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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5)화 (65/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5화

굳어 버린 내 표정에 우신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반응이 너무 솔직해서 괜히 서운한데요.”

“지금 얘기해야 할 만큼 심각한 일입니까?”

쏘아붙이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우신은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만 에너지의 길을 확장시키는 건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수축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네, 당연히 주기적으로 제가 필요하다는 소리죠.”

그와의 관계에서 한 번도 우위에 섰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아슬아슬하게 수평을 유지하던 관계의 시소가 급격히 한쪽으로 기우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번번이 말하지만 나는 양하나 헌터의 부탁이면 그게 뭐든 들어줄 겁니다.”

우신은 제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듯 새카만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을 똑바로 마주하자 오히려 우신이 내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확장시키는 걸 항상 성공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

“실수할지도 모르겠네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왜 되지도 않는 협박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순간 우신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난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스무 살의 강우신이 서초 게이트로 향하던 나를 붙잡던 그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이제는 가지 말라는 말로 회유하려 들지는 않았지만 애처로운 얼굴인 건 똑같았다.

뭐가 강우신을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건지, 그리고 나는 그때도 오늘도 이런 그를 왜 모른 척할 수 없는 건지.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이 무거운 돌덩어리처럼 가슴에 쌓여 갔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요. 우리 문제에 괜한 사람 끼워 넣지도 말고.”

잠긴 목소리로 겨우 그를 타일러 봤지만, 우신은 눈썹을 휘며 답했다.

“양 헌터는 타인이 당신 때문에 피해 보는 걸 끔찍하게도 싫어했죠.”

마치 나를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봤다는 듯한 말이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이 도와주려는 에스퍼의 에너지 길을 무너뜨렸다가는 용서받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

“원정이고 뭐고 앞으로의 일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아마 당신의 머릿속은 저로 채워지겠죠.”

우신이 희미하게 웃었다.

“어쩌면 그편이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데, 이 모든 감정이 포자 때문일까요? 양 후배님.”

협박하고 있는 주제에…….

그런데 어쩐지 강우신의 눈이 슬퍼 보였다.

나는 입 안의 여린 살을 꼭 깨물었다.

평소 무표정하던 강우신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 나까지 동요되었다.

속이 매스꺼웠다.

“이제 진짜 터널을 나가지 않으면 위험하니…….”

그렇게 말하며 강우신의 팔목을 잡으려는 순간, 들고 있던 손전등의 빛이 우신의 등 뒤를 비췄다.

어느새 우리 주변을 커다란 포자 덩어리가 감싸고 있었다.

벽처럼 솟아오른 포자에 반응하려는 순간 액체처럼 유연하게 성질을 바꾼 포자가 나와 강우신을 덮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강우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끌어안았다.

* * *

그와의 대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머드 웜이 우릴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리 클리어된 곳이라고 해도 게이트인데, 실수였다.

‘그래서 여긴 어디지.’

또다시 악몽 속에 들어온 건가. 하지만 느껴지는 감각이 아까와는 달랐다.

과거의 기억을 볼 수밖에 없었던 이전의 악몽과는 달리 이번엔 성시현의 몸으로 웬 거리에 서 있었다.

황량한 거리를 보아하니 로드형 게이트 안일지도 몰랐다.

‘과거의 어느 시점이길래 내가 원래 내 모습으로 서 있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는데 멀리 서너 명의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서서히 내게 가까워졌다.

공격 1팀의 후배들이었다. 그 안에 아주 눈에 익은 이가 있었다.

20살의 강우신이었다.

순간 놀라 몸을 숨기려 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맞다. 머드 웜이 보여 주는 악몽이니 내가 보일 리 없구나.’

괜한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런 현장을 본 기억이 없었다. 더군다나 강우신이 있는 걸 보아 아무래도 이건 후발대에 속한…….

‘강우신의 악몽인가.’

아무래도 함께 포자를 뒤집어쓰면서 그의 악몽에 같이 빠진 모양이었다.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강우신의 악몽이라고 하니 일순 약간의 호기심이 일었다.

어디서든 당당하기 그지없는 강우신이 무의식중에 품은 그늘은 뭘까.

그 생각을 하며 조심히 그 뒤를 따랐다.

후발대라고는 하지만 그들에게선 게이트에 들어왔다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게 가는 길마다 이미 몬스터가 사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 앞에 아마…….

“우린 완전 병풍이군.”

그때 우신의 앞에 있던 에스퍼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지루하다는 듯 하품하며 말을 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팀에 안 들어왔지. 뭐가 공격 1팀이야. 기껏 아카데미에서 훈련 다 받고 왔더니 하는 게 사체 처리하는 일일 줄이야.”

“그래? 난 보수만 주면 상관없는데.”

“그건 네가 비전투계니까 그렇지. 나 같은 인재를 썩히는 건 국가적 낭비라고. 알아?”

그 사내는 우신을 힐끗 쳐다봤다.

“뭐, 너처럼 여기 있는 게 좋을 사람이 한 명 더 있긴 하네. C급이라고?”

우신은 그의 물음에 작게 답했다.

“네.”

그 대답에 사내는 살짝 입꼬리를 올린 채 말을 이었다.

“넌 좋겠네.”

“……무슨 뜻입니까?”

우신의 미간에 힘이 들어가자, 우습다는 듯 사내가 말을 이었다.

“힘 빼, 자식아. 저 괴물이 저렇게 날뛰어도 너한테 가이딩을 받으러 올 리 없잖아.”

“…….”

“듣자 하니 하자가 있는 모양이더라고. 저러다가 폭주해서 뒈지라지.”

그의 말에 우신이 에스퍼의 멱살을 잡았다.

주변에 서 있던 에스퍼들이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그 순간 노이즈가 끼듯 그들의 목소리가 멀어지더니 이내 눈앞에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신의 그늘이 붕괴하듯 기억들이 상충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조각조각 나뉘며 여러 기억이 보였다. 다만 그 기억은 모두 비슷한 것을 비추었다.

피를 뒤집어쓰고 날아다니는 금빛의 여자.

그녀의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무기력한 남자의 모습까지.

나는 홀린 듯 한 걸음 한 걸음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장면이 바뀌며 피를 뒤집어쓴 여자가 동굴 밖으로 거칠게 남자를 밀어냈다.

결국 여자는 그 자리에 홀로 남게 되었다.

무너지는 동굴 속에서 금빛을 휘감은 그녀가 숙인 고개를 드는 그 순간, 두껍고 거친 손이 내 눈을 가렸다.

“보지 마요.”

강우신의 목소리였다.

제 치부를 숨기는 듯 처절한 목소리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처럼 그 역시 제삼자의 시점으로 이 모든 걸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우신이 필사적으로 내게 숨기고자 하는 마음속 그늘.

나는 그제야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입을 끔벅이며 우신에겐 들리지 않을 메시지를 전했다.

‘아, 너한테는 내가 그늘이었구나.’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터널 안이었다.

클리어된 게이트이기 때문에 몬스터의 에너지가 약해지면 자연히 악몽에서 풀려나는 모양이었다.

만약 여기가 일반적인 게이트였다면 나와 우신은 그대로 악몽에 갇혔을지도 모른다.

귓가에서 맴돌던 혼란한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등 뒤에 선 우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우신은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 같은 건 있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이라면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만약 내 악몽을 우신이 봤다면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 혼잡한 상황을 정리하고 그늘을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그늘에 있는 이상 방금 같은 상황은 계속 반복될 것이고, 내 악몽에 우신이 함께 들어가지 않으리란 법도 없었다.

‘그럼 큰일이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신을 바라봤다.

“괜찮아요?”

아주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늘을 다녀온 내 얼굴은 어땠을까.

우신의 말을 빌리자면 몹쓸 기억을 마주한 듯 식은땀을 흘리는 꼴이었을 거다.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면 대부분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지 않을까.

“강우신 가이드?”

“…….”

하지만 강우신 가이드의 표정은 내 예상과 달랐다.

“……저 강우신 가이드의 악몽에 다녀온 거 같아요.”

“그런가요.”

“우리 같은 기억을 본 거죠.”

“아마도요.”

나는 그의 기억 속에서 보았던, 피를 흘리며 몸이 부서져라 싸우던 나를 기억한다.

나는 마른 입술로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

“그건…… 강우신 가이드가 지우고 싶은 기억인가요.”

그 물음에 우신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답했다.

“전혀요.”

“그런데…… 왜 울어요.”

강우신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눈꼬리나 입매, 어느 것 하나 미동 없는 가면 같은 얼굴 위로 눈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내 물음에 우신은 그제야 제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소매로 뺨을 훔쳤다.

“이상하네요. 눈이 시린가…….”

어울리지도 않는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생각보다는 상태가 괜찮은 모양이었다.

나는 김빠지는 웃음을 지었다. 우신은 건조한 미소를 짓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봤습니까.”

“…….”

무엇을 말하는 걸까. 한없이 무력한 강우신을?

결코 쉬는 법 없이 게이트를 주파하던 나를?

지금 우신은 누굴 생각하고 있을까. 순간 뭐든 상관없다는 기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신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한심하죠, 라고 물었다.

“이상하게도 그쪽한테는 제가 숨기고 싶은 모습을 번번이 보이고 마네요.”

“그래서 싫으세요?”

“글쎄요. 분명 싫어야 할 텐데…….”

우신은 말끝을 길게 늘이다가 조금 충혈된 눈으로 웃어 보였다.

“내 에스퍼라 그런가 괜찮아요.”

그의 말에 내가 어깨를 움찔 떠는데 우신이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오히려 기회를 잡은 거 같기도 하고.”

“……기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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