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1화
그의 말에 김형도는 눈을 반짝이며 크게 손을 흔들었다.
“맞습니다. 작년 연수 때 인사드렸는데 기억하고 계셨군요!”
우신이 그의 이름을 안 덕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작년 연수에서 만났다면…….”
민지민은 설명을 바란다는 눈빛으로 우신을 쳐다봤다.
강우신은 잠깐 망설이는 얼굴을 했으나 의외로 순순히 설명해 주었다.
“매년 강남에서 열리는 가이드 직업 훈련을 말하는 겁니다. 거기 참여했던 오델리아 길드의 김형도 가이드입니다.”
오델리아 길드.
나는 그제야 그가 낯익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델리아 길드라면 나와도 인연이 있었다.
정확히는 오델리아 길드의 길드장인 이 팀장과 말이다.
이 팀장은 내 첫 사수임과 동시에 내가 센터에 입사했을 때부터 현장 담당자였다.
그런 그가 독립해 만든 길드가 오델리아 길드였다.
이 팀장은 말하는 본새가 재수 없어서 그렇지, 일 하나는 제대로 하던 남자였다.
입사 초에 그에게 신세를 진 일들이 빌미로 잡혀 그 길드 소속의 가이드들에게 가이딩을 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김형도는 6년 전 서초 게이트 참가 직전 이 팀장의 권유로 가이딩을 받았던 그 가이드였다.
얼굴은 막 입사했을 때 그대로인데 몸이 너무 커져서 못 알아본 거였다.
‘오델리아 길드가 이천 게이트 클리어에 참가했을 줄이야.’
창단 이후로 좀처럼 기를 못 폈던 길드였기에 상상도 못 했다.
“작년엔 신세를 졌습니다. 우신 가이드님이 후배 양성에 항상 힘써 주시는 덕분에 매년 가이드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김형도는 우신에게 친한 척 말을 걸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칭찬을 바라고 한 행동 같은데 오히려 우신의 표정은 썩어 들어가고, 민지민은 거짓말도 잘한다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깔깔 웃던 민지민은 이내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길드 소속 가이드가 저희 캠프 앞에는 무슨 일이죠? 그것도 혼자서.”
“…….”
수풀 밖으로 걸어 나온 건 김형도 한 사람뿐이었다. 처음에는 근처에 일행이 숨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형도는 마른침을 삼켰다.
“캠프 안이 초토화되어 있죠?”
“그걸 오델리아의 가이드님이 어떻게 아실까? 본인이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저래 놨나?”
유제이가 그를 샅샅이 살피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김형도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전혀요. 만약 그랬다면 미치지 않고서야 여기 남아 있을 리가 없죠.”
“그럼 누가 이래 놨는지 알고 있기라도 한가?”
“네.”
태평하게 묻는 민지민의 물음에 김형도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상 밖의 대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짓말이었다가는 피차 곤란해질 거야.”
유제이의 겁박에도 형도는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협회의 메테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시겠죠.”
“당연히.”
메테오는 길드들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협회 소속 팀이다.
팀이라 하지만 프로젝트 성으로 급조되는 팀으로,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뭉쳐 조용히 일을 처리하곤 흩어졌다.
빠른 해결을 위해 오로지 에스퍼의 능력만을 중요시하니, 길드도 제어하지 못하는 악질인 놈들이 합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보기에는 우리 캠프를 이 꼴로 만든 게 그놈들의 소행이다?”
“네.”
“근거는.”
“저희 캠프가 박살 나는 걸 직접 목격했거든요.”
“…….”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협회에서 따로 인센티브를 제시했나 봐요. 단독 클리어 시 추가적인 보상은 물론 소속된 길드들의 순위에도 영향이 있을 거고요.”
김형도의 말에 민지민이 작게 혀를 찼다.
“그딴 이유가 아니어도 이런 짓을 할 놈들은 그 팀밖에 없죠. 실적을 낼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뒤에서 이런 개 같은 짓을 할 줄이야.”
민지민은 제 목덜미를 매만지며 피곤한 얼굴을 했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유제이가 김형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그쪽이 혼자서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뭐지. 동맹이라도 맺자는 건가?”
“맞습니다. 저희 팀원들은 흩어져 동맹을 맺을 팀을 찾고 있습니다.”
김형도의 비장한 말에 유제이가 코웃음 쳤다.
“누가 쉽게 응할 줄 알고? 이대로 너 하나 사라지게 하는 건 일도 아닐 텐데.”
“괜한 겁박은 그만둬요.”
내 말에 유제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겁박은 무슨, 멍청하게 너는 저 말을 믿어?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 어디서부터 혼자 왔는지는 몰라도 각 팀의 베이스캠프는 최소 5km는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게이트 안을 가이드가 혼자 돌아다녔다?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유제이가 괜히 땅에 박혀 있는 돌을 걷어찼다. 그 모습에 김형도가 어깨를 살짝 떨었다.
나 역시 그 점이 가장 의아스러워서 지금까지 말을 아끼고 있었다.
가이드인 그가 어떻게 무사히 우리 캠프까지 올 수 있었을까. 우리만 해도 여기까지 오는 길에 가시손오소리를 몇 번이고 마주했는데 말이다.
그때 그의 옷 밖으로 삐져나온 줄이 보였다.
“목걸이?”
반사적으로 뱉어 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김형도의 목으로 향했다.
유제이는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빠른 손놀림으로 줄을 잡아당겼다.
쑥 딸려 나온 줄 끝에는 호박색의 새끼손톱만 한 정제석이 울퉁불퉁한 모양새로 매달려 있었다.
유제이는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게 뭐야.”
“만지지 마세요!”
놀란 형도가 그의 손에서 정제석을 빼앗아 들려는 순간, 유제이가 고민 없이 목걸이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형도의 손이 힘없이 정제석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 유제이의 인기척이 옅어졌다.
마치 그가 보이지 않는 듯한 느낌에 모두의 눈동자가 커졌다.
“은신이네.”
어느새 유제이 곁으로 다가간 곽현주가 말했다.
뛰어난 감각계 에스퍼 중에는 에너지를 정제석에 넣는 자가 있다고 했다. 그자가 에너지를 담아 만든 목걸이인 듯했다.
민지민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저 정도라면 5km까지는 몬스터에게 들키지 않고 숨어 올 수 있겠는데. 제법 괜찮은 실력자가 있나 봐, 오델리아에.”
금세 얼굴빛을 온화하게 바꾼 민지민이 한 발자국 다가서자 김형도는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민지민은 제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자보다 주제를 알고 꼬리를 내리는 이를 좋아했다.
그런 맥락에서 감정을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김형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입매를 올려 웃었다.
“그런데 어쩌지, 동맹이든 뭐든 절연복이 다 망가진 이상 도시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텐데. 그 팀도 캠프가 박살 났다며. 어쩌려고 그러지?”
민지민의 질문에 김형도는 그제야 제가 하려던 말이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문제없어요.”
“문제가 없어?”
“네, 저희는 절연복 없이도 도시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거든요.”
김형도의 말에 그 자리에 서 있던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그 말이 정말일지 아닐지 가늠했다.
탐사 팀에 의하면 도시 외곽선을 따라 전류가 흐른다고 했다.
전류가 흐르는 보이지 않는 벽은 높고 두꺼우니 절연복 없이 들어가겠다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받았는데…….
오델리아가 탐사 팀도 못 찾은 루트를 찾았다는 건가?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서 그의 말이 모두 거짓인 거 같지는 않았다.
“……그 방법이 뭐지?”
민지민이 조심스럽게 운을 떼자, 형도가 단호하게 답했다.
“같은 팀이 아닌 자에게 알려 줄 수는 없죠.”
“목숨을 걸 만큼 그게 중요한가?”
“……저를 죽인다면 영영 모르시게 될 겁니다.”
“…….”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민지민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김형도를 처음 본 사설 가이딩 센터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내 기에 눌려 구토가 올라오는 상황에서조차 끝까지 가이딩을 하려고 했던 놈이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이 팀장이 고른 팀원인 만큼 악바리 근성이 있을 거다.
“잠시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하죠. 유제이 헌터가 잠시 오델리아 가이드를 지켜보고요.”
“내가 왜 네 말을……!”
“그렇게 하죠.”
민지민이 내 말을 거들자 유제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김형도를 노려봤다.
캠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모두 내 쪽으로 둥글게 섰다.
“자, 말해 봐요.”
“……뭡니까. 갑자기 제 말에 집중하시고.”
“양하나 헌터는 제법 괴짜 같은 생각을 잘 해내잖아요. 어서 말해 봐요.”
씩 웃으며 날 향해 괴짜라 말하는 민지민의 표정이 얄미워 탐탁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현재 저희가 가진 정보는 도시 안에 저희가 구조해야 할 사람들과 주인 방으로 갈 루트까지 있을 거라는 게 다입니다.”
어찌 되었든 중심 도시로 가야 하는 이상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오델리아의 동맹을 거절하고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비효율적이지.”
“맞아요. 무엇보다 김형도 가이드의 말처럼 정말 메테오가 활개를 치고 다니는 거라면 더더욱 서둘러 행동해야 합니다.”
나는 낮게 심호흡하고는 비장하게 말을 맺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는 동행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일단 도시 진입에 성공하면 반드시 게이트를 클리어할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말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무런 표정 없이 나를 쳐다보던 민지민이 나직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기회가 오면 클리어합니다. 물론 저희 동맹은 그 직전까지만 유지되고요.”
민지민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