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6화
“강우신 가이드 찾아?”
이론 수업이 끝난 후,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주변을 살피고 있자 이곤이 다가와 물었다.
“응.”
“아까 저녁을 거른다고 하더라고. 속이 별로라고.”
이곤은 그 말과 함께 내 식판을 뺏어 들더니 빈자리에 두고 그는 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자고.”
나는 잠시 앉기를 주저하다 그가 식판을 놓아 준 자리에 앉았다.
마음이 찝찝한 건 허기가 진 탓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배를 든든하게 채우기로 했다.
군말 없이 식사하는 내 모습에 이곤은 픽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저도 옆에 앉아도 될까요.”
나긋한 물음에 고개를 드니, 이론 수업을 진행한 헌터가 서 있었다. 이곤은 내 눈치를 보며 대답을 나에게 넘겼다.
나는 개의치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는 내 옆자리에 앉고서는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라고 했던가요?”
“네.”
“아까는 저도 모르게 흥분해 그런 말을 해 버려서, 사과하려고요.”
“그럼 클리어를 위해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소리인가요?”
“아,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수업 중 토론이었으니까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지 과거에도 그가 가끔 대화 중에 욱하던 걸 떠올리고 여전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잠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그 시선에 식사를 잇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하실 말씀이 남았을까요.”
“아직 2년 차라고 들었는데…… 솔직히 그 등급과 특성에 집공 팀 소속이라는 걸 듣고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네요.”
사과하고 싶은 건지 시비를 걸고 싶은 건지 모를 말에 미간을 찡그리자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나쁜 뜻은 아닙니다. 제가 센터에서 근무할 때 계신 선배가 있는데, 아까 양하나 헌터가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했었거든요.”
그가 그때를 상기하듯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강우신 가이드와 양 헌터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 우리도 곧잘 말다툼을 했습니다. 지금은 브레이크 현장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그때는 지금이랑 달라서 무지막지하게 싸웠거든요.”
“…….”
“인명 구조와 게이트 클리어를 두고 후배들이 다툼할 때 마침 지나가던 그 선배가 딱 한 마디 했었습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는 듯한 아련한 얼굴로 뒷말을 이었다.
“약하니까 둘 중 하나를 구태여 선택하려는 거다. 어떤 상황에서든 헌터는 헌터의 일을 해내야 한다. 다른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면 허세 부리지 말라고 비웃기라도 했을 텐데, 그 선배는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셨습니다.”
나는 그제야 그 선배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떠올리는 것처럼 자세한 말까지는 기억하지 못했으나, 당시 그와 비슷한 말을 뱉었던 게 생각난다.
헌터는 헌터의 일을 해낸다. 그건 내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신념과도 같은 믿음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자신의 입으로 내뱉으니 혓바닥이 간지럽다며 웃어 보였다.
“그 말에 열이 받아 온종일 체력 단련실에 붙어 있는 팀원들도 있었지만 저는 어쩐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
“결국 헌터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지금 제 삶에 불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선배 덕분에 일찍이 적성을 찾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를 심드렁하게 듣던 이곤이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그럼 해피 엔딩 아닌가. 에스퍼라고 다 헌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어디 한 군데 잘리기 전에 제 적성 찾았으면 감사해야 할 일이겠네.”
나는 이곤은 보며 고개를 저었다.
끼어들지 말라는 의미의 행동이었으나, 상대방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곤 헌터의 말이 맞습니다. 누군가를 구할 위치에 있으려면 제 몸부터 완벽하게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웃음기를 전부 지워 내더니 말을 맺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헌터가 과연 우리나라에 몇이나 있을까요.”
진중한 물음에 이곤은 저와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라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글쎄요, 하고 답했다.
솔직히 말해 그가 말한 내 과거에 대해 명확히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하지만 공격 1팀에 들어올 정도의 능력자라면 타고난 능력치나 스펙이 부족하지는 않았을 테다.
이곤과 비교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와 이곤이 이렇게나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게 내가 지나가면서 했던 한마디 때문이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후배가 스스로에게 맞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선배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선배를 닮은 사람을 봤더니 그때의 일이 오랜만에 생각났어요.”
헌터는 옅은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양 헌터에게는 꼭 말해 주고 싶었어요. 신념도 좋으나 자신을 아낄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아까 하나가 한 말 들으신 거 맞아요? 분명 말했잖아요. 헌터에게 중요한 건…….”
“됐어.”
내 제지에 이곤은 못마땅한 듯 그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혀를 차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는 고민 끝에 그렇게 답했고, 그는 오지랖이 넓었다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멀어지고서야 이곤은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열었다.
“하나야, 신경 쓰지 마, 본인이 선배한테 못했던 말을 너한테 하는 건 무슨 경우 없는 짓이야.”
“…….”
“작년의 강우신도 그렇고, 하나 네가 만만한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놈들뿐이야.”
이곤의 말에 나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작년 강우신이라니?”
되묻는 말에 그의 얼굴에도 잠시 물음표가 떠올랐다가 이해한 듯 말을 이었다.
“아, 너 작년에 강우신 가이드랑 대판 싸웠잖아.”
“나랑은 혀가 잘려도 말 섞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으나 이제야 첫 만남에 우신이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곤은 그 뒤로도 뭐라 말을 이었지만, 내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이곤이 놀란 듯 나를 올려다봤다.
“미안, 먼저 일어날게.”
나는 식판을 들고는 그를 등졌다.
* * *
속이 답답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입 안 가득 들어찰 때면 몸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면 복잡한 머리가 잠깐은 비워졌으니까.
사람을 대하는 게 능숙지 않아 감정이 메마른 인간이라는 험담이 뒤에서 오가는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명이나 아까 전의 강사처럼 6년 만에 만나게 된 후배들의 평은 생각보다 더 냉혹했다.
그게 당장 나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럴 만큼 지난 삶을 후회하지도 않고 말이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들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한 사람 정도는 날 나쁘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구내식당 근처에 있는 테라스로 나왔다. 테라스에는 정돈된 작은 정원이 있었다.
직감을 따라서 안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원 곳곳에 붉은 장미꽃이 심겨 있어 걸음마다 여름의 꽃내음이 풍겼다.
해가 저물어 주위를 밝히는 등이 켜져 있었는데, 그 은은한 빛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우신이 보였다.
그도 나를 발견한 건지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참 뛰어다니느라 차오른 숨을 고르며 우신에게로 걸어갔다.
내가 말없이 그의 옆자리에 앉자 우신이 입을 열었다.
“왜 뛰어왔어요. 소화 안 되게.”
“본인도 속이 안 좋으면서.”
“이곤 헌터가 그러던가요?”
내 말에 강우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렇게 되물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우신은 흐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꿉친구라더니, 정말 친한가 봐요.”
“아무래도 오래 봤으니까요.”
“그런가요.”
이런 말을 하려고 다급히 그를 찾아온 게 아니었는데, 대화가 본론에 들어서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기분이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우신을 바라봤다.
“강우신 가이드.”
나름 비장한 각오를 하고 그를 올려다본 거였는데, 우신의 시선은 이미 나를 향해 있었다.
그에 당황해 두 눈을 끔뻑였다.
그가 이론 수업에서의 일을 신경 쓸 성격이 아니란 걸 알지만, 의견 차이로 논쟁을 벌였으니 조금의 어색함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듯 우신은 여느 때와 같이 올곧은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가득 차오른 나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작년에도 이렇게 싸웠다고…….”
마치 타인의 이야기를 하듯 운을 떼자, 그는 그늘에서 내가 한 말을 기억해 냈는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글쎄요, 그때도 지금도 싸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제 신념을 믿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아까부터 바람이 불 때면 은은한 향이 난다고 생각했다.
장미꽃 향인가 생각했는데, 우신에게서 나는 향인 듯 주변의 풍경은 지워지고 눈앞의 앉은 이 남자만 보였다.
“군데군데 기억에 빈 부분이 있다고 했죠.”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신은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설핏 웃었다.
“그래서인지 궁금하다는 얼굴이네요. 그때의 일이.”
그는 그때의 일을 회고하려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입을 열려 했다.
“말하기 거북한 일이라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 말에 우신은 괜찮다고 대답한 뒤 말을 이었다.
“제가 양 헌터와 처음 만난 건 작년 늦가을 합동 훈련에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