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6)화 (66/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6화

“지금 양 후배, 내 눈물에 흔들린 거 아닙니까?”

우신의 물음에 나는 정곡을 찔린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내 행동에 확신을 가진 듯 우신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양 후배 마음속에 생긴 틈 안에 제가 들어간 거 아닌가 해서요.”

우신이 내 손을 부드럽게 그러쥐었다.

그러고서는 내가 어찌하기도 전에 내 손을 제 뺨에 가져다 댔다.

그의 뺨이 뜨거웠다. 우신이 슬며시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몰랐는데 의외로 눈물에 약한가 봐요.”

“…….”

“나라서 그런 건가요?”

두 눈을 깜빡이며 예쁜 척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강우신 가이드는 부끄러움을 좀 알아도 괜찮을 거 같아요.”

우신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이 이상 대화를 나누면 우신에게 놀아날 거 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눈물 많은 건 여전한 거 같아 걱정했는데, 순식간에 언제 울었냐는 듯 능글맞게 구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주변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잠시 포자가 걷힌 지금이 빠져나갈 기회 아닌가요. 이제 장난은 그만하고 빠져나가는 길을 찾죠.”

다시 출구 방향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아직 내 손을 놓지 않은 우신이 손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인 김에 하나만 더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땅에 두 다리가 박힌 듯 가만히 서서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게, 안 된다고 해도 계속 조를 기세였다.

나는 별수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뭔데요. 제가 답하면 정말 나갑시다, 여기서.”

나는 이 손도 좀 놓고, 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손은 놓지 않아 내 신경이 그리로 쏠리는데, 우신이 입을 열었다.

“만약 양 후배는 굳게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어떨 거 같습니까.”

일순 우신의 입에서 나온 배신이라는 말에 행동을 멈췄다.

“……질문이 너무 추상적인 거 아닌가요.”

바로 직전에 그런 기억을 보고 온 후 이런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려울 거 없습니다. 말 그대로예요. 맹목적으로 믿었던 사람의 추악한 민낯을 목격한다면 어떨 거 같냐는 소리입니다. ……양 후배는 그런 경험 없나요?”

꼭 뭔가를 알고 날 떠보는 듯한 태도.

진심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아 자꾸만 외면하던 우신의 감정.

그는 역시 성시현에게, 그러니까 내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목을 감싼 얇은 터틀넥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괜히 그것을 손으로 늘렸다.

계속 피해 오던 감정과 마주하게 되니 일순 생각이 멈췄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중간하게 진심을 숨겼다가는 눈치 빠른 그가 알아챌 것이었다.

만약 내가 상황을 설명한다면, 내 진심이 그에게 닿을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 대신 다른 진심을 토해 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처음부터요?”

“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몰라도 저는 제 손으로 문제를 고칠 거 같습니다.”

내 대답에 우신의 표정이 오묘해지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왠지 선배도 딱 그렇게 대답했을 거 같았는데…… 역시 똑같이 말하네요.”

“네?”

“충분한 대답이 됐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신은 그러잡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그 힘에 이끌려 나 역시 발을 뗐다.

“잠시만요, 그렇게 막 가다가는……!”

조심하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한 발자국 앞서가던 우신의 몸체가 빛을 받아 환해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빛에 잠식되듯 눈앞이 하얘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고 손차양을 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하나 헌터!”

미성의 목소리는 지원의 것이었다.

서서히 눈을 뜨자 익숙한 천막과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그늘 밖이었다.

“……출구가 코앞이었다니.”

뭔가 우신에게 속은 기분에 그를 째려봤다.

하지만 이미 우신은 무전기를 반납하기 위해 천막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천막 뒤로 저무는 태양 때문에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만히 서서 우신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늘 안에서의 일들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포자가 사라져서 그런가 굉장히 오래전 일 같네.’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민지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승부는 어떻게 됐죠?”

다행히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나오긴 했으나 승부는 아직 몰랐다.

상기된 얼굴로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민지민을 바라보는데, 민지민은 뚱한 표정으로 뒤를 보라는 듯 턱짓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제야 막 그늘 밖으로 나오는 유제이와 권미래가 보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유제이는 밖에 나와 있는 나를 보더니 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아! 아까 포자 핵만 안 건드렸어도!”

유제이는 제 분을 못 이겨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다녔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민지민은 흥미가 가신 얼굴로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이번 주 중으로 회의 참석 일자 일러 줄 테니 늦게 오지 마시길.”

지민은 흘리듯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함정 같은 걸 만들어 놨을 줄 알았는데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찝찝했다.

유제이는 이 상황이 못마땅한 듯 숨을 씩씩거리며 다 들으라는 식으로 커다랗게 말했다.

“이건 불공평해! 정신계인 양하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내기잖아!”

‘정신계인 내게 유리한 내기였다고?’

그의 말에 표정이 구겨졌다.

권미래는 유제이를 막아 보려 했지만, 날뛰는 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C급이라도 텔레파시를 사용한다면 이 정도 몬스터는 간단하게 쓰러트릴 수 있잖아!”

나는 그제야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정신계 에스퍼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양하나의 몸에 빙의하고 갔던 첫 번째 게이트.

그때 몬스터의 음파를 차단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포자가 정신에 침투하는 걸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등급은 낮아도 양 헌터는 정신계니까 형평성도 맞는 것 같고.”

낭패였다.

밖에 있던 이들은 큰 의심을 하지 않겠지만, 내가 그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우신이라면 의심할 것이다.

왜 정신계 에스퍼가 악몽에 빠지는지 말이다.

나는 사색이 되어 우신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우신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 사실을 그가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우신은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지.

의중을 알 수 없는 우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지원의 얼굴이 끼어들었다.

내가 놀라 뒷걸음치자, 지원은 뻘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니에요. 잠시 딴생각을 해서.”

그렇게 답하며 다시 우신을 바라보는데,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민지민이 사라진 방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떠난 방향을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때마침 지원이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저…….”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씹는 지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원은 제 손톱 거스러미를 괜히 건들었다. 피가 날 듯 붉어진 손끝에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둬요.”

그제야 정신이 든 지원은 민망한 듯 말을 이었다.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하고요. 꼭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

나는 그의 손목을 놔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전에도 말했듯이 오로지 지원 헌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거 아니니까.”

진심이었다. 온전히 그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기에 그에게 들을 말 같은 건 없었다.

그가 이렇게 사과하리라 예상은 했지만 과도하게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신경 쓰이긴 했다.

그 모습에 저절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지원은 그런 내 표정을 바라보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말을 이었다.

“역시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이요?”

내말에 지원은 눈을 깜빡이다 질문했다.

“별일 없었어요?”

나는 미간을 좁혔다.

꼭 내가 그늘 안에서 무슨 일을 겪을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물음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내 물음에 지원은 슬쩍 우신이 있던 방향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괜찮습니다. 그냥 조금 마음 쓰이는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

며칠 동안 지원에게 에너지 운용하는 법을 직접 가르쳤기에 그의 성격에 대해서라면 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완강하게 거절한 이상 아무리 캐물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게 뻔했다.

안 그래도 피곤했기에 더 이상 캐묻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럼 됐다는 말과 함께 천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지원은 대인전을 마치자마자 급하게 층계를 밟고 2층에 올라섰다.

그때 문 앞에서 마주친 게 우신이었다. 지원은 반사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우신 가이드님…….”

냉소적인 얼굴의 우신을 본 지원은 그를 경계하듯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에 우신은 대꾸도 없이 문을 열고 2층 객석으로 들어갔다.

양하나 헌터와 함께 있을 때도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었지만, 단둘이 있으니 더 노골적으로 적대심을 드러냈다.

지원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 객석으로 들어갔다.

“…….”

안 그래도 매서운 우신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진 건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원이 뒤늦게 우신을 따라 객석에 들어섰을 때 유제이가 양하나의 복부를 강하게 공격한 것이다.

그러자 그녀의 가벼운 몸체가 붕 떠오르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그 모습에 지원은 저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원의 살갗을 쭈뼛 서게 하는 건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살기였다.

우신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