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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24)화 (124/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24화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짝다리를 짚었다.

“왜죠? 저도 우주와 같은 생각인데.”

“미지의 존재도 두렵긴 하지만 그 힘을 가늠할 수는 있죠. 반면 정신계 헌터에 마약 복용으로 행방불명까지 됐던 사람이 대뜸 길드전에 모습을 보이는 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이 안 되잖아요. 진짜 미지란 그런 거죠.”

그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했다. 뻔뻔한 얼굴로 사람 엿 먹이는 거 하나는 끝내줬다.

“그러니까 저 같은 약쟁이가 S급보다 더 요주의 인물이라고요?”

“그렇게는 말 안 했지만, 깔끔한 정리네요.”

“하!”

나만 뚱할 뿐 아침부터 야영장 가득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경계 되는 인물이니 뭐니, 그런 건 전부 이 팀장이 팀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농담 삼아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아침부터 이동하는 내내 그 어떤 길드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제 중계방송에 뜬 팀 전투를 바탕으로 타 길드에서 우리의 이동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을 거다.

그 탓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며 빠르게 움직였는데, 쥐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가끔 B급 몬스터가 나타나긴 했지만,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고우주와 조이현 덕분에 검을 뽑을 일도 없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세 번째 야영지에 도착해 있었다.

“이야, 이거야 무슨 부적이네.”

몬스터의 피가 묻어 씻고 나온 조이현이 젖은 머리칼을 이마 뒤로 쓸어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못 들은 척 침낭을 펴자, 기어코 내 옆으로 와서 팔꿈치로 나를 툭툭 쳤다.

“덕분에 편하게 들어왔습죠.”

지난밤 만반의 준비를 한 조이현과 고우주는 뭔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힘이 남아돌면 나가서 몬스터라도 잡고 오면 어때요.”

“매정하기는.”

조이현과의 유치한 말싸움에 형도가 끼어들었다.

“애도 있는데, 싸우지들 마시죠.”

“누가 애라는 거예요!”

고우주까지 한마디 얹자, 조이현은 맥이 풀린 듯 간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불쏘시개를 장작불 안에 던져 넣었다.

“이렇게 만나는 길드도 없이 온종일 헤매고 다니면 꼭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 온 거 같고 기분이 별로란 말이야.”

오델리아 길드원들이 나를 구해 줬던 곳도 합동 훈련 실습 이후 나갔던 브레이크 현장이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원래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 자주 다니나요.”

약소 길드는 주로 게이트를 돌기에 의아스러운 투로 묻자, 조이현이 맞은편에 앉은 이 팀장을 가리켰다.

“그건 아니고 양 헌터도 알겠지만, 이 팀장님이 센터 초창기 헌터였잖아. 그때 브레이크 현장을 많이 다녔는데 특히 아, 성시현 헌터 알지? 그 헌터 사수였어. 이 팀장님이.”

조이현은 불쑥 재미있는 게 떠올랐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힘주어 말했다.

그런 그의 말을 이필엽이 자르고 나섰다.

“조이현.”

이필엽의 부름에 조이현은 툴툴거리듯 말을 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그 헌터가 브레이크 피해자로 각성한 거 유명하잖아. 그래서 유독 브레이크 생존자에 예민했나 봐. 그걸 알고 우리 이 팀장님이 브레이크 현장 일을 자주 잡아다 주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었다.

당시 센터에서는 나를 게이트 클리어에 이용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브레이크 현장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20살이 넘어서는 그 정도가 줄어들었지만, 그 전까지는 이 팀장이 무신경한 척 브레이크 현장 일을 자주 물어다 줬다.

그 덕분에 공격 팀이 만들어졌을 때 브레이크 현장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노하우를 쌓지 못했을 거다.

나는 그때를 회상하다 추임새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구했나요.”

뱉고 나자 조금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돌리려는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 팀장이 답했다.

“뭐, 저야 보좌만 했고 날아다닌 건 그 아이입니다. 이제는 전부 옛날이야기지만.”

“…….”

이 팀장과 마주 앉아 다시 그때를 회고할 일이 생길 줄 몰랐는데 기분이 묘했다.

모닥불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 위로 환한 불꽃이 부딪혀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혹시……. 성시현 헌터가 구한 생존자 중 어린아이도 있을까요. 초등학생 정도의.”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속에 담아 둔 물음이 새어 나왔다. 이 팀장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순순히 답했다.

“글쎄요. 그걸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몇 명 있었겠죠.”

“…….”

그렇지, 그런 걸 하나하나 기억하는 게 이상한…….

“그러고 보니 기억에 남는 아이는 있습니다. 초등학생은 아니고 중학생 정도 됐던 거 같은데.”

이 팀장은 잠시 말을 삼켰다가 답했다.

“성시현 헌터가 서초 게이트에서 돌아오지 못한 날. 센터로 편지를 들고 왔죠.”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법 오래된 일을 회고하듯 이 팀장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일을 보러 센터에 방문했는데 아침부터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앉아 있어 눈에 띄었어요. 비보를 듣고 저녁 무렵 돌아가는데 아직도 거기 있더라고요. 사고 현장을 보도하던 TV를 보고 있었어요. 한 손에 편지를 들고.”

“…….”

“종일 로비에서 성시현 헌터를 기다리던 애요. 그 애가 들고 있던 편지를 나중에 볼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오래돼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줄 정도는 기억에 남네요.”

이 팀장이 눈을 맞춰 왔다.

“살아가다 보면 정말 좋은 일이 있을까요, 언니.”

모닥불에서 타오른 불티가 사방으로 번졌다. 내 신발 앞코까지 튀어 오른 불티가 빛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침묵 속에서 이 팀장이 나지막하게 말을 맺었다.

“그 편지에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게이트 브레이크 피해자 같던데,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게 생각나네요.”

얼마간의 정적이 감돌았다. 이 팀장의 말 직후 내 표정을 살피던 형도가 말을 돌렸다.

“조이현 헌터 혈색이 안 좋은데 가이딩 합시다.”

“뭐? 나 완전 멀쩡한데 뭔 가이딩.”

“아니요, 따라와요. 상태 확인해야겠어요.”

형도가 기어코 조이현을 끌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덕분에 그 이후의 이야기를 물을 수는 없었지만, 만약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팀장이 말한 그 여학생이 누구였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으니까.

“…….”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 팀장의 말처럼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서 구한 사람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늘에 다녀온 이후 명확한 기억들을 봤으니 뭐라도 떠오를 법한데 그 이후 몇 번이고 기억해 내려 해도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게 편지를 쓸 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은 아이.

누구라도 좋으니 생각나는 얼굴이 하나쯤은 있을 법한데 정말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꼭 그 부분만 지워진 것처럼.

* * *

다음 날부터는 급격히 상황이 달라졌다.

사흘째까지 무사히 버티면 우습게도 탑텐에 들었다.

탑텐부터는 한 팀을 잡을 때마다 그만큼의 포상금이 따라왔다.

그 때문인지 유성우처럼 팀원이 찢어져 몸을 사리던 소수의 길드가 서로 힘을 합쳐 덮쳐 오기도 했다.

전투에 앞서 조이현과 고우주는 저도 활약할 기회를 달라고 찡얼거렸지만, 이 팀장이 슬슬 변함없는 내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며 두 사람을 설득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이 보좌하면 단검을 든 내가 총알처럼 튀어 나가는 연계 플레이로 상황을 해결해 나갔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몇 번 검을 털어 낸 것만으로도 방금 묻은 피가 흔적도 없이 깨끗해졌다.

헌터의 에너지에 반응하는 검은 빠르게 제 자태를 유지하는 데 아주 능했다.

비싼 만큼 매일같이 무기 손질을 하지 않아도 날이 서 있는 게 헌터 무기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언제 피를 뒤집어썼냐는 듯 깨끗해지는 검을 보고 있자니, 죄책감처럼 눅진한 감정이 머리를 들이밀기도 전에 잘라 내는 거 같았다.

센터에서 쫓기는 처지가 된 순간 이미 신분을 박탈당해 길드전에 용병으로 참여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평생을 센터 소속으로 살아왔기에 길드전에서 힘을 쓰는 게 영 찝찝한 기분이었다.

내가 상대 길드원이 이미 사라진 자리에서 검을 들고 가만히 서 있자, 조이현이 다가왔다.

“웬 복잡한 표정.”

그의 말에 나는 빠르게 검을 검집 안에 집어넣었다.

“그냥. 최대한 조끼만 노려 피 볼 일은 없었으면 했는데, 마음처럼 안되네요.”

“재수 없는 소리 말지.”

조이현이 혀를 찼다.

“네가 잘난 건 몇 달간 지겹게 봐서 알겠어. 아마 이제 이 방송을 본 사람 중 널 C급이니 정신계니 하는 수식을 붙여 가며 깔보는 사람은 없겠지.”

그는 상대 팀이 사라지며 남긴 심벌이 그려진 볼을 주웠다.

“하지만 이 길드전에 참가한 이들 역시 네가 봐주면서 상대하길 원하지 않을 거라고. 온몸으로 부딪힌 상대에게 탈락하는 게 덜 자존심 상하니까.”

이 며칠 계속해서 내 뒤를 보좌하던 터라 몸이 근질거릴 텐데도, 조이현은 그렇게 말한 뒤 무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헛생각할 거면 이리 와서 짐 정리나 도와.”

나는 멍하니 조이현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가만히 중계 화면을 불렀다.

“롤.”

그러자 눈앞에 작은 창이 떠올랐다. 실시간 전투 상황이 중계되고 있었다.

방금 오델리아 길드 싸움이 지나간 듯 아직 댓글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댓글 창의 분위기가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미세하게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선 조이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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