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3화
주보연은 우신의 뒤에선 나를 포함한 헌터들을 쳐다봤다.
“현재 현장에 투입 가능한 헌터는 이분들이 최선인가요?
언뜻 건방지게도 들릴 법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위급한 현장을 담당하는 관리자는 현장에 투입된 헌터들의 전력을 과신하지 않아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우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저 없이 답했다.
“현 센터의 최정예 헌터들입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다영과 지원은 괜스레 얼굴을 붉혔다.
나는 우신의 말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다영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우신의 말에 주보연 역시 눈빛이 변했다.
20분 내로 투입 준비를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 * *
웨이브에는 피해 범위가 정해져 있다.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는 다른 게이트에 비해 압도적인 속도로 변이했지만 다행히 웨이브의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다.
“핵심 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경험이 많은 팀을 배치할 겁니다.”
강우신의 말에 둘러앉아 있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거칠게 그린 동그라미 안에 헌터들의 이름을 적어 넣으며 팀을 만들어 나갔다.
핵심 피해 지역에 들어갈 1팀을 꾸리며 그 안에 ‘강우신’을 적어 넣던 그때, 가만히 지켜만 보던 유제이가 입을 열었다.
“그쪽은 베이스캠프를 지켜야 하지 않나.”
우신이 손을 멈추자 유제이는 당연한 걸 잊고 있었냐는 투로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수많은 헌터를 커버할 사람이 당신밖에 없는데 말이야. 자꾸 잊는 거 같아서. 본인이 센터 소속 가이드라는 걸.”
유제이는 눈매를 휘며 나를 쳐다봤다.
이천 게이트에서부터 우신이 유독 나를 챙기는 건 함께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가 내 임시 전담 가이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도 그 고리는 끊기지 않았다.
상부에서는 내 민감한 에너지 적합도를 이유로 유예 기간을 더 주었지만,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부터 소속 헌터를 아꼈다고.’
오히려 그 이유보다 강우신에게 나라는 혹을 만들어 더 손쉽게 저들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게 더 그럴듯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불쾌한 기분만 가득했다. 나는 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천 게이트 때와 상황이 완전히 달라.’
그때는 그가 나를 중점적으로 관리해도 우수한 다른 가이드들이 있었을뿐더러 함께한 에스퍼들 역시 현장 경험이 많은 이들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은 미지의 영역같이 실력을 정확히 가늠하기 힘든 에스퍼들이 전부였다.
유제이의 건방진 어투는 거슬렸지만 그 말을 허투루 들을 순 없었다. 유제이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단순히 저만의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하실래요?”
그의 말을 뒷받침하듯 다른 헌터들 또한 침묵으로 긍정할 뿐이었다.
우신이 베이스캠프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하는 건 그저 그의 가이딩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S급 가이드가 보조한다는 것만으로 헌터들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신 역시 잘 알고 있을 테지만, 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우신이 걱정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밤새도록 그의 말을 떠올렸다.
“당신이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봐 온 사람인 거 같다는 생각이 도무지 떨쳐 내지지 않아요.”
그 말에 담긴 진심이 잊히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답하려던 내 행동까지도.
그때 이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진실을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우신은 그가 마주한 진실을 믿을 수 있었을까.
진실을 마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전히 머리가 복잡했지만, 적어도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나는 일단 눈앞에 놓인 일을 정리하고, 다시 그를 마주하겠다 마음먹었다.
빠르게 손을 놀려 우신이 그의 이름을 적으려던 핵심 피해 지역 원 안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잘 알고 있겠지만, 저는 지원 헌터와 상성이 좋습니다.”
그 원 안에는 이미 이곤과 한지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단호한 눈으로 우신을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말을 맺었다.
“다녀올게요. 저를 믿어 주세요.”
“…….”
“저도 강우신 가이드를 믿을 테니.”
* * *
-연해로 2길은 모두 클리어입니다.
무전기로 보고를 완료하고 뒤로 도는데 이곤이 서 있었다. 잠시 놀라 걸음을 멈춰 섰다.
나와 이곤, 지원과 다영까지 총 네 명이 1팀이 되어 핵심 피해 지역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유제이와 1군 에스퍼 몇몇이 섞인 조가 그 외 지역으로 나뉘게 됐다.
일렬종대로 주변을 경계하다 생존자를 찾기 위해 무너진 건물 안에 혼자 들어온 참이었다.
이곤에게 건물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라 말했는데도, 기어코 쥐도 새도 모르게 안까지 따라와 있었다.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우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왜 여기까지 따라 들어왔어.”
이곤은 곧장 내 뒤로 따라붙으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혼자선 위험하니까.”
“그런 말 할 거면 한지원 헌터랑 포지션 바꿔.”
내가 신경질적으로 답하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해서 한 소리인데, 왜 그래?”
마침 앞 건물도 수색이 끝났는지, 지원과 다영이 도로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이곤을 힐끗 쳐다봤다.
“현장이니 장난은 그만둬.”
그렇게 읊조리고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걸음을 옮기는데 이곤이 내 앞을 막아섰다.
“장난 아닌데. 난 또 너 혼자 어디 멀리 도망갈까 봐 그랬지.”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걸음을 멈췄다.
“뭐?”
내가 이곤을 쏘아보며 움직이지 않자, 지원과 다영이 눈치를 봤다.
이곤은 그런 두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날 버리고 간 게 한지원 헌터 때문이야?”
“…….”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 할 게 뭐 있어. 감으로 때려 맞춘 거뿐이야. 저번에 보니까 네가 이것저것 그를 많이 도와주고 있는 거 같길래.”
이곤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먼저 두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런 그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이열종대로 나와 다영이 나란히 걷고 그 뒤에 이곤과 지원이 열을 맞춰 따라왔다.
이 주변 피해 지역의 수색을 마치는 대로 피해 고등학교로 걸음을 옮길 생각이었다.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로 이 일대를 엉망으로 만든 건 공룡형 몬스터 코엘로피시스였다.
붕괴한 건물 아래로 놈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도 공룡형 몬스터를 상대한 적 있는데, 하나같이 뛰어난 민첩성과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성가셨던 건 본능에서 나오는 뛰어난 지략이었는데 일반 몬스터와 다른 행동을 보여 여러모로 애먹었다.
기억들을 더듬어 가는데 내 바로 뒤에 서 있던 이곤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여동생이 있다면서요.”
지원을 향한 말이었다.
어디서 뭘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대뜸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이곤.”
뒤로 돌며 이곤의 이름을 부르고 지원의 얼굴을 살폈다. 지원 역시 당황한 듯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자 괜찮다는 듯 작게 미소 지었다.
“네, 그렇습니다.”
지원의 담담한 대답에도 좀처럼 내 표정이 풀리지 않자, 이곤은 가는 눈으로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까부터 너무 나한테만 인색한 거 아니야? 나도 불쑥 개인사를 들출 생각은 없었어.”
이곤은 자신을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며 되레 큰소리쳤다.
그의 너스레에 불길하게 피어오르는 기분을 애써 가라앉히려는데 미세하게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땅 아래의 작은 돌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 변화에 온 감각을 기울이는데, 이곤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만, 한 번만 더 너를 본인 일에 끼어들게 하면 그때는 더 이상 개인사가 아니게 되는 거니까.”
“…….”
“그땐 나도 나서야지. 널 한영원처럼 망가트릴 생각은 없으니.”
여상한 어투였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 그 이름을 어떻게……!”
내가 이곤의 어깨를 내 쪽으로 잡아 돌리며 그렇게 묻는데, 다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전방에서부터 몰려옵니다, 코엘로피시스 무리입니다.”
이곤의 시선 역시 나를 지나쳐 도로 저편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은 채로 뒤를 돌아봤다. 다영의 말처럼 엉망인 도로 끝에 코엘로피시스가 보였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그것들의 크기는 점점 더 거대해졌다.
안 그래도 평균 신장 길이가 3M에 육박하는 공룡형 몬스터이다.
조사 중 확인한 발자국의 크기로 보아 평균보다 큰 크기일 게 확실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로등 높이를 가볍게 웃도는 놈들을 보자니 그저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의 중앙에 있으면서 한쪽 눈에 상처가 난 놈이 이곳을 빤히 바라보고 섰다.
그놈이 리더인 건지 다른 코엘로피시스들도 움직임을 멈췄다.
아직 거리감이 있는데도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나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시간은…….”
내 말을 알아들은 다영이 곧장 시계를 확인했다.
“1시간이 조금 지났습니다.”
두 번째 웨이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전까지 남아 있는 몬스터들을 해치우지 못하면 길드의 지원 인력이 와도 손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리더 격인 코엘로피시스가 기다란 목을 빼 들며 소리를 질렀다.
키오오오-
목덜미의 떨림이 보일 정도로 힘찬 울부짖음이었다.
놈의 울음에 귀가 먹먹해져 왔다.
내 양옆에 서 있던 지원과 다영은 당황한 듯 서둘러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이게 무슨……!”
고막이 찢길 것같이 날카로운 소리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놈의 포효 뒤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머지않아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땅이 쿵쿵 울렸다.
작은 돌가루가 아까 전처럼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하지만 그 주기가 아까와는 달랐다.
점점 여러 개의 돌가루가 튀어 오르더니 이내 우리가 지면에서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땅이 흔들렸다.
“놈들의 대표적인 특징 하나가 바로 몰이사냥이야. 그리고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게 바로 그 신호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평선 너머로 수십 마리의 코엘로피시스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뒤로 돌며 외쳤다.
“뛰어!”
내 외침과 함께 팀원들은 일제히 걸어왔던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