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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2)화 (102/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2화

내가 남자의 손목을 비틀자,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나는 남자의 손목이 부러지기 전에 밀쳐 내듯 놓아주었다. 힘을 풀기 무섭게 그는 내게서 빠르게 멀어지려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남자는 쓰러지면서 땅에 무릎을 강하게 부딪친 듯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손목을 부여잡은 채 신음했다.

그러자 땅에 널브러져 있던 헌터 둘이 정신을 차리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박민규!”

나는 다영과 맞은편에 서 있는 지원의 상태를 차례로 확인했다.

늦은 건 아닌지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두 사람 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박민규의 친구로 보이는 헌터 둘은 나를 쏘아보았다.

“갑자기 끼어들어 이게 무슨 짓이야!”

그중 한 헌터가 내게 달려들려 하자, 다른 이가 급히 그를 말렸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렸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운 탓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들렸다.

“그만둬, 저 사람 그 헌터야, 집공 팀의 양하나.”

나를 아는 듯한 말에 저절로 눈가가 찌푸려졌다.

일부러 집공 팀의 마크와 이름표가 붙어 있는 재킷을 벗고 왔는데도, 나를 알아본 것이다.

지금껏 양하나를 아는 이는 대부분 그녀를 깔보거나 괴롭히던 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를 알아본 눈앞의 헌터는 그들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나를 알고 있나 봐요.”

내 물음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웅얼거렸다.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

“이천 게이트의 스타팅 멤버인데.”

그의 말에 나는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린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뭐야, 이천 게이트가 별거 아녔다, 그런 건가?”

내 심드렁한 반응에 한 헌터가 울컥했는지 목소리를 곤두세웠다. 그러자 손목이 시퍼렇게 멍든 박민규가 그를 저지했다.

“그만.”

박민규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네 이야기가 얼마나 유명한지 아직 잘 모르나 보군. 너 남의 에너지를 뺏어 쓴다며.”

“…….”

“그래서 그런 건가. 네 눈, 아까 전까지만 해도 금색이었는데 검은색으로 바뀌었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혀를 차더니 옆에 서 있던 헌터들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만 묻자. 저쪽이나 그쪽이나 왜 남의 일에 끼어든 거지? 소문으로 오지랖이 넓다거나 남을 도울 성격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야.”

나는 그의 말에 무엇 하나 답할 생각이 없었다.

지원을 구하러 온 건 어디까지나 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거지, 그들을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지원과 그들의 문제일 테니 말이다.

다영이 전화를 끊지 않아서 남자가 지원에게 하는 말을 나 역시 전해 들었다.

지원의 입장도, 남자가 느끼는 배신감도 어떤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것 같았지만 모두 개인이 감당할 몫이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감정적인 면에는 더더욱 끼어들 생각 없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그가 드러내는 지원에 대한 적대감은 조금 결이 달랐다.

단순한 배신감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조금 더…….

그때 언뜻 핸드폰 너머로 들린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모조 에너지…….”

나도 모르게 그 단어를 읊조리자 남자가 픽 웃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당신 C급 에스퍼라며.”

내 대답과는 상관없이 그는 지원을 힐끔 흘기고는 말을 이었다.

“허접한 태생으로 집공 팀에 갈 정도로 실력이 급증한 것도 그렇고 저 자식을 돕는 것도 그렇고. 혹시 너도 모조 에너지의 힘을…….”

박민규의 입을 막으려는 듯 지원이 뻗는 순간, 다른 것이 분위기를 깨트렸다.

삐이이이-

손목의 전자시계가 붉은빛을 뿜어내며 시끄럽게 울렸다. 게이트 브레이크를 알리는 신호였다.

박민규는 곧바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다영 역시 신호를 확인하고는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류……? 그게 아니라면 설마 게이트 브레이크가 이 주변에서 또 열렸다는 소리일까요?”

나는 때마침 진동이 울린 핸드폰을 확인하며 답했다.

“가 보면 알 수 있겠지.”

발신자는 이곤이었다.

* * *

“A급의 하우스형 게이트로 판단됩니다. 게이트 파동이 감지된 건 두 시간 전으로 게이트 브레이크로 변이한 건…… 고작 20분 전의 일입니다.”

천막 안에 둘러앉은 에스퍼들을 바라보며 현장 스텝이 그렇게 말했다.

현장 스텝의 말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우신이 물었다.

“두 시간도 안 돼서 게이트 브레이크로 변이했다는 건.”

“네. 이상 게이트라는 소립니다.”

이상 게이트, 그의 말에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나 역시 그 말을 곱씹었다. 첫날 나누어진 조들은 각기 다른 구역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민지민이나 곽현주 등이 속한 조들은 거의 복구가 마무리된 구역을 배정받았다.

이렇게 날것인 구역에 보내진 건 중심 권력에서 빗겨 난 나나 지원 혹은 신입같이 힘없는 이들뿐이었다.

그나마 유제이가 이곳에 있긴 했지만, 그는 척 보아도 성가신 일에 휘말리게 되어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신은 곤란한 표정을 한 현장 스텝을 보고 말을 이었다.

“저희에게 콜을 보낸 건,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 곳이 여기서 가깝기 때문인가요?”

“네, 맞습니다. 예상치 못한 게이트 브레이크 상황인 만큼 당장 지원 가능한 인력이 여러분뿐이었습니다.”

우신은 현장 스텝이 건네준 선발 인원의 인적 사항을 훑어봤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서류를 보지 않아도 훤했다. 이곳에 있는 헌터 중엔 아직 미숙한 이들이 너무 많았다.

우신이 작게 한숨을 쉬자 현장 스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변 길드에도 지원 요청을 보내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지원을 기다리거나 제대로 된 팀을 꾸리기 위해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골드 타임을 놓치고 말 것이다.

“브레이크 현장에 고등학교가 있는 모양입니다. 현재 자습하던 아이들이 구출되지 못한 상태…….”

브레이크 현장을 설명하던 현장 스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신은 자료를 그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곳 현장은 어떻게 합니까.”

“기존의 인부들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우신은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던 사람처럼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양 후배.”

“네.”

“능력을 사용한 모양입니다.”

아주 찰나 사용했기에 에너지의 파동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에는 잘 보인 모양이다.

나는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신이 무어라 한 소리 덧붙일 줄 알았는데, 그는 조심히 내 손을 그러쥐며 말을 이었다.

“브레이크 현장에 가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힐끔 주위를 살폈다. 현장 스텝을 비롯한 다영과 지원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도로 우신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어요.”

내 단호한 대답에 그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그러잡은 손을 슬며시 놓아주고 점퍼를 챙겼다.

“2군 소속의 에스퍼만 후발에 두고 나머지 인원은 신속히 브레이크 현장으로 이동합시다. 수송 버스를 바로 대기시켜 주세요.”

그 순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유제이가 고개를 돌려 우신을 바라봤다.

“길드의 지원이 올 때까지 대기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유제이의 물음에 걸음을 멈춘 우신이 뒤를 돌아봤다. 유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실습장에 온 헌터 중 브레이크 현장에 능숙한 이는 극소수잖습니까. 그런 이들을 그쪽이 통솔할 수 있겠냐는 의미예요. 위혐 지역은 기를 쓰고 피해 다녔잖아, 그쪽.”

“…….”

정적이 감돌았다.

돔 이벤트나 이천 게이트 등 큰 사건을 겪은 대부분의 에스퍼나 가이드는 며칠간 휴식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우신은 언제나 바로 다른 현장을 돌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강한 인력을 쉴 틈 없이 굴리려고 하는 센터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위험 지역만 일부러 피해 다니신다더니 헛소문이 아닌가 봅니다?”

6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그런 말로 그를 자극한 적도 있다. 그때 그 이유를 알았더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우신은 그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유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의 피해자거든요.”

그가 가지 않는 위험 지역은 브레이크 현장만을 뜻했다.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브레이크 현장 파견을 피하고자 우신은 무리해서 게이트 클리어에 힘쓴 것이다.

나는 걸음을 옮겨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공허한 검은 눈동자 위로 이채가 돌았다.

우신은 내가 손 닿을 거리에 있음을 확인하듯 오랫동안 나를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답했다.

“그러게요. 분명 옛날에는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제는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그렇게 말하고 천막을 떠나는 우신의 뒷모습은 그의 말대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듯 단단해 보였다.

* * *

“현장 관리자, 주보연입니다.”

급히 준비를 마치고 버스로 30분 가까이 달려 도착한 현장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접근 금지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좁은 골목길을 시작으로 육안으로 보이는 저 너머까지의 건물이 전부 부서져 있었다.

우신은 보연이 건넨 손을 가볍게 그러쥐어 악수하고는 입을 열었다.

“웨이브 주기는 오는 차 안에서 들었습니다만, 앞으로 두 시간 안에 두 번째 웨이브가 발생할 거란 말씀입니까?”

게이트 문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웨이브라고 한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첫 번째 웨이브만으로도 게이트 주변은 쑥대밭이 되어 버린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웨이브 사이의 휴식기는 평균 5시간인데 이상 게이트인 만큼 짧은 휴식기 직후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될 거라 보고 있었다.

보연은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다음 웨이브가 추정대로 2시간 뒤에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데이터로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계속해서 수치의 변동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게 불안정한 만큼 인명 구조가 시급했다.

아직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살릴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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