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8화
그쪽이 누구기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하냐 되묻고 싶었지만, 돌이켜 보니 저한테도 그렇게 따져 물을 관계가 아니었다.
우신은 잠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답했다.
“잠시 상태만 확인하러 온 거니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문득 마음이 달라져 한마디 덧붙였다.
“몸 상태가 불안정한 거 같으니 주의하라고만 전해 주시죠.”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었다. 가이드로서 남긴 작은 조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그러짐 없이 웃고 있던 이곤이 표정을 일순 단단하게 굳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도록 할게요. 그런데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나라면 알아서 할 겁니다. 합동 훈련 때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
“괜히 찾아오고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봤으니 알겠지만, 도리어 트러블만 생길 테니까요.”
우신은 이곤의 화법이 묘하다고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양하나와 자신의 사이에 벽을 만들어 경계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럴 법도 했다. 눈앞의 이 에스퍼뿐 아니라 많은 에스퍼나 가이드가 저를 경계해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에서 느껴지는 벽은 꼭 한 사람을 외딴섬처럼 여기고 밀어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
하지만 뭐가 됐든 저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의 말에 어떤 대꾸도 없이 떠났다. 그렇게 그날 이곤과 저 사이에서 있었던 대화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었는데.
‘내일 실습인데 컨디션 관리도 중요한 거 아닙니까?’
지난밤 저와 양하나 사이에 불쑥 나타난 이곤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앞의 양하나에게 집중한 터라 그렇게 가까이 오도록 모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제가 양하나에게 했던 말을 전부 들은 거 같다는 생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며 에스퍼의 손목을 쥐고 있던 손에도 점차 힘이 들어갔다. 때마침 에스퍼는 상태가 진정된 듯 호흡이 일정해졌다.
그 모습에 우신은 이어셋을 통해 밖에 있던 현장 요원에게 무전했다.
-파동이 안정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우신의 말에 현장 요원과 함께 치유계 에스퍼가 들어왔다.
우신의 역할은 끝난 거였다.
우신은 에스퍼를 두 사람에게 인도하고는 천막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소매 끝에 피가 묻어 있었다. 에스퍼를 가이딩 하던 중 묻은 모양이었다.
우신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그대로 팔뚝까지 옷을 걷어 넘겼다.
그때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중심부 파견팀 들어옵니다!”
입장을 알리는 요원의 말에 우신이 곧장 그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다섯 시간 가까이 무전이 끊겨 있던 양하나가 돌아온 것이었다.
서둘러 상태를 확인하려 하는데, 가장 앞서 들어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김다영과 한지원 헌터였다.
김다영 헌터가 크게 다친 듯 한지원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우신은 서둘러 모여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눈으로 두 사람의 뒤를 살폈다. 보여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하게 뛰는 심장 박동이 고막 가까이 울리는 그때, 뒤늦게 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포착되었다.
이곤이었다.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듯 엉망인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이 묘했다. 곧장 그 뒤로 시선을 돌렸지만 입구의 문은 닫힌 뒤였다.
그 모습에 우신은 걸음을 멈췄다.
우신은 복귀한 이들의 머릿수를 몇 번이고 세고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왜 문을 닫습니까? 한 사람이 비는데.”
다영은 우신을 발견하고는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우신의 눈동자도 덩달아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이곤이 두 사람의 사이를 스쳐 지나가더니 우신에게 현장 지휘권을 인계받던 현장 관리자 앞에 섰다.
우신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이곤을 좇았다.
이곤은 고개를 가볍게 주억이며 인사하고는 냉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집중 공격팀 소속 양하나 헌터가 작전 중 지역을 이탈했습니다. 현재 양 헌터는 약물 중독이 의심되는 상황이며 빠른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곤의 말이 멀게 느껴졌다. 현실감 없는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나지막하게 그를 부르는데 이곤은 사색이 된 우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민지민 헌터님께서 합류하시기로 돼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쯤 도착할까요. 양 헌터가 브레이크 지역을 이탈하기 전에 파견조를 넣어야 할 거 같은데요.”
이곤의 입에서 나온 민지민의 이름에 관리자가 반응했다.
그가 곧장 확인해 보겠다고 핸드폰을 꺼내 드는데, 우신이 관리자의 팔을 붙잡았다.
놀란 관리자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이곤이 날이 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죠.”
“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작전 지역 이탈도 모자라 약물 중독 의심이라니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항 앞에 붙은 이름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이곤은 우신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의 손아귀에서 관리자의 손을 빼냈다.
“연락하세요.”
“아니, 멈추세요.”
두 사람의 신경전 속에 관리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봤다.
“저를 이해시키기 전에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습니다. 아직 인수 중이었지 이 현장을 현재 지휘하는 건 접니다. 더 이상의 무례는 그만두십시오, 이곤 헌터.”
강우신이 한 발자국 다가서며 그렇게 일갈했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에 쉽사리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곤은 못마땅한 듯 이마를 쓸어 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몬스터와 전투 중 양 헌터의 오더로 건물 붕괴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도 그 소리를 들었겠지요?”
“…….”
“그 탓에 약해진 지반이 무너지며 저와 양 헌터만 하수도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곤의 말에 우신은 확인을 받듯 가깝게 서 있던 지원을 쳐다봤다.
지원은 사실이라며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 아래서 일이 있었습니다. 양 헌터와 대화 중 양 헌터가 저를 공격하고 하수도를 무너트려 도주하였습니다.”
“어디까지나 이곤 헌터의 말뿐인 거 아닙니까?”
“제 입장은 여기 있기라도 하죠. 양 헌터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곤은 지금 상황을 봐 가면서 말하라는 듯 팔을 양옆으로 펼쳐 보였다.
다시 살피니 이곤은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확실히 하수도 아래 떨어진 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긴 있던 모양이었다.
우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약물 중독의 근거는.”
우신의 물음에 이곤은 서늘한 표정으로 우신만 들릴 만한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임시지만 전담 가이드에게 근거를 먼저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훼손할지 어떻게 알고.”
“전담 가이드이기 전에 현장 담당자입니다.”
이곤은 씨알도 안 먹힌다는 얼굴로 입가를 경련했다.
“그거야말로 말뿐인 거 아닙니까? 양하나가 그 양하나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의 말은 영 신뢰하기 힘들어서요.”
이곤의 말에 우신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예상대로 테라스에서 우신이 하나에게 한 말을 들은 듯한 뉘앙스였다.
이곤은 우신이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박수를 쳐 시선을 집중시키고는 커다란 소리로 관리자에게 말을 전했다.
“강우신 가이드님이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을 잘 모르셔서 그러시는 거 같은데, 이런 현장에서는 스피드가 생명이죠. 연락 서둘러 주세요.”
이곤의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민지민과 곽현주 등 집공팀 핵심 멤버가 당도했다.
우신은 새카만 작업복을 갖춰 입고 등장한 그의 모습에 인상을 구겼다.
“협동 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먼 브레이크 현장까지 연락도 없이 무슨 일입니까.”
우신의 날카로운 질문에 지민이 픽 웃었다.
“진짜 양 헌터랑 연락이 안 되나 보네. 이렇게 조급해하는 모습 오랜만인데요?”
지민은 우신의 어깨를 가벼이 툭툭치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작전 본부로 들어선 우신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현장에 온 건 민지민과 집공팀 멤버들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양복 차림의 센터 배지를 라펠에 단 감시관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상석에 앉은 민지민이 우신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앉죠.”
우신은 보란 듯 선 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감시과 사람이 여긴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긴요. 양 헌터 문제로 왔죠. 약물 중독은 감시과에서도 중대하게 다루는 문제니까요.”
“그걸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아직 어떤 것도 확인된 게 없는데 왜.”
우신의 말에 지민은 귀찮다는 듯 눈가를 찡그렸다.
“감시과에서는 꾸준히 양 헌터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
“생각해 보세요. 아카데미에서 입사 후까지 그럴 만한 성적 하나 없던 C급 헌터가 번번이 기록을 내고 있습니다. 그게 설마 노력이나 운, 뭐 그런 걸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지민은 감시관을 향해 턱짓했다. 그 행동에 감시관은 가지고 온 서류 가방에서 많은 양의 종이 뭉텅이를 꺼내 보였다.
그러고는 확인해도 좋다는 듯 그것을 우신이 볼 수 있게 가까이 밀었다.
우신은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다 손을 뻗어 낱장을 하나씩 들추어 확인했다.
“…….”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양하나에 관한 자료뿐이었다. 아카데미에서의 성적과 학습 태도는 물론 교우 관계까지,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의 자기소개서와 가족 관계, 입사 후 참여한 게이트 실적서와 담당자 소견까지.
그녀에 관해서라면 어느 작은 것 하나 놓친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자료의 중간쯤에 붉은색의 가름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