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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1)화 (81/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81화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앉아 있던 우신의 눈빛은 지금까지 수아를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아는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다.

“걱정돼서요. 그 언니, 오빠들이 저수지로 간 날 밤, 그쪽에서 큰 소리가 났었거든요.”

수아는 다음 날 자신들을 구하러 온 사람들마저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혼자 보육원 밖으로 나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시기로 보나 정황으로 보나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고민이 깊어지는데 우신이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더.”

우신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수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수아, 넌 안 덥니?”

“……네?”

“요리를 되게 잘한다며. 불 앞에 서 있느라 더웠을 텐데 그 낡은 패딩을 계속 입고 있길래. 안 더운가 하고.”

수아와 함께 온 아이들은 맨투맨이나 경량 조끼를 입고 있었다.

반면 수아만 여전히 패딩을 목 끝까지 잠그고 있었다.

우신의 말에 이목이 제게 쏠리자, 수아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답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수아의 뒤에 서 있던 조이현이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하긴 수아는 우리랑 밖에서 제법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그러곤 어색하게 웃었다.

* * *

수아가 돌아가고 박이설을 간호해야 하는 권미래, 아이들을 보위하는 조이현과 백건희를 제외한 모두가 천막에 둘러앉았다.

어째서인지 정보가 늘어날수록 상황은 더 수수께끼가 되었다.

“파란 천에 새겨진 심벌, 메테오의 것입니다.”

김형도의 말에 의자에 등을 기댄 곽현주가 코웃음 치며 입을 열었다.

“남의 베이스캠프를 전부 쳐부숴 놓고는 결국 이딴 꼴이 되다니. 실적에 눈이 멀었군.”

“생존자 구출도 큰 실적인데, 메테오가 어린아이들을 두고 걸음을 서둘렀을 만큼 거기에 중요한 게 있었다는 걸까요?”

“그렇게 돌려 말할 것도 없어. 저수지가 클리어 루트라는 거겠지.”

모두가 곽현주의 말에 동의하듯 대답하지 않자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단순히 클리어 루트를 발견했다는 기쁨을 느끼기에는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수아가 저수지로 갔을 때, 메테오의 길드를 상징하는 이 천과 짐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고 했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메테오 길드원이 몰살됐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저수지로 가 보죠.”

이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했다. 눈치를 보던 김형도가 따라 일어났다.

이 팀장은 못마땅한 얼굴을 한 민지민과 시선을 마주치자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상황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거 같으니 말이죠.”

이 팀장과 김형도가 자리를 뜨고도 민지민은 한참 생각에 빠져 있다가 각자 보육원을 좀 더 조사해 보란 말을 남기고 천막을 나갔다.

“해산되는 분위기니, 저도 쉬러 갑니다.”

곽현주를 따라 유제이도 자리를 떠나자 천막에는 자연히 나와 강우신, 한지원만이 남았다.

지원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강우신이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고만 있자 별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이내 지원마저 자리를 뜨자 나는 우신을 힐끔 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도 슬슬 쉬죠. 내일 다시 움직여야 할 거 같으니까.”

“그전에 몸 상태는요. 아까부터 피곤해 보이던데.”

내가 어깨를 주무르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긴장해서 그런지 피로가 쌓인 모양이에요.”

내 말에도 우신은 직접 확인해야 성미가 풀리겠다는 얼굴로 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별수 없이 손을 건넸다.

맞닿은 곳부터 서서히 달라붙은 그의 끈적한 에너지가 예민한 감각을 간지럽히는 거 같았다.

그런데 우신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 갔다.

보다 못한 나는 손을 빼냈다. 우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어라 입을 열려 하자, 나는 선수 치듯 말을 이었다.

“그냥 단순한 몸살이라니까요.”

내 단호한 말에 우신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답했다.

“알고 있겠지만, 가이딩이 겉돌아도 근육통이 생깁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 정도는…….”

“조그마한 변화도 제게 말하라는 뜻이었습니다.”

“…….”

우신의 단호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 * *

흰 복도와 펑퍼짐한 환자복. 이제는 꿈속 풍경이 제법 익숙하게 느껴졌다.

‘게이트에 들어오고서는 얼마간 안 꾸더니.’

꿈이라는 건 알지도 깨는 방법은 몰라서 무작정 걷는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나오면 끝없이 이어지는 흰 복도를 말이다.

나는 어린 양하나의 몸으로 복도 끝에 보이는 문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어쩐지 몸이 무거웠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문으로 다가갈수록 시야가 서서히 높아졌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문 앞에 다다랐다. 이 문을 열면 내가 걸어왔던 것과 똑같이 생긴 복도가 늘어져 있을 거였다.

몇 번이고 꾼 꿈이었기에 그게 당연했는데,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이며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리고 그 너머로 발을 뻗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은 복도가 아니었다.

어두운 밤,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수풀 속이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할 때쯤 주변이 환해졌다.

빼곡한 수풀 너머로부터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로 걸음을 옮기니 커다랗고 붉은 호수가 나왔다.

아니, 호수가 붉은 게 아니었다.

주변의 숲이 불 타오르고 있는 탓에 호수가 불길을 거울처럼 비춰 붉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그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는데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비명을 삼켰다.

그 아이는 줄곧 복도를 헤매고 다니던 환자복 차림의 양하나였다.

분명 지금까지 내가 양하나가 되어 꿈을 꿔 왔는데, 어째서인지 그녀가 눈앞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구지?’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을 보기 위해 천천히 발을 옮겼다.

흔들리는 호수의 표면 위로 서서히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그대로 물에 빠질 거라고 여길 때, 얼굴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놀라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

나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복도의 창을 통해 달빛이 들었다.

그 빛에 아래 선 실루엣의 이목구비가 보였다.

“……수아니?”

새카맣게 빛나는 두 눈에 놀란 내가 나직하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수아가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이런 데서 자면 감기 들어요, 언니.”

강당 천막에서 빠져나온 직후 모두 천막 주변에 개인 침낭을 펼쳐 잠자리를 준비했다.

나 역시 개인 침낭을 펼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조이현이 보육원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긴 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위협을 경계하는 거였다.

내가 신경 쓰인 건 내부에서의 일이었다. 재난 속에서도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는 건 하늘이 도운 기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민지민처럼 수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묘한 기류가 의심스러웠다.

단순히 기우이길 바라며, 팀원들이 모여 있는 강당이 아닌 아이들이 묶는 기숙실 복도의 벤치에서 눈을 붙였다.

그런데 눈을 뜨니 수아가 어둠 속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힐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밖이 어두웠다.

“나는 괜찮아, 수아야. 침낭 안에 핫팩도 있고. 그것보다 너는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왜 여기 있어?”

내 물음에 수아는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을 가리켰다.

“화장실이 급해서요.”

화장실을 가리키는 수아의 손이 젖어 있었다.

손에 묻은 물을 보고 내 얼굴에도 물이 몇 방울 튀어 있음을 알았다.

꿈속에서 호수에 빠질 뻔했을 때, 수아가 날 흔들어 깨우면서 물이 튀었던 모양이다.

나는 몸을 바로 세우며 입을 열었다.

“밤에는 최대한 움직이지 마, 방까지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침낭 밖으로 몸을 빼내려 하자, 아이는 언니야말로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제 방으로 사라졌다.

구름이 달빛을 절묘하게 가리며 복도는 다시금 어둠 속에 잠겼다.

수아는 손전등 하나 켜지 않고 끝 모를 캄캄한 복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큰솔 녹음 보육원은 그 이름처럼 언덕 중턱에 세워져 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덕분에 날이 밝자마자 보육원 운동장으로 나가니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흰 눈꽃 송이가 피어나 사위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입김을 뭉텅 내뱉었다. 하얀 김이 눈앞에서 퍼졌다.

따라 나온 지원도 주변 풍경에 감탄하다 팔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어째 가면 갈수록 날이 더 추워지는 거 같네요.”

“그러니 하루라도 더 빨리 클리어를 해야지.”

우리 뒤에 선 유제이가 코를 훌쩍이며 그렇게 말했다.

저수지 확인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모두 옷을 갖추어 입고 나왔다.

비전투계인 박이설과 권미래 그리고 가이드들은 보육원에 남아 있기로 했다.

가장 뒤늦게 나온 민지민이 우리의 머릿수를 확인하고는 귀에 이어셋을 끼며 앞장섰다.

“출발하죠.”

듣자 하니 보육원은 설립된 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한다.

어쩐지 목조 건물의 곳곳이 제법 낡은 느낌이더니 이유가 있었다.

설립 이후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보육원이 새 재단을 만나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게 10년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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