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2화
그 이후 꾸준히 지원을 받다가 작년부터는 보육원 출신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며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소위 일탈 행동을 일삼는 게 관내 지구대에 걸리며 주민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고 점차 후원이 끊기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것도 그때부터 시작한 모양이에요. 부족한 식자재를 보충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지원은 제가 알아낸 것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말에 나는 새삼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어제 계속 아이들이랑 있더니 제법 얻은 게 많았나 봐요.”
동생이 있다고 하더니, 강우신도 그렇고 한지원도 그렇고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내 감탄에 지원은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라며 웃는데, 옆에서 엿듣던 유제이가 빈정거렸다.
“헌터면 몬스터를 잡아야지, 애들이랑 시시덕거리기나 하고. 한심한 새끼.”
그에게 한마디 하려는데 이 팀장이 입을 열었다.
“저기 보이네요.”
저수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지도에서 봤을 때도 제법 규모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수지는 선 자리에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컸다.
큰솔 녹음이라는 이름은 보육원을 감싼 나무들 때문에 붙은 게 아니라고 한다.
여름이면 저수지를 감싼 거대한 푸른 잎들이 호수에 비치는데, 그 모습 때문에 큰솔 녹음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말 그대로 눈이 내려 흰 풍경의 저수지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름답네요.”
이 팀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게이트의 아름다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반경만 조사하기로 합시다. 2인 1조로 움직이고 이상이 있을 때는 무조건 무전하고 대기합니다.”
민지민이 매뉴얼을 읊었다. 짧게 대답하고 지원과 함께 지정받은 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자국이 보이긴커녕 아무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메테오 길드가 이곳에서 당한 게 맞다면 이곳에 있는 건 대체 뭘까.
고민이 깊어지는데, 한 발자국 앞서가던 지원이 호수를 바라보다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 정도 추위인데 저수지가 얼기는커녕 투명하네요.”
“그러게요. 너무 투명해서 안에 뭐가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지원의 말에 호수로 시선을 옮기는 데 투명한 저수지의 표면에 내 모습이 비쳤다.
그림자처럼 새카만 전투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자, 순간 두통이 몰려 왔다.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 걸음을 주춤거리다, 꿈속에서 본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 양하나를 바라보고 있던 건 성시현이었다.
불에 휘감긴 호수에 내 모습이 그 어떤 것보다 선명하게 비쳐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전투복을 입은 내가 그곳에 있었다.
의미 모를 이미지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곁에서 지원이 나직하게 내 말에 반응했다.
“그러게요. 현실감이 없는 게, 꼭 그거 같아요. 애들 장난감.”
지원의 말에 나는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을 떨쳐 내듯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애들 장난감이라뇨?”
내가 물을 줄 몰랐는지 지원은 잠시 당황스러워하다가 설명하려는 듯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어제 애들 놀이방에서 모형 장난감을 봐서 그런지, 그거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형 장난감이요?”
“네. 장난감이 많았는데, 그중 책상 위에 놓인 게 가장 눈에 띄더라고요. 인어공주 모형 세트였는데, 인어가 사는 바다를 모형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바다가 아니라 꼭 저수지같이 생겼었어요.”
지원은 그래서 수아가 이 저수지를 인어가 사는 저수지라고 한 게 아닐까요, 말하며 웃었다.
“…….”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지원은 유제이의 말처럼 자신이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 버렸다고 말하며 도리어 사과했다.
지원의 말이 자꾸만 마음을 불편하게 해 머리가 복잡해질 때, 이어셋을 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몬스터의 흔적으로 보이는 걸 찾았습니다. 서쪽으로 모여 주세요.
이 팀장의 목소리였다.
* * *
동쪽으로 움직였던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른 팀원들이 모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앞에 있는 조이현을 제치고 그들이 둘러싼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부서진 울타리였다. 저수지 둘레를 따라 나무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의 울타리만 부서져 있었다.
꼭 누군가 울타리를 부수며 그 너머로 넘어간 것처럼 말이다.
내가 부서진 울타리에 정신이 팔려 있자, 쭈그려 앉아 있던 이 팀장이 내 발밑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걸 보세요.”
그제야 반쯤 뽑혀 있는 울타리가 보였다. 그 부분의 땅이 미묘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얼어붙은 눈인가, 싶었는데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물고기 비늘 같죠.”
이 팀장이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끼고는 부서진 나무 울타리를 완전히 뽑아 냈다.
“눈이 온 탓에 잘은 안 보이지만 땅을 적신 얼룩은 피로 보입니다. 이 근방의 땅 위로 눈이 쌓여 보이지 않겠지만 아마 여기서 메테오가 전투를 치른 게 확실한 듯합니다.”
이 팀장의 말에 곽현주는 주위를 둘러봤다.
“피와 물고기 비늘이라…… 시체가 전부 저수지 안으로 끌려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하지만 보다시피 물 안은 시체는커녕 몬스터도 살지 않을 것처럼 투명합니다.”
곽현주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는 식으로 이 팀장을 바라봤다. 그녀의 말에 이 팀장은 라텍스 장갑을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거야 저도 아직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만, 더 나은 가설을 떠올린 사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이 팀장의 질문에 아무도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입을 연 건 민지민이었다.
“물에 사는 몬스터의 경우 제 몸을 숨기는 것에 특화된 몬스터가 많습니다. 타일장어의 경우 몸을 투명하게 만들죠. 그러한 종류라면 육안으로 식별이 어렵고요.”
몸의 색을 변화시키는 것 말고도 물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구멍에 몸을 숨기는 몬스터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클리어에 돌입해야 했다.
“일단 돌아갑시다. 주인 방 진입 루트가 이 근방에 있다는 건 확실하니 돌아가 주변 팀에 합류를 제안해 봐야겠어요. 최대한 사람을 모아 빠르게 클리어에 도전하도록 하죠.”
민지민은 퇴각하자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한동안 조용히 물 안을 보다 등 돌리는 멤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더요.”
내 말에 팀원들이 걸음을 멈췄다.
“뭐죠.”
“물속에 사는 몬스터 중 인어도 염두에 둬서 작전 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내 말에 팀원들이 술렁였다. 민지민이 곧장 물었다.
“근거는.”
지원은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고, 유제이는 코웃음 쳤다.
“저수지에 사는 인어라니, 별 헛소리를 다 하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답했다.
“비늘의 크기로 봤을 때 몬스터의 크기가 얼추 사람의 신장과 유사해 보입니다.”
“그리고.”
“게이트 안에서 확인된 몬스터의 공통점이라 말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나, 대부분 동물형 몬스터들에…….”
지원의 말이 스쳤다.
“꼭 그거 같아요. 애들 장난감.”
“……기묘한 상상력을 곁들인 거 같았습니다.”
내 말에 민지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염두에 두죠.”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도로 산에서 내려갔다.
* * *
저수지를 다녀온 이후 민지민은 예고한 대로 오델리아 길드의 통신망을 통해 게이트 안에 있는 타 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민지민이라면 게이트 클리어 루트를 발견한 즉시 이 인원만으로 어떻게든 클리어를 시도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그는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게이트 클리어에 기여한 인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언론의 주목이나 보상을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원 요청을 결심할 만큼 이번 전투는 위험했다.
한 길드 전원이 당했음에도 정확한 정보 하나 없었기에 욕심을 덜어 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하기 어려울 거 같은데요.”
“지금까지 연락이 닿은 팀은 모두 거절한 거야?”
곽현주의 말에 유제이가 물었다.
이틀간 총 4팀과 연락이 닿았으나 한 팀은 부상자가 많아 게이트 클리어 포기를 한 모양이고, 나머지 두 팀은 다른 클리어 루트를 찾은 듯했다.
오픈 필드 중에서도 실제 지형이 게이트화된 경우, 클리어 시 필드를 감싸던 벽이 사라지며 게이트 상태가 해제된다.
그 덕분에 이 많은 인원이 넓은 필드의 구획을 나눠 마음껏 클리어 루트를 찾을 수 있었다.
저수지가 확실한 클리어 루트라고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의견을 묵살할 수 없었다.
각 팀의 리더가 클리어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작전을 이행하는 것이니 말이다.
마지막에 연락이 닿은 센터 2팀이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적어도 하루가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연락을 기다리는 이틀 동안 도대체 눈이 얼마나 쌓인 거죠?”
날이 더 추워지며 도무지 눈이 멈출 생각을 안 했다.
폭설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아침저녁으로 아이들과 헌터들이 주변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나절 만에 무릎이 잠길 정도로 눈이 내렸다.
“그만큼 게이트가 불안정하다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헌터들이 흩어져 계속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다 한들 벌써 이주가 넘어가고 있으니…… 슬슬 브레이크가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죠.”
이천 북부가 전부 먹힌 엄청난 규모의 게이트다. 만약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이 주변 도시가 모두 괴멸할 것이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고, 결국 이 두 팀의 인원만으로 게이트 클리어를 시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은 이틀간 타 팀과 연락을 취하며 시간을 버리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민지민은 볼펜을 딸깍이던 손을 딱 멈췄다.
“게이트 전체에 헌터들이 퍼져 있고 인구 밀집 지역은 모두 확인됐다고 하네요. 우리만큼 많은 인원을 찾은 이들은 없지만.”
그건 다시 말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 기본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뜻이었다.
지민은 그렇게 읊조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을 맺었다.
“내일 게이트를 클리어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