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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0)화 (70/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70화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동안 두 종류의 동물형 몬스터와 전투를 치렀다.

특히 이 근방에는 가시손오소리 무리가 많았다. 아무래도 활동량이 많아 금방 허기를 느낀다는 특징답게 활동 영역을 넓히며 식량 비축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이트에 휘말린 사람들이 그들의 주식이 되고 있었다. 살이 오른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역겨워.’

나는 우신과 대화를 나눈 후부터 주저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팀의 주력 공격원인 유제이는 감각계인 곽현주가 몬스터의 움직임을 동결시키면 단번에 그것들의 목을 쳤다.

두 사람의 공격 루틴은 이미 여러 번 합을 맞춘 것처럼 깔끔했다.

나는 그 콤비를 내버려 둔 채 지원에게로 향했다.

예상대로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대인전과는 다른 게이트 속 전투가 아직은 버거운 모양이었다.

“크읏…….”

지원은 마음처럼 에너지 운용이 잘되지 않자, 평소의 습관이 나오고 있었다.

에너지 운용에 고통이 수반되는 듯 식은땀을 흘리는 게 보였다.

나는 지원이 더 큰 힘을 사용하기 전에 몬스터 무리의 중앙으로 날아들었다.

그런 내 모습에 권미래는 무슨 무모한 짓이냐며 대형을 지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지원의 에너지에 감응해 푸르른 색을 두른 손으로 몬스터를 절단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리가 끝나 갈 때쯤, 유제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초반부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유제이는 빈정거리는 어투로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권미래는 결과가 어쨌든 대형에서 벗어난 내게 민지민이 단호히 경고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민지민은 지원과 내게 공수 교대 하기 좋은 페어라며 대형이 너무 어그러지지 않는 선에서 활동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두어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유제이의 말처럼 과도할 정도로 넘쳐 나는 힘에 나도 모르게 조금 무리한 듯싶었다.

처음에는 단지 전투의 감각을 빨리 되찾기 위해 몬스터 무리 속으로 뛰어든 거였다.

힘이 동나면 곤란했기에 곧 수비 포지션으로 돌아가 힘을 분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렇게 날아다녔는데도, 기력이 빠지기는커녕 상태가 몹시도 좋았다.

‘확실히 체력 훈련이 도움이 된 건가?’

사실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변화는 분명 강우신의 가이딩 때문이었다.

“양하나 헌터.”

때마침 우신이 성큼 다가왔다. 그 모습에 나는 서둘러 내 모습을 살폈다.

온몸이 몬스터의 피로 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판초 우의야 벗으면 되지만, 손에 묻은 피는 씻어 내야 했다.

나는 급히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지저분해요. 거기 있어요.”

내 말이 잘 안 들렸는지 아니면 모른 체하는 건지 우신은 기어코 내 앞에까지 다가왔다.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여기까지 왔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자 우신이 제 손을 내밀었다.

“…….”

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던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이딩이요.”

“네?”

우신의 말에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곽현주가 재미있다는 듯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전담 가이드라지만, 어디까지나 임시였다. 함께 게이트에 들어온 이상 우신은 나 외에 다른 에스퍼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이런 소규모의 전투 뒤에는 딱히 가이딩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신의 노골적인 편애는 눈치가 보였다.

“괜찮아요.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요. 필요하면 제가…….”

“판단은 제 몫입니다.”

그는 제 일을 빼앗지 말라는 얼굴로 내 말을 막았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이 이상 거절하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일 거였다. 나는 별수 없이 그의 손 위로 내 손을 올렸다.

손등 위에 묻어 있던 피가 우신의 손에도 묻었다.

그게 보기 불편해 미간을 좁히는데, 우신의 에너지가 훅 몸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에너지의 길을 타고 몸 안을 훑는 그의 에너지는 아주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날씨가 개 같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비가 내려서 다행이었다.

우의를 때리는 빗소리가 아니었다면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다른 이의 귀에도 들렸을 것이다.

가이딩이 끝났는지 우신이 손을 뗐다.

“아직은 괜찮네요. 하지만 양 후배는 남들보다 그릇이 크기 때문에 여파가 뒤늦게 올지도 모릅니다. 수시로…… 지금 내 말 듣고 있습니까?”

“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 불쑥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다.

“권미래 헌터를 불러 드릴까요.”

“문제없습니다만.”

“그렇다기엔 얼굴이 붉은데요. 이마도 좀 뜨겁고.”

우신은 나지막하게 괜찮습니까, 하고 물으며 허리를 숙였다.

당황해 그의 가슴께를 밀어내려는데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던 곽현주가 갑자기 우리 사이에 떡하니 자리 잡고 나와 우신을 바라보았다.

그에 우신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 있습니까.”

서늘한 물음에 곽현주는 제 양팔을 감싸 안으며 답했다.

“그 강우신이 전담 가이드가 됐다고 들었을 때는 무슨 변덕인가 했는데……. 생각보다 더 말캉말캉하네요.”

‘말캉말캉’을 힘주어 말하는 그녀에게 순간적으로 큰 소리를 냈다.

“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러고는 재빨리 짐 쪽으로 걸어갔다.

* * *

30분쯤 더 걸어가니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저 비닐하우스가 탐사 팀에서 설치한 베이스캠프였다.

그쯤 되니 비도 그쳤다. 하늘이 아직 어둑해서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는 모르지만, 몬스터의 피를 계속 묻히고 다닐 수는 없었다.

빗물에 젖은 우의를 접어 짐 가방 속에 넣었다.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직후 본부에 신호를 보내고 재정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선 순간 모두 당혹감에 눈만 휘둥그레 뜬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아무리 봐도 이건 누가 다녀간 거 같은데?”

유제이의 말에 곽현주가 답했다.

“아예 풍비박산을 만들어 놨네.”

비닐하우스로 위장해 둔 베이스캠프 안은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입구가 살짝 열려 있는 걸 봤을 때부터 불안하다고는 생각했는데, 탐사 팀이 정비해 둔 통신 기기가 망가진 것은 물론 물론 식량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일인 건 절연복 역시 사라졌다는 거다. 각자 흩어져 캠프 안을 여기저기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유제이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초조하게 물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 먹을 약간의 식량은 있고, 절연복이나 통신 기기를 가지러 게이트 밖에 다녀오면 해결될 문제였다.

몇 년 전만 해도 한 번 입장한 게이트는 클리어하기 전까지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감각계 에스퍼가 개발한 정제석 덕분에 이제는 처음 입장한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만, 게이트에서 나가려면 1인당 1개의 정제석이 필요한데, 우리가 지급받은 정제석은 3개뿐이었다. 한마디로 나머지 멤버는 이 안에서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돌아오려면 빨라도 며칠이 필요하니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았다.

“총체적 난국이군.”

옆에 있던 민지민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작게 읊조렸다.

나는 엉망이 된 내부를 살피며 조용히 캠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몬스터나 생존자에게 캠프가 털렸다기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만이 의도적으로 망가져 있었다.

몬스터의 소행이라면 캠프 자체가 망가졌어야 했고, 생존자라면 통신기를 사용하려 훔쳐 가지 망가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몬스터나 생존자가 아닌…….

“같이 들어온 길드 중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비닐하우스 뒤의 수풀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홀스터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유제이를 상대했을 때 썼던 것과 같은 단검이었다.

“거기 있는 거 알고 있으니, 무장 해제 후 순순히 걸어 나오시죠.”

“…….”

수풀 너머는 여전히 조용했다. 나는 조용히 검 끝에 에너지를 실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달려들 생각이었다.

그 순간 수풀이 흔들리더니 웬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서둘러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무기는 없으니 진정하세요.”

나는 수풀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그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큰 키와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는 실루엣에 비해 이목구비가 둥글어 앳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외모가 어딘가 낯익었다.

그때 그의 허벅다리에 묶인 천이 보였다.

청록빛이 감도는 천. 그건 우리와 마찬가지로 게이트 클리어를 위해 참여한 팀이라는 의미였다.

“신원을 밝히세요.”

경계심을 지우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자, 베이스캠프 안에 있던 팀원들이 부산스럽게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란이야.”

가장 선두로 나온 건 신난 얼굴의 유제이였다.

그는 마치 무슨 일이 생기길 바라는 사람처럼 발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민지민과 강우신이 연달아 나왔다. 두 사람은 유제이와 달리 곧바로 두 손을 들고 있는 남자를 눈으로 훑었다.

“뭐야.”

민지민이 불편한 내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 기백에 눌린 남자가 서둘러 대답하려 하자 강우신이 한발 빠르게 입을 열었다.

“김형도 가이드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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