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7화
강우신은 작년 합동 훈련에서도 조장을 맡았었다.
그는 팀원들의 인적 사항을 하루 전날 받아 확인했는데, 거기서 양하나의 실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우신이 그녀의 인적 사항을 눈여겨본 건 그녀의 실적인 엉망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문 때문이었다.
센터는 일반인들도 언제든 방문할 수 있고, 일정 정보를 매번 공유하는 개방적인 기관이지만 소속된 헌터들은 굉장히 폐쇄적이었다.
애초에 이런 직업군을 일반인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란 힘든 일이다.
사회성이 발달하기도 전인 어린 나이에 이 업계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보니 퍽 하면 남의 흉을 보고, 서로를 못살게 괴롭히는 인간들이 많았다.
센터를 떠도는 소문은 대부분을 남을 흉보기 위한 헛소문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강우신이 하나의 소문에 반응한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이었다.
아직 입사 1년 차인 그녀의 소문은 유독 악독한 것들이 많았다.
소문 속의 그녀는 능력을 남용해 타인의 생각을 마음대로 읽고 그 아픔을 이용해 금전적인 이익을 취한 사람이었다.
유언비어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우신은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팀원으로서 합동 훈련을 문제없이 클리어할 수 있는지, 오직 그것 하나에만 집중했다.
그녀가 사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단 3일이었다. 설마 그의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주한 양하나는 당연하지만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치 우신을 이전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특히 그를 마치 오래된 원수를 보듯 바라보는 것이 그랬다.
그 때문인지 합동 훈련은 초장부터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 분위기와는 별개로 훈련은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작년 과제는 로드형 게이트의 다양한 공략 루틴이었다.
각 조는 돔으로 재현된 게이트에 들어가 실습을 진행했었다.
합동 훈련이 대개 그러하듯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됐다. 문제가 생긴 건 로드형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보스 방을 목전에 두고 우신은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다른 팀원들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였다.
우신은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곧장 후배에게 책임지고 보스 방 클리어를 작전대로 수행하라고 말하고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틀 동안 큰 문제가 없었고, 자신이 근처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일한 생각이었다.
양하나를 찾으러 가는 동안 우신은 그녀에 대한 걸 너무 가볍게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머지않아 우신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양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고 한시름 놓은 그는 숨을 고르고는 하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는 발목을 다친 듯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양하나 헌터, 괜찮습니까? 일어날 수 있겠어요?”
발목을 살피니 뼈가 부러진 듯 부어올라 있었다.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상해를 입혀 부러트린 모양새였다.
감히 저를 앞에 두고 뒤에서 이런 짓을 했다니.
우신은 열이 받았지만 당장은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는 부목과 천으로 하나의 발목을 고정했다. 그때 그녀의 손에 쥐어진 통신 기기가 눈에 들어왔다.
불이 들어와 있는 걸 보니 고장 나지 않은 것이었다.
우신은 그걸 보고는 입을 열었다.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은 겁니까?”
통신 기기를 사용하면 조장인 그에게 직통으로 연결되는 건 물론 채널을 옮기면 관리자에게도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가상의 돔이라도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 산소 결핍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거, 분명 고지했는데 잊었습니까?”
“…….”
양하나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신은 삶에 미련 없다는 듯 행동하는 그녀의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죽고 싶기라도 한 겁니까?”
그러자 그가 무어라 말하든 움직임 없던 양하나가, 고개를 들어 우신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삶에 대한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우신은 그 불쾌하기 짝이 없는 눈빛에 혀를 차고는 그녀를 들쳐 업었다.
“그 상태로는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일 테니, 싫어도 참으세요.”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죽은 눈을 하고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양하나가 천천히 우신의 목에 팔을 감았다.
드디어 협조할 생각이 든 건가 생각하는데, 그러기 무섭게 그녀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성시현 헌터는 왜 당신 같은 걸.”
그 말과 함께 양하나가 능력을 사용한 듯 우신의 눈앞에 검푸른 빛이 차올랐다.
* * *
우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능력이라면…….”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가 답했다.
“제 머릿속을 들여다본 거죠.”
정신의 장벽을 허물고 얕은 의식의 생각을 보는 능력은 양하나가 곧잘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이 강우신 가이드에게 통할 리 없잖아요.”
우신은 C급인 양하나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S급이었다.
내 말에 그 또한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작년 합동 훈련은 성시현 에스퍼의 기일을 며칠 앞둔 때였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때를 떠올리듯 우신의 눈빛이 깊어졌다.
“사망 5주기 특집 방송을 준비한다며 센터에 방송국 사람들이 상주해 있었는데, 그 죽음을 목도한 저한테 당연하게도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습니다.”
“…….”
“몇 번이고 거절해 끝내 방송에 나가는 일은 없었지만…….”
우신은 뒷말을 아꼈다.
하지만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또 거절하는 과정에서 그는 아직 낫지 않은 상처를 칼로 후비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였습니다, 제게는 통하지 않을 기술이 통한 이유는.”
등급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정신이 피폐해지면 그 장벽이 쉽게 허물어진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우신이 그만큼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에 단단한 돌덩이가 얹어진 듯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은 말이죠. 제 기억을 읽은 것 자체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럼…….”
“제가 오랜만에 만난 양하나 헌터를 단번에 기억한 건, 내 기억 속을 들추어 봤기 때문이 아닙니다.”
복도에서 우신과 부딪혔을 때 내 얼굴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던 그를 떠올렸다.
“기억을 본 직후 양하나 헌터가 저한테 했던 말 때문이죠. 어쩐지 저보다도 더 상처받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거든요.”
“…….”
“생각한 것보다 더 최악이네요. 그쪽이나 그 사람이나.”
우신은 그날을 회고하듯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쪽이나 그 사람.’
과연 양하나는 우신의 기억 속에서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한 걸까.
혼란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무슨 반응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도 양하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신이 내가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이해해 줬다 한들 그가 양하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다.
사과해야 하는 걸까, 그 생각에 무겁게 닫혀 있는 입술을 달싹이는데 우신이 불쑥 입을 열었다.
“사과는 됐습니다.”
그는 내가 사과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던 사람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사과하기도 전에 거절당한 내가 어떨 줄 몰라 하자 우신은 그런 내가 재미있는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샘샘인 걸로 하죠.”
“샘샘이요?”
“아까 제가 프로답지 못했다는 거 인정합니다.”
순간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생각하기 위해 눈을 굴리다가 이론 수업 때를 말한 걸 깨달았다.
“프로답다, 프로답지 못하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당연하죠. 양 헌터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잘 아는 듯한 우신의 말에 지금껏 나를 휘감고 있던 수많은 걱정이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거 같았다.
“지난번 말했었죠. 에스퍼가 아닌 가이드를 지망한 이유에 대해서.”
나는 잠시 주저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우신은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실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
“전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의 피해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