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19화
“왔어요?”
장비를 정비하고 있던 조이현은 멀찍이서 다가오는 길드장 이필엽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표정한 그는 그래, 하고 대답하고는 입장 준비를 서둘렀다.
“어떻게 됐어요?”
조이현의 물음에 길드장은 가방을 메며 답했다.
“이미 예상한 거 아닌가. 벌써 입장 준비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말에 조이현이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예상 우승팀 순위 개표는 길드장끼리 모여 진행됐다.
1위 예상 팀을 뽑는 자리로 득표수에 따라 3위까지 혜택을 주었다.
바로 등수에 따른 특정 보상과 함께 10분 간격을 두고 순위대로 입장할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이다.
크지 않아 보여도 다른 팀보다 서둘러 중심부로 진입해 자리를 잡을 수 있으니 제법 굉장한 보상이었다.
그렇기에 일찍이 짐을 싸고 있다는 건 오델리아 팀원들이 자신들의 순위가 3위 안에 들었을 것이라 예상한다는 의미였다.
조이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니까요.”
조이현이 생각했을 때도 현재 자신의 팀은 폼이 최상이었다.
그런 조이현의 예상처럼 길드장은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개표 종이를 건네 보였다.
종이를 펴 보니 그 안에는 숫자 3이 적혀 있었다. 조이현은 들뜬 얼굴로 길드장을 따라나섰다.
“지금 바로 나오래요? 그래서 특전 보상은 뭔데요?”
부산스러운 두 사람을 따라 모두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 * *
오델리아 길드 멤버들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회의실의 책상과 의자를 빼서 만든 공간인 듯했다. 바닥에는 에스퍼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원반 형태의 기폭제 장치가 설비돼 있었다.
“짐을 포함해 모두 원반 위로 올라와 주세요.”
길드원들은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원반 위로 올라섰다. 열 사람 정도가 올라서면 가득 찰 크기였다.
길드전에 참여할 수 있는 멤버 맥시멈 숫자가 15명이었다. 약소 길드일수록 그 수를 꽉 채워 데려오는 경우가 컸는데, 그 경우 원반 크기 때문에 두 번에 나눠 이동해야 했다.
오델리아 길드의 경우 6명으로 이동 수가 초과하진 않았지만, 이 팀장은 원반에 올라서 안내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후발 주자가 있습니다. 저희가 먼저 출발하면 그 팀원은 언제 입장이 가능한 겁니까?”
“전체 팀 입장이 한 바퀴 모두 돈 뒤 다시 순서가 첫 번째 팀으로 돌아오는데, 그때 후발 주자가 출발합니다.”
“그럼 제법 시간이 필요하겠는데요?”
형도가 나직하게 말을 덧붙였다. 스태프는 그런 형도를 한 번 흘겨보고는 말을 이었다.
“후발 주자를 따로 기재해 주지 않으셨는데, 해 주셔야 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형도가 이 팀장의 눈치를 봤고, 이 팀장은 스태프가 건네준 서류 종이 위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몇 명이나 될까요.”
이 팀장은 다 쓴 종이를 건네며 답했다.
“한 명입니다.”
길드전 필드 입장은 물체 이동 능력을 지닌 두 명 이상의 에스퍼에 의해 행해졌다.
팔뚝까지 오는 흰 장갑을 낀 두 에스퍼가 나타나 각각 기계 모서리에 자리해서는 손을 올렸다.
카운트다운과 함께 발아래 원반에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머지않아 몸이 아주 작은 단위로 부서지는 감각이 났다.
형도는 신음을 내뱉으며 떨어트린 짐을 들어 올렸다. 가방을 들자, 모래가 후두두 떨어졌다.
그제야 형도는 제가 서 있는 곳이 모래사장 위라는 걸 깨달았다.
가이드인 형도는 공간 이동을 경험해 볼 일이 많이 없어서 몸이 분해되는 이런 감각에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멀미가 나는 거 같아 그가 가슴을 툭툭 치며 주위를 둘러봤다.
건물의 흰 천장은 온데간데없이 새파란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고개를 돌리자, 발아래로 물이 밀려들었다.
“바다?”
“무인도.”
작게 읊조리는 그때 조이현이 답했다.
형도는 그제야 저를 제외한 모두가 이미 모래를 털어 내고 출발 준비를 끝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작년 배경이 설산이었으니까 추운 곳은 아닐 줄 알았는데, 설마 무인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형도가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가장 뒤에 서 있던 박이설이 답했다.
“모두 그래픽이에요.”
“네?”
“그러니까 다 만들어진 배경이라고요. 우리가 밟고 있는 흙이나 모래는 진짜일지 몰라도 더위, 습도 같은 건 모두 만들어진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몬스터가 나오겠어요. 여기가 게이트 안도 아닌데.”
이설의 말에 형도는 알고 있어요, 하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있던 고우주마저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두 눈을 빛냈다.
그 모습에 박이설이 고개를 저었다. 지난 두 달 사이 충분히 이야기한 점인데 생전 처음 듣는다는 양 구는 게 우스웠다.
한편으로는 그럴 만하다 싶기도 했다.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훈련만 주야장천 받았으니 말이다.
길도 나 있지 않은 풀숲을 헤치며 이동하는데 그 순간 등 뒤에서 폭죽이 터지듯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그 뒤로 곧장 희뿌연 연기와 함께 하늘 위로 새들이 날아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며 걸음이 느려졌다. 이 팀장과 조이현만이 개의치 않은 듯 말을 이었다.
“해 지기 전에 자리 잡아야 하니 서두릅시다.”
조이현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웃음기가 묻어났다. 고우주는 그걸 곧장 깨닫고 물었다.
“이 소리가 설마…….”
“그래, 뒤늦게 들어온 팀들이 시작하는 모양이야. 중앙 전투를.”
조이현의 말에 우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연기가 피어오른 방향은 아무리 봐도 자신들이 서 있는 곳보다도 한참 뒤인 바닷가 변두리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앙 전투라니.
무언가 착각한 게 아닐까 되물으려는데 조이현은 텀을 주지 않고 제 말을 맺었다.
“저 싸움에서 이긴 팀은 시작부터 압도적으로 빠르게 중앙에 진입할 수 있을 거다.”
시작부터 외곽에서 이루어지는 전투는 누구보다 빠른 중앙 선점을 돕기 위한 전투였다.
“그렇다면 역시 우리도 합세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결국 중앙 철탑을 먹는 팀이 이기는 경기라는 건 변함이 없을 텐데.”
“잘 알고 있네. 뭐로 가든 중앙 철탑을 먹는 팀이 이기는 거야.”
고우주는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조이현이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며 빠르게 말을 맺는 바람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조이현은 제 가방 바닥에 교묘하게 뚫린 주먹만 한 구멍을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해가 저물고서야 겨우겨우 야영지를 찾아 저녁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간소하게 차린 저녁을 먹고 앞으로의 긴 전투를 대비해 불침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 작정이었다.
그 생각으로 모포를 펼치며 잘 준비를 하던 팀원들의 시선이 절규하는 조이현을 향했다.
조이현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가방을 떨어트렸다.
가방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다른 팀원들은 혀를 찰 뿐 모두 그 광경을 무시했다. 그나마 김형도가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물으며 조이현의 가방을 잡아 세우는데, 열린 입구로부터 무언가 우수수 떨어졌다.
필드 진입 전,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 짐을 나눠 가진 참이었다. 형도가 알기로 조이현은 공용 생수를 몇 병 예비로 챙겼었다.
그 탓에 무거운 것이라 여겼는데 가방에서 떨어진 건 생수가 아닌 커다란 돌멩이였다.
형도는 바닥에 떨어진 돌을 보고는 두 눈을 끔벅였다.
“……아무리 훈련이 좋아도 그렇지 이런 곳에 와서까지 돌로 굳이 무게를 높일 필요가 있어요?”
“있을 리 없지!”
형도의 말에 절망에 빠져 있던 조이현이 울컥 소리쳤다.
“이런 미친 설마 이런 무인도 외곽에 도둑 족제비를 풀어 두는 게 어디 있냐고!”
도둑 족제비는 작은 몸을 이용해 사람들의 그림자에 숨어들어 물건이나 식량을 훔쳐 가는 몬스터였다.
죽이기 쉬운 약체 몬스터였지만, 문제는 잡는 것이 몹시 까다로웠다.
은신에 능해 게이트에 익숙한 조이현마저도 가방을 털린 모양이었다.
개인 물품이 털린 거면 모두 혀를 차고 말았을 테지만, 그의 가방 안에는 공용 생수가 있었다.
박이설은 이마를 탁 쳤다.
“일내셨네.”
“그러게요, 왜 하필 조이현 헌터 가방만 털려서.”
“맞아, 나도 안 털렸는데 말이야.”
김형도와 고우주까지 널브러진 조이현의 가방을 보고는 한마디씩 얹었다.
그들의 말이 커다란 바위처럼 조이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 팀장은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지도로 위치를 확인했다.
근처에 있는 보급품 저장고를 표시하며 입을 열었다.
“삼 일까지는 들고 있는 거로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보급품을 일찍이 찾아야 하겠군.”
독백 같은 말이지만 조이현의 귀에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후발 주자는?”
잇따르는 이 팀장의 물음에 형도가 서둘러 답했다.
“빨라도 내일 점심에야 도착할 거 같아요.”
“그럼 그쯤에…….”
“그런데 그땐 다른 길드건 몬스터건 하나같이 활동이 왕성할 시간 아니에요?”
조이현은 잔뜩 열받은 얼굴로 제 가방 안에 있는 돌을 우수수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동이 트는 대로 움직일게요. 보급품 저장고까지 그리 멀지도 않은 거 같으니 책임지고 가지고 온다고요. 내가 직접.”
매서운 인상과는 다르게 단단히 삐친 말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