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7화
* * *
우리는 야외 주차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상가 건물로 들어섰다.
주변 건물 대부분이 무너지거나 파괴되어 있었는데 이 건물은 개중에서도 뼈대가 살아 있는 편이었다. 앞뒤로 높은 건물이 있어 은신처로 사용하기에도 용이했다.
짧은 시간 안에 용케 이런 곳에 자리를 잡은 걸 보니, 이 팀장이 소규모로 이천 게이트에 참가한 이유를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조이현은 숨겨 둔 철통을 질질 끌고 나와서는 그 안에 마른 가지를 채워 넣고 불을 피웠다.
치과로 추정되는 이곳은 로비가 굉장히 넓었다.
그 로비 중앙에 난로를 두고 둥근 소파에 하나같이 짐을 내려놓았다.
나는 대충 위치를 살피다가 진료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진료 침대 위에 짐을 내려놓고 휴대용 구급상자에서 거즈를 꺼내 들었다.
소매를 걷자, 살이 뜯겨 나가 생긴 상처가 보였다. 주먹거머리를 상대할 때 난 상처였다.
상처 부위가 넓을 뿐 깊진 않았다.
“이 정도로 끝나 다행이지.”
나는 주먹거머리를 상대할 때를 회상했다. 조금만 더 정신 감응을 늦게 썼더라면, 나는 물론 지원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와줄까요?”
거즈를 자르던 나는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강우신이었다.
내가 토끼 눈이 돼서 그를 바라보자, 우신은 민망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노크했는데, 대답이 없어 들어왔습니다. 많이 놀랐습니까?”
“……딴생각하느라 노크 소리를 못 들었나 봐요.”
내 대답에 우신은 그러냐며 바퀴 달린 의자를 끌고 내 맞은편에 와 앉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린 거즈를 들고 가더니 상처 부위에 연고를 바르며 치료를 도왔다.
“권미래 헌터가 있잖습니까.”
“며칠 동안 계속 박이설 헌터를 돌봐야 할 텐데, 저까지 치료해 달라고 하면 부담스러울 겁니다. 무엇보다 이 정도는 자연 치유 될 거고요.”
내 말에 거즈를 단단하게 고정하던 우신이 픽 웃어 보였다.
“가끔은 이기적으로 굴어도 될 텐데. 양 후배는 어울리지 않게 남 생각을 너무 많이 합니다.”
“남 생각을 한다니, 생전 처음 듣는 말인데요.”
“그래요? 다들 보는 눈이 없나 보죠. 제 눈엔 그래요. 본인이 바스러져 없어질 정도로 남을 생각해요, 양 후배는.”
웃으며 말하지만,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뜨거웠다.
가끔 한 번씩 보이는 저 뜨거운 시선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거 같아 눈을 피했다.
“그건 내가 할 말이네요. 강우신 가이드가 수아를 대하는 태도에 놀랐어요.”
민지민은 비롯하여 멤버들 모두가 경악한 걸 보면 아마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듯했다.
우신을 따라다니는 소문이 모두 사실인 건 아니지만, 그 소문이 생긴 이유 정도는 쉽게 예측 가능했다.
평소 웃음기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그의 얼굴이라든지, 냉정한 행동이 그 원인일 거였다.
우신은 아까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쑥스럽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건 저한테…….”
“남동생이 있어서겠죠.”
반사적으로 그가 할 말을 내가 먼저 해 버렸다. 우신은 놀란 듯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당황해서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아서요. 사람들 떠드는 데서…….”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변명에 서서히 목소리가 작아지는데 우신은 가만히 눈을 끔뻑이다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떠드는 내 이야기를 들었다는 겁니까?”
“네.”
“내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었다는 소리죠.”
“……네.”
어딘가 핀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우신이 거즈를 매듭짓더니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뭐가 말입니까?”
“내가 뒤에서 강우신 가이드 이야기를 듣고 다닌 건데.”
사실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나, 어쩐지 자신에 대한 소문을 그도 알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내 말을 들은 우신은 눈매를 반달처럼 휘며 웃었다.
“뒤에서 듣든 앞에서 듣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양 후배가 내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데. 이상한가요?”
“……이상해요.”
“역시 그렇죠.”
우신은 그 말과 함께 팔 치료가 끝났음을 알렸다.
그런데도 한참 동안 내 팔을 놓아주지 않자 나는 그가 붙잡고 있는 팔을 가만히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팔을 놔줘야 가죠.”
그렇게 말하며 우신을 바라보는데, 바로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계속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뺨이 붉은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계속 나를 걱정하는 우신이 그러잡은 팔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팔뿐만이 아니었다. 마주 보고 앉은 탓에 아까부터 자꾸 닿은 무릎이,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시선이, 그 모든 것이 그의 존재를 선명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치료 끝났으면 이만 나가 줄래요?”
그가 자꾸 신경 쓰여 그렇게 말했지만 우신은 내 팔을 놓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할 일은 하고 가야죠.”
“가이딩이라면…….”
“괜찮다고 하지 마요. 진단은 내가 하고, 내가 보기에 양 후배는 지금 가이딩이 필요하니까.”
우신의 말은 단호했다.
확실히 내 힘과 감응한 직후인 터라 몹시 피곤했다.
우신은 손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말과 다른 행동에 내가 의중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우신이 입을 열었다.
“저는 양 헌터처럼 후발대에 서서 몬스터와 싸울 수 없습니다. 그렇죠?”
당연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저는 당장 이 건물이 무너진다 해도 혼자 몸을 피하는 게 전부입니다. 전 에스퍼가 아닌 가이드니까요.”
“…….”
“그런 제가 한 자리 차지하고 게이트에 들어왔습니다. 그 자리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저도 응당 해야 할 일을 해야죠.”
제 위치에 대해 제법 냉정하게 평가한 우신은 정중하게 손을 건넸다.
“그래야만 제가 계속 양 후배와 함께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게…… 허락해 주시겠어요?”
직접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아 달라는 의미였다.
강우신은 S급 가이드다. 게이트 안에서 그는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없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생각하고 제 가치를 직접 증명해 가고 있었다.
센터의 개를 자처했다는 소문에 그가 과거의 나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우신은 나보다 훨씬 멋진 모습으로 저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에 내 손을 얹었다.
우신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부드럽게 맞닿은 손을 꽉 쥐었다. 그의 단단한 손가락 마디가 엉켜 왔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박인 굳은살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익숙하고 청량한 그의 에너지가 몸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온몸을 감싸 안는 우신의 에너지는 그 무엇보다 나를 안락하게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에너지의 길을 팽창시키고 뇌가 단물에 빠지는 듯한 기분 좋은 감각이 낯설기만 했다.
내 안에 깊게 젖어 들고 있는 우신의 에너지를 느끼고 있자면, 오랫동안 위로받지 못한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꼭 제게 기대도 된다고 속삭이는 거 같았다.
“…….”
싫다고 거절한 게 우습게도 우신의 가이딩 앞에서는 이렇게 번번이 마음이 무너졌다.
그와 마주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니 제멋대로 움직이는 몸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나는 다른 한 손을 우신의 허리춤에 올렸다. 예상치 못한 내 움직임에 놀랐는지 우신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나는 그의 가슴께에 이마를 붙이고서는 거친 숨을 뱉어 냈다.
“이만해요.”
“……조금 더 필요해요.”
가슴께를 타고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슬쩍 들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에 왜인지 절박함이 담겨 있는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가이딩에 집중하는 척하지만, 우신의 시선과 귓가에 들려오는 빠른 심장 박동이 그의 덤덤함이 거짓이란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을 못 숨기면 안 되지 않을까. 에스퍼 무서운 줄 모르고 말이다.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지며 우신의 살냄새가 평소보다 짙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가까이하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난 경고했습니다.”
“양하나 헌터?”
우신이 나를 불렀지만, 오로지 그의 입술만 눈에 가득 들어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충동에 젖어 든 마음이 멋대로 나를 조종하는 거 같았다.
시야가 흐려지며 정신이 아득해진 순간, 불쑥 진료실의 문이 열리며 손전등의 빛이 우리 두 사람 위로 쏟아졌다.
“……아.”
낯선 목소리에 숨이 탁 트였다. 나는 행동을 우뚝 멈췄다.
우신 역시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 문 앞에는 손전등을 든 김형도가 서 있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가이딩 중이신지 모르고.”
말을 더듬는 김형도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우신은 내 어깨를 조심히 감싸 안았다.
“무슨 일입니까.”
냉정하게 묻는 소리에 당황해하던 형도는 그제야 제가 방문을 연 이유가 생각났는지 말을 이었다.
“아, 그게 이 팀장님이 양하나 헌터를 만나고 싶어 해서요.”
“이 팀장님이요?”
우신이 의아스럽게 물었다. 그러고는 나를 조심히 내려다봤다.
내가 가이딩에 취한 듯 가쁜 숨만 내쉬고 있자, 우신은 굳은 표정으로 형도를 보며 말을 맺었다.
“알겠습니다. 정리되면 찾아갈 테니, 먼저 나가 주시죠.”
우신의 단호한 태도에 김형도는 알겠다는 의미로 서둘러 문을 닫고 자리를 떴다.
우신은 그제야 나를 제 품에서 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