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5화
“이번 합동 훈련의 과제는 게이트 브레이크입니다. 브레이크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건 여기 계신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신은 그렇게 말하며 작은 화이트보드 위에 이번 합동 훈련의 일정을 적어 내려갔다.
헌터가 가장 많이 목숨을 잃는 곳은 단연 게이트 안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헌터라는 직업군 안에서의 집계지, 전체 인구의 사고 사망 원인 1위는 게이트 브레이크다.
사전에 게이트 브레이크 경보를 울린다 해도 항상 휩쓸리는 민간인이 나왔고, 거의 80% 확률로 사망했다.
과거 96%에 육박했던 수치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적은 수치는 아니었다.
“합동 훈련은 3일간 치러지며, 첫날은 이론을 나머지 이틀 동안은 실습을 진행합니다.”
우신의 말에 2군 소속의 에스퍼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실습이라는 건…….”
“당일이 되어야 확인 가능합니다.”
우신의 단호한 말에 에스퍼는 민망한 듯 작게 네, 라고 대답하며 손을 내렸다.
지원도 그렇고 하나같이 우신을 어려워하는 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조금 전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타인에게 조금만 살갑게 대하면 좋을 텐데, 저 혼자 살얼음판이었다.
‘3일이라.’
고개를 돌리자, 반투명한 칸막이 너머로 옆 조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쪽도 똑같이 조장이 일정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화이트보드 앞에 눈에 익는 사람이 보였다.
유제이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 지원이 서 있었다.
그곳이 C조인 듯 다영을 비롯한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나는 사람들을 살피다 도로 지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틀 전보다는 안색이 좋아 보였다.
그날 우신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가방 안에서 연구실 관련 서류를 꺼냈다.
지원이 이 서류를 보고 사색이 됐던 거 같은데, 도무지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원이 볼 수 있던 건 맨 앞 장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첫 장의 나열된 이름만 보고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다시 한번 천천히 첫 장의 이름들을 살피는데 그 순간 한 이름이 두드러져 보였다.
나는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한영원.”
사고 당시 13살이었던 여자아이는 연구실에서 진행한 ‘에스퍼 강화 증진 훈련’의 참가자였다.
그녀의 이름 끝, 사망 여부란에 체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이천 게이트에서 지원이 한 말이 떠올랐다.
“여동생이 있어요.”
한지원과 한영원.
성이 같을 뿐이지만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 추측이 맞는다면 지원과 연구실 그리고 그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집공 팀까지 모두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날 이후부터 지원은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합동 훈련 기간 동안 지원에게 접근할 타이밍을 찾아봐야 한다.
그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이니 만나서 물어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그에게 할 질문은 이미 다 생각해 두었다.
‘우선 한영원, 그 아이가 여동생이 맞는지 확인을…….’
그제부터 연구실 안에서 호스를 몸에 연결하고 있던 이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 생각이 자꾸만 속을 울렁이게 했다.
“양하나 헌터.”
불쑥 내 어깨를 잡는 손길에 놀라 고개를 드니 우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념에 사로잡혀 귀에서 멀어졌던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제야 B조 조원들이 이동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우신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합니까?”
그는 내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쳐다봤다. 곧 지원을 발견했는지 미간을 미세하게 구겼다.
“……지금은 여기에 집중하세요. 다 아는 이론이라도 브레이크 현장은 처음 아닙니까? 게이트 안과 브레이크 현장은 다릅니다. 방심하는 사이 본인의 목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어딘지 조금 날이 서 있는 듯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명심하겠다는 대답과 함께 그를 따라 이론 수업이 진행될 건물로 이동했다.
* * *
우신의 말처럼 게이트 브레이크와 게이트 안에서의 전투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게이트 브레이크는 문을 통해 나온 몬스터를 전부 토벌하는 것을 클리어의 기준으로 둔다.
그래서 게이트 경험이 많은 헌터도 게이트 브레이크를 클리어할 때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컸다.
또한, 브레이크 현장에서의 실수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죽음을 야기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간 이들의 공동 목표는 오직 하나뿐이죠. 게이트 클리어.”
이론 수업은 아카데미에서 나온 헌터가 진행했다.
자신을 현장 베테랑이라 말하는 그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과거 공격 1팀에 있다 금방 나간 후배였다.
그는 화이트보드 위에 적힌 ‘브레이크 현장’이란 단어를 탁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브레이크 현장에서의 목표는 뭘까요.”
그의 시선에 앞자리에 앉아 있던 2군 소속의 에스퍼가 눈치를 보다 답했다.
“음…… 몬스터 처치일까요.”
“인명 구조입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훈련받은 전문 헌터나 가이드만이 들어가는 게이트와는 달리 브레이크 현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무대로 합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그렇기에 인명 피해가 없도록 하는 걸 공동의 목표로…….”
“글쎄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중얼거린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는지 강당 안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가 내 후배라는 걸 인식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자연히 말을 뱉어 버렸다.
“다른 의견이 있는 모양이군요.”
이렇게 된 마당에 모르쇠 하며 넘어갈 수 없었다.
또한 정말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항시 인명 구조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전히 게이트 클리어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단호한 말에 그가 되물었다.
“그럼 클리어를 위해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소리인가요?”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건 헌터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현장에는 민간인을 위한 인명 구조 팀이 따로 파견됩니다.”
“…….”
“그렇다면 헌터의 일은 무엇일까요. 당연하지만 우리의 일은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입니다.”
비록 게이트 브레이크 때문에 부모님을 잃었고, 나 또한 수차례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지만 이 생각은 변한 적이 없었다.
헌터 한 명이 시간당 구할 수 있는 인명의 수는 평균 7명.
만약 내가 각성하게 된 대교에서의 브레이크 때 몬스터 처치보다 인명 구조를 우선시한 헌터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을 거란 대답을 하고 싶다.
당시의 인력으로는 절대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구하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의미이다.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 속 모든 사람의 목숨은 그 무게가 같으며 우선순위를 두기 어렵다.
어쩌면 많은 인원을 동시에 구하는 건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헌터의 일은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 끝에 하나의 답을 도출해 냈다.
‘몬스터를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죽이는 것. 그래서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
그것이 현장에서 14년을 구른 내 일 원칙이며, 내겐 인명 구조였다.
내 말에 화이트보드 앞에 서 있던 남자의 입술이 달싹였는데, 반론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강우신이 앉아 있었다. 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쳐다봤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인명 구조 팀이 따로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주로 생존자의 대피와 부상자들의 운송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헌터들 역시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에게는 현장에서의 몇 시간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공포일 테니까요.”
어쩐지 평소보다 감정이 격해져 있는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우신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이야기의 방향을 틀어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건물 붕괴를 최소화하고 몬스터의 급소를 노려 단번에 처치하는 것입니다. 게이트 안에서의 전투와 다른 게 바로 이 점이죠.”
실제로 게이트와 브레이크 현장을 구분하지 못하고 날뛰다가 건물 붕괴로 인명 사고를 내 징계 먹는 헌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었다.
“생존자를 구하는 것과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건 다른 게 아닙니다.”
“…….”
“몬스터를 해치워야 생존자가 받는 위험도, 동료의 희생도 줄일 수 있습니다.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겠다는 신념이라 생각합니다.”
정적이 흘렀다.
내 말에 우신은 입술을 꾹 다물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는 사라졌다.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얼마든 과열될 수 있죠. 저는 뭐든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좋은 거 같습니다.”
그는 나와 우신이 입고 있는 점퍼 위의 집공 팀 마크를 보더니 일순 미소를 지었다.
“신념이 없다면 그런 곳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