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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4)화 (104/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4화

도로 사정은 엉망이었지만, 그 틈을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한 번씩 우리를 뒤따라오는 놈이 무게를 실어 땅을 밟을 때면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

그게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가장 앞서 뛰던 이곤이 이어셋을 통해 입을 열었다.

길이 양옆으로 갈라진 도로의 끝이 보였다. 이곤은 앞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나랑 하나가 오른쪽으로 꺾을 테니, 흩어져서…….

“흩어지면 안 돼!”

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이곤의 말을 잘라 내자, 그는 속도를 줄이고 나를 돌아봤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냐는 얼굴이었다.

몰이사냥을 즐기는 몬스터를 상대로 흩어졌다가 낙오자가 생기는 순간, 몰이사냥에 최적화된 환경이 형성된다.

그러니까 최대한 서로 등을 맡기고 사각을 대비하는 편이 낫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길 끝에 도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빌딩이 보였다.

건물의 철골이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조금만 더 충격을 가했다가는 완전히 도로 쪽으로 무너질 모양이었다.

나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이 인원이면 충분할 거 같군요.”

균형 없는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물리계 에스퍼만 가득한 덕분에 제법 흥미로운 작전이 떠올랐다.

세 사람은 내 뜬금없는 말에 당혹감이 물든 눈으로 나를 봤다.

“다영 헌터는 나와 함께 오른쪽 길을 봉쇄하고 몬스터를 모두 빌딩 아래로 밀어 넣어요. 몬스터의 리더가 빌딩 그림자 중심부로 들어오면 나머지 두 사람이 건물을 무너트리는 겁니다.”

내 말에 지원이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아무리 다 무너져가는 빌딩이라도 그 타이밍에 맞춰 무너트리는 건 무리예요.”

“아니요.”

나는 뒤를 돌아봤다. 더 이상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곤 헌터가 제 신호에 맞춰 하단부 철골을 으스러트리고 지원 헌터가 건물이 몬스터들 머리 위로 무너질 수 있게 보조하면 됩니다.”

“말이 쉽지.”

이곤이 헛웃음을 쳤다.

호흡을 맞춰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당장 이행하기에 부담스러운 작전인 걸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많은 몬스터의 발을 묶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나는 다영의 손을 잡고 길가를 건너가며 그녀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는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몬스터를 건물 아래로 밀어내면 됩니다. 그리고 빌딩이 무너진 직후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목을 베야 하고요.”

내 말에 다영은 옅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기분 저번 돔 게이트 이후로 오랜만이네요. 양 헌터는 간단한 작전인 것처럼 말하지만 제가 듣기에는 말도 안 되거든요.”

“…….”

그때도 분명 다영은 주저했지만, 결국 드래곤을 상대로 최대한 침착하게 내 오더를 따라 줬다.

‘그렇기에 분명…….’

다영은 손의 떨림을 숨기듯 주먹을 꽉 쥐고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동안 놀고만 있던 게 아니니까요.”

-곧 당도합니다!

지원의 무전에 나는 다영의 어깨를 가볍게 툭 두들기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것들이 더, 더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카운트했다.

“기다려.”

흔들리는 땅에 철골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려 했다.

“아직.”

나는 그 둘과 눈을 마주했고, 이곤과 지원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철골을 강화했다. 옆에 있던 다영이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러다 빌딩이 먼저 무너지겠어요.”

나는 대답 없이 달려오는 놈의 모습에 집중했다. 마침내 무리가 우리의 코앞에 당도하자, 입을 열었다.

“무너트려요!”

내 말과 동시에 이곤은 지지하고 있던 철골을 으스러트렸다.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솟아올랐다.

거대한 소리를 내며 빌딩이 무너졌다. 다영은 내 앞으로 날아오는 돌을 박살 냈다.

그렇게 요란한 소리 뒤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나는 다영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내 말을 기억하는 듯 뿌연 모래 먼지 사이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높은 집중력이었다. 그 순간 안쪽에서 돌이 후두두 떨어지더니 커다란 실루엣이 고개를 내밀었다.

다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품에서 장도를 꺼내 들더니 그것을 휘둘렀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대단했다.

에너지가 실린 칼날은 목표물을 깔끔하게 베어 내는 데 성공했다.

힘없이 나동그라지는 몸통에 다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에 날리는 모래 먼지를 손으로 휘저으며 그녀를 불렀다.

“1군 텃새가 심하다더니, 그래도 보고 배운 게 있나 보네요.”

“아니요. 이건 양 헌터 옆에서부터 보고 배운 거예요.”

다영은 그래도 아직은 드래곤은 무리지만요, 하고 뒷말을 덧붙이며 웃어 보였다.

‘농담도 할 수 있게 되고.’

그녀의 너스레에 입꼬리를 올려 웃는데, 이어셋을 통해 이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함정이야!

그 말과 함께 갑자기 아래에서 머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주둥이를 벌리고 불쑥 고개를 내민 놈은 멀리서 봤을 때와는 다른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촘촘하게 날이 선 이빨 사이에 들러붙은 살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보이는 샛노란 뱀눈. 그 시선에 갇혀 가만히 굳어 있자, 이곤이 내 팔을 끌어당겼다.

그의 품에 안겨 놈의 벌어진 아가리가 아직 돌무더기 위에 있는 다영에게 향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소리가 목에서 턱 막힌 것처럼 어떤 말도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다영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지원이 빠르게 넋이 나간 다영을 챙겨 놈에게서 떨어졌다.

아직 몸체의 절반이 땅 아래 묻힌 덕분에 몬스터의 움직임이 더뎠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꿈속 한 장면처럼 멀어져 갔다.

나와 이곤은 지반이 약해지며 만들어진 싱크홀 아래로 떨어졌다.

* * *

“이쪽으로는 다시 가지 못하겠는데…….”

이곤은 우리가 떨어진 쪽을 보며 말했다. 떨어진 직후 흙더미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탓에 구멍은 완전히 막혀 버렸다.

희미한 빛조차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이곤은 작은 손전등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지하에 이런 하수도가 있냐.”

떨어진 곳은 땅이 아닌 하수도였다.

하수도를 타고 흐르는 물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사람 대여섯이 일렬로 서서 걸을 수 있을 만큼 큰 길이 나 있었다.

덕분에 그곳으로 몸을 숨겨 구멍을 통해 떨어져 내려오는 흙더미를 피할 수 있었다.

이곤은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추며 그렇게 혼잣말하다 주저앉아 있는 나를 비추었다.

“그래서 너는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인데.”

“…….”

나는 대답 없이 그를 올려다봤다.

이곤은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다.

다영이 모래 먼지 사이로 먼저 고개를 내민 코엘로피시스의 머리를 베어 내는 순간, 나는 그것이 당연히 리더인 그놈이라고 생각했다.

그 커다란 돌무덤을 뚫고 고개를 내밀 정도의 힘이 있으려면 몸집이 놈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몬스터의 머리를 베어 낸 다영의 만족감 서린 표정을 보고 나도 모르게 안심했다.

무려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서 말이다.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다는 게 스스로 믿기지 않았다.

이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 표정을 굳히더니 한 걸음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일어나. 물 흐르는 방향으로 따라 걷다 보면 위랑 연결된 다리가 나올 거 같으니까.”

이곤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흙이 묻어 지저분해진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네가 날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아마 내가 놈한테 물려 뼈가 으스러졌을지도 몰라.”

“…….”

“멍청하게 방심해서 말이야. 다영 헌터…… 어깨를 크게 물린 거 같았어. 싸우기는커녕 도망치는 게 겨우일 거야.”

“옆에 한지원 헌터가 있잖아.”

이곤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않는 나를 보곤 혀를 찼다.

그러고는 억지로 내 팔뚝을 잡아 일으켰다.

“못 봐주겠네. 부탁인데, 너답지 않은 생각 좀 그만하는 게 어때. 이제 둘밖에 없는데 말이야.”

이곤은 내 손을 꽉 쥐고는 물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에 억지로 그의 뒤를 따랐다.

“혼자 걸을 수 있으니까 이거 놓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그를 다급하게 부르는데, 내 손목을 잡아끄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꼭 이런 장면을 일전에 본 적이 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관자놀이에 통증이 일었다. 나는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잡고는 낮은 신음을 뱉어 냈다.

“잠깐만, 이곤.”

“언제부터 네가 남 생각을 그렇게 했다고 그러는지.”

내 손목을 쥐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건지, 이곤은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지는 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멈춰 보라니까.”

고통에 입술을 짓이기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뱉어 냈다.

“곤아.”

그러자 거짓말처럼 이곤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이곤은 그제야 나를 돌아보고 섰다. 나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

하수도 벽에는 스무 걸음에 한 번씩 전구가 설비돼 있었다.

겨우 공간의 윤곽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약해 이곤의 손전등이 없으면 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이곤이 걸음을 멈추고 들고 있던 손전등을 아래로 내리자, 빛이 바닥으로 퍼졌다.

덕분에 마주 본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나를 바라보는 이곤의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숨소리만이 조용한 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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