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13화
이 팀장이 퇴사했을 때, 그가 독자적인 길드를 차린다는 이야기가 헌터 커뮤니티에 한참 돌았었다.
그럴 만했다. 당시 이 팀장은 센터에서 가장 오랜 시간 최상의 자리를 유지한 헌터였으니까.
실제로 시간이 흘러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오델리아 길드는 그간의 길드와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보유 헌터가 현저히 적은 초유의 약소 길드로 말이다.
그의 행보에 이 팀장 본인이 후광을 독식하려고 이름난 헌터를 일부로 고용하지 않는다는 말도 돌았다.
그런 오명이 붙은 오델리아 길드에 처음으로 들어온 S급 에스퍼가 바로 가경이었다.
당황한 탓에 그녀가 소문의 에스퍼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 팀장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났다.
오델리아의 유일한 S급 에스퍼는 히키코모리에 길드장조차 제어가 안 되는 망나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가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윤가경이었다.
이 팀장은 가경의 이런 태도가 익숙한 듯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다만 가경만큼이나 나 역시 이 팀장을 오래 봐 왔다. 저 남자가 아무리 점잖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 안에는 마그마처럼 뜨거운 화가 울렁일 터였다.
‘지금도 충분히 한계인 거 같은데 말이지.’
어쩐지 나보다 더 심각한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보고 있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괜찮다면 듣고 싶습니다.”
시선이 집중됐다. 형도는 불안한 눈이 됐다.
금방이라도 만류하고 싶은 눈이었지만 나는 모른 척 이 팀장을 바라봤다.
“가경 씨 말처럼 옛날 일을 묻고 지금껏 남의 일로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때 남의 눈에 비친 제가 어땠는지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정을…….”
“당장 센터에 가면 감금밖에 안 될 걸 알면서도 가고 싶어요. 그 정도로 저는 제 입장을 객관적으로 못 보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모른 척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모두 제 일이니까.”
이 팀장은 대답 없이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가경을 슬쩍 쳐다보는데 가경이 기다렸다는 듯 느긋하게 답했다.
“저는 언제든 말할 준비가 됐습니다. 누구들이랑은 다르게 말이죠.”
“양 헌터의 뜻이 그렇다면 제가 더 이상 만류할 이유는 없죠.”
가경은 이 팀장이 한발 물러나자 신난 듯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한쪽 팔로 턱을 괴고는 중간에 낀 형도를 무시한 채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래서 무슨 이야길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거야?”
“딱 꼬집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기보다는 하던 이야길 마저 이어서 해 주시면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던데.”
가경은 입매를 비뚜름하게 올리더니 멜빵 바지의 커다란 주머니 안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할까? 솔직히 너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어. 너랑은 사용하는 층도 달랐고 무엇보다 아까 말한 것처럼 나는 마지막 실험체로 들어갔었으니까.”
“마지막 실험체라는 건.”
“그래, 나는 연구실 폭발이 있던 해 마지막 기수 아이였어.”
* * *
연구실 창단 4년이 되며 실험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그해 여름 마지막 실험을 위한 아이들이 모아졌다.
그 안에 윤가경이 있었다.
거기 모인 아이들 중 제 발로 원해서 온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이들 대부분이 팔려 오거나 끌려오거나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왔다. 가경은 그 사실을 연구실에 들어와 방을 배정받고야 알았다.
왜냐하면, 가경은 그런 태반의 이유 없이 제 발로 연구실에 들어온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가 13살이었다. 물론 다른 아이들처럼 불우한 성장 환경을 겪긴 했지만, 애초에 가경은 그건 제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경이 연구실에 자원한 이유는 그런 것들보다 훨씬 간단하고 근사한 것이었다.
‘에스퍼가 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어.’
가경은 나가게 해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강한 에스퍼만 될 수 있다면 그 수많은 아이를 무력하게 만든 이유를 모두 간단하게 이겨 낼 수 있다고 믿었어. 당시 나는 내가 약해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을 이어 가던 가경의 수첩 위로 어느새 그녀가 기억하는 연구실의 방 안 그림이 스케치 되었다.
그녀가 그린 그림은 담백한 어조와는 달랐다. 어린아이들이 굳게 닫힌 커다란 문 앞에 매달려 있다가 지쳐 잠드는 등 당시의 상황이 정확하게 담겨 있었다.
“난 말이야. 스스로 생각해도 당시 내가 참 연극적이라고 생각했거든? 허세만 가득해서 말이지.”
가경은 수첩의 다음 장을 넘기더니 누군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 나보다 더한 애가 있더라고. 그게 너였어, 양하나.”
그 말끝에 금세 여자아이의 초상이 그려졌다. 까만 단발머리에 동그란 눈까지, 그늘에서 본 양하나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늘에서 본 어린 양하나와 달리 그림 속 양하나는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그림에서 시선을 떼고 가경을 바라봤다.
“연극적이었다니. 어떤 점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겁니까?”
“알고 한 행동 아닌가?”
가경은 제가 그린 그림 속 어린 하나와 나를 번갈아 봤다. 내가 짐작도 안 된다는 얼굴을 하고 있자, 가경이 말을 이었다.
“너는 아이들 사이에 껴서 연구원들과 내통하는 참모 역할을 하고 있었잖아.”
“…….”
“물론 어린 네가 그게 참모 역할인지 알았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너는 다 알고 그랬어.”
“근거는.”
단호하게 묻자 가경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야, 넌 그런 애니까. 연구원이고 같은 기수 아이들이고 가릴 것 없이 생각을 읽고 그에 따라 이득이 될 대로 움직이는 애.”
‘사람들의 생각을 훔쳐 읽으며 연구원과 내통하는 참모라.’
연구실 폭발이 있던 해, 양하나의 나이는 고작 13살이었다.
아직 중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에게 붙은 수식치고는 과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 때쯤, 이곤의 말이 머릿속에 내려앉았다.
“아직도 못 알아듣겠어? 이기적이고 지밖에 모르는 양하나는 연구실에 나를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갔어. 우리는 함께 도망친 적이 없다고.”
배신감에 물든 얼굴은 진심만을 토해 내고 있었다. 이곤이 기억하는 그날의 하나 역시 13살이었다.
나는 복잡한 생각을 털어 내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부모가 연구원이었잖아요. 그런 내가 부모의 편에 서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런 걸 참모니 연극적이니 말하는 것도 좀…….”
내 말에 다음 장에 그림을 이어 그리던 가경이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 때문이잖아.”
“…….”
“그래, 네 부모가 연구원이었지. 우릴 그렇게 만든. 하지만 우리만 그렇게 만든 게 아니잖아.”
“‘우리’만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니.”
“센터에 간 네가 적응을 잘 못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뭐 놀랄 일인가 생각했어.”
나는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 나가는 가경의 손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제 자식을 연구 실험체로 쓰는 부모를 둔 네가 누굴 믿을 수 있겠어.”
완성된 어린 양하나의 초상은 그늘 속에서 본 이곤이나, 가경이 그린 앞선 그림의 아이들처럼 숫자가 적힌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저절로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양하나 역시 이곤이나 가경처럼 실험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아직 열이 떨어지지 않은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콧노래를 부르며 연구실을 제집처럼 거닐던 게 생각났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가경의 입을 통해 들은 참모라는 말이 단순히 날 아프게 찌르려고 한 말이라 생각했는데 선명해져 오는 기억이 그게 아니라 답하는 듯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가경의 이목구비가 흔들려 보였다. 이 팀장의 말처럼 아직 회복하지 못한 몸이 진실을 밀어 내고 있었다.
나는 대화의 머리를 돌리기 위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쪽은 어땠는데.”
“나?”
“그래요. 연구실에 직접 두 발로 걸어 들어갔다며.”
“아…….”
가경은 맞아 그 이야기 중이었지, 하며 테이블을 볼펜 끝으로 툭툭 쳤다.
“허세만 가득했던 내 바보 같은 생각은 머지않아 바뀌었어. 그 아이를 만나고 말이야.”
* * *
늦은 기수로 들어온 가경은 제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티브이나 책에서 봤던 끝내주게 멋있는 에스퍼가 되는 날만을 꿈꿨다.
그럴 수만 있다면 갇혀 지내는 생활 정도는 일도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건 지나치게 무료했다.
그때 눈에 보인 게 양하나였다.
하나는 방과 방을 마음대로 넘어 다녔다. 가경은 제 눈을 의심했다.
분명 제 또래에 저와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우리 속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웠다.
그게 몹시도 신기하고 부러워 얼마간 하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그때 한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관심 끄는 게 좋을 거야.”
냉소적인 어투에 가경은 제게 말을 걸어온 아이를 돌아봤다.
푸른빛이 도는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진 아이는 창백한 색만큼이나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경은 그녀의 가슴께 적힌 숫자를 봤다.
402번.
이곳에서는 이름 대신 번호로 서로를 호칭했다.
물론 그 번호를 연구원이 아닌 우리끼리 육성으로 부를 일은 크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