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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8)화 (68/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8화

오픈 필드는 명확히 규정하기 힘들 만큼 그 형태가 다양하다.

개중 실제 지형이 통째로 게이트화되는 유형도 있는데 이천 게이트가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덕분에 탐사 팀이 따로 지형을 조사해 새 지도를 만들 필요는 없었지만, 그만큼 구해야 할 사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만큼 S급 게이트에서 구해 내는 생존자 수가 현 국가의 전력을 보여 줄 터였다.

민지민은 송대현의 말뜻을 이해하긴 했지만, 마음에 들진 않았는지 뿌루퉁한 얼굴이 돼서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송대현은 그런 그의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 보고는 끝났으니 건투를 빈다는 말과 함께 팀원들과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원을 잃은 탓에 상당히 저기압일 텐데 끝까지 예의를 지키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민지민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떠나고도 민지민이 입을 꾹 닫고 있자 일순 정적이 돌았다.

그 무거운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건 곽현주였다.

“인사라도 나누죠.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랑은 초면이죠?”

그녀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 네. 양하나입니다.”

곽현주는 유제이나 권미래와 마찬가지로 민지민 그룹에 소속된 감각계 에스퍼다.

그녀는 체력장이나 대인전 등 어느 등급 평가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떠도는 소문일지도 모르지만 현장 투입이 잦아 승급 심사가 면제됐다고 들었다. 민지민의 그룹원들이 그렇듯 그녀 또한 삐딱한 인물일 거라 생각했는데…….

“유제이 얼굴을 저렇게 만든 게 그쪽이라면서요. 나 완전 통쾌해서 좋아 죽었잖아.”

그녀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쪽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데, 하나 씨는 나 어때요?”

곽현주는 그 말과 함께 찡긋 윙크를 했다.

“…….”

턱선까지 오는 단발에 눈썹의 피어싱이 인상적인 그녀는 적극적으로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어쩌면 이 그룹 멤버 중 그녀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저는 볼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타이밍 좋게 권미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지민은 귀찮다는 얼굴로 대충 손을 휘저었다.

“그래.”

당장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데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유제이가 나를 노골적으로 째려보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민지민은 강우신을 비롯한 나머지 팀원 소개는 내일 할 거라는 말과 함께 이만 돌아가라며 나와 곽현주도 회의실 밖으로 내보냈다.

곽현주가 함께 점심이라도 먹자면 달라붙었지만, 그녀 역시 이후 일정이 있었는지 머지않아 관리자에게 호출되었다.

겨우 혼자가 된 나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 *

내가 향한 곳은 숙소 로비였다.

로비의 비즈니스 룸 옆에 이용하는 이가 거의 없는 작은 테라스가 있었다.

빠르게 테라스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내 부름에 다영이 뒤돌아봤다.

“아니에요. 저도 방금 도착했거든요.”

그늘에 다녀온 이후 나는 그녀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이천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알고 싶은 정보가 있다며 다짜고짜 부탁을 했는데도 다영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는데도 다영은 당연하다는 듯 최적의 접선 장소까지 알려 주었다.

나는 사 온 커피를 내밀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잘 지내죠?”

내 물음에 다영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텃새가 더 심하더라고요. 1군에 머물 수 있는 인원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모두 은연중 알고 있잖아요. 누군가 올라오면 누군가는 강등당하기도 한다는 걸.”

말을 마친 그녀는 커피를 한 입 홀짝 마시더니 씩 웃었다.

“그래서 밥은 여전히 저 혼자 먹어요.”

다영은 그것 말고는 아주 잘 해내고 있으니 제 걱정은 접어 두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13번 팀 팀원들의 안부를 궁금해한다고 생각했는지, 묻지도 않은 팀원들의 이야기를 늘어놨다.

태용은 프러포즈에 정신이 팔려 있고, 소희는 무리 없이 2군에 적응했으며 예상대로 영우는 고생을 좀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들 각자의 삶을 잘 헤쳐 나갈 거라며 다영은 말을 맺었다.

나는 두 눈을 끔뻑이며 그녀의 말을 듣다가 입을 열었다.

“자주 연락하고 지내나 봐요?”

다영은 내 질문을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입을 벙긋거리며 손을 저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요. 딱히 정이 들었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조금은 걱정이 돼서.”

“…….”

가만 보면 나보다는 다영이 훨씬 리더다워 보였다.

나는 그것 역시 그녀의 재능이리라 생각하며 당황해하는 다영을 위해 말을 돌렸다.

“제가 부탁했던 것들은 알아보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내 물음에 다영은 핸드폰 메모장 앱을 켜며 답했다.

“그럼요. 알아봐야 할 정보를 정확하게 짚어 주셔서 어렵지는 않았는데, 유의미한 정보가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우신과 함께 그늘에서 본 기억도 마음에 걸렸지만, 가장 먼저 알아봐야 하는 건 역시 양하나의 기억이었다.

그저 그녀의 어렸을 적 기억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찝찝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같은 2군 소속이었던 다영에게 양하나와 함께 입사한 에스퍼들에게 특이점이 없는지 알아봐 달라 부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양하나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내가 나에 대해 조사하는 건 아무래도 수상해 보일 게 분명했다.

“대부분 큰 사건 없이 정석 루트를 밟았더라고요.”

정석 루트는 각성 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센터에 입사하는 것을 말한다. 센터에 입사한 대부분의 에스퍼는 이 루트를 밟는다.

“그래서 그런지 크게 수상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역시 이렇게 에둘러 알아내려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한 순간 다영이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의 입사 동기는 아니긴 한데, 몇몇을 더 조사하다 보니 눈에 띄는 헌터가 한 명 있었어요.”

“눈에 띄는 헌터요?”

“네, 이곤 헌터라고.”

“…….”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귀에 익은 이름에 나는 행동을 멈췄다.

“듣자 하니 양하나 헌터와 소꿉친구라고 하던데, 맞나요?”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미 아실 수도 있겠네요. 소문에 의하면 이곤 헌터가 연구실 출신이라고 하더라고요.”

“연구실 출신이요?”

다영은 마치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이상의 부연 설명은 하지 않았다.

내가 이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몇 없지만, 그늘에서 본 기억을 토대로 추측하면 얼핏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자세한 것까지는 시간이 부족해서 알아보지 못했는데, 필요하시다면 더 알아볼 수 있어요.”

내 표정이 심각해지자 다영이 그렇게 몇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역시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때마침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울렸다. 그 진동에 다영은 말을 멈췄고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곤에게서 온 문자였다.

[미안, 부재중 전화를 이제 봤어. 이천 게이트 간다는 이야기 들었어. 그럼 얼마간 또 못 보겠네.]

이곤은 2군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실력 덕에 항시 출장이 잦았다.

사실 그늘을 빠져나오자마자 충동적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다행히도 이곤이 게이트 안에 있던 탓에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그 문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답장했다.

[응, 맞아.]

문자를 보내기 무섭게 답장이 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 문자에 답장하지 못하고 있는 그때, 다영이 말을 이었다.

“알아볼 수는 있지만,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만큼 정확하진 않을 거예요.”

그 말에 나는 자그마하게 그렇겠죠, 라고 답하며 이곤의 문자에 답장했다.

[만나서. 원정 다녀오면 보자, 곤아.]

* * *

준비된 이송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를 달리자 게이트 입구에 도착했다.

이천에 다다를수록 하늘이 점차 어두워졌다.

먹구름은 게이트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듯 이천시에 가까워질수록 먹구름의 색이 짙어졌다.

‘저 먹구름 아래는 꼭 다른 세상이라고 표시해 둔 것 같네.’

나는 버스에서 내려 그 압도적인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 도시를 삼킨 게이트는 그 끝이 어딘지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선 나를 두고 민지민을 비롯한 일행은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유제이는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리면서 괜히 내 어깨를 툭 치고 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그들의 뒤를 조용히 따라 걸었다.

오 분 정도 걸어가자, 야외 주자장에 천막들이 쳐져 있는 게 보였다.

각각의 천막 앞에는 고유 문양이 그려진 장막이 둘러져 있었다.

협회의 주도 아래, 이천 게이트 입장 자격을 얻은 길드가 가득했는데 모두 내로라하는 길드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센터 소속인 우리를 주시하는 시선들이 매서웠다.

민지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으나 유제이나 곽현주는 강한 헌터들의 견제를 받으면 받을수록 기가 더 살아나는 거 같았다.

나는 그림자처럼 일행 끝에 서서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사고가 정지했다.

“…….”

이번 팀의 구성은 에스퍼 최대 6인, 가이드 최대 2인이었다. 물론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이보다 소규모로 팀을 구성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 에스퍼 멤버를 민지민은 이미 구해 놨다며 당일 현장에서 합류할 것이라 말했다.

현재 우리 팀은 치유계와 정신계가 각각 한 명, 감각계가 두 명, 물리계가 한 명이었다.

그러므로 균형을 위해 당연히 물리계 에스퍼 한 명이 충원될 것이라고는 생각했는데…….

“한지원 헌터가 그 충원 멤버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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