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4화
우신의 뜨거운 시선에 나는 이곤을 쓱 쳐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이곤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아직 우리 이야기 중인데.”
그는 비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우신을 쳐다봤다. 그러자 우신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로 답했다.
“그 손 놓죠.”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듯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날이 서 있었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서는 으르렁거리자, 가이딩실 데스크에 앉아 있던 직원의 시선이 우리 쪽을 향했다.
나는 괜한 소란을 일으켜서 센터 사람들에게 씹을 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댁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강우신의 말에 열 받은 이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힘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자 이곤이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둘 다 그만하죠. 보는 눈도 있는데.”
내 나직한 말에 두 사람은 그제야 주변이 보이는지 입을 다물었다.
“강우신 가이드도 힘을 써서 어지러울 거 아닙니까, 일단 앉아서…….”
“괜찮으니 가요. 합동 훈련이 시작되면 또 고생할 텐데. 양 헌터도 쉬어야죠.”
‘은근 고집이 있다니까.’
달래는 듯한 우신의 말에도 내가 꿈쩍 않자,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저 오늘 양하나 헌터의 말 잘 듣지 않았습니까?”
“네?”
이곤을 보고 동물처럼 으르렁거릴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양 헌터가 원한다면 언제든 그 말을 따를 테지만 내가 후배님의 말을 잘 들은 시간만큼 당신도 오롯이 내게 집중해 주었으면 합니다.”
낯간지러운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너무 큰 욕심일까요.”
우신은 대답을 원한다는 듯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 가깝게 다가온 것도 아닌데 문득 병실에서의 일이 떠올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말이지 곤란했다.
나와 나란히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본 이곤은 못 볼 걸 봤다는 듯 인상을 확 찡그렸다.
“무슨 개소리를…….”
이곤이 목소리를 높이려 할 때 그보다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게 향하자 나는 뜨거운 볼을 누르며 답했다.
“알겠으니까, 가요.”
우신은 내 대답에 만족한 듯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제가 데려다줄게요. 지금은 그러고 싶습니다.”
그는 타인이 주변에 있을 때 가면이 견고해지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감정을 내비치는 걸 보니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곤의 무엇이 그렇게 그를 불편하게 하는 건지.
나는 벽에 기대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지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원 헌터는 곧장 집으로 가요. 오늘 고생했어요.”
대답할 기력도 없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곤아, 너도.”
“정말 갈 거…….”
“응. 밥은 다음에 먹자.”
이곤은 단호하게 말해야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편이었다.
더 이상의 소란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자 그는 잠시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우신과 함께 가이딩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정말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줬다.
적어도 저녁은 우신에게 시간을 내 줄 생각이었는데, 오는 길에 도시락을 픽업해 그걸 내 손에 쥐여 주고는 굶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1, 2군 합동 훈련 날이 됐다.
* * *
1, 2군의 합동 훈련이 시작된 건 4년 전 피라미드 시스템이 들어오면서부터다.
센터는 내 죽음 이후 간판 에스퍼 한 명에게 클리어를 맡기는 스타일을 고집할 수 없게 되자, 에스퍼와 가이드를 성적별로 나눴다.
피라미드 시스템은 체계적인 훈련을 가능케 하고 훈련 효율을 높였지만 각 군에 보상의 차이를 두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군 간의 계급 차가 생겼다.
덕분에 저절로 높은 군에 소속된 에스퍼들에게 힘이 생겼다.
합동 훈련은 1군과 2군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헌터들의 실력 증진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런 의의와는 조금 다른 게 보였다.
“일주일 내리 장마라더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을 거 같은 날씨네요.”
다영의 말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하늘을 보자니, 찜통에 쪄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게요.”
합동 훈련 당일, 지난번 돔 이벤트가 진행됐던 체육관 앞 운동장으로 모이게 됐다.
1, 2군이 전부 모이자 커다란 운동장이 번잡해졌다. 다영은 접이식 우산을 가방 안에 넣으며 3일간 우산을 펼 일 없을 거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영의 말처럼 합동 훈련은 3일간 진행된다. 어젯밤, 작년 훈련 보고서를 확인해 보니 지금까지 진행됐던 과제는 주로 2군 멤버가 핵심이 되고 1군은 그를 보조하는 식이었다.
매년 달라지는 과제 내용은 당일 오픈되기 때문에 걱정을 모두 덜 수는 없었다.
“조원은 랜덤으로 정해지는 건가요?”
내 물음에 다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양 헌터와 합을 맞추게 되면 좋겠지만 랜덤이라고 하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때 운동장 끝에 있는 구령대 위로 소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는 툭툭 쳤다. 스피커를 통해 노이즈 소리가 나더니 이내 소명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1군 현장 담당자 소명입니다.”
그녀는 피곤함에 찌든 얼굴을 한 채 마이크에 대고 제 소개를 했다. 주변은 여전히 산만했지만, 소명은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었다.
“어느덧 협동 훈련이 5회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올해도 부디 부상자 없이 과제를 모두 완수하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소명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구령대 뒤쪽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지나치게 짧은 인사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다영이 작게 소곤거렸다.
“과제는 언제 알려 주는 걸까요? 저번과 달리 야외라 모니터도 없는데…….”
다영이 의문을 제시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핸드폰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바지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단체 문자가 발송되어 있었다.
[5회 합동 훈련 과제: 게이트 브레이크
‘집중 공격 팀 소속의 양하나 헌터는 B조’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각 조의 숫자가 적힌 팻말로 가서 조장에게 전달받으면 됩니다.
그 후 강당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문자 첫머리에 적힌 과제명을 보고는 인상을 구겼다. 게이트 브레이크라니.
“게이트 브레이크 관련 과제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도대체 어떤 걸 해야 하는 걸까요.”
다영의 물음에 나는 글쎄요, 하고 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 역시 과제 내용이 조금도 짐작되지 않았다.
게이트 브레이크는 말 그대로 클리어되지 못해 에너지가 쌓인 게이트가 터지면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최악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시민들의 대피를 돕거나…….
답 없는 걱정을 하던 그때 다영이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조는요. 어느 조를 배정받았어요?”
“아, 저는 B조입니다.”
내 대답에 다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영 운이 안 따라 주네요. 저는 C조예요.”
아쉬워하는 다영의 말에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문자에 적힌 내용에 관해 물었다.
“여기 조장에게 전달받으라는 건…….”
“어, 그러게요. 보통 집공 팀 소속 헌터들이 조장을 맡는데 이상하네요.”
내 문자에는 조장으로부터 세부 사항을 전달받으라는 말이 전부였다.
다시 말해 나는 조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잘된 일이었다.
감투를 쓸 생각에 머리가 아팠으니 말이다.
다영은 바닥에 내려 둔 가방을 챙겨 들었다.
“아마 3일간 한 번쯤은 마주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건투를 빌어요.”
“네. 다영 씨도요.”
내 말에 다영이 씩 웃어 보이고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 * *
운동장 둘레를 따라 알파벳이 적힌 팻말과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B조 팻말은 내가 서 있는 곳과 멀지 않은 데에 자리했다. 나는 그곳에 다다를수록 칸막이 너머로 보이는 실루엣에 표정이 굳어 갔다.
만약 한 조당 두 명의 집공 팀원이 배정된다면 내 능력과 잘 맞는 지원이나 어쩌면 가이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내 임시 전담 가이드가 말이다.
예상대로 B조엔 우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옆엔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 함께였다.
칸막이 안에 들어선 나를 발견한 이곤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왔어?”
“네가 왜 여기 있어?”
“왜긴. 나도 B조니까.”
그의 말에 한쪽 눈썹을 찌푸리고는 나와 똑같이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는 우신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아무리 신입이라 해도 곤이는 현장 경험이 많은데 집공 팀 3명을 한 조에 넣다니.”
“뭐, 위에서 결정한 사항일 테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만…….”
뒷말을 잇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얼굴에 훤했다. 이곤 역시 그의 표정을 읽고는 혀를 찼다.
“그렇게 못마땅한 표정 말죠. 저도 별로이긴 매한가지니.”
둘의 상성이 안 좋다는 건 가이딩실에서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세 명이 함께 게이트에 들어갈 확률은 희박하니 사적인 자리에선 내가 조심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머리 아파졌네.’
“어, 양하나 헌터님?”
불쑥 걸쭉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익숙한 톤에 뒤를 돌아보니, 가림막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오는 김태용과 반소희가 보였다.
나는 반가운 얼굴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두 분 설마.”
내 말에 태용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더니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였다.
“저희 둘 다 B조입니다.”
13번 팀 멤버들 전원이 지난 진급 이후 1, 2군에 속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나 같은 조가 된 모양이다.
그의 뒤로 1, 2군 소속의 에스퍼 몇몇이 더 들어왔다.
나는 우신과 이곤 사이를 파고들어 가 딱 그 중간에 섰다. 그러고는 웃는 얼굴로 복화술을 했다.
“또 지난번처럼 굴었다가는 합동 훈련이고 뭐고 자진 하차할 테니 그렇게 아세요, 두 분 다.”
내 경고가 먹혔는지 우신과 이곤은 서로를 힐끗 보더니 정면을 보고 선 채 더 이상 다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