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2화
정보실에서 정보를 확인한 날 밤, 이곤에게 전화했다.
이천 게이트에 다녀와 연락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이곤은 지금껏 내가 입원하거나 조금이라도 다치면 곧장 얼굴을 내비치던 놈이었다.
소문이 신경 쓰여 집까지 찾아왔을 정도로 양하나한테 지극정성인 놈, 그게 내가 아는 이곤이었다.
퇴원할 때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곤이 병문안을 오기는커녕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분명 내가 이천 게이트에서 다쳤다는 걸 알 텐데 말이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약간 신경 쓰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평일 아침이 되고 집공 팀 훈련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나는 상상치도 못한 광경을 마주했다.
“이번 달부터 집공 팀에 합류하게 된 이곤 헌터입니다.”
소명의 짧은 인사에 이곤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본 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나를 발견한 이곤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나야!”
그가 불쑥 목소리를 높여 밝게 인사하자 그의 앞에 서 있던 집공 팀 에스퍼들의 고개가 모두 내 쪽으로 향했다.
나는 민망함에 그들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곤이 내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왔다.
“어디 봐, 너 부르는데.”
“너가 집공 팀에 합류하게 됐다고?”
내 물음에 이곤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간의 걱정이 무색하게 못 본 사이 안색이 더 좋아진 듯했다.
내가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이곤은 기가 죽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안 반가워?”
“반갑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왜 나한테 미리 말 안 했어? 전화도 안 받고.”
“집공 팀 합류 때문에 병문안 갈 시간이 없어서…… 소명 담당자님한테 부탁해서 과일 바구니 보냈는데 못 받았어?”
나는 그제야 그녀의 수행원이 두고 간 바구니를 떠올렸다. 소명답지 않다고는 생각했는데, 이곤이 부탁한 거였다니.
“네가 이천 게이트에 가 있는 동안 결정된 거야. 나도 입이 간지럽긴 했는데 아무래도 서프라이즈가 좋잖아?”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이곤은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근심 없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맥이 다 풀렸다.
“별일 없었다면 됐어.”
내 말에 이곤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도 너 걱정했는데, 다행히 괜찮아 보이네? 듣기로는 가이딩에 문제가 있었다며.”
“……별로.”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칼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리자, 이곤이 걷어 주려는 듯 내 얼굴께로 손을 뻗었다.
“왜, 그러지 말고 말해 봐. 가이딩에 문제가 있으면 내가…….”
얼굴 가까이 다가온 이곤의 손목이 누군가에게 탁 잡혔다. 이곤은 제 손목을 잡은 이를 돌아봤다.
“가이딩에 문제가 있다 한들 이곤 헌터가 할 수 있는 건 없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뵙네요. 강우신 가이드님.”
이곤의 손목을 잡은 건 우신이었다. 언제 왔는지 그가 가까이에 서 있었다. 이곤에 인사에 우신은 그의 손목을 툭 놓고는 내 상태를 확인했다.
“안색이 안 좋네요.”
“아니요. 잠깐 생각이 많아져서.”
내 말에 우신이 흘러내린 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줬다. 일순 이곤의 얼굴이 굳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을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왔어요. 아직 약속 시각은 멀었는데…….”
“저도 엄연히 집공 팀이기도 하고, 못 기다리겠었어요.”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이곤이 한쪽 눈썹을 씰룩이고는 입을 열었다.
“뭡니까. 두 사람 따로 약속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 그게…….”
내가 무어라 답하려고 하는데 우신이 말을 가로챘다.
“예. 그러니 인사가 끝났으면 눈치껏 빠져 주는 게 어떻습니까.”
우신의 공격적인 어투에 내가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왜 그래요.”
내 작은 목소리에 우신은 나와 눈을 마주쳐 오더니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런 그의 말에도 이곤은 개의치 않은 듯 내 손목을 잡으며 우신과 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하나 너 나한테 특별히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 지금 시간 많은데.”
우신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다른 쪽 손목을 그러쥐었다.
“이제 갑시다, 점심을 먹어야 힘을 쓰든 말든 할 테니.”
우신의 말에 이곤의 입꼬리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두 분이 뭘 하길래 힘을 쓰는데요.”
“그걸 우리가 굳이 말해야 합니까?”
나는 우신의 말에 어처구니없는 얼굴을 했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을 정정하려 하는데 이곤이 불쑥 말을 이었다.
“그럼 저도 같이 먹읍시다, 점심.”
단호한 그의 말에 나는 곤란한 얼굴로 우신을 쳐다봤다.
결사반대할 줄 알았는데, 우신은 꼭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에 팔에 닭살이 돋는데, 우신이 호기롭게 답했다.
“그럴까요?”
* * *
“그래서 세 분이 같이 오셨다는 겁니까?”
지원은 당황한 듯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물었다.
나는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신과 이곤은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밥을 먹었다가는 음식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모를 게 뻔했다.
그래서 급히 식사를 미루고 볼일을 보러 왔는데, 예약 시간보다 빠르게 온 탓에 가이딩실이 비기까지 대기 시간이 생겼다.
오늘 잡혀 있던 선약은 엄밀히 말하자면 우신과의 둘만의 약속이 아니었다.
이천 게이트 아웃 이후 내 개인적인 일로 지원의 길을 만지는 일이 자꾸만 미뤄졌다.
나는 급한 대로 지원에게 우신과 약속을 잡아 줄 테니 단둘이 만나라고 했지만, 그는 제발 살려 달라며 내게 함께 가 달라고 빌었다.
함께 이천 게이트도 다녀온 터라 괜찮을 줄 알았더니 여전히 우신이 불편한 듯했다.
‘우신과 마주치는 걸 불편해하는 건 한지원 헌터뿐만이 아니지만 말이야.’
병실에서의 ‘일’ 이후 우신은 급한 연락을 받고 떠났다.
내심 곧 다시 연락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내가 불편하게 여길까 봐 걱정한 건지 아니면 그 일도 정말 가이딩의 일환이라 생각한 건지, 괜히 혼자 고민해 봤다.
만나면 그에 관해 말을 꺼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사이에 서초 게이트의 정보를 얻게 됐다.
거기다 나를 보고도 평소와 똑같이 안색 하나 바뀌지 않는 그를 보자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우신과 신경전을 벌이던 이곤은 내 옆에 바짝 다가서 있는 지원을 못마땅한 얼굴로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또 누구야, 하나야.”
이곤의 시선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지원을 보고서는 나는 그의 가슴을 가볍게 툭 쳤다.
인상 펴라는 신호였는데 미동도 하지 않기에 지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원 헌터는 처음 보죠.”
내 물음에 지원은 이곤을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쪽은 이번에 집공 팀에 합류하게 된 이곤 헌터입니다. 저와는…….”
“하나와는 가장 가까운 소꿉친구입니다.”
이곤이 불쑥 내 말을 자르고 제 소개를 했다. 그의 팔이 내 어깨를 감싸 안으려는 듯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왔지만, 나는 주저 없이 그의 팔을 툭 쳤다.
이곤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나를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간 우리 하나가 신세 많이 졌죠?”
원래도 양하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는 생각했는데, 오늘은 유독 그 정도가 심한 것 같았다.
나는 미간을 구기고는 먼저 자리에 앉았다.
내 옆자리를 두고 강우신과 이곤이 신경전을 벌이듯 아웅다웅했다.
‘얼씨구.’
어울리지 않는 행동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지원을 바라봤다.
“지원 헌터가 여기 앉아요”
내 옆자리를 가리키자, 혼이 빠진 듯 멍하니 서 있던 지원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의자를 빼 자리에 앉다 말고 의자에 놓인 내 가방을 들어 보였다.
“가방은.”
“아, 그 가방은 저한테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모두가 착석하기를 기다리는데, 지원의 시선이 내 가방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그를 불렀다.
“한지원 헌터?”
내 부름에 지원이 작게 탄성을 내뱉더니 그제야 가방을 내밀었다. 나는 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래서 하나야, 나한테만 하려고 했던 말이 뭔데? 나는 들을 준비가 됐으니 말해 봐.”
맞은편에 턱을 괴고 앉은 이곤이 두 눈을 끔벅이며 아양을 떨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을 피해 몸을 뒤로 뺐다.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그와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연구실의 유일한 성공작.’
그런 소문이 센터 내에 돌았다면 우신과 지원도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가방 안의 서류를 매만졌다. 아무리 센터 내에 떠돈 소문이라 해도 두 사람 앞에서 이야길 꺼내기에는 조심스러웠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둘이서 하자. 그것보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는데 이곤이 상기된 얼굴로 답했다.
“그래, 아무래도 중요한 이야기는 방해자들이 없는 곳에서 단둘이 하는 게 좋겠지?”
그는 마치 강조하듯 단둘이란 말에 악센트를 줬다.
별거 아닌 말인데 우신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둘이서 해야 할 이야기라는 게 뭡니까.”
“못 들었습니까? 나랑 둘이 있을 때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잖습니까.”
강우신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쩌렁쩌렁 말하는 이곤을 철저히 무시했다.
“괜찮다면, 제가 해결하게 도와…….”
“아뇨, 괜찮아요.”
이 이야기를 이 이상 길게 하고 싶지 않다 보니 의도한 것보다도 훨씬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이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곤란함에 마른침을 삼키는데, 테이블 아래로 지원이 다리를 떠는 게 보였다.
다리에 자연히 그에게로 시선을 옮기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이 여전히 내 가방에 가 있었다.
가방의 벌어진 입구로 내용물이 엿보였다. 내가 한 손으로 가방의 입구를 닫자 지원은 깜짝 놀라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는 꼭 보면 안 되는 걸 본 듯 창백한 얼굴이었다.
마치 내 가방 안의 내용물이 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