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2화
우리는 그대로 짐을 챙겨 들고 걸음을 옮겼다.
김형도는 선두에 선 곽현주의 바로 뒤에서 얌전히 길을 안내했다.
“이쯤 걸었으면 말해 줘도 될 거 같은데, 절연복 없이도 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어디야?”
툴툴거리며 묻는 유제이에게 김형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제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거짓말한 거면 넌 내 손에 죽는 거라며 성을 냈다.
그 모습에 곽현주가 중요한 정보를 벌써 말하겠냐며 혀를 차는데 형도가 입을 열었다.
“전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뭐?”
“하천이에요.”
“하천?”
그의 말에 유제이가 있는 대로 인상을 구겼다.
“장난해? 전류를 어떻게 뚫고 가나 했더니 설마 헤엄쳐서 가면 된다고 하려던 거야?”
유제이는 이 새끼가 우리를 멍청이로 안다며 크게 소리쳤다. 그 모습에 당황한 형도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정말로 물길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비딱한 유제이의 물음에 형도는 눈치를 보다 답했다.
“……물 안에 몬스터가 살고 있거든요.”
“뭐?”
* * *
“굳이 우리에게 접근한 이유가 뭔가 했더니, 이거 때문이었네.”
나는 들것에 눕혀져 있는 에스퍼의 다리를 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김형도의 안내를 따라 간 곳은 캠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천 다리 밑이었다.
제법 깊이가 있는 하천 옆으로 풀이 우거져 있었고 그 안쪽에 간이 천막이 쳐져 있었다.
도착했으니 당장 작전이나 설명하라는 말에 김형도는 천막 안에 누워 있는 제 동료를 먼저 봐 달라 부탁했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 채 고열에 시달리는 듯했고, 지혈을 위해 감아 둔 흰 붕대는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권미래는 그녀의 다리를 살피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다리를 잘라 내야 했겠네요.”
“치료는.”
“하루면 가능해요. 다만 적어도 일주일은 못 움직입니다. 체력에 따라서는 이 주 정도.”
권미래의 말에 민지민은 일이 귀찮게 됐다는 얼굴을 했다. 그는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김형도에게 물었다.
“뭡니까.”
팀원이 미리 도착해 있을 거라는 말과 달리 천막에는 다친 에스퍼뿐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척 봐도 아직 미성년자였다.
이 이상 대답을 유보했다가는 천막을 뒤엎을 거 같은 민지민의 기색에 형도가 입을 열었다.
“흡혈 몬스터예요.”
“하천에 사는 흡혈 몬스터라면…….”
“주먹거머리입니다.”
통상 주먹만 한 크기의 거머리라 알려져 있지만, 때에 따라 팔뚝만 한 것도 발견된다.
그것들은 평소에 바위처럼 색을 위장하고 조용히 있다가 하천에 생명을 지닌 것이 들어오면 물 흐르듯 다가가 피를 모조리 빨아 먹는다.
유제이는 헛웃음을 쳤다.
“그럼 지금 거머리가 득실거리는 하천을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가자는 건가?”
그의 말에 김형도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실제로 저희 팀원 중 두 명은 강을 건너갔습니다. 저희 역시 문제없이 건너갈 예정이었는데 사고가 생겨서.”
김형도는 그때를 회상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안에 있는 에스퍼가 상처를 입은 게 그때였던 모양이다.
“이 근처 하수도가 입구예요. 하천을 건너는 시간은 많이 잡아 봤자 1, 2분도 안 되고요.”
형도는 절박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거짓말은 아니에요. 우리 팀원이 먼저 도시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으니 분명 동맹을 맺은 보람이 있을 겁니다.”
“미래의 일은 모르겠고, 우리가 당신네 동료까지 치료까지 해 주면서…….”
“동맹은 유지하는 거로 하죠.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하고, 해가 지고 있으니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하천을 건너는 것으로 합시다.”
유제이의 말을 자른 건 나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내 멱살을 움켜쥘 거 같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무시한 채 민지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을 듣고 이 동맹을 수락했죠. 그러니 저를 믿고 한 번만 더 협조해 주세요.”
민지민은 팔짱을 낀 채 계속 말해 보라는 듯 턱을 끄덕였다.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새로운 작전을 짜기엔 너무 늦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오델리아를 버리고 하천을 건넌다 한들 이미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는 이자들의 팀원들과 마주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들과 싸울 겁니까?”
유제이를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잊지 마세요. 우리는 게이트 클리어를 하러 왔지, 팀 간의 싸움을 하러 온 게 아님을.”
유제이는 당장에라도 내게 달려들 것처럼 씩씩거렸다. 여태 조용했던 것도 그치고는 대단한 일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민지민이 이마를 짚고는 입을 열었다.
“동맹을 깨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도시에 진입한 이후에 우리가 저쪽 길드와 함께한 걸 후회할 일이 생길까 우려스러웠던 거지.”
지민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양 헌터는 아까부터 너무 날 서 있는데 오델리아 길드랑 아는 사이라도 됩니까?”
그의 말에 김형도와 일순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전혀요.”
“양 하나 헌터의 말대로 정리된 거면, 다들 나가 주세요. 집중해야 해서.”
우리의 다툼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권미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 손을 저어 보였다.
그녀의 말에 유제이를 선두로 멤버들이 하나둘씩 천막을 빠져나갔다. 내가 맨 마지막으로 천막을 나가자 강우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뭐가 말이에요.”
“아까부터 계속 그를 신경 쓰는 게…….”
그는 살짝 열린 천막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가 싶더니 도로 나를 보며 물었다.
“정말 김형도 가이드와 모르는 사이입니까.”
“타 길드 가이드와 아는 사이일 정도로 발이 넓지 못해서요.”
그렇게 말하고는 우신의 질문을 잘라 냈다. 어쩐지 그의 눈을 보고 있자면 마치 내 내면을 모두 읽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거짓말하기가 더 어려운 느낌이야.’
나는 서둘러 멤버들 쪽으로 가져온 짐들을 정리했다.
이후 모두 천막 밖에 옹기종기 모여서 김형도가 만들어 준 감자수프를 나누어 먹었다.
식량 가방 안에 있는 수프를 모두 냄비에 때려 넣는 김형도의 모습에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그는 내일이면 도시 안으로 들어갈 테니 괜찮다고 답했다.
‘이 팀장이 봤으면 분명 한마디 했을 텐데…….’
묵묵히 수프를 젓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맥이 풀려 그저 멍하니 그가 요리하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식사를 마치고는 각자 적당히 모닥불 근처에 침낭을 펴고 자리를 잡았다.
이후 불침번 순서가 정해지자 나는 편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 * *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는 아직 한밤중이었다. 모닥불의 불티가 타닥타닥 터지는 소리에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웬일로 연구실을 방황하는 꿈을 안 꾸나 했더니 대신 잠에서 일찍 깨 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불침번을 선다는 유제이가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도로 몸을 옹송그리고 잠들려고 노력을 해 봤지만 사리 눈이 감기지 않았다.
별수 없이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막을 둘러싼 풀은 유독 키가 크고 빽빽했다. 성을 숨기는 성벽과도 같은 모양새 덕분에 김형도가 다친 에스퍼를 혼자 두고 움직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듣자 하니, 풀을 이렇게 키운 건 병상에 누워 있는 박이설 에스퍼의 능력이라고 한다.
나는 내 키만 한 풀을 젖히고 하천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 도착했을 때만 해도 비를 쏟아 내는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밤하늘은 참으로 고요했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하천을 거울삼아 반짝이고 있었다. 눈앞의 하천에 몬스터가 득실거릴 거란 걸 감히 누가 짐작할 수 있겠나 싶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다 슬쩍 뒤쪽을 흘겨보았다. 주위는 하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만 들릴 뿐 조용했다.
“언제까지 지켜만 볼 건가요.”
내 말에 키가 큰 수풀 속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지원이었다. 그는 어색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침낭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올 때부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진다 했는데 상대가 지원이었다니.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할 말이 있어 따라온 거 아닙니까?”
내 건조한 목소리에 지원은 손톱 끝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맞아요.”
지원은 종종걸음으로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한 걸음 정도 떨어져 앉았다.
나는 그 일련의 행동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게이트 들어온 직후 유제이와 곽현주의 콤비 플레이 뒤에서 나와 지원은 조용히 합을 맞췄다.
사실 합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게, 내가 무차별적으로 그의 힘을 빌려 몬스터를 두 동강 낸 것뿐이었다.
은근히 할 말 다 하는 성격이라 그와 관련해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지원은 아무런 말도 얹지 않았다.
자기 전에 누워서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니 새삼 화가 나서 날 찾아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죄송해요.”
“…….”
그러나 지원의 입에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나는 두 눈을 끔벅이며 답했다.
“뭐가요?”
정말 왜 사과하는지 몰라 물었는데, 그게 꾸짖음처럼 느껴졌는지 그가 눈알을 데구루루 굴렸다.
말을 정정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여는데, 지원이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해서요.”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쫓아온 겁니까?”
조금은 안도 섞인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지원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저었다.
“하천에는 제가 먼저 와 있었어요!”
“네, 그러셨군요.”
누가 봐도 안 믿는다는 어투에 지원은 한숨을 푹 쉬고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여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천 게이트 합류에 대해 상의하지는 않아도, 미리 말해 줄 수는 있었잖아요. 그런데 말 안 해서 미안해요.”
“…….”
낮의 일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확실히 현장에 도착해 마지막 합류 멤버라는 지원을 봤을 때는 무척 당황했었다.
하지만 내가 화가 난 건 단순히 그가 나와 상의하지 않고 게이트에 참여해서가 아니었다.
“나와 상의하지 않아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요?”
“아닌가요?”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지원을 보고 나는 낮은 숨을 내쉬었다.
여기고 저기고 온통 제 몸 하나 아낄 줄 모르는 사람으로 넘쳐 난다.
뭐,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