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8화
“……수아 네가 전부 지킨 거구나.”
내 말에 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어차피 곧 성인이 되면 보육원을 나가야 했어요. 보육원의 동생들이 걱정된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어요. 저 혼자 살아갈 자신이요.”
“…….”
“그런 건 배운 적 없으니까.”
수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악마가 제 몸에 빙의했을 땐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게이트 안은 완전 우리 세상이었거든요. 보육원을 가장 안전한 장소로 만들고 오직 저만의 힘으로 동생들을 지킬 수 있었어요.”
놀이방에 있던 오래된 장난감들이 게이트의 기틀이 됐다.
장난감 모형처럼 저수지에는 인어가 살며 닳도록 읽은 도감 속 동물들이 몬스터가 되어 나타났다.
덕분에 현실에서는 산 중턱에 있는 소외된 보육원이 게이트에선 중심이 됐다.
수아는 그곳을 필사적으로 지켰다.
하지만 그곳은 결코 진짜 세상이 될 수 없다. 바다를 흉내 내려다 저수지가 된 어느 모형물처럼 말이다.
그 순간, 수아가 피를 토해 냈다. 피부가 다 썩어 들어간 것처럼 몸 안도 엉망인 모양이다.
그녀는 검은 피를 바닥에 뱉어 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언니를 이 안에 불러들인 이유를 이미 짐작하고 있죠? 곧 저는 죽을 거예요.”
“…….”
“제가 죽고 게이트가 해제될 때 땅이 흔들릴지도 몰라요. 보육원 건물이 오래되었으니까 제 동생들을…….”
“함께 나가자.”
내 단호한 말에 수아는 하던 말을 멈췄다.
그녀의 말처럼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이 게이트가 힘을 잃어 가고 있다는 걸, 게이트 주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빙의든 기생이든 악마가 깃든 사람의 몸은 살릴 수 없다.
몬스터에 감염된 자는 몬스터로 분류되며 사살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내 말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모든 걸 담담하게 말하는 수아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났다.
삶 포기하려는 수아의 모습 위로 자꾸 성시현으로서의 마지막 기억이 겹쳤다.
그 때문에 말이 멋대로 쏟아졌다.
“밖에 S급 가이드가 있어. 그의 가이딩이라면 수아 너도 살아 나갈 수 있을지 몰라, 나가서…… 센터에 가자. 언니랑 센터에 가서 헌터가 돼, 수아야.”
“…….”
“그래서 너 같은 친구들을 네 손으로 직접 구해.”
다리 위에서 부모님과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도한 후에야 나는 각성했다.
그렇게 에스퍼가 된 후 한동안 한 가지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아, 어쩌면 그때 우리 부모님은 다리 위에서 그렇게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만 더 체계가 잘 잡혀 있었어도. 아니, 내 각성이 조금만 더 빨랐어도 부모님은 살았겠구나.
수백 가지의 가정들을 떠올랐지만 결국 현실은 나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솔직히 나도 왜 사람이 끈질기게 살아남으려 하는지 몰라. 계속 그 답을 찾고 있으니 말이야.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우습게도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시현의 몸으로 만난 인연이 아닌 하나의 몸으로 만난 인연들이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떠오르는 건 강우신이었다.
삶의 미련을 가지게 하는 내 가이드.
“수아야,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더 나아.”
수아의 둥근 뒤통수를 쓸어내렸다.
“살아가다 보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기고, 그렇게 마주친 찰나의 행복이 살아갈 힘을 준대. 네 동생들이 커 가는 걸 네가 직접 보란 말이야.”
썩은 수아의 피부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죠?”
그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언니 말을 들은 것뿐인데도 너무 좋아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요.”
수아가 눈물진 얼굴로 활짝 웃었다.
“언니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안 늦었어.”
“이제 정말 더 이상은 못 버텨요. 밖에 있는 언니의 몸도 위험하고요.”
앉아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말해 주는 어른을 만난 건 처음이었어요.”
어떻게 봐도 이별을 고하는 말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잠깐만, 잠깐 수아야.”
다급하게 수아를 불렀다. 그녀는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나를 끌어당겼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요.”
어느새 내가 흙더미 속으로 찔러 넣었던 검을 수아가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수아의 손을 타고 열기가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뜨거웠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주저를 느낀 수아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어서요. 마지막은 부디 내 뜻대로 하게 해 줘요.”
간곡한 목소리가 끝을 예감한 듯 떨렸다.
수아는 내 손을 쥔 채 칼끝을 제 심장 가까이 가져다 댔다. 서서히 힘을 주자 살을 파고들어 가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 눈동자가 흔들리자, 수아가 눈물지었다.
“진심으로 고마…….”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수아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 냈다.
그와 동시에 우리를 감싼 공간이 무너지듯 흔들렸다.
그 순간 수아가 내 가슴께를 강하게 밀쳤다.
나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나는 겨우 숨통이 트인 사람처럼 거센 기침을 쏟아 냈다.
지금까지 수아가 만든 물방울 속에 갇혀 있던 모양이었다.
물에 푹 젖은 몸이 추울 법도 한데, 나를 꽉 끌어안고 있는 온기 덕에 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흐렸던 시야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쩐지 강우신 가이드는 볼 때마다 울고 있네요.”
“미안합니다.”
나를 품 안 가득 끌어안고 있는 건 우신이었다.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안심이 되는 거 같다고 느낀 순간, 내 머리 위쪽으로 한 두 방울의 액체가 떨어졌다.
검은 피였다.
고개를 들자 내가 끌려 나온 물방울이 터진 자리에 수아가 있었다.
민지민의 장검에 배가 관통당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 칼끝을 타고 수아의 피가 내 옷 위로 떨어진 거였다.
그제야 수아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눈물이 번진 눈가까지.
그 얼굴을 마주한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우신이 정신을 놓지 말라며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양하나 헌터 폭주 직전입니다!”
“곧 게이트 상태 해제될 거예요. 이동 가능한 인원 모두 보육원으로 갑니다!”
사위가 소란스러웠다.
잘린 필름처럼 기억이 듬성듬성했다.
기억이 나는 건 우신이 나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5. 거짓을 위한 거짓말
“얼마나 남았지?”
민지민의 물음에 권미래는 일정표를 힐끗 보고는 답했다.
“삼십 분 정도 남은 거 같습니다.”
권미래의 말에 유제이는 가죽 소파 위로 몸을 늘어트렸다.
“사람을 불러다 놓고 얼마나 기다리게 하는 거야. 난 이래서 외부 일정이 싫어.”
유제이는 목을 죈 넥타이가 불편한지 엉망으로 풀어 헤쳤다.
그 모습에 옆에 앉아 있던 곽현주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먼지 날리니까 가만히 있는 게 어때. 좋은 거 준다고 하니 좋게 좋게 있자고. 옆에 두 사람 좀 본받아 봐.”
곽현주가 턱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한지원과 백건희가 각 잡힌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천 게이트 클리어로 센터 1팀과 오델리아 길드는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에 따라 협회에서 클리어 보상과 표창장을 내리겠다며 그들을 불러들였다.
센터나 협회에서 상을 수여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는데, 이번에 상을 수여하는 건 그 이유가 확실했다.
우선 메테오를 제외하면 길드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더불어 오픈 필드형이라 헌터들이 흩어져 활동한 덕에 대규모 게이트임에도 유례없는 생존자 수를 경신했다.
각 팀은 중심 도시뿐 아니라 마을, 아파트 등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을 대거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에서도 언론의 큰 이목을 산 건 보육원에서 발견된 아이들이었다.
게이트 속에서 14세 미만의 아이들이 대거 살아남은 경우는 여태껏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 보고를 학계에서도 집중했다.
물론 지금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수많은 생존자를 자신들이 구해 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을 지킨 건 게이트의 주인이자 피해자인 수아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 누군가 노크했다.
똑똑-
문이 열리며 김형도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센터 1팀과 함께한 오델리아 길드원들도 표창장을 받기 위해 협회에 온 것이다.
김형도의 뒤를 따라 이필엽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일주일만인가요? 다들 얼굴색이 좋아 보여 다행이네요.”
밝게 인사하는 그의 뺨에 반창고가 달라붙어 있었다.
민지민과 함께 서쪽을 맡았던 그는 정신계 에스퍼지만 몸을 쓰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탓에 유제이 쪽에 합류했을 때 이미 온몸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그는 본인보다 폭주 직전의 하나를 우선했고 보육원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이필엽의 방문에 유제이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이렇게 반갑게 인사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그렇다고 못 할 사이도 아니지.”
유제이의 말에 답한 건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온 조이현이었다.
조이현은 권미래를 보고는 박이설의 안부를 전해 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필엽은 민지민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또 언제 이렇게 좋은 일로 모일 수 있겠습니까. 함께 일하게 돼도 생존을 앞다투어야 할 때가 훨씬 많으니 이런 날은 그냥 함께 즐기자고요.”
그의 말처럼 이런 일은 드물었다.
민지민도 이필엽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대답 없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