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3화
지민의 말에 유제이가 앉은 자리에서 깡충 튀어 올랐다.
“뻐근해 죽는 줄 알았네. 보스 몹 낯짝 좀 봅시다, 이제.”
“인원은 어떻게 할 거죠. 만약을 대비해야 합니다.”
이 팀장의 말에 민지민은 이미 거기까지 생각했는지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전투계 에스퍼는 모두 참가합니다. 여기 양하나와 한지원 헌터만 빼고.”
나는 작게 기침했다.
저수지에 다녀온 다음 날부터 기침이 나더니 오늘 아침에는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붉어진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예상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민지민이 턱을 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예상했다는 얼굴이네요. 따라가겠다고 고집부릴 줄 알았는데.”
“……몸 관리를 못 한 건 어디까지나 제 잘못이니까요.”
민지민은 정답이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 헌터가 능력을 쓰려면 한지원 헌터가 있어야 하니 두 에스퍼와 박이설, 김형도만 남고 남은 멤버는 내일 클리어 작전에 동원됩니다. 그렇게 알아 두고, 회의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한테도 일러 줘요.”
회의가 끝나고 나는 가장 빠르게 천막을 빠져나왔다. 지원이 내 뒤를 따라 나왔다. 내게 달라붙는 지원을 보고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내 사과에 지원은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저한테 사과하고 그래요.”
“저 때문에 게이트 클리어에서 제외됐잖아요. 이번 게이트만큼 이름을 알리기 좋은 기회도 없는데 말이에요.”
내 말에 지원의 눈빛이 묘해졌다.
그의 이야기를 전부 듣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집공 팀에 남아 있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의 여동생과 관련되어 있다.
가족과 관련된 일이니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거다.
그런 그에게 기회를 빼앗았으니 묘한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목이 간지러운 탓에 기침하자, 지원은 내 사과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담요를 건넸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지켜야죠. 지금은 양 헌터 몸 상태나 신경 써요. 저수지가 클리어 루트라고 아직 확정 난 것도 아니잖아요.”
“…….”
나는 대답 없이 그가 건넨 담요를 받아 들고는 휴식을 위해 마련된 천막으로 향했다.
그의 말처럼 확정 난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높은 확률로 저수지가 클리어 루트일 것이다.
직감인 터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게이트 안에서 이 중심 도시 외곽으로만 흐르는 강력한 전류가 하천에만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저수지가 있었다.
만약 게이트의 주인이 인어 같은 물을 다루는 몬스터라면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이 됐다.
‘저수지에 사는 인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어지러웠다.
하필 이런 중요한 시점에 열이 나서.
천막 안에서 내 기침 소리만 나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형도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의외의 방문에 한 박자 늦게 들어오라 답했다. 그는 쟁반 위에 죽이 담긴 그릇을 얹고 들어왔다.
“강우신 가이드가 가져다주라고 해서요.”
“아.”
오늘 저녁 식사 당번은 강우신이었다.
하루 종일 내 이불과 약을 챙기더니 다른 일을 할 때도 기어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내게 죽을 먹였다.
그답다고 해야 할지.
“고마워요.”
나는 죽을 받아 들고 김형도를 빤히 쳐다봤다.
할 말 없으면 이만 가 보라는 뜻이었는데 그가 선 자리에서 꿈쩍을 하지 않았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내 물음에 김형도는 머쓱한 얼굴로 답했다.
“아, 그게, 꼭 빈 접시를 가져다 달라고 강우신 가이드가 부탁해서요.”
참 그다운 부탁이었다. 나는 별수 없이 죽을 먹기 시작했다. 조용히 식사하는 동안 김형도는 어색하게 내 앞에 마주 앉았다.
좁은 공간에 단둘이 있는 게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쯤 그가 입을 열었다.
“컨디션은 아직도 많이 나쁘신가요.”
“걱정하실 만큼은 아니…….”
“괜찮다면 저도 봐 드릴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숟가락질을 멈췄다. 게이트에 들어온 이상, 강우신이 다른 에스퍼를 가이딩하는 일은 있어도 그 반대의 일은 없었다.
당연했다. 예비이긴 하나 전담 가이드인 강우신이 내 옆을 떡하니 지키고 있었으니.
그런 상황에 감히 날 가이딩해 보겠다고 나서는 가이드가 있을 줄이야.
나는 잠시 눈을 끔뻑였다. 하긴 외부 사람인 김형도에게까지 내 적합도에 대한 소문이 닿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아마 힘드실 겁니다.”
내 말에 김형도의 미간이 살짝이지만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김형도 가이드를 못 믿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저희는 매칭 테스트도 보지 않았을뿐더러 저는 가이딩 적합도가…….”
“굉장히 낮다고요.”
“네.”
그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 작게 한마디 덧붙였다.
“아마 강우신 가이드가 알아서 하겠지만…… 당사자가 본인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적합도뿐 아니라 접촉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김형도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못 본 사이에 가이딩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진 모양이었다.
다만 말을 하면 할수록 천막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간 더 죽을 먹다 어색함에 먼저 입을 열었다.
“그새 강우신 가이드와 가까워졌나 봅니다.”
“네?”
“이런 부탁도 들어주고.”
내 말에 김형도는 아, 라는 작은 탄성과 함께 살짝 붉어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친하다니. 그러면 좋겠지만 제가 일방적으로 강우신 가이드를 선망하는 쪽에 가까워요.”
S급인 강우신을 시기 질투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그를 존경하거나 선망하는 가이드 역시 많았다.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기에 더 깊게 묻지 않았는데, 김형도가 말을 이었다.
“등급에 주눅 들지 않는 가이드는 처음 봤었거든요.”
“등급에 주눅이 안 들어요?”
“아시겠지만 강우신 가이드는 6년 전만 해도 C급이었잖아요. 저는 그때부터 강우신 가이드를 알았거든요. 일방적으로지만.”
나는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오델리아 길드 출신의 김형도와 센터 출신의 강우신이 만날 만한 곳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가이드 직업 훈련밖에 없다.
과거, 지금보다 더 친화력 없던 그를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의아해하는데 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딱 한 번 본 거지만, 사설 가이딩 센터 앞에서 만났거든요.”
“사설 가이딩 센터요?”
김형도는 그때를 회상하듯 눈을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네, 저는 그때 입사 한 달을 갓 넘긴 신입이었는데. 말도 안 되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었습니다.”
“말도 안 되게 좋은 기회요……?”
물으면서도 그 기회가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실지 모르겠는데 죽은 성시현 헌터의 가이딩을 딱 한 번이었지만 맡았었습니다.”
예상한 답이 그의 입을 통해 나왔다.
“…….”
그건 제법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김형도는 아직도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고 말하며 나와 시선을 마주쳐 왔다.
그 진지한 눈을 보고 있자니, 가이딩하던 그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험 부족으로 가이딩은 엉망이지만 끝까지 하려는 패기만큼은 제법이었다.
“가이딩을 맡았다고는 하지만 결국 형편없이 가이딩하고 쫓기듯 그곳을 빠져나왔죠.”
김형도는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본인도 그때의 가이딩이 형편없었다는 걸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때였습니다. 강우신 가이드를 본 게.”
“가이딩실 밖에서요?”
“네, 정확히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머지않아 그 가이딩실을 뛰쳐나올 걸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이에요.”
“기다리고 있었다니. 그건 김형도 가이드의 추측입니까?”
확실히 그즈음 우신은 내가 게이트 클리어 후 습관처럼 사설 가이딩 센터에 들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후배로서 이따금 들르는 줄 알았지, 한 번도 날 기다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물음에 형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아마 맞을 겁니다. 당시 길드장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거든요.”
형도는 민망한 웃음을 지우고서는 이 팀장을 흉내 내듯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성시현 헌터가 누구에게 가이딩을 받든 결국 어울리지 못할 걸 아는 사람처럼 언제나 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해요.”
강우신이 매일같이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한 번도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은 적 없는 건 맞지만 강우신이 그때마다 매번 나타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반박하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사설 가이딩 센터에 들를 때마다 강우신 가이드의 가이딩을 받지 않았습니다만.”
내 말에 형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아요. 이 팀장님이 강우신 가이드를 못마땅하게 여긴 게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
“매일같이 와서 성시현 헌터의 상태를 확인하면서도 가이딩하러 들어가진 않았다고 해요.”
형도는 마치 육 년 전 그날을 떠올리듯 시선을 먼 곳에 두고 말을 이었다.
“……C급인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으니 최고의 컨디션이었을 때만 가이딩을 했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확실히 우신은 내가 기계나 약물 가이딩으로 버티기 힘들 날, 청량한 에너지로 조금은 편하게 해 주곤 했다.
매칭률이 현저하게 낮았으니 기계로는 측정할 수 없는 궁합이 잘 맞거나 단순히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의 말처럼 그게 의도된 거라면 내가 한계일 때마다 총력을 쏟은 그의 에너지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길드장님은 그런 점이 껄끄럽다고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거든요.”
나는 숟가락을 내려 두며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전 높은 등급의 에스퍼 가이딩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진 채 살아갔을 겁니다.”
그 순간, 겁에 질려 방을 빠져나가던 김형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듣고 욕심이 났거든요. 아,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가이딩에 집중해 보고 싶다고요.”
나는 죽을 절반쯤 비워 내고 그릇을 쟁반에 내려 뒀다. 김형도는 자연히 그것을 받아 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강우신 가이드를 선망하게 된 건 정확히는 그가 아직 C급 가이드였을 때였습니다.”
그는 마치 그게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강우신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