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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7)화 (107/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7화

이곤은 그 거리에서 멈춘 채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네가 머리를 다쳐 기억이 듬성듬성해졌다고 말한 바로 그 날부터야.”

“…….”

“그 엉성한 변명은 둘째치고 의문이 들더라.”

이곤이 낮게 숨을 고르고는 한 글자씩 눌러 담듯 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강우신의 안부를 묻다니. 아무리 머리를 다쳤다 해도 그 양하나가?”

그의 물음에 지난날 강우신에 대해 물었을 때, 눈에 띄게 놀라며 안색이 어두워지던 이곤이 떠올랐다.

단순히 친구의 안부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양하나 네가 그와 가이딩을 할 수 있을까? 수도 없이 생각해 봤지만 내 대답은 ‘아니오’였어.”

“…….”

“너 강우신 죽이고 싶어 했잖아.”

“…….”

“성시현을 죽게 한 강우신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명 네가…….”

“그만.”

사다리를 쥔 손에 불쑥 힘이 들어가며 쇠가 일그러졌다.

마음이 멋대로 들쑥날쑥하더니 힘에 감응했다.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는 황금에 사위가 서서히 밝아졌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숨을 한 번 고르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말하지 마…… 지금 너 컨디션 안 좋은 거 같아. 그러니까 일단 일 끝나고 돌아가서.”

그 말과 함께 엉망으로 일그러진 사다리 다리를 놓고 아래로 내려오려는데 이곤이 불쑥 제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헌터용 무기였다.

어둠 속에서도 서슬 퍼렇게 번뜩이는 권총의 총구가 선명히 보였다.

내 시선이 자연히 총구에 닿자, 이곤은 마치 이 순간을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해 왔던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

“말투나 작은 습관, 네 에너지까지. 내가 양하나 널 몇 년을 지켜봤다고 생각해?”

이곤이 권총 위로 손을 가져갔다. 이어질 동작을 알고 있었지만, 제지하지 못했다.

“그 말도 안 되는 파장이 정신 감응인지 뭔지, 그런 기술 하나로 되는 거였으면.”

철컥-

권총의 슬라이드를 잡아당기자, 장전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총구가 나를 향했다.

“양하나가, 내가, 우리가. 왜 그렇게 힘들게 버텨 왔겠어.”

아.

입 밖으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난생처음 보는 선득한 표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나는 이미 서늘한 증오와 불신이 담긴 저 표정을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이곤이 양하나를 바라볼 때 짓던, 그 표정이었다.

“…….”

“아직도 못 알아듣겠어? 이기적이고 지밖에 모르는 양하나는 혼자 살겠답시고 연구실에 나를 버리고 도망갔었어.”

지난 꿈속에서 어린 양하나를 봤을 때, 왜 숲속에 혼자 있는 걸까, 불타오르는 연구실에 남은 사람은 없을까 하고 의문을 품었었다.

스쳐 지나가듯 든 의문의 답이 비로소 주어졌다.

“우리는 함께 도망친 적이 없다고.”

금방이라도 울듯 이곤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그는 그런 얼굴로도 용케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너 누구야.”

바로 코앞에 들이밀어진 총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총구 너머로 보이는 이곤의 표정 역시 그러했다.

붉게 충혈된 눈과는 달리 그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하냐에 따라 방아쇠를 당기려는 듯했다.

“……내 말을 믿을 생각은 있고?”

내 물음에 이곤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그것이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사다리 아래로 내려오려 했다.

땅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는 순간, 이곤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바로 코앞에서 쏘아 올려진 탄환이 내 가슴팍을 향해 날아왔다.

옷 가죽을 찢고 살갗을 파고들려는 그때, 황금의 에너지가 탄환을 감싸며 멈추게 했다.

본능적인 방어였다. 예민해져 있던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탄이 박혔을 것이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꼼짝없이 그를 바라봤다.

화약 냄새와 옅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곤의 얼굴 앞에서 일렁였다.

이곤은 시간이 멈춘 듯 공중에 뜬 탄환을 보고는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몸 안에 뭘 숨긴 거야.”

탄환을 감싸던 금빛 에너지가 가시고 공중에 떠 있던 탄환이 힘없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차가운 금속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소리 끝에 나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내가 막지 못했으면 어쩌려고 이딴 짓을 한 거야.”

확신도 없는 주제에 이런 짓을 하다니 치가 떨렸다.

이를 악물고 묻는 내 말에 이곤이 담담하게 답했다.

“아니었다면 사과하려고 했어. 의심이 풀렸을 테니까. 하지만 봐 봐 난 이렇게 될 줄 알았거든.”

“미친 새끼.”

내 나직한 욕지거리 직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일순 공기가 무거워졌다고 느낀 순간 이곤이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빠르게 사다리에서 떨어져 피했다. 탄환에 에너지를 실은 듯 탄이 검게 일렁였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기 무섭게 이곤은 주저 없이 총을 계속해서 난사했다.

날아오는 탄환을 피해 나는 빠르게 뛰었다.

다행히 머지않아 탄이 떨어진 듯 방아쇠를 당겨도, 틱틱거리는 소리만 났다.

곧장 이곤은 총을 버리고 달려들었다.

양손 가득 검은 에너지가 일렁거렸다. 맞부딪히는 힘에 몸이 뒤로 붕 떴다.

나는 그의 허벅다리를 받침 삼아 그를 밀어 내며 거리를 벌렸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하수도의 벽이 엉망으로 갈라졌다. 부서진 벽의 돌가루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낮은 숨소리만 오갔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무슨 말을 듣고 온 건지는 몰라도 그동안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건 너잖아.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릴 필요 없어. 곤아.”

“그렇게 부르지 마,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니까.”

흥분한 듯 호흡이 거칠어졌다. 무슨 말을 하든 귀를 닫고 있으니 소용이 없었다.

이내 이곤은 마음을 다잡고는 벽면을 손으로 짚었다. 벽이 울렁이더니 갑자기 솟아나 파도처럼 내 쪽을 덮쳐 왔다.

사위를 메우려는 벽을 피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새카만 이곤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고는 내 바로 발밑의 땅을 들어 올렸다.

이내 커다란 폭발음이 터졌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모래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 * *

“가이드님 봐 주셔야 할 거 같아요,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다급한 현장 요원의 말에 우신은 곧장 그가 가리킨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잔뜩 흥분했는지 안광이 형형한 에스퍼가 앉아 있었다.

피에 전 한쪽 팔이 더 시급해 보였지만, 요동치는 에너지에 가이딩실부터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는 우신을 확인하고는 최대한 호흡을 진정하려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우신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눈 감고, 최대한 에너지에 집중하세요. 생각이 많아지면 도리어 진정하기 힘들 겁니다.”

그 말과 함께 우신은 그의 적합도를 확인하고는 능숙하게 가이딩을 시작했다.

거친 호흡에 침까지 내비치던 남자가 점차 안정된 기색을 보였다.

양하나를 포함한 팀이 중심지로 들어간 직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빠르게 지원군이 도착했다.

그렇게 센터의 지원군과 길드 자원 헌터들이 합류해 들어간 지 벌써 다섯 시간이 지났다.

이미 한참 전에 예고했던 고등학교에 도착해 생존자 구출 작전을 시작해야 했는데, 그곳에 도착한 건 다른 팀이었다.

양하나의 팀은 두 시간 전부터 통신 자체가 되고 있지 않았다.

통신이 끊어진 그때 네 사람이 담당하는 방향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곧장 길드 자원군이 그 방향으로 향했지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아까부터 마음이 술렁거렸다.

양하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하는 불안과는 달랐다.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지녔는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우신이 걱정하는 건 신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하나를 따라나선 이곤, 그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강우신이 이곤을 처음 본 것도 양하나와 마찬가지로 합동 훈련 때쯤이었다.

이곤에 대해서는 오다가다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A급의 뛰어난 물리계 에스퍼로 파괴력이 굉장하다고 늘 호평이었다.

하지만 우신의 입장에서는 상대해야 할 에스퍼가 더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뛰어난 에스퍼라고 하니 언젠가 만날 일이 생기겠거니 했을 뿐이다.

그러다 양하나와의 다툼 이후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려 2군에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우신은 그곳에서 이곤을 만났다.

이곤은 마치 우신이 양하나를 보러 온 걸 안다는 듯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하나라면, 무단결근했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제가 대신 전해 드릴게요.”

불쑥 내뱉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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