드장이 미묘한 내 변화를 눈치챈 듯 서둘러 입을 열었다.

“사격 집중!”

또다시 총알이 빗발쳤다. 나는 무리해서 힘을 끌어 올렸다. 곧 땅 아래서 나무뿌리가 솟아났다.

순식간에 바닥이 무너졌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탓에 나는 쉽게 균형을 잃고 나무 위로 쓰러졌다.

끝을 모르고 솟아나는 나무뿌리에 의해 다칠 것도 각오했으나, 예상외로 부드럽게 나온 뿌리가 조이현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이내 하나의 거대한 성벽이 되어 탄알을 막아 줬다. 퀸덤 길드의 탄이 나무뿌리 하나를 끊어 내면 다른 뿌리가 솟아 겹겹이 벽을 만들었다.

“이거 설마.”

“그래, 이설이 능력이야.”

넝쿨이나 갈대 같은 식물을 이용하는 것만 봤지 나무뿌리까지 마음대로 운용하는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더 뛰어난 실력에 감탄하며 뿌리를 매만지는데 조이현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한계치야. 박이설이 이 정도로 힘을 썼다면……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할 텐데.”

조이현은 총성이 멎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감싼 나무뿌리를 매만지더니 가장 겹이 얇은 곳으로 빠져나갔다.

주변이 온통 나무뿌리와 가지로 덮여 있었다. 지붕까지 뻗은 탓에 퀸백 길드도 땅으로 내려온 듯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 무너져 가는 건물에서 이 팀장과 박이설, 김형도 가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설은 완전히 지친 듯 이 팀장의 등에 업혀 있었다. 눈동자 색이 평소보다도 선명했다. 조이현의 말처럼 에너지를 급속도로 쏟아 내며 감각이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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