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4화
“아니에요. 가방 바닥이 피에 젖었는데…… 그 냄새가 역해서…….”
그제야 가방 바닥에서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검붉은 피가 보였다.
“아……!”
나는 급히 가방을 받아 들고, 가방에 넣어 둔 우의를 꺼냈다.
아마 피에 씻기지 않았던 우의의 피가 빗물과 함께 샌 모양이었다.
감각계 에스퍼인 박이설은 식물을 마음대로 컨트롤하는 대신 피 냄새에든 예민한 듯했다.
안 그래도 우리가 막 이곳에 도착했을 때, 형도가 피 묻은 손을 씻고 와 달라 부탁했었다.
얼마나 싫었으면 저 몸으로 천막 밖까지 나왔겠나 싶었다.
나는 박이설을 보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안에 비옷이 있는 걸 잊고 있었어요.”
내 사과에 박이설은 고개를 획 돌리며 답했다.
“조심해 주세요, 특히 물건이나 옷에 밴 피 냄새는 예민한 사람들한테 더 역하게 다가온다고요.”
“네, 다음부터 주의를…….”
그 소란에 천막에서 권미래가 나왔다. 치료를 하던 중 지쳐 잠시 잠든 모양이었다.
그녀는 식겁해서는 도로 박이설을 데리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아직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는 팀원들을 바라봤다.
번뜩 눈이 마주친 민지민 역시 박이설의 말에서 나와 같은 힌트를 얻었는지 입매가 올라가 있었다.
* * *
“옷 다 모아 왔습니다.”
“그럼 끈으로 잘 묶읍시다.”
우리는 시체 대신 그들이 입고 있던, 피에 잔뜩 전 옷가지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먼저 사람 머리통만 한 돌을 땅에 두고 주변에 피에 전 옷을 겹겹이 둘러 끈으로 묶었다.
이 ‘미끼’를 하천에 던지면 자연히 물에 가라앉으며 퍼진 피 냄새가 주먹거머리를 유인할 거였다.
물론 생명력이 없으므로 곧장 눈치챌지도 모르나 우리가 가야 할 거리는 고작해야 스무 걸음 안팎.
그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지체 말고 제비뽑기를 하죠. 끝이 빨간 나뭇가지를 뽑으면 곽현주 헌터와 같은 선두를, 그 외에 두 명은 후미를 맡는 겁니다.”
민지민은 밝은 얼굴로 나뭇가지의 끝을 손안에 숨기고는 우리 앞으로 내밀었다.
나와 지원이 고민하는 사이 유제이가 먼저 나뭇가지를 뽑았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끝이 붉은 나뭇가지가 튀어나왔다. 유제이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환호했다.
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유제이를 바라봤다.
하필 가장 위험 부담이 큰 자리에 나와 지원이 나서게 되다니. 그것도 지민이 건넨 제비뽑기에 의해서 말이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의심스러웠던 지민의 전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민은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본인 운이 없는 걸 남 탓하면 안 되죠, 하고 한마디 덧붙일 뿐이었다.
“…….”
이미 나온 결과에 토를 달 힘도, 시간도 없었다. 나는 낮은 한숨을 내쉬고 지원을 불렀다.
“한지원 헌터.”
내 부름에 그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컨디션은 어때요.”
“괜찮아요.”
“좋아요. 그럼 내 말 잘 들어요.”
나는 하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원 헌터는 간격을 두고 내 뒤에 서는 거로 해요. 물에 들어가기 전에 어제처럼 힘을 조금 빌릴 거에요. 그거 때문에 어지러울 수도 있으니…….”
어젯밤 내게 사과를 건네며 조금 마음이 편해진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그는 계속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작게 박수를 두 번 쳤다.
“어제 나눈 대화는 어제에 묻어 두고 와요. 복잡한 생각을 품고 있다가는 운용에 지장이 생길 테니.”
“…….”
“지금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고, 여기 왜 들어왔는지만 생각하세요.”
“네.”
“그럼 됐어요. 제 말은 이해했어요?”
지원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로는 이해했다고 하지만 사실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을 거다.
그에게는 다영에게 했던 것처럼 내 힘의 구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마 정신 감응을 내가 그의 에너지 길을 단순히 훑는 걸로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아무런 예고 없이 게이트 입장 전에 만났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무리 없이 힘을 빌려 왔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분명 한계가 온다.
지원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작전에 응할 수 있는 건 에너지를 빨려 혼절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름 조절하는 데 능숙해지긴 했으나, 이건 남의 피를 빠는 일과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천을 빤히 쳐다보던 지원이 입을 열었다.
“기생하는 거…….”
“네?”
순간 움찔해 그렇게 되묻자 지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기생하는 몬스터요.”
나는 그제야 그가 주먹거머리를 이야기한다는 걸 깨닫고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죠, 조금 다르긴 하지만 흡혈과 기생을 병행하는…….”
“그게 아니라 악마형 게이트의 주인이 딱 그러지 않던가요. 사람한테 기생해 중심부에 요새를 치고 다양한 종의 몬스터를 내보내는 것까지.”
“…….”
비슷한 의견이 송대현의 보고서에 적혀 있긴 했으나 그건 기각된 소견이었다.
“악마형은 기생이 아닌 빙의를 합니다. 그래서 악마형 몬스터의 타깃이 된 몸의 주인은 자아를 잃죠. 더불어…….”
나는 하천을 비롯해 주변으로 눈길을 돌리곤 말을 이었다.
“일반인의 몸은 열흘 넘게 악마형 몬스터를 버티고 있을 수 없어요. 게이트 주인의 각성을 위해 모이는 에너지를 감당 못 해 몸이 금방 썩을 테니…… 이미 한참 전에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어야 해요.”
“아,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피부가 곪는다고 하더라고요. 신체를 안에서부터 좀먹는다고.”
그 순간 때마침 유제이가 소리쳤다.
“이제 슬슬 작전 장소로 이동합시다.”
그 말에 각자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김도형은 박이설을 업고, 그 뒤로 우신과 건희가 따라붙었다.
곽현주와 유제이는 그들을 보호하듯 각각 왼쪽 오른쪽에, 민지민은 그들 바로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순번을 눈으로 확인하는데, 선발에 서 있던 우신이 우리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준비 마쳤습니다.”
우신의 까만 눈동자가 반듯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는 눈이었다. 몇 번 합을 맞췄다고 이제 그의 생각이 빤하게 들여다보이는 거 같았다.
그 순간 그가 입 모양으로 ‘다치지 마요.’라고 전했다.
나는 픽 웃었다. 강우신다운 말이었다. 이어셋을 끼자, 민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작전 진행하도록 하죠.
그 말을 신호탄으로 지원은 한쪽 땅 위에 둔 바위의 끈을 집어 들었다.
피에 떡이 된 옷 위에 앉아 있던 파리들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지원은 미간을 좁히고는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언제든 던질 준비 됐어요.
-좋아.
지민은 한참 동안 조용히 하천을 바라봤다. 아주 고요한 하천 위로 무언가 꿈틀거리는 걸 발견한 순간, 지민이 입을 열었다.
-지금!
그 신호에 맞춰 지원은 들고 있던 끈을 힘껏 당겨 그 끝에 매단 바위를 하수도의 반대 방향으로 집어 던졌다.
바위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물에 빠졌다.
주위로 물이 요란하게 튀었다. 이내 바위가 가라앉으며 서서히 사위가 고요해졌다.
“…….”
긴 침묵이 이어지던 그 순간, 시커먼 형체들이 바위가 떨어진 자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천의 바닥에 바위처럼 숨죽이고 있던 것들이 미끼에 반응해 미친 듯이 옷가지를 뜯기 시작했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로 부닥치느라 수면 위로 몬스터의 매끈한 표면이 보였다. 그걸 보자 구역질이 치미는 거 같았다.
그때, 멤버들이 서둘러 물속에 들어갔다. 선발대는 곽현주를 필두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우리도 가야 해요.”
지원의 말에 서둘러 하수도 쪽으로 향했다.
* * *
물은 생각보다 미지근했으나 깊었다. 앞서 걷던 이들은 예상 밖의 깊이에 당황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처음 게이트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가 제법 오랫동안 내렸었는지 하천의 물이 불어나 수심이 생각보다 깊고 물살도 셌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를 더 당혹스럽게 하는 건 미끄러운 바위였다.
-조금만 한눈팔아도 미끄러지겠는데요.
가장 앞장서서 걷던 곽현주가 그렇게 말했다.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여유로운 척 말했지만 미끄러운 바위 위에서 중심을 잡는 뒷모습이 제법 애처로워 보였다.
그의 바로 뒤를 따르는 김형도 역시 그랬다.
그는 제 등 뒤에 업혀 있는 박이설의 다리가 최대한 물에 닿지 않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상태라 매우 아슬아슬해 보였다.
나는 가장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물살이 세고 바닥이 미끄러운 덕분에 생각보다 이동 속도가 더뎠다.
‘이대로면 위험해.’
힐끗 뒤를 살폈다.
피에 젖은 옷은 이미 갈기갈기 찢겨 그 안에 있던 바위가 드러났다. 필사적으로 바위에 달라붙어 있던 주먹거머리들 역시 사태 파악이 돼 가는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거머리들 시선이 분산되기 시작했어요, 속도를 올려요!
내 목소리에 선두에 있던 이들은 더 이상 뒤를 힐끗거리지 않고 다리에 힘을 주어 걸었다.
-곽현주, 준비해!
민지민이 그렇게 외치는 순간 하수도 근처에 있던 거머리 몇 마리가 달려들었다.
곽현주는 놀란 기색도 없이 그것들의 움직임을 동결시켰다.
그녀의 짙은 녹색 에너지가 이글거렸다.
-서둘러!
그 말과 동시에 우신이 가장 먼저 하수도 위로 몸을 올렸다. 그러고는 김형도에게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본 형도는 제가 업고 있던 박이설을 먼저 넘기려 했다.
그러자 우신이 재빠르게 팔을 늘어트려 박이설의 팔을 붙잡았다.
-됐어!
그러나 안고 있던 박이설의 무게가 갑자기 가벼워지자 김형도는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