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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5)화 (85/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5화

그건 수아를 만나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마치 내가 게이트에 들어왔을 때부터 내 모습을 지켜본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뒤를 돌았다.

이쯤이면 수건을 달라든지, 옷을 다 갈아입었다든지 보영이 입을 열 법도 했는데 내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너무나도 고요했다.

가림막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옷 다 갈아입었니?”

“…….”

침묵 속에서 내 심장이 쿵쿵 울리는 소리만 커져 갔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이불을 잡아채며 다급하게 말했다.

“잠시 들어갈게.”

이불을 치우자 쓰러져 있는 보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보영의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있는 수아의 등이 보였다.

정확히는 수아로 추정되는 이의 등이었다. 안에서부터 곪은 듯 등 피부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피부가 곪는다고 하더라고요. 신체를 안에서부터 좀먹는다고.”

“…….”

충분히 의심하고 경계할 기회는 있었다. 그런데도 항상 후회는 늦었다.

흰자까지 검게 물들인 수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걸 보고 곧장 홀스터 쪽으로 손을 뻗는데, 일순 얼굴에 차가운 무언가가 달라붙었다.

물속에 잠기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헌터님!”

귀가 울렸다.

“양하나 헌터!”

나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서서히 커지더니 물속에서 건져지듯 나는 기침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주변에 물이 흥건했다.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무리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김형도가 내 손목을 잡았다.

“정신 차리세요, 양 헌터님!”

김형도는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는 그제야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에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폈다. 보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지만, 수아는 보이지 않았다.

“수아, 수아는 어디 있습니까?”

내 물음에 형도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애들이 일제히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지원 헌터와 박이설 헌터가 아이들을 살피고, 제가 양 헌터를 찾으러 왔는데……. 제가 들을 때 수아는 이미 여기 없었습니다.”

김형도의 말에 내 주변에 고인 물을 만졌다.

수아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물 같은 게 얼굴을 감싸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는 생각했는데, 정말 사방에 물이 흥건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까부터 무전도 먹통입니다.”

김형도의 말에 나는 수아의 목적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위험해요.”

“네? 뭐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곧장 놀이방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김형도가 급하게 내 팔뚝을 잡으며 말렸다.

“정신 차리기 무섭게 어디를 가려고요!”

“저수지에요. 다들 위험할지도 몰라요.”

앞뒤 설명을 잘라먹고 그렇게 외치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다가 제 머리칼을 흐트러트리며 말을 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말 듣고 가요.”

김형도의 단호한 말에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를 보고 똑바로 섰다.

김형도는 짧게 심호흡하고는 잡고 있던 내 팔뚝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비상 사태라 양 헌터가 기절해 있는 사이 가이딩을 했습니다.”

“네? 제가 분명……!”

“정확히는 가이딩하려다 실패했어요.”

김형도는 내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가이딩이 힘들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잘 안 됐는데…… 말 그대로였어요. 도무지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네요.”

“그럼.”

“다만 하나는 알 수 있었어요. 양 헌터, 근육통이 생긴 게 제가 본 그 가이딩 이후가 맞죠?”

확실히 돌이켜 보니 그랬다.

우신에게 가이딩 받은 다음 날부터 근육통이 있었으니 시기적으로는 맞다.

“급하니 본론만 이야기하자면 제 생각에 양 헌터는 아마 특이 체질일 겁니다.”

“……특이 체질이요?”

“어제 말했죠? S급 에스퍼를 가이딩한 적이 있다고.”

묘한 불길함이 목덜미를 타고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 성시현 헌터도 특이 체질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져 보면 알 수 있어요.”

특이 체질. 그건 1차 접촉만으로는 가이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에스퍼를 가리키는 말이다.

성시현이었을 때 가이딩 적합도가 낮은 건 단순히 내게 문제가 있어서라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껏 내게 맞는 가이드를 못 만난 이유 역시, 내가 S급 에스퍼이기 때문이 아니라 태어났으면 안 되는 돌연변이기 때문이 아닐까.’

낮은 적합도에 이유를 찾지 못할 때면 번번이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특이 체질은 다수의 검사를 받아야 겨우 확인할 수 있으니 몰랐던 게 당연해요.”

형도는 상기된 얼굴이 됐다. 지나치게 특이 체질에 대해 잘 아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스쳤다.

“더 자세한 건 검사를 받아야겠지만, 아마 제 생각에는 1차 접촉만으로는 완벽한 가이딩이 안 되는 거 같습니다.”

의문에 답하듯 그는 성시현 헌터를 가이딩한 후 특이 체질을 가진 에스퍼에게 관심이 생겨 계속 구했다고 말했다.

‘1차 접촉으로는 제대로 된 가이딩이 안 된다니.’

우신과의 가이딩은 번번이 내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했다.

손을 잡거나 상대를 껴안는 등의 1차 접촉.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져 그 이상의 접촉 가이딩은 생각도 해 보지 못했다.

내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하자, 형도가 다시금 물었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까? 단순한 가이딩만으로는 안정되지 않는다든가.”

그의 말에 번번이 우신의 가이딩을 받으면 몸속에서 끓어오르던 열기가 떠올랐다.

몸에 맞는 가이딩이 처음이라 그것이 단순히 내 가이드를 원하는 욕망이라고만 치부했는데…….

그게 형도의 말처럼 특이 체질이 불러온 갈증이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았다.

“…….”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 해도 지금은 움직여야 했다.

김형도 역시 나를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혀를 차고는 말을 맺었다.

“그러니까 명심하라고요. 줄곧 괜찮았던 건 적절한 휴식과 틈틈이 가이딩을 받았기 때문일 거예요. 지금 같은 상태에서 에너지를 쓰면 폭주할 수 있어요.”

그의 말에 나는 명심하겠다는 대답과 함께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저수지 쪽으로 몸을 옮겼다.

* * *

물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몬스터를 끌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몬스터의 정체가 확실하지 않기에 지민과 이 팀장은 ‘그것’을 끌어내기까지 제법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장기전을 예상해 지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소규모로 작전을 이행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다르게 클리어 팀이 저수지에 도착하기 무섭게 정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몬스터가 정체를 드러냈다.

양 헌터의 말처럼 몬스터는 세이렌, 그러니까 인어였다.

상체는 사람의 형체를 한 그것은 아가미를 벌리며 귀가 뜯겨 나갈 거 같은 사나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소리가 어떤 신호이기라도 했는지, 순식간에 사위에서 몬스터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모두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몬스터들이 떼거리로 등장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습니다.”

조이현의 말에 이 팀장도 거친 숨을 내뱉었다.

벌써 두어 시간째 끝을 모르고 몰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모두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지치게 하는 건 몬스터를 베는 감각이었다.

해치웠나 싶으면 어느 순간 몬스터의 사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그 자리에 물만 남았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민할 여력이 없음에도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 *

“윽!”

등을 공격당한 곽현주는 비명과 함께 그대로 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뒤에 있던 흰개미가 다시 앞발을 들어 올리는 순간, 배 한가운데가 갈라지며 몬스터의 살점이 터져 나갔다.

강화된 주먹으로 몬스터를 한 방에 처치한 유제이는 작게 심호흡하더니 매서운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곽현주를 노려봤다.

그는 배에 힘을 주어 큰소리쳤다.

“정신 안 차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어?”

평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민지민의 그룹원이 된 후 몇 개월간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사이였다.

곽현주는 그의 말에 어이없는 웃음을 뱉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한테 도움받는 건 영 자존심 상하는데.”

“말이나 못 하면.”

옅게 웃어 보이지만 곽현주의 옷은 피에 젖어 있었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듯 그녀의 능력으로 동결시킨 몬스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제이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를 덮쳐 오는 몬스터를 찢으며 입을 열었다.

“정신 못 차리겠으며 뒤로 빠져서 가이딩이라도 받고 오던가.”

조금 떨어진 후방에 강우신과 권미래가 헌터들을 서포트하고 있었다.

유제이는 곽현주를 그리로 보내고 어떻게든 이곳을 혼자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로서는 나름 큰마음을 먹고 한 제안이었는데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유제이는 뒤돌아 곽현주를 확인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보육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 듣고 있어? 멍청하게 어딜 가만히 보고 있어?”

짜증 섞인 유제이의 말에 곽현주가 멀거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 애, 그 꼬마 아니야?”

“꼬마?”

유제이는 그녀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곽현주가 가리킨 방향에는 얇은 티셔츠를 입고 서 있는 수아가 있었다.

아이는 몬스터들 사이에 멀뚱히 서서는 이쪽을 그들은 바라보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유제이의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

“저 초딩이 왜 여기에…….”

유제이의 혼잣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곽현주는 수아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얘, 여기까지 어떻게 혼자 왔어?”

다급한 물음에도 아이는 대답 없이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릴 뿐이었다. 유제이가 수아를 바라보는 순간,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몬스터 사이에 유유히 서 있는 아이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양팔이 투명한 액체처럼 바뀌었다.

이내 흰개미의 앞발처럼 변한 그것은 가까이 다가온 곽현주의 몸을 후려치려 했다. 매섭게 변이한 데 비해 팔을 휘두르는 동작은 엉성했다.

덕분에 곽현주도 어렵지 않게 몸을 피했다. 정확히는 피하려 했다.

그 움직임을 예상한 듯 눈 전체가 검게 변한 수아의 손끝에서 동그란 구가 튀어나와 그녀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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