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7)화 (87/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7화

때마침 도착한 조이현이 땅의 흙을 일으켜 유제이를 보조했다.

“길드장님과 민지민 씨도 곧 당도할 겁니다.”

조이현은 그렇게 말하곤 능숙하게 전투 자세를 갖추었다.

아까부터 무섭게 솟아오르기 시작한 물기둥은 이제 언제든 땅 위를 쓸어 버릴 듯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수아가 다루는 물은 점성이 있는 액체였다.

보육원에서 날 공격한 그것은 빠른 시간 내에 사냥감의 숨을 앗아 간다.

저수지의 물이 그 형질로 바뀌어 우리를 모두 질식시킨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부상자와 가이드 등 이 많은 수의 사람들을 안전하게 옮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수아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나는 죄책감에 짓눌려 손을 놓지 못하는 우신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그의 손을 쥐었다.

“날 봐요.”

“…….”

“강우신 가이드. 나한테만 집중하고 아무것도 보지 마요.”

우신의 불안정한 눈빛이 날 향해 왔다.

“나한테 그랬죠. 죽을 생각 말라고. 그러니 그 두 눈으로 날 똑바로 지켜봐요.”

어딘가 귀에 익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잊었던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구해 낸 사람들에게 안심하라며 이런 말을 곧잘 하곤 했다.

항상 흔들림 없던 우신의 불안한 눈을 보자 그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우신의 두 눈을 마주하며 말을 맺었다.

“내가 다시 이 손을 잡을 때면 모든 게 괜찮아져 있을 테니까. 약속할게요.”

그러곤 팔에 두르고 있던 황금색 천을 풀어 우신의 손에 쥐여 주고는 그를 등졌다.

스치듯 본 우신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젖어 있는 듯했다.

“조이현 헌터.”

이어셋을 통해 말하자 그가 힘겹게 뒤를 돌아봤다.

“정면 보고 내 말 들어요.”

-…….

“내가 신호를 하면 흙을 움직여 그녀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겠어요?”

-솔직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 분야가 아니라.

“……아주 잠깐만 막아주면 되는 거니까. 신호를 줄게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나는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유제이와 조이현을 어렵지 않게 상대하는 수아를 바라봤다.

자세를 낮추고 그녀의 시야 밖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수아의 두 발이 땅에 붙는 순간, 소리쳤다.

“지금!”

내 신호와 함께 조이현은 남은 힘을 짜내 그녀가 딛고 있는 주변의 땅을 마치 파리지옥처럼 움직여 수아를 집어삼켰다.

수아의 움직임이 묶인 순간, 나는 흙더미 안에 갇힌 수아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검이 꽂힌 틈 사이로 점성 있는 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에 흙더미가 빠르게 무너지며 수아는 물론이고 나 역시 커다란 물방울에 갇혔다.

“양하나!”

멀리서 웅웅거리는 우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 빠진 듯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 곧 숨이 부족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깜깜한 밤, 저수지 안이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겨우 물 밖으로 기어 나왔다.

밤인데도 주변이 환했다. 산불이 난 탓이었다. 며칠 전 꿈속에 본 풍경이었다.

어린 양하나의 몸으로 새하얀 연구실 복도를 헤매다 문을 열고 나오니 이곳이었다.

물에 비친 내 모습을 살피자 성시현이 보였다.

구형 전투복을 보니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 왔을 때의 모습인 듯했다.

“…….”

우거진 나무들 너머로 불길에 휩싸인 둥근 지붕의 건물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그곳이 내가 밤마다 복도를 헤매던 연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수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난밤 꾼 꿈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분명 피투성이의 양하나 있었다.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이다.

그 아이를 떠올리자 어쩐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다.

나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수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나를 마주하면 깊은 서랍 속에 갇혀 있는 기억이 고개를 내밀어 줄 거 같았다.

손을 뻗어 수풀을 걷어 내자 기억대로 어린 양하나가 서 있었다.

맨발의 아이는 연구실을 제집처럼 돌아다니던 활기찬 모습과는 다르게 지쳐 보였다.

내가 하나에게 무어라 입을 여는 순간, 고개를 든 그녀의 흰자가 검게 변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수아가 그랬듯 액체를 뱉어 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얼굴에 달라붙은 그 액체를 떼어 내기 위해 뒷걸음질 치는데, 사위가 어두워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순간 눈앞이 환해지더니, 촛대가 보였다.

어느샌가 풍경이 바뀌어 있었고, 어둠 속에 수아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그림자가 길게 뻗어 있었다. 그림자의 형태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지원의 예상이 적중한, 듯 그림자는 악마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빤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여긴 네가 만들어 낸 허상의 공간이니.”

내 물음에 수아는 두 눈을 끔뻑이다 답했다.

“허상의 공간. 그런 말보다는 이렇게들 부르던데요…….”

“…….”

“주인 방.”

수아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만들어 낸 공간으로 끌려 들어왔다고는 생각했는데, 맨몸으로 주인 방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십수 년 넘게 게이트 클리어하며 다양한 클리어 루트를 보곤 했는데, 이건 난생처음 보는 진입 루트였다.

‘주인을 찾지 못하면 절대 진입할 수 없는 주인 방이라니.’

기묘한 침묵 속에서 수아가 작게 기침했다. 손에 검붉은 피가 흘렀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수아는 미세하게 웃어 보였다.

한계가 온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게이트를 삼 주 가까이 유지한 것도 모자라,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아 보고자 헌터들에게 끊임없이 몬스터를 만들어 보냈다.

아직 제정신은 물론 몸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기적이었다.

수아는 한 걸음씩 서서히 거리를 좁혀 왔다. 나는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수아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언니가 처음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지켜봐 왔어요. 안 그래도 언니 손에 죽을 생각이었으니 그렇게 긴장하지 마요. 언니도 충분히 한계일 텐데.”

“어떻게 몸 안에 악마를 기생하게 한 거야.”

내 나직한 물음에 수아는 걸음을 멈췄다.

“보통 빙의했다고 생각하던데.”

“네 의식이 남아 있잖아.”

“그게 아니라 언니도 저 같은 입장이라 잘 아는 거 아닌가요?”

“뭐?”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래서 만나 보고 싶어서 언니를 기다렸던 거고요.”

수아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질문 똑같이 돌려줄게요. 언니야말로 몸 안에 도대체 뭘 넣고 다니는 거죠.”

“…….”

“아니, 그래서 언니는 정체가 뭐예요?”

수아의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많이 지친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놀란 내가 다가가자 수아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악마를 몸 안에 기생하게 했냐고 물었죠? 글쎄요. 빙의고 기생이고 제가 선택한 일은 아니어서요.”

“…….”

수아는 눈을 천천히 끔뻑였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게 그래요. 애초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부모도 가난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지원의 말처럼 특정 보육생의 일탈 행위 이후 서서히 보육원의 지원이 끊기던 건 사실이었다.

다만 그 안에는 빠진 내용이 있었다.

왜 보육생이 일탈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다.

잠깐 둘러본 보육원은 후원이 끊긴 지 얼마 안 됐다는 것치고 아이들을 위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

수아는 말끝을 흐리다 한 손을 내밀었다. 주저앉은 그녀를 일으켜 달라는 뜻 같았다.

“내가 택한 거 하나 없는데 이렇게 사는 게 억울했는데.”

나는 잠시 주저하다 수아가 내민 작은 손을 마주 잡았다.

“그에 비하면 악마한테 몸을 내주는 건 억울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과 함께 잡은 손을 통해 수아가 견뎌 온 시간이 강렬한 이미지가 되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유제이 때도 그러더니, 상대가 의도적으로 벽을 허물면 정신으로의 침투가 숨 쉬듯이 쉬웠다.

악마가 빙의한 사람의 신체가 버틸 수 있는 건 길어야 일주일이다.

그 안에 정신은 붕괴하고, 껍데기처럼 사용되던 몸은 곪아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그런데 어떻게 19살 수아가 어린아이의 몸으로 지금까지 게이트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그녀가 직접 보여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제법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 왔다.

보육원은 재단의 이미지 메이킹과 재벌들의 돈세탁, 후원 금액 횡령을 위해 설립됐다.

보육원 안에서 몇 년 동안 살아온 아이들의 치열한 삶을 단순한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수아를 비롯한 보육원의 아이들의 하루는 생존에 가까웠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가 한 번씩 빼돌린 음식이 굶주린 아이들을 살렸다.

그렇게 점점 훔치는 양이 많아지다가 들켜 이내 지원에게 전해 들은 일이 벌어진 거였다.

“그러다 게이트에 휩쓸렸어요. 보육 교사 행세하던 어른들이 가장 먼저 도망갔고요.”

수아의 손등 피부가 검게 곪아 있었다.

악마가 수아를 숙주로 삼은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서서히 손을 놓으려는 수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역시…… 각성자였구나.”

내 물음에 수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제 뭣 같은 인생에 그건 제법 괜찮은 일이었죠.”

수아는 각성을 앞둔 에스퍼였다.

악마는 그런 수아가 내뿜는 강력한 에너지에 이끌려 그녀를 숙주로 삼은 것이다.

게다가 수아는 단순한 에스퍼가 아니었다. 척 보아도 S급을 웃돌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제 몸 안을 파고들던 악마와 싸워 그를 기생하게 만들었다.

아마 장기가 뒤틀리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아가 필사적으로 고통을 견뎌 낸 단 하나의 이유.

수아의 기억은 불행한 시간으로만 가득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종종 밝은 얼굴로 웃어 보이는 풍경 속에는 보육원의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몸 안에 자리를 튼 악마에게서 자신을 지켜 내는 싸움은 정신이 수백 번 붕괴하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제 몸이 곪고 작아져 가는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수아가 이 게이트를 유지한 건 모두 보육원 아이들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