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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17)화 (117/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17화

“그러고 보니 고우주 헌터는 어디 갔습니까?”

“아직 정식 헌터가 아니니 그 호칭은…….”

“여기 있습니다!”

언제부터 문밖에 있었는지, 제 이름에 귀신같이 반응했다. 조이현은 못 말리겠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집에 가라고!”

“싫어요! 저도 염연히 아카데미 졸업반이고 C급이지만 뛰어난……! 읍읍!”

고우주의 말에 조이현의 이마 위로 핏줄이 섬뜩하게 서자 김형도가 재빨리 고우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을 지켜보던 가경은 재미있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 집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재주가 있는 거 같은데 왜 더 안 들어 보고?”

“읍읍!”

아주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 팀장의 판단에 백번 공감이 갔다.

이 팀장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고 말한들 제 생각은 변치 않습니다. 정 참가를 원한다면 길드전 신청 마감까지 제 마음에 드는 전력을 데려오세요. 그게 아니면 더 이상 할 말 없네요.”

이 팀장의 말에 조이현이 숨을 허, 하고 뱉어 냈다.

“눈은 또 더럽게 높고 까다로우면서 누굴 데려오라는 거에요! A급도 싫다던 사람이!”

그렇게 소리치고는 숨을 씩씩 내쉬던 조이현이 고개를 획 돌리는데 바로 옆에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지나가라는 듯 몸을 틀어 공간을 내주자,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조이현의 눈이 커졌다.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조이현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더니 이내 내 양쪽 팔뚝을 쥐었다.

“양 헌터!”

“네?”

“한가하죠?”

무슨 헛소리를 할지 예감이 됐다. 센터에 쫓기는 사람한테 한가하냐고 묻는 이 사람의 뇌 구조가 심히 궁금해졌다.

엉뚱한 물음에 내가 입만 뻐끔거리고 있자 그가 멋대로 듣고 싶지도 않던 뒷말을 이었다.

“용병으로 참가 좀 해 주죠. 길드전에.”

박이설은 물론 김형도와 고우주 역시 입이 떡 벌어져서는 내 쪽을 쳐다봤다.

순간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답은 명확했다. 나는 내 팔뚝을 꽉 잡은 그의 손을 천천히 떼어 냈다.

“정중히 거절할게요.”

“괜찮습니다, 그 거절 거절하겠습니다.”

미친놈인가?

혹시 아직 꿈이라도 꾸는 걸까 생각이 많아지는데, 조이현이 되지도 않는 앙탈을 부렸다.

“아니 당장 두 달을 아니 일 년을 줘도 저 인간 마음에 드는 헌터를 구하는 게 가능할 거 같아요? 누구는 너무 약해서 싫고, 누구는 또 예의를 밥 말아 먹어 싫고, 누구는 그냥 싫다고 아주 가지가지 나뭇가지를 하는 사람이라고요, 저 사람이.”

그동안 쌓인 게 많기는 한 모양인지, 한 번 입이 열리자 방언이 터지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 팀장은 그런 조이현의 행동에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잘라 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저 역시 길드장님 눈에는 차지 못할 겁니다. 보다시피 C급에…….”

모자란 점에 대해 나열하고 싶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 약력이 제법 괜찮아서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 팀장이 작게 실소했다.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는데 조이현은 애초에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양 헌터가 지금 여기 있는 거, 그거 말고 더 확실한 증거가 뭐가 필요합니까?”

조이현은 슬쩍 제 뒤에 앉은 이 팀장을 턱짓했다.

“저 속 새카만 인간이 절대 누군가를 선의에 의해 구할 사람도 아니거니와 만약 누군가를 구한다면 그 안에 들어찬 생각 따위야 훤하죠, 분명 양 헌터 구해 준 걸…….”

“빌미로 무언가 적당한 걸 거래할 때를 보고 있겠죠.”

내가 말을 가로채자 조이현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와, 나는 가끔 양 헌터 보면 소름 끼쳐. 나보다 더 저 인간이랑 오래 있던 사람 같고, 선배 같고 막 그래.”

지금껏 아무런 말도 없던 이 팀장은 조금 전 내 말에 흥미가 돈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거래할 준비는 된 건가요?”

“글쎄요. 아직 저는 원하는 걸 다 듣지 못해서요.”

나는 그 말과 함께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윤가경을 쳐다봤다.

윤가경은 어깨를 으쓱여 보일 뿐 딱히 입을 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조이현 헌터에겐 미안하지만, 티브이만 켜도 저를 찾고 있지 않던가요. 길드장님 말처럼 제가 당장 센터로 간다고 무죄가 입증될 거 같지는 않고요.”

“그게 말이에요.”

입을 연 건 지금까지 조용히 대화를 듣던 김형도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안고 있던 고우주를 놔주며 민망한 듯 제 볼을 긁었다.

“지금 문득 든 생각이라 흘려 들으셔도 되지만…….”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 뭔데.”

조이현이 그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형도는 못 이기는 척 말을 이었다.

“그 불법 마약에 대해 제가 잘은 모르지만 보도된 것과 달리, 양 헌터가 마약 중독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습니다.”

형도는 나를 위아래로 찬찬히 훑었다.

“중독 증세까지 간 사람이라면 이렇게 나흘 남짓을 약 없이 넘기는 게 불가능할 테니까요. 어떻게든 약을 주입하기 위해 불안 증세를 보여야 하는데, 불안은커녕 양 헌터는 내내 침착했죠.”

“…….”

“그러니까 분명 재검사를 받으면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형도의 말에 조이현이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지금 논쟁이 되는 점이 그거 아닌가? 이미 낙인을 찍은 센터에서 순순히 양 헌터의 재검사를 응해 줄지.”

“그거예요. 이제부터 제가 할 말이.”

형도는 어딘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론을 만들자는 거에요. 저처럼 마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양 헌터가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마약을 투여하지 않고도 뛰어난 기량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면 분명 의문을 제기할 거예요. 그 목소리가 쌓인다면 아무리 센터라도 재검사를 안 할 수는 없을 거고요.”

“아주 그럴듯한 작전이긴 한데, 양 헌터의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을 그 많은 사람이 어떻게 봐? 그 문제가 가장 크지 않아? 쫓기고 있는 신세에.”

조이현의 냉정한 어투에 나는 눈이 가늘어져서 그를 쳐다봤다.

‘잘 알고 있으면서 잘도 길드전 이야길 꺼냈네.’

조이현의 물음에 형도는 기다렸다는 듯 고우주의 손에 들려 있던 팸플릿을 뺏어 펼쳐 들었다.

그리고는 중개 방식 구간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 길드전에서는 한 번 입장한 이상 중도 탈락하거나 길드전이 끝나는 게 아니면 절대 필드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게 왜.”

형도는 아직도 모르겠냐는 얼굴로 팸플릿을 펼쳐 들었다.

“말은 끝까지 들어야죠. 길드전에 나가면 모든 모습이 한 컷도 빠지지 않고 생방송으로 송출된다고요.”

형도가 가리킨 곳에는 그가 한 말이 그대로 쓰여 있었다. 조이현은 그 내용을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이 팀장을 바라봤다.

“빙고.”

이 팀장은 이제 남은 건 내 대답밖에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이 팀장의 행동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 역시 내 쪽으로 기울었다.

“……잠시만요, 뭐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진행되는 거죠?”

“쟤 머리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뭘.”

상기된 조이현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당황스러운 제안에 머리가 아득해져 왔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이보다 더 좋은 의견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재검사 대신 수배령이 내려진 지금 나를 이들처럼 도와줄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고.

볼에 홍조를 띤 조이현의 표정이 말해 주듯 이건 제법 괜찮은 기브 앤 테이크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무죄를 입증하는 것보다 내게 중요한 일이 남지 않았나.

그 생각 끝에 습관처럼 가경을 쳐다보는데, 가경 역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독고다이처럼 행동하는 그녀가, 길드전에 참가할 의사도 없으면서 여기에 진득하니 앉아 있던 이유.

가경은 눈 마주칠 걸 예상한 사람처럼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고민할 시간 없을 거예요.”

“시간이 없다니 무슨 뜻이죠.”

“하루라도 빨리 센터에 다시 제 발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요.”

가경은 형도가 펼쳐 둔 지도를 내려다보다 말을 이었다.

“제가 말했죠. 저보다 앞서 실험에 들어갔다는 402번. 그녀가 한영원이라고.”

‘쉽사리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마치 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가경은 차분하게 전에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연구실 브레이크 현장에 있던 저도 이곤 헌터도 살아남았어요. 그럼 한영원은 어디 갔을까요?”

다영이 찾아다 준 명부에서 영원의 이름은 분명 사망자란에 체크돼 있었다.

그 때문에 한 번도 그녀가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은 설마 한영원 씨가 살아 있다는 건가요?”

내 다급한 물음에도 가경은 동요 없이 답했다.

“……영원이가 죽지 않았고 센터에 있다고 말하면, 그럼 길드전에 참가할래요? 양하나 헌터.”

가경의 질문이 모두가 숨죽인 방 안에 내려앉았다.

잠이 덜 깼는지 내내 몽롱하다고 생각되던 정신이 점점이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한참 답을 유예하던 내 입술이 조금씩 달싹였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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