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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0)화 (100/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100화

권미래가 일러 준 대기실에 도착한 지원은 문을 노크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주저하다 문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가자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문 앞에서 기다릴까 했지만, 대기실로 오라던 권미래의 말이 떠올라 대기실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기다리면 민지민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자 긴장이 되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집공 팀의 중심이 되는 지민의 그룹원 중 한 번씩 갈려 나가는 포지션이 있다.

지금은 유제이가 차지한 그 자리의 에스퍼는 원인불명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렇게 자리가 생기면 언제나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는데 거기에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

민지민의 눈에 띌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보인 에스퍼가 항상 그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지원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어. 약했던 에스퍼가 민지민을 만나서 강해진 걸 수도 있지.’

민지민이 대기실로 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는 피곤한 듯 어깨를 주무르며 방 안에 들어오다 지원과 눈을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가고 없을 줄 알았는데, 용케 아직도 앉아 있네요.”

민지민은 지원의 맞은편 소파에 편하게 몸을 기대앉으며 말을 이었다.

지원은 눈을 부릅뜨고 입을 열었다.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겁니까?”

힘이 바짝 들어간 어깨에 그가 만발의 준비를 하고 온 게 티가 났다.

민지민은 소리 내 웃으며 왜 제이가 신나게 건드리는지 알겠네요, 하고 말했다.

그의 무시에도 지원은 개의치 않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지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어떤 고난이든 헤쳐 나갈 것 같은 단단한 눈빛을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6년 전 성시현의 죽음으로 권태롭기만 하던 삶이 양하나의 등장과 함께 연이어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도 문제야, 문제.”

그렇게 읊조리던 지민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힘주지 않아도 돼요. 오늘 내가 지원 헌터를 부른 이유는 이천 게이트 스타팅 멤버로 데려갈까 해서입니다.”

“이천 게이트 스타팅 멤버요?”

“듣자 하니 근래 양하나 헌터한테 도움을 좀 받은 모양인데, 맞죠? 오늘 경기도 인상적으로 봤어요. 며칠 전만 해도 무식하게 덤벼들었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며칠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네요.”

“…….”

지원은 예상과는 다른 대화의 흐름에 당황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그 모습을 보던 민지민은 예감했던 일인 듯 몸을 앞으로 숙여 그의 귀에 작게 말했다.

“뭐야. 다른 이야기라도 기대한 얼굴인데요?”

“…….”

“그게 뭘까.”

“…….”

“모조 에너지에 대해 묻고 싶기라도 했나?”

지원은 눈을 크게 뜬 채로 지민을 바라봤다.

그러나 달싹거리는 입술에선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민은 그게 몹시 재미있다는 듯 끅끅거리다가 먼저 입을 뗐다.

“여동생을 되찾고 싶어요?”

지원의 눈에 핏줄이 섰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여동생이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센터에 소문난 ‘우체부’는 수신인이 살아 있기만 하면 주소를 명시하지 않아도 의뢰한 물건을 배달했다.

지원은 자신이 하는 짓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를 기리는 마음에 장난감과 편지를 넣은 상자의 수신인에 영원의 이름을 적었다.

이미 몇 년 전에 죽은 여동생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제 모습이 퍽 한심했지만, 그 행위만으로도 위로되는 게 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물건이 센터에 돌아왔다.

그것도 집중 공격 팀의 사무실로. 사무실에서 택배가 오배송되었으니 찾으러 오라는 전화에 그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수신인이 살아 있지 않으면 발신인에게 반송된다고 했는데. 나한테 올 게 잘못 간 건가?’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의심은 이미 싹을 틔우고 있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건 집중 공격 팀을 둘러싼 소문을 듣고 난 후였다.

‘모조 에너지.’

그 단어에 지원은 단번에 영원이를 떠올렸다.

‘그건 어릴 적 영원과 나만 알고 있던 비밀어였으니까.’

창백하게 질린 지원의 안색을 살피던 지민이 말을 이었다.

“나랑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라면 내 말 잘 들어요.”

“…….”

“비열하게 게이트 안에서 양하나의 뒤통수를 치라느니, 나는 그런 짓은 안 시켜. 네가 자연히 게이트에서 양하나의 발목을 잡을 테니.”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의 깃을 매만졌다.

“나는 그런 것보다 단순히 양하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고 싶을 뿐이에요. 이제 이 짓도 끝이 다 왔거든.”

민지민의 금발이 조명 아래 은은하게 빛났다.

지원은 그를 올려다보며 그 무덤덤한 표정이 이질적이라 느꼈다.

* * *

지원의 몸 위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헉, 하고 숨을 내뱉으며 눈을 뜨자 그의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지원은 추위에 몸을 옹송그리고는 기침을 쏟아 냈다.

지원을 둥글게 감싼 이들은 개의치 않고 발끝으로 그를 건드렸다.

“정신 들었으면 일어나지.”

지원은 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이번 협동 훈련에서 같은 조가 된 1군 헌터 세 명이 서 있었다.

모두 지원에게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물에 젖은 소지품을 살폈다.

그러자 지원을 발로 건드렸던 박민규가 입을 열었다.

“이 새끼 재수 없는 건 여전하네.”

“사람 쉽게 안 변하지.”

그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더니 지원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동기 버리고 혼자 잘 사는 거 같더라? 무슨 낯짝으로 합동 훈련에 참여했냐? 이런 꼴 당할 거 뻔히 알면서, 자신 있다는 거야 뭐야.”

“이거 놔.”

모래 먼지에 휩싸이는 동시에 정신계 헌터의 능력으로 순식간에 기절했다. 그 때문에 아직도 어지러웠다.

지원은 박민규의 가슴께를 밀어냈지만, 그럴수록 지원의 멱살을 잡은 손아귀의 힘이 더 세질 뿐이었다.

지원은 점점 또렷하게 돌아오는 정신에 사위를 살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여전히 브레이크 현장인 듯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김다영 헌터는 말려들지 않았다. 계속해서 제 주위를 맴도는 탓에 불안했는데 말이다.

지원 역시 협동 훈련에 오면 이들을 마주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이들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지원이 1군에 소속되어 있을 때, 함께 했던 동기들이었다.

집공 팀 멤버는 늘 비공식적으로 선발되곤 했다

다만 소명이 시험관으로 들어오는 시험에서 독보적인 성적으로 1등을 한 이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지원은 그 소문을 듣고 소명이 들어온 시험에서 동기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

시험은 마라톤식으로 바통을 이어 골인 지점까지 미션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지원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1번 주자였던 그가 바통을 건넨 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렸다는 걸 몰랐다.

앞의 주자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박민규에게 달려갔으니, 경기가 끝난 후에야 달려온 지원은 충분히 배신자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지원은 자신의 멱살을 잡은 박민규의 주먹을 감싸 쥐고는 힘을 주었다.

그는 주먹이 어그러지는 통증에 신음했다.

“나한테 뭘 바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단지 시험에 응했을 뿐이야.”

박민규는 지원을 팍 밀쳐 내며 그를 노려봤다.

“의리 없는 자식. 그 일로 나는 다리를 다쳐서 못 뛰게 됐는데…… 네가 경기를 포기하고 도우러 왔다면 말이야. 어? 내 다리가 이렇게 됐겠어?”

시험의 형식은 팀전이었지만 평가는 개인으로 들어갔다.

지원은 바통을 넘겨받은 즉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미션을 성공했다.

지원도 잘 알고 있었다. 시험 형식이 개인전이었다면 에너지 운용이 미숙한 제가 1위를 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만약 그가 집공 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사이가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그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표를 이뤄야 했다.

지원은 보조 장비를 찬 그의 다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답했다.

“난 몰랐어.”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참 나.”

“…….”

“내가 잊고 살려고 했는데, 이번 협동 훈련에서 너를 보고 생각이 변했어. 누구는 이제 바랄 수도 없는 집공 팀 심벌을 뻔뻔하게 가슴팍에 달고 나타나고.”

박민규가 양옆에선 동기 둘에게 눈짓하자 그들은 서서히 거리를 좁혀 왔다.

“그리고 다 들었어. 집공 팀은 돌연변이 소굴이라며. 모조 에너지였나? 너도 그 약발로 들어갔냐?”

그는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네 죽은 여동생 볼 면목이 있겠냐.”

그 말에 지원의 주먹이 박민규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박민규는 주먹을 맞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원의 주먹이 신호탄이 된 듯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지원에게 달려들었다.

1군 소속의 헌터 셋이었다. 지원은 제대로 자세를 잡기도 전에 벽에 처박혔다.

그가 기침을 하자 피가 울컥 나왔다.

박민규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동기들에게 턱짓했다.

“잡아.”

그의 말에 한 명은 지원의 양팔을 결박하고 나머지 한 명은 지원의 다리를 잡았다.

박민규는 지원의 무릎을 겨냥하듯 팔을 들어 올렸다.

“내가 무릎이 망가지고 집공 팀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우연히 민지민 헌터를 만났거든. 근데 그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

“이런 데서 얼쩡거리지 말고 고장 난 몸이나 잘 간수하라더라.”

남자의 손바닥으로 모인 에너지가 큰 구를 만들었다.

지원은 바닥을 짚고 있는 손을 움찔거렸다. 그러자 그 손 위로 지원의 푸른 에너지가 빛났다.

손마디 위로 울룩불룩하게 솟아오른 에너지는 마치 너클 같았다.

하지만 운용이 더딘 탓에 박민규의 준비가 더 빨랐다.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 거 같은지 너도 느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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