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8화
“…….”
내 침묵에 우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 짓더니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얼굴이네요.”
나는 그제야 표정을 가다듬었다.
“뒷조사한 건 아닙니다. 단지 그늘에서 한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뿐이에요.”
“네, 오해 안 해요. 눈치 빠른 양 헌터라면 어느 정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예감이기도 했지만, 내 추론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
그늘에서 본, 어느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서 내가 구한 아이.
기억이 날 법도 한데, 도통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눈이 말똥한 아이가 강우신이 아닐 거라 지레짐작하고 넘어가 버렸다.
그런데 우신의 말을 듣자마자 본능처럼 어쩌면 그 아이가 우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강우신 가이드가 보좌하고 싶단 에스퍼가 혹시 그때…….”
“궁금합니까?”
우신은 씨익 미소 지었다.
그 얼굴이 어딘가 사악해 보였다. 마치 사냥감의 앞에 덫을 놓고 물기를 기다리는 이의 여유로움 같은 게 묻어났다.
이 질문이 덫인 걸 알면서도 굶주림을 못 이긴 사냥감처럼 나는 다물고 있던 입술을 열었다.
“……네.”
그 대답에 우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게 한 손을 조심스레 뻗어 왔다. 얼굴로 다가오는 우신의 커다란 손에 당황하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머리칼을 만지는 손길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자, 머지않아 우신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의 손에는 붉은 장미 꽃잎이 들려 있었다.
“잘 어울리긴 하는데, 나중에 거울을 보면 부끄러워할 거 같아서요.”
떨어진 꽃잎이 바람에 날려 머리칼에 붙어 있었나 보다.
우신과의 대화에 완전히 집중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장미 꽃잎을 뺏어 들었다.
“다음부터는 그냥 말로 해 줘도 돼요.”
우신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그럴게요, 하고 답했다. 그러고는 잠시 말하기를 멈췄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지만, 역시 말하기 곤란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일이라고 해도 게이트 브레이크는 자연재해와 같다.
특히 어린 나이에 그런 일에 휩쓸렸다면 생존자로 입을 열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을 거고 늘 녹록지 않았을 거다.
나 역시 게이트 브레이크의 생존자였기에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기록관에서 부모가 죽었던 날을 몇 번이고 강제로 회상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지금 당장 말고 다음에 또 시간이 나면 그때…….”
우신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그렇게 운을 떼는데, 그가 내 말을 잘랐다.
“제가 그 말에 답하기 전에 먼저 내 물음에 대답해 줄래요?”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질문에 따라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고 아닌 게 있었다.
하지만 구태여 조건을 붙이기에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중했다.
나는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러자 우신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번에 그랬죠. 게이트에서 머리를 다친 이후로 기억이 듬성듬성하다고.”
첫마디를 뗀 것뿐인데, 벌써 불길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 하나가 풀렸습니다.”
“…….”
“양하나 헌터를 복도에서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났을 때, 분명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어딘가 다른 사람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우신은 그때를 회고하듯 정면을 응시했다.
“그런데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은 거라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오해가 생기지 않아 다행이네요.”
그렇게 실없는 대답을 하는데,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 가이딩만 하지 않았어도 의문은 거기에 끝났을 겁니다.”
등 뒤로 바람이 불었다.
머리칼이 날려 얼굴에 스치고, 장미꽃들이 흐드러졌다.
나는 엉망으로 헝클어지는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직 우신의 목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려왔다.
“그럼, 질문할게요.”
“…….”
“양하나 헌터는 정말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아니면 애초에 과거의 기억이 없는 겁니까.”
그의 말에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답했다.
“……기억이 없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애써 무마해 보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냥 넘어갈 생각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어떤 대답을 하든 간에 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가름할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그 시선에 압도된 나머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흐르자 저 멀리 테라스 문 쪽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작게 들렸다.
우신에게 이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단둘이 하자고 달래 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허를 찔린 탓에 입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잠시 주저하는 사이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신의 귀에는 사람들의 목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는 번번이 당신을 만날 때마다 드디어 내가 미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는 이 벤치 위에 함께 앉아 있는 나만이 눈앞에 보이는 전부인 양 제 진심을 고백했다.
“당신이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봐 온 사람인 거 같다는 생각이 도무지 떨쳐 내지지 않아요.”
“…….”
“그래서 나도 미치겠습니다.”
진심은 언제나 무서운 것이다.
성시현이었을 때도, 양하나일 때도 나는 강우신의 페이스에 번번이 말려든다.
그것에 대해 수없이 이유를 붙여 왔었다. 그가 가이드라서, 능글맞아서, 내 기분을 잘 살펴서.
그리고 이번에 또 새로운 이유를 붙여 보려고 한다.
강우신은 언제나 진심으로 나를 대한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심으로 부딪혀 오니 번번이 속절없이 흔들리게 된다.
“당연해요.”
내 아주 작은 목소리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우신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담았다.
“지금 뭐라고.”
우신은 내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다시금 물었다.
나는 아까보다 크게 벌어진 입으로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양하나.”
정신을 차려 보니 우신과 내 사이에 이곤이 서 있었다. 나는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순간,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걸 생각만 한 건지 입 밖으로 내뱉은 건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이곤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여기서 뭐 해. 걱정돼서 계속 찾아다녔잖아.”
식당에서 밥을 먹다 말고 그를 두고 우신을 찾아 달려갔으니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나 보다.
거친 숨을 고르는 걸 보니 줄곧 나를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이곤은 가늘어진 눈으로 나와 강우신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내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내일 실습인데 컨디션 관리도 중요한 거 아닙니까?”
B조 조장인 그를 향한 이곤의 경고였다. 강우신은 무감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그의 대답에 이곤이 곧장 내 팔을 잡아끌었다. 한 걸음 내딛기가 무섭게 강우신이 말을 이었다.
“대답은 다시 해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도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채였다. 이곤은 개의치 않고 나를 이끌고 테라스를 빠져나왔다.
* * *
이튿날은 실습이었다. 게이트 브레이크 실습을 어떻게 진행할 생각인지 짐작이 잘 안 됐다.
아침 해가 밝자 수송 버스가 헌터들을 실었다.
가는 길에 받은 도시락을 다 먹을 때쯤 현장에 도착했다.
한 달 전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던 현장이었다.
인적이 드문 외곽이었기에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민가의 건물들이 박살 나고 밭은 엉망이 되었다.
아직 몬스터들의 잔해도 남아 있어 피해 현장 복구가 한창인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일렬종대로 서기 무섭게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보였다.
“자자, 이제부터 각 조는 지정 구역으로 가서 복구 작업을 돕습니다.”
홍 반장이었다.
“저 인간이 현장 담당자라니.”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 옆에 철썩 붙어 있는 이곤은 그런 내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서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너 집공 팀 가고 볼일 없다고 좋아했잖아.”
"…….”
딱히 티를 낸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홍 반장은 기가 살아서는 말을 이었다.
“다들 표정 펴고! 이거 모두 평가 점수에 들어갑니다. 복구 작업도 엄연한 헌터의 일입니다.”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건 여전한 모양이었다.
나는 똥 씹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잇던 홍 반장은 행렬 중간에 있는 나를 보더니 일순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급히 말을 마쳤다.
내가 집공 팀으로 옮긴 후, 홍 반장은 나보다 더 기뻐했을 것이다.
정신 감응 이후 나를 보면 은근히 피해 다니기 바빴으니 말이다.
“저희는 D구역 복구 작업을 담당하게 됐으니 그곳에 가서 일손을 돕기로 하죠.”
때마침 B조 행렬 가장 앞에 서 있던 우신이 입을 열었다. 그는 조장으로서 조원들을 인솔하면서도 나를 지그시 쳐다보곤 했다.
우신의 말에 웅성거리던 헌터들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맨 뒤에 남은 나는 버스에서부터 느껴지던 우신의 뜨거운 시선을 모른 척하며 조원들의 뒤를 따랐다.
그에게 진실을 말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답답함에 머리칼을 헝클였다.
안 그래도 지원의 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강우신까지.
인상을 찌푸리는데, 이곤이 내게 바짝 붙더니 말을 걸어왔다.
“아예 아작이 났으면 오히려 복구가 쉬울 텐데, 오래된 집들이 듬성듬성 망가지니까 더 손댈 곳이 많네. 그치, 하나야?”
“…….”
얘는 아침부터 유독 들러붙었다.
활동 반경이 넓어진 만큼 틈을 봐 혼자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하나같이 쉬운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