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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16)화 (116/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16화

“어떻게 우리 하나는 말하지 않아도 엄마 마음을 이렇게 잘 알까?”

웃을 때면 보조개가 들어가는 여자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는 이목구비가 선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의 품으로 깊숙하게 고개를 처박으며 이렇게 되뇌었으니까.

“엄마.”

라고.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양 헌터의 엄마는 아니지 않을까요?”

“…….”

희뿌연 시야가 서서히 선명해지더니 김형도의 얼굴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손을 내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그의 손을 쳐냈다.

짜악-

거칠게 쳐낸 손길에 형도의 손등이 붉어졌다. 그는 어처구니없는 얼굴이 돼서는 제 손등을 매만졌다.

“아무리 그래도 먼저 잡아 놓고서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물수건 갈아 주던 사람한테.”

그제야 상체를 벌떡 일으키느라 바닥에 떨어진 축축한 물수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맡에는 대야가 놓여 있었다. 나는 상황 파악을 끝내고는 헛기침을 했다.

“미안해요. 순간 너무 가까워서.”

“농담이에요. 원래 계속 이 팀장님이나 이설이가 갈았는데, 지금 다들 회의실에 모여 앉아 있거든요. 그래서 잠깐 제가 온 거였는데.”

형도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뒷말을 늘리다 나직하게 말을 맺었다.

“악몽을 꾸는 거 같길래.”

“악몽이요?”

그의 말에 꿈결에서 본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언가 아주 긴 꿈을 꾼 거 같은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그걸 정말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김형도의 말과도 맞지 않았다. 악몽이라고 말하기에 꿈속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평화로웠던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생각 끝에 윤가경을 떠올렸다.

“가경 씨는요.”

“지금쯤 회의실에 전부 모여 있을 거예요.”

나는 곧장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 형도가 따라 일어났다.

“잠깐만요. 그렇게 확 움직이면……!”

형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정면이 비스듬해지며 몸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겠다고 생각한 순간 형도가 내 팔뚝을 잡아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덕분에 이부자리 위로 함께 쏟아졌다.

“아야. 괜찮아요? 회복 중이라 그렇게 움직이면 어지러울…….”

형도는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다 말을 멈췄다.

제 아래 깔린 나를 확인한 그의 귀 끝이 묘하게 붉어졌다. 그는 말을 전부 잇지도 못하고 그저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러니까…….”

“일어나죠. 무겁습니다.”

무표정한 내 말에 그는 그제야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나는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말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앞이 핑핑 돌았다.

아무래도 힘을 축내서 쓰고도 똑바로 된 가이딩을 받지 못해 생긴 문제인 거 같았다.

형도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게 우선 저희가 가지고 있는 가이딩 보조제를 투입하긴 했는데 아마 그걸로는 부족할 겁니다. 정확한 에너지 분류를 몰라서 소량밖에 투여하지 못했거든요.”

“…….”

“그리고 특이 체질이니 그거로는 부족할 거고요.”

이천 게이트에서 자신이 특이 체질이라는 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가이드가 바로 눈앞에 있는 김형도였다.

형도는 괜히 불그스름해진 제 안면을 마른세수하듯 비볐다.

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형질 검사하면 약을 구해다 주실 순 있는 거죠.”

“그럼요, 그건 어렵지 않지만…….”

“그럼 됐어요.”

나는 그의 말을 잘라 내듯 답했다.

형도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한들 강우신이 아닌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 받을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모른 척 손을 뻗었다.

“일으켜 주실래요.”

형도는 그런 내 뜻을 알고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줬다.

* * *

그와 함께 툇마루를 따라 이동했다.

정신을 잃기 전 가경과 나눴던 대화를 되짚는 사이 회의실에 도착했다.

닫힌 방문 너머에서 분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문이 닫혀 있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앞서 걷던 형도가 내 앞을 가로막더니 큼큼하고 헛기침했다.

헛기침을 들은 모양인지 곧장 방 안이 조용해졌다. 그제야 형도는 노크를 하곤 미닫이문을 열었다.

“양하나 헌터 깨어났어요.”

형도의 말끝에 나는 그의 등 뒤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보였다.

윤가경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오델리아 팀원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박이설이었다.

“일어났어요? 회의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영 깨어날 기미도 안 보이더니.”

박이설의 말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방 안을 둘러봤다.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대화가 명확하게 들리진 않더라도 어떤 분위기와 뉘앙스로 대화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억양이 격해져 있는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회의 내용이 제법 심각했던 모양이다.

“저 때문에 대화가 끊긴 거 같은데, 잠시 뒤에 올까요?”

“그럴래요?”

“그럴 필요 없어요.”

“…….”

이 팀장과 조이현이 동시에 대답했는데, 그 대답의 의미가 상반됐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자, 조이현이 제 머리를 헤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언제까지 숨죽이고만 있게요? 이천 게이트 직후로 팀원도 안 받으시고 뜻은 알겠지만, 저희도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죠.”

목구멍 끝까지 차 있던 말이 터져 나오듯 조이현이 이 팀장을 향해 말을 쏟아 냈다.

이설은 못 말리겠다는 얼굴이 됐고, 가경은 무관심한 듯 팔짱을 끼고 앉았다.

그사이에 낀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는데 김형도가 제 이마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저 가기 전부터 하던 얘기가 아직도 결정 안 난 겁니까?”

“몰라. 이번만큼은 길드장님 의견대로 못 따라갑니다.”

이천 게이트 같은 비상시에도 죽이 척척 잘 맞더니 무슨 일로 조이현이 심통이 났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물으려 하는데, 묻기도 전에 김형도가 입을 열었다.

“곧 길드전이 열립니다.”

그는 나를 돌아봤다.

“보다시피 여기 길드장님은 길드전에 참가하지 말자, 여기 조이현 헌터는 제발 좀 참가하자, 라며 창과 방패의 싸움을 첨예하게 하는 중이죠.”

이미 그들의 논쟁에 이골이 난 듯 형도는 비꼬듯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이 팀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협회 주관으로 매년 열리는 길드전은 내가 센터에 자리 잡을 무렵에야 명성을 얻었지만, 그 역사만큼은 제법 길었다.

아무래도 센터 소속 헌터들의 성적은 매일같이 뉴스에서 보도됐지만, 길드는 그보다 규모가 작고 흩어져 있어 뽐낼 기회를 따로 만들어 줘야 했었다.

나는 뒤늦게 테이블 위 팸플릿을 발견했다. 이내 천천히 다가가 그걸 집었다. 누구도 저지하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상금과 길드전 규모를 보니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컸다.

나는 팸플릿을 대충 살피다 그 너머로 이 팀장을 빗겨 보았다.

내부 사정을 잘 모르긴 해도, 겉으로 듣기에는 조이현의 말이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이천 게이트 직후 문을 걸어 잠근 데다 길드전까지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니. 길드를 만든 이상 약소 길드에서 그치고 싶어 하는 헌터는 없다.

그럼 그는 도대체 이 길드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런 생각이 길어지는데 불쑥 이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자기가 보기에도 이 상황이 못마땅한지 비딱한 태도였다. 괜스레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그 성격 어디 안 갔구나 싶어졌다.

“안쪽 사정까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주지 않는 것만큼 팀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도 없지 않을까요.”

“이야, 양 헌터가 옳은 말을 할 줄도 알고.”

조이현은 보란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손뼉을 쳤다. 이 팀장이 째려보고야 그는 헛기침하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내 이 팀장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만, 길드전에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수가 부족합니다.”

“이천 게이트 때도 문제없던 데다가, 적은 인원이지만 균형이 좋은 편 아니던가요?”

“양 헌터도 알고 있지 않나요? 게이트와 길드전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

“…….”

이 팀장의 말이 백번 옳았다.

이천 게이트에서 그들이 활약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상대가 몬스터였다는 점이다.

반면 길드전은 몬스터보다는 대인전을 할 일이 더 많았다.

훈련이 가능한 몬스터와의 싸움은 이 안의 멤버로 미리 대비할 수 있었지만, 개인의 능력이 천차만별이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사람과의 싸움은 대비하기 까다로웠다.

그렇기에 이 팀장의 판단이 크게 방어적인 건 아니었다.

“…….”

이 팀장 말에 설득당한 듯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조이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설득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지만 일리 있는 말 아닌가요? 본사에 있는 에스퍼들은 아직 현장에 투입하기엔 실력이 미흡하다고 생각이 들어 전력으로 치지 않는 것일 테고.”

나는 말끝을 늘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주위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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