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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1)화 (91/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91화

아침이 밝자마자 정보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소명에게 받은 라이선스를 만지작거렸다. 원래 지니고 있던 라이선스와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정말 이걸로 등급 제한이 걸린 정보를 열람할 수 있을까.’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는데, 화면에 아이디가 등록되어 있다는 안내창이 뜨면서 S급 정보 열람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떴다.

“이게 진짜 되네.”

놀라는 것도 잠시 빠르게 6년 전 게이트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가나다 순서로 정렬된 게이트 정보를 훑던 중 커서가 멈췄다.

[서초 게이트]

내가 줄곧 찾아오던 그 게이트였다.

나는 작게 심호흡한 뒤에 폴더를 클릭했다.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여러 개의 정보가 화면을 메웠다.

[6년 전 서초구 응담산 초입에 균열이 생기며 발생한 게이트로 성시현 헌터를 선발로 해 클리어된 이상 게이트.]

“역시 이상 게이트가 맞았군.”

내 죽음 이후 게이트의 잔류 에너지를 바탕으로 분석해 도출한 결과일 거다.

나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며 정리된 글을 읽어 나갔다.

짧은 사건 개요와 게이트 참여자 정보 등이 이어졌다. 그것들을 확인할수록 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끝내 게이트에서 나오지 못했다.

상황이 긴박한 만큼 다른 사람들을 모두 후발에 두고 혼자 안쪽으로 들어갔기에 내 기억과 기록된 정보가 어느 정도 엇갈리는 건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보실의 정보를 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서초 게이트의 진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뿌려진 단편적인 정보 외에 센터가 숨기고 있는 무언가.

그걸 알게 된다면 내가 6년 만에 양하나의 몸에서 눈을 뜨게 된 이유 역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하지만 눈앞의 정보는 답을 주기는커녕 나를 더 큰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이상 게이트의 발발로 성시현 헌터가 사망해 국가적 손실이 막대하다.]

모든 기사는 그 사실 하나에만 혈안이 돼 내 죽음을 숫자로 환산하기 바빴다.

그래서 보다 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 1군으로 올라오려고 고군분투한 건데…….

“이게 정말 서초 게이트라고.”

혼자 선두에 선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살았다고 생각했다.

가장 마지막에 나간 우신도 살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게이트 안에 투입된 후발대 중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천천히 소리 내어 활자를 읽어 내려갔다.

“혼자서 게이트를 클리어한 성시현 헌터는 끝내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더불어 후발대로 들어간 성주운 담당자 외 8명도 게이트 안에서 사망했으나 사체를 회수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상 게이트의 여파로 문밖으로 나오던 중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부검을 통해…….”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컴퓨터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쾅 소리에 놀란 정보실 담당자가 무슨 문제가 있냐며 다가왔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정보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6년 전 서초 게이트의 생존자는 오직 강우신 한 명뿐이라는 거다.

* * *

“양 헌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 미안해요.”

내 짧은 사과에 마주 앉은 다영은 걱정된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컨디션 안 좋아 보이는데 오늘은 이쯤에서 할까요? 퇴원하자마자 무리하는 것도 안 좋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제야 내 표정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럼 잠깐만 쉴까요.”

내 말에 다영은 좋다며 기지개를 켰다.

그녀는 출출하다며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보실을 다녀온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났다.

계속해서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들이 나를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현장에는 게이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게이트 밖에서 현장을 관리하는 담당자들의 머릿수도 꽤 됐다.

그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나 혼자 A, B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던 시절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그리 조직적이지는 않았으나 센터가 파견한 현장 담당자는 존재했었다.

나는 그날의 일을 텍스트로 읽기보다 좀 더 생생하게 듣기 위해 당시 현장 스텝이었던 이들을 만나 보려 했다.

그래서 정보실에 인물 정보를 검색했다가 또 다른 놀라운 사실에 직면했다.

당시 서초 게이트를 담당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이유 모를 사고를 당해 입원하거나, 행방불명됐거나 먼 곳으로 발령이 났다.

기가 막힌 우연에 헛웃음이 났다.

어디서부터 사실 여부를 확인해 봐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을 때 다영에게 연락이 왔다.

연구실 관련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잊지 않고 연락을 준 것이다.

다영은 내 방에 도착하자마자 창백한 내 안색을 보고 사색이 됐다. 그러더니 밥부터 먹자며 배달 앱을 켰다.

그렇게 벌써 이틀째 그녀와 내 방 테이블에 앉아 서초 게이트에 있던 현장 스텝 중 연락처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부엌에 간 다영은 냉장고를 열어 보곤 소리쳤다.

“도대체 뭘 먹고 살았던 거예요?”

잔뜩 성이 난 목소리에 웃음이 났다. 이틀 내리 붙어 있었더니 내가 제법 편해진 모양이었다.

띠링-

때마침 문자가 울렸다.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 없습니다. 연락 그만 주세요.]

당시 현장 스텝들 중 거의 유일하게 연락이 닿은 사람이었는데, 서초 게이트라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이런 반응이다.

다영은 문자를 가만히 보고만 있는 내 모습에 어느 정도 문자 내용을 예감한 듯 그녀가 사 온 체리를 씻어서 들고 왔다.

“다시 처음부터 확인해 볼까요. 놓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말 동안 잠도 줄여 가며 이 일을 도와줬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인 걸 알기에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닙니다.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포기하시게요?”

다영의 물음에 나는 잠시 탁상 위에 높게 쌓인 전화번호부를 봤다.

저 수많은 사람 중 서초 게이트에 관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었다. 딱 한 사람을 빼고.

유일한 생존자 강우신.

그는 죽을 뻔한 생존자다. 그렇기에 여태까지 서초 게이트의 진실을 숨기려는 배후에 그가 있을 것이라고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일한 생존자이면서, 그답지 않게 센터의 마스코트 역을 자처하고 있는 것까지. 모른 척 넘어가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초조하게 손톱의 거스러미를 건드렸다. 이내 작은 상처가 나면서 핏방울이 맺혔다.

놀란 다영이 급히 일어나 구급상자에서 연고와 반창고를 가지고 왔다. 사양하려 하자, 다영이 단호히 말했다.

“반창고를 붙여 놔야 안 건드려요. 눈에 보이면 계속 건드리고 싶어지잖아요.”

그녀는 기어코 반창고를 붙여 줬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다영이 말을 이었다.

“그럼 잠시 이 일은 미뤄 두고 이거 볼래요?”

다영이 꺼내 온 건 연구실에 관한 자료였다. 갑작스러운 내 부탁을 들어주느라 자신이 찾아온 진짜 이유가 이제야 생각난 모양이었다.

이천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다영은 내가 연구실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는 걸 전제로 이야기했다.

지난 정보실 방문 때 나는 서초 게이트에 대해 알아보면서 연구실 정보까지 검색을 마쳤다.

연구실이라는 단편적인 단서만으로 다영이 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연구실’이라고 하면 다영의 또래는 전부 알 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 역시 서초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열람 제한 등급이 S급인 정보였다.

10년 전 에스퍼 강화 증진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외곽에서 연구가 진행됐었다.

연구 규모가 꽤 컸으나 에스퍼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고강도 훈련 과정에서 에스퍼 인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연구 부서가 폐지됐다.

다영은 화재로 잿더미가 된 연구실의 사진을 탁상 위에 올려 두며 말을 이었다.

“연구 중단 직후 연구실은 게이트 브레이크에 휩쓸려 불이 났어요. 놀랍게도 사망자는 대부분 연구원이었고요.”

다영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연구원 중에 바로 양하나의 부모님이 있었다.

“당시에는 천벌을 받은 거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실상 정확히 무슨 연구가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어요.”

“맞아요, 그렇게 말이 많았는데…… 에스퍼 강화 증진 훈련이라는 표제만 있고 아무런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하죠?”

“네, 모두 불타 소실됐다고.”

다영은 어딘가 찜찜한 얼굴로 턱을 괴었다.

“사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그 연구의 가장 큰 수혜자가 이곤 헌터라는 말이 있었어요.”

“수혜자요?”

“네. 자료가 모두 소실돼 확실한 정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몇 안 되는 연구실 출신 에스퍼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돌았었나 봐요.”

나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다영은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옮기는 게 찝찝한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연구실의 유일한 성공작.”

그녀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날 것이었다.

다영은 이곤에 대해 알아본 건 이게 전부라며 어쩐지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부탁한 일에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쪽은 오히려 나이지만 그런 말이 서툴러 대신 다른 주제를 꺼냈다.

“다영 헌터는 왜 나한테 안 물어봐요?”

“네?”

“게이트고 연구실이고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 말이에요.”

궁금할 법도 한데 다영은 절대로 묻는 법이 없었다.

다영은 잠시 고민하다 제법 담백한 얼굴로 답했다.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잖아요? 특히 양 헌터가 하는 일이니 더더욱이요.”

“…….”

“하지만 전 그게 뭐든 크게 신경 안 써요. 도울 수 있는 거로 만족하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말하고 싶어도 참아 줘요. 전 부탁 받은 일만 할래요. 더 깊이 알게 되면 그땐 부탁받은 거 말고도 더 도와주고 싶어 오지랖 부릴 거 같으니까요.”

다영의 단호한 말에 나는 잠시 그녀의 눈을 피해 체리가 가득한 접시를 보다가 답했다.

“……고마워요.”

다영은 그 말이면 충분하다며 웃었다. 그러고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곧 합동 훈련 있네요. 집공 팀도 참가하죠?”

“아, 네. 그런다고 알고 있어요.”

합동 훈련은 1, 2군 에스퍼가 함께 과제를 클리어하는 훈련으로 보통 1군 혹은 집공 팀 소속의 연차가 높은 에스퍼가 리더를 맡는다.

주위에서 하는 얘길 들어 보니 4년 가까이 유지된 훈련인 것 같았다.

“보통 가을 끝 무렵에 하는데 이번에는 좀 이르네요.”

아마 리더 역을 맡게 될 집공 팀의 인원들이 이천 게이트에서 높은 공을 쌓았기 때문에 그 기세를 몰아 훈련 시기를 앞당긴 듯했다.

그런데 하필 딱 장마 기간이 겹쳐 무슨 훈련을 하게 될지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이천 게이트 다녀와서이곤 헌터하고 이야기는 해 보셨어요?”

다영의 말에 나는 작은 탄성을 내뱉고 잠시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그게…… 이곤이랑 연락이 안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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