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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9)화 (69/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9화

내 물음에 민지민은 눈앞에 두고도 모르겠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원은 나와 민지민 사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민은 우리의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제가 양하나 헌터만 내기 멤버로 채택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요?”

“한지원 헌터는 내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글쎄요, 참관도 참여죠.”

그의 말에 그늘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지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가 죽어 내게 계속 미안해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했다.

그곳까지 왜 왔나 했더니. 그때 이미 뒤에서 민지민과 모종의 대화가 오간 건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눈앞에 앉아 있는 지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잔뜩 주눅이 든 모습에 도리어 화가 치밀었다.

“지원 헌터는 생각이 있습니까?”

내 나직한 물음에 지원의 어깨가 작게 말려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운용 연습에 집중하고 있으라는 문자를 남겼다.

그것이 완전히 익숙해지도록, 그러니까 뛰어다니면서도 운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도록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천 게이트에서 돌아와서 우신에게 다시금 지원의 길을 만져 달라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지원의 힘은 아직 불안정했다.

“유제이와 동등한 입장에서 싸운 에스퍼가 양하나 헌터와 한지원 헌터밖에 없었으니까 이건 당연한 결과인 거죠.”

민지민은 불에 기름을 붓듯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유제이는 정규 대련 중에 지원을 죽이려 했다.

그건 다시 말해 이런 높은 등급의 게이트 안에서는 얼마든지 사고로 위장해 지원을 해치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상황도 모르고 달려드는 지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왔습니까. 지원 헌터는 내 말이 그저 쓸모없는 잔소리인 줄 알았나 봅니다.”

민지민을 무시한 채 최대한 화를 누르며 말을 잇자, 유제이가 내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나를 두고 사이좋을 때는 언제고 지금 보니 눈빛이 아주 사람 하나 잡아먹겠는데? 이미 결정된 마당에 무를 수도 없는 일인 거 아니야?”

“…….”

“무엇보다 저기 뒤나 좀 챙기는 게 어때? 저쪽도 아까부터 만만찮게 뜨거운 눈으로 널 보는 것 같던데.”

그의 말에 천막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강우신이 서 있었다.

* * *

“그럼 마지막으로 인원 점검할게요.”

민지민이 한 명씩 호명했다. 유제이와 권미래, 곽현주를 지나 나와 한지원이 나란히 호명됐다.

“강우신 가이드는 일 끝나고 곧장 온 건데 상태가 괜찮나 몰라.”

민지민의 말에 우신과 함께 온 가이드가 대신 답했다.

“괜찮습니다.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여서요.”

그 대답에 민지민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러니까 그쪽이.”

“네, 이번 이천 게이트 클리어에 합류한 백건희입니다.”

“우리 몇 번 봤죠.”

“네, 그렇습니다.”

그는 박희민과 마찬가지로 A급 가이드 중에서도 손꼽히는 가이드였다.

입사 경력도 5년을 꽉 채웠고 현장 경험도 많을 텐데 신입같이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었다.

그의 소개가 끝나자 민지민의 입매가 빙그레 올라갔다.

“생각보다 게이트의 난도가 높았나 봐요?”

그의 말에 백건희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네?”

“높은 등급의 가이드가 둘이나 있었는데 지각을 한 걸 보니까 말이에요. 게이트 안에서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투입되었던 게이트 클리어가 예상보다 늦어지며 센터의 이천 게이트 입장 순서가 뒤로 밀려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더니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백건희는 민지민을 바라보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늦어서 죄송…….”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민지민이 천 하나를 건넸다.

황금빛이 도는 얇고 부드러운 천이었다. 천 끝에는 집공 팀의 마크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백건희는 떨떠름한 얼굴로 민지민을 바라보며 천을 손에 쥐었다.

그뿐아니라 팀원 전체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이천 게이트 클리어에 참여한 팀들은 서로 실적을 공유하진 않지만 모두 게이트 클리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

그러니 불필요한 충돌 없이 서로의 소속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는데, 그게 이 천이었다.

센터의 팀 색은 황금색이었다.

나는 황금색 천을 시커먼 작업복의 팔뚝에 달린 주머니 후크에 연결해 묶었다.

각자 편한 위치에 천을 다 묶었을 때쯤, 민지민이 말을 이었다.

“그럼 입장합시다.”

우리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취재진이 자리한 게이트 입구로 향했다.

공간이 일그러진 거대한 입구로부터 섬뜩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미세하게 게이트 안쪽으로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카메라에 둘러싸인 민지민이 허세 가득한 목소리로 출격 소감을 떠들고 나서야 마침내 우리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 * *

“들어오자마자 이게 무슨 짓인지.”

입장과 동시에 쏟아지는 장대비에 판초 우의를 꺼내 신속하게 입기 시작했다.

주변을 메운 높고 빼곡한 나무 덕분에 곧장 홀딱 젖지는 않았다.

나무 아래에서 차림을 정비하고는 일렬종대로 걸음을 옮겼다.

게이트 입구에서 베이스캠프까지의 거리는 대략 10km로, 한 시간 반은 가야 했다.

가이드를 중앙에 배치한 대형이었기에 내 바로 앞에 강우신이 있었다.

백건희 가이드 말로는 눈을 좀 붙였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된 거로 보였다.

묵묵히 걷고 있자니 주위는 비 때문에 눅눅해진 땅을 밟는 군화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만 가득했다.

이따금 바로 앞에 선 우신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내 눈에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커다란 짐이 들어왔다.

짐 가방을 쥔 그의 손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잡생각이 끼어들었다.

임시이긴 하나 그는 내 가이드였다. 그러니까 내가 짐 가방 정도는 대신 들어 줘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내 생각이 타당한 이유를 늘어놓고 있는데 선두에 있던 곽현주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꽉 쥔 주먹은 행동을 멈추라는 사인이었다.

곧 이어셋을 통해 곽현주의 거친 숨소리와 말이 들렸다.

-전방에 가시손오소리 무리입니다. 식사 중인 듯 아직 저희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거 같네요.

-식사?

그 말에 곽현주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가시손오소리 무리 사이로 삐져나온 사람의 팔이 보였다.

“…….”

-우회해서 돌아갈 방법은.

-걸어온 방향으로 돌아가 산을 타는 방법도 있긴 하나 이런 날씨에 산길은 체력 소모가 심할 겁니다.

그건 안 된다.

에스퍼에게는 몰라도 다른 게이트에 있다 온 우신에게는 분명 무리가 될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가시손오소리가 나타났다는 건, 이 근방이 모두 그들의 활동지라는 소리입니다.

회의 때 들었던 것처럼, 이천 게이트에 출몰한 대부분의 동물형 몬스터는 새로운 종류였다.

동물형 몬스터는 발견자가 그 특징을 따 이름을 붙이기에 나는 송대현 헌터가 작성한 몬스터 보고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봤다.

-우회해서 돌아간다고 한들 분명 다시 마주치게 될 거예요. 그럴 바에 베이스캠프까지 직선거리로 가는 게 도리어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으나 민지민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한지원과 유제이, 각각 선두에. 나머지 인원들도 모두 전투태세 갖추고.

민지민의 오더가 떨어지기 무섭게 각자 위치를 잡았다.

나는 우신과 백건희를 안전지대로 옮기며 슬쩍 우신의 눈치를 봤다.

우신은 내가 이천 게이트에 들어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게 아직도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신경 쓰였다. 그런 내 생각이 뻔히 보였는지 우신이 입을 열었다.

“제가 밖에서 했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게이트 입장 전의 이야기입니다.”

빗소리에 묻힐 법도 한데 우신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우의의 후드 너머로 보이는 우신의 눈빛이 단호했다.

“이미 입장한 이상 최선을 다해 싸우라는 소립니다.”

“…….”

“뒤에 내가 있으니까.”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내 가이드. 그가 지금 바로 손 닿을 곳에 있었다.

우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이 내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알고 있을까.

‘만약 양 후배는 굳게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어떨 거 같습니까.’

그의 한 마디에 그간 머리를 어지럽게 한 생각들이 빗물에 씻겨 나가는 거 같았다.

지금은 그의 말처럼 눈앞에 있는 것만 보기로 했다.

잠깐 시선을 내리깐 채 움직이지 않자 우신이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양하나 헌터?”

그의 부름에 시선을 들었다.

“고마워요.”

그 말을 끝으로 한지원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우신은 점점 멀어지는 하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옆자리에서 조용히 두 사람의 말을 훔쳐 듣던 건희가 나직하게 우신을 향해 말했다.

“걱정하시던 것보다 훨씬 믿음직해 보이는데요.”

“……당연하지. 누구 에스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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