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8화
“괜찮습니까?”
“……뭐가요.”
“‘뭐가요’가 아니잖아요. 오버 가이딩이라도 된 겁니까?”
오버 가이딩은 에스퍼가 가이드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에너지에 취하는 걸 말한다.
오버 가이딩을 하게 된 에스퍼는 충동적으로 변한다.
지금 내 모습은 언뜻 보면 그 증세와 비슷하나, 그러한 증상은 에스퍼가 높은 매칭률을 가진 가이드와 가이딩했을 때도 일어날 수 있다.
강우신의 가이딩은 언제나 내 이성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른세수하고는 답했다.
“잠깐 정신을 놨네요. 죄송해요, 놀랐죠.”
“전 괜찮아요. 그저 당신이 괜찮냐는 걸 물은 겁니다.”
단호한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끔뻑이다 저는 괜찮아요,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우신은 얼마간 더 내 에너지가 안정되었는지를 확인하고야 손을 놔줬다.
누군가에게 상태를 관리당하는 것에 질릴 만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 날 걱정하는 건 그것과 비슷한 듯 대단히 달랐다.
제법 괜찮은 기분이었다.
* * *
“저를 찾으셨다고요.”
오델리아 길드는 로비 데스크 쪽에 자리했다.
이 팀장은 그 중심에 서서 빈 드럼통에 불쏘시개를 보충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지도 않고 답했다.
“가이딩 중이라더니, 상태는 좀 괜찮습니까?”
김형도가 그새 쪼르르 달려가서 그걸 말한 모양이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재촉했다.
“무슨 일로 절 찾으셨죠.”
이 팀장은 그제야 행동을 멈추고 날 쳐다봤다. 입을 다물고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옅게 웃어 보였다.
“성미가 급하시군요.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천에서의 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한 것뿐이고요.”
“아니요. 팀 동맹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팀 동맹을 전폭적으로 밀어줘?
의아한 얼굴을 하는데, 이 팀장 옆에 앉아 있던 김형도와 눈이 딱 마주쳤다.
처음 베이스캠프에서 그를 만났을 때, 몇 마디 거든 게 떠올랐다.
그게 그런 식으로 해석됐을 줄이야.
“아닙니다. 의미 있는 동맹이 될 거라 생각해 추진한 거니 마음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오델리아 길드가 이처럼 성장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이 팀장의 사람이 눈앞에서 허무하게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사족은 다 빼고 건조하게 답했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갈 생각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는 대답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으나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 묘한 기류에 당황한 건 김형도와 조이현이었다.
조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왜 센터 사람이랑 또 기 싸움을 하고 있냐며 못된 버릇을 내보이지 말라고 말을 얹었다.
이 팀장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양하나 헌터.”
“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
정적이 흘렀다. 조이현은 다 늙은 주제에 어린애한테 뭐 하는 짓이냐며 그의 등을 마구 때렸다.
그럼에도 이 팀장은 대답을 듣고 싶은지 꿋꿋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과거에 사설 가이딩 센터를 다니면서까지 이 팀장과의 약속을 지켰던 건, 그가 센터를 나가면서 건넨 말 때문이었다.
이 팀장, 아니, 이필엽 그는 내가 센터에서 만난 몇 없는 진짜 ‘어른’이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센터에 입사해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가름을 하지 못할 때,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지나치게 힘을 과신하지 마.”
S급으로 각성한 내게 그런 말을 한 건 그가 유일했고, 그 말 덕분에 나는 게이트에서 한 번도 실수한 적 없었다.
이필엽은 듣기 달콤한 말을 하는 대신 내게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알려 줬다.
스리피스를 고집하는 그가 처음부터 내게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너냐, 센터를 시끄럽게 하는 꼬맹이가.”
그는 체계라고는 없는 센터가 어떻게 지금껏 운영되어 왔는가, 라는 내 의문에 답을 해 주는 인물이었다.
센터에 입사하자마자 A급 게이트에 즉시 투입됐을 때, 반대의 목소리를 낸 이는 이필엽뿐이었다.
그는 내가 얼마나 강한 에스퍼든, 곧바로 위험한 게이트에 투입시킬 순 없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말을 들어 주는 이는 없었다.
결국 나는 게이트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만큼은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20살을 앞둔 해, 이필엽은 센터를 떠났다.
자유로운 길드를 만들 테니 함께하지 않겠냐는 그의 권유를 거절하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있어서 센터가 이만큼 발전한 거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가 답지 않게 말끝을 흐려 나는 궁금하게 왜 말을 하다 마냐고 물었다.
그는 별말 아니었다며 고개를 내젓더니 화제를 돌렸다.
“내가 길드 차릴 즈음까지도 짝을 못 찾으면 우리 길드 가이드랑 매칭 테스트해 보는 거다. 어때?”
“은근슬쩍 날 이용해 실적 채우시려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티가 났냐며 웃었다.
그 모습에 나는 별 뜻 없이 알겠다고 답했고 이 팀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약속 지키라며 나를 툭 쳤다.
손익 계산이 빠른 모습을 보면 역시 센터보다는 개인 사업장의 사장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날 한 사람으로 봐 준 어른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 약속 아닌 약속을 지켰다.
“…….”
내가 아무 대답 없이 이 팀장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 조이현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야, 진짜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요. 초면입니다.”
“그럼 그렇지. 괜히 또 센터 사람 건들지 말고 내일 일찍 움직여야 할 테니, 잠이나 자요.”
조이현의 말에 이 팀장은 그냥 아는 사람과 닮은 거 같아 그랬다는 말을 하며 나를 놓아주었다.
그길로 센터의 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 소파에 몸을 옹송그려 자리를 잡았다.
깨친 창을 통해 눈이 내부로 흘러들어 왔다.
추울 법도 했는데, 밤새 타오른 불씨 때문인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온기 때문인지 밤사이 추위 때문에 깨는 일은 없었다.
* * *
이 팀장은 탁상 위에 이천의 중심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지도를 펼쳤다.
수아의 말처럼 육 차선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중간에 샛길이 하나 있었다.
확실히 샛길의 끝엔 보육원이 있었다.
머리 위로 커다란 저수지를 둔 보육원은 생각보다 부지가 넓어 규모가 꽤 커 보였다.
“우리가 확인한 곳은 이 육 차선 도로까지입니다.”
이 팀장은 주저 없이 보육원까지의 최단 거리를 표시했다.
“이 구역 안에서 확인된 몬스터는 없습니다만 지금은 또 어떨지 모르는 데다가 맨눈으로 식별이 불가능한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매하지만, 우리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말이었다.
“그럼 역시 조를 나눠 일부만 이동하는 게 좋겠네요.”
민지민은 골머리 아프게 됐다는 얼굴로 전력이 되는 인원을 확인하고 배치하는데, 불쑥 수아가 끼어들었다.
“왜 조를 나누는데요.”
탁상이 높아 지도가 잘 안 보였는지 진료실에서 바퀴가 달린 의자를 끌고 오던 중이었다.
민지민이 귀찮은 기색을 풍기자, 유제이가 눈치껏 수아를 말렸다.
“초딩, 너는 딴 데 가서 놀고 있어라.”
그러나 수아는 유제이를 무시하고 탁상 가까이 의자를 붙였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서서 지도를 내려다봤다.
민지민이 적어 놓은 수신 기호들은 아직 어린 수아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골똘히 보더니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왜 번거롭게 조를 나누냐니까요.”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까, 가만히 있는 게 어때.”
유제이의 말에는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다. 수아는 민지민에게 대답을 요구하듯 그를 빤히 쳐다봤다.
민지민은 아무 표정 없이 수아를 봤다.
‘저게 또라이긴 하지만 어린애한테 무슨 짓을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그의 텅 빈 눈동자가 심히 걱정스럽긴 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데 민지민이 입을 열었다.
“위험 요소가 확인되지 않았어. 만약 숨겨진 트랩이나 맨눈으로 식별 불가능한 몬스터가 있다면 한순간에 모두 죽을지도 모르지.”
민지민은 제법 진지하게 답해 줬다.
임무를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불필요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민지민은 그 기본 수칙을 아이에게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시하지 않고 왜 그런지 설명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수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런 거 없어요. 안전해요.”
곽현주는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자신이 잠시 데리고 나가 있겠다고 말했다.
제게 다가오는 현주의 모습에 위협을 느꼈는지 수아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요?”
그의 말에 지민은 입매를 올려 웃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생각은 안 나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있어요. 표시도 다 해 놨으니까. 제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걸으면 안전한 거 아닌가요?”
“그래? 그럼 역시 처음부터 되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네.”
지민은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답했다.
“…….”
수아는 길을 잃은 게 아니었다.
그 거리를 홀로 걸어 오델리아 길드를 만난 건 어쩌면 아이가 바라는 바였을지도 모른다.
그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눈보라가 치는 도로로 나온 걸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외곽까지 온 거라면 수아는 왜 오델리아 팀원을 만났을 때 제 사정을 말하지 않았을까.
내 눈에는 그게 꼭 누군가를 기다린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수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조그마한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저는 믿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마침 입을 연 건 조이현이었다. 그는 한 걸음 걸어 나와 수아의 옆에 나란히 섰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