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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11)화 (111/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11화

“이게 누구야 약물 중독범 양하나 아니야.”

2군에서 번번이 나를 괴롭히던 남자였다. 그는 넝마가 된 내 모습에 입이 찢어져라 웃더니 이내 호루라기를 불었다.

소음이 빗물을 뚫고 사방으로 번졌다. 머지않아 그의 뒤로 판초 우의를 뒤집어쓴 무리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들었지? 너 타겟팅 명령 떨어진 거. 하긴 알고 있으니 그런 걸레짝 같은 모습으로 있는 거겠지만.”

“…….”

내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뒤돌아 가려 하자 그가 얼굴을 구기며 버럭 소리쳤다.

“내가 너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게? 지원 3팀의 헌터가 무전 쳤거든. 그럼 뻔하잖아, 그 헌터를 잡고 있던 네 동료들은 어떻게 됐을지.”

그의 말에 희민과 태용, 소희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걸음이 더뎌지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아무 에너지도 두르지 않은 맨주먹을 휘둘렀다. 그 일격은 간신히 내 옆을 비켜 갔다.

“재수 없는 새끼. 네가 집공팀으로 꺼지고 되지도 않는 징계를 먹었어! 내가. 그 잘난 강우신 가이드 때문에 말이야.”

남자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그는 다시금 주먹에 힘을 실었다.

“그러니까 넌 내가 잡는다, 잡아서 엉망이 된 낯짝을 그놈한테 보여 줄…….”

남자가 말을 전부 잇기도 전에 나는 그의 얼굴 앞에서 마지막 남은 힘을 폭발시켰다.

화약처럼 사방으로 터지는 금빛 에너지에 그는 제 얼굴을 감싸 안고는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뛰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힘이 미약해 폭발이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예상대로 얼굴이 울긋불긋해진 남자가 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바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잡혔다가는 정말 그 자리에서 목이라도 비틀 얼굴이었다.

안이 텅 빈 것처럼 이제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그에게 쓴 게 마지막이었다. 이 이상 힘을 끌어왔다가는 정말 폭주할지도 몰랐다.

다리가 무거워지며 점차 속도가 늦어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머지않아 그에게 잡힐 지경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뒤를 바짝 쫓아오는 남자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무어라 소리치는 목소리가 빗물에 삼켜졌다.

이대로 잡혀 추한 모습으로 끌려가는 것과 폭주해 몸이 깨지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나을까.

그 생각 끝에 멈춰 서 그를 돌아봤다.

‘이곤 뒤에 선 배후가 내가 생각한 사람이 맞는다면 절대 지금 나를 내어 줄 수 없어.’

상대 역시 맞서기로 한 내 결심을 눈치챈 듯 미세하게 웃어 보였다.

곧이어 서로 주먹을 맞부딪히려는 순간 남자가 엄한 전봇대에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잡았다, 넌 죽었어.”

그는 제 주먹이 피 칠갑이 되도록 전봇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나는 선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 그를 바라봤다. 비틀거리면서도 전봇대에 정신이 완전히 빼앗겨 있었다.

“정신 착란……?”

“그래요. 전봇대가 양 헌터인 줄 알고 있을 겁니다.”

불시에 나타난 이 팀장은 그 말과 함께 내 머리 위로 우의를 덮어 주었다. 나는 한 손으로 우의를 받아 들며 그를 올려다봤다.

고요한 표정이지만 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을 보니 제법 급하게 당도한 모양이었다.

“이 팀장님…….”

“브레이크 지원 왔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돼서요.”

타겟팅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전봇대와 씨름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다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뒤에 다른 헌터들도 오고 있어요.”

“저도 혼자 오지는 않았습니다.”

이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막 당도한 형도가 턱 끝까지 찬 숨을 내쉬며 내 손목을 잡았다.

“가요, 여긴 길드장님한테 맡기고.”

“어딜 말이죠?”

“어디든요. 여기 남아 있어 봤자 사냥당하는 것밖에 더 되겠어요?”

그는 그 말과 함께 등을 내보였다.

“그 팔로는 빨리 못 뛰잖아요. 업혀요.”

내가 주저하자 이 팀장이 입을 열었다.

“착란 유효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합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죠. 체력도 한계인 거 같은데.”

그의 말처럼 아까부터 다리가 볼품없이 후들거렸다. 형도는 어서요, 라며 제 등을 내보였다. 이 팀장이 내 어깨 위로 조심히 손을 올리며 말을 맺었다.

“괜찮아요.”

그의 말에 나는 무너지듯 형도의 등 뒤에 업혔고 머지않아 그에게 몸을 완전히 맡겼다.

형도는 나를 업은 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온기를 느끼자 거짓말처럼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그 뒤로 이설의 넝쿨들이 도로를 잠식하듯 이 팀장의 앞에 벽을 만드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뒤로하고 빗소리에 멀어지는 정신의 끈을 놓아 버렸다.

6. 길드전

머리맡에 놓인 창가로부터 빛이 떨어졌다. 따뜻한 기운에 부드럽게 눈이 떠졌다.

눈을 뜨고 얼마간 천장을 바라봤다. 나무로 만들어진 층고 높은 천장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통창 밖으로 정원이 보였다. 정원 전체가 거대한 나무과 넝쿨 식물에 둘러싸여 조화로웠다.

얼마간 그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왼팔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전문가의 솜씨였다.

옷 역시 깨끗하게 갈아 입혀져 있었다. 나는 부드러운 이불을 매만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보는 한옥이었다. 방 안의 가구들 모두 볕을 머금은 듯 따뜻한 색의 원목으로 채워져 있었다.

연식이 있는 듯 바닥을 밟자 끼익, 하고 무게가 실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복도로 나가자 툇마루로 이어졌다. 툇마루로 걸어 나가자 통창을 통해 보였던 정원이 펼쳐졌다.

창 너머에서 볼 때도 온화한 빛이 감돈다고 생각했는데, 담 너머로 푸른 하늘까지 보이자 한 폭의 명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기분이었다.

나는 툇마루에까지 손을 뻗은 넝쿨 식물을 한 손으로 조심히 쓸어내렸다.

생명력 가득한 초록 식물의 향연을 마주하니 박이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노란 나비가 날아와 내가 쓰다듬었던 넝쿨에 앉았다.

“…….”

지난 기억이 전부 꿈이었던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툇마루를 지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간이 얼마나 큰지 걸음을 옮겨도 옮겨도 복도와 방이 겹겹이 나올 뿐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 목소리인가 싶었는데, 티브이에서 들려오는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인 듯 톤이 정확하고 일정했다.

덕분에 가까워질수록 그 말의 내용이 명확하게 들려왔다.

[이틀 전 오후 세종시 이상 게이트 브레이크 지원을 왔던 양하나 헌터가 구조 활동 중 자취를 감췄는데요, 약물 중독 의혹을 받았던 만큼 센터 측의 감식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죠.]

소리가 새어 나가는 방문 앞에 도착한 나는 살짝 열린 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의 뒤통수가 보였고 그 앞에는 티브이가 있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옆으로 내 사진이 떠올랐다.

우울한 빛이 가득한 양하나의 얼굴. 입사 자기소개에 내붙였던 증명사진이었다.

[오늘 오전 감식 결과 나왔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센터 연구원께서 자리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센터 연구원 소속 황무준 소장입니다.]

[양하나 헌터가 이번 이천 게이트 클리어 핵심 멤버였다는 소식에 공분을 샀는데요, 국가적 에스퍼가 불법 약물 중독은 물론 구조 활동 중 본분을 다하지 않고 탈주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굉장히 유감스러운 부분입니다. 헌터가 급격한 성장을 이룰 때는 약물 중독을 의심해야 할 텐데, 워낙 조용한 헌터였기에 지적이 늦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검사 결과가…….]

[네, 양하나 헌터의 모발에서 마약 반응이 검출됐습니다.]

‘뭐? 뭐가 검출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의 무게를 앞으로 실었다. 몸이 기울고 발바닥에 힘이 들어가며 끼익하고 소리가 났다.

“이설 누나야?”

티브이에 집중하고 있던 남자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곧장 티브이에 정신이 팔린 김형도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형, 형! 그 누나 왔어!”

형도 역시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리모컨을 집어 티브이를 껐다.

나는 두 사람 너머로 티브이가 꺼지기 전까지 연구소장의 말도 안 되는 괴변을 경청했다.

티브이가 꺼지고 새까매진 화면 위로 수척한 내 모습이 비쳤다.

나는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형도를 바라봤다.

“왜 끄세요, 뭐라고 지껄이는지 들어 보고 싶은데.”

“일어났으면 부르죠.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요.”

형도는 리모컨을 등 뒤로 숨겼다. 그는 내 맨발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툇마루로 오면서 발 안 시렸어요?”

나는 대답 대신 김형도가 등 뒤로 숨긴 리모컨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쥔 리모컨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형도는 내 뜻을 알아차렸는지 팔을 높이 뻗어 리모컨을 잡지 못하게 했다.

“아직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몸 상태는 어때요?”

꿋꿋이 모른 척 다른 말을 하는 모습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라고 하는지 봐야 곧장 대응을…….”

“그 몸으로 말입니까?”

김형도와 씨름하고 있는데 내가 들어온 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이설과 이 팀장이었다.

박이설은 나를 보고는 이 팀장을 올려다봤다.

“내가 뭐랬어요. 깼다고 했죠.”

“…….”

툇마루를 지나오다 넝쿨 식물을 만졌는데, 이제 보니 그 많은 식물과 감각이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 팀장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는 김형도의 손에 있던 리모컨을 뺏어 내게 내밀었다.

“보는 거야 상관없죠. 하지만 그걸 본다고 해도 당장 복장만 터질 뿐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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