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4화
숨이 턱 막혀 왔다.
목을 조여 오는 압박에 손을 허우적거리는데, 그 순간 누군가 내가 뻗은 손을 그러잡았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촉감에 헉, 하며 눈을 떴다.
“…….”
“……강우신.”
나를 품 안에 안아 든 강우신이 지그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간 피곤해 보이는 얼굴 위로 밤하늘을 닮은 검정 눈동자가 보였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쩐지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에서 안아 든 아이가 떠올랐다.
“혹시 말이야…….”
말을 이으려는데 우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식은땀을 너무 흘리던데, 생각보다 더 몹쓸 기억이었나 봐요.”
“…….”
그제야 악몽에 빠지기 직전, 날 내려다보던 우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는 나직하게 답했다.
“맞아…… 요. 그러니 내려 주시죠.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해서.”
내 말에 우신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조심스럽게 나를 내려 주었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당연하지만 여전히 어디쯤 왔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걸어도 걸어도 출구는 주먹만 한 크기로 보였다.
그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자 우신이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나한테 뭔가 물어보려던 거 아닌가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얼굴 위로 또다시 아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정신이 든 상태에서 다시 보니 순진무구하게 눈을 빛내던 아이와 강우신의 눈은 전혀 달랐다.
늪에서 빠져나온 충격으로 뭔가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강우신이 별님이라니, 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건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 넘어가면 될 문제인데, 어쩐지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강우신 가이드, 혹시 언제 가이드로 발현했어요?”
우신은 내가 그런 걸 궁금해할 줄 몰랐는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웃으며 답했다.
“열일곱 살 겨울이었을 겁니다. 눈이 굉장히 많이 왔던 날이었는데, 거의 십 년 만에 오는 폭설이었죠.”
“가이드는 형질 검사를 받는 게 아니면 자기가 가이드인 줄도 모르잖아요.”
“맞아요. 그날 형질 검사를 받았거든요.”
“운이 좋았네요. 마침 형질 검사를 받는 타이밍이고.”
내 말에 우신이 걸음을 멈추고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답했다.
“운이 좋다라……. 그건 아닐 겁니다.”
“…….”
“매년 분기마다 형질 검사를 빼먹지 않고 했거든요.”
매년 분기마다라니.
농담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담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강박적으로 검사를 받을 이유가 무엇일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우신은 내 묘한 표정 변화를 지켜볼 뿐 먼저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열었다.
“……장래 희망으로 에스퍼를 희망했던 건가요?”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우신은 소리 내서 웃었다. 그 호탕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어떤 부분이 웃겼는지는 몰라도 눈물을 찔끔 흘리며 웃는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그는 손을 좌로 저으며 답했다.
“양 후배 생각과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비슷한 거요?”
대중 매체를 통해 영웅처럼 그려지는 에스퍼의 모습에 헌터를 장래 희망란에 적어 내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고 하더니, 그런 건가.
그의 의뭉스러운 말의 뜻을 곱씹고 있는데, 우신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역시 뭔가를 희망한 거라면, 저는 에스퍼보다는 가이드가 되길 바랐어요.”
“가이드를요?”
매스컴에서 주목하는 건 에스퍼의 활약이 대부분이었다.
“이상하죠?”
내 생각을 다 안다는 듯 우신이 물었다.
그의 말처럼 가이드를 희망했다는 말이 의아하게 들리긴 했으나,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아주 간혹 선망하는 에스퍼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좌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우신 역시 그런 의미에서라면…….
“왜 가이드가 되고 싶었던 건데요? 혹시…….”
“어울리지 않게 빙빙 돌려 묻는 건 그만두는 게 어때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적어도 내 에스퍼에게 거짓말할 생각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우신은 내가 아는 한 내게 거짓말한 적이 없다.
그러니 묻는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다.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고 자꾸만 입 안에 고였다.
지금이라면 우신에게 ‘성시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도 되지 않을까.
그의 입을 통해 진심을 듣고 싶다가도 목구멍이 턱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말을 기다리는 우신의 곧은 눈동자를 보니 그제야 준비가 되지 않은 건 우신이 아닌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끝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유보하자 우신은 김빠졌다는 듯 얕은 숨을 내쉬었다.
“무슨 악몽을 꾼 건지는 몰라도, 이러다 보기 좋게 내기에서 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게 강우신 가이드가 바라는 바 아닌가요.”
툭 건넨 말인데, 우신은 마치 미처 몰랐던 제 마음을 마주한 사람처럼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다 역시 그렇게 보이나, 라며 작게 혼잣말했다.
“조금 갑작스럽다는 건 알지만 지난번 약속한 부탁 들어주지 않을래요?”
“부탁이요?”
“부탁드릴 일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죠. 둘이 있게 되면 말이에요.”
“그걸 왜 지금……?”
나는 미간을 좁힌 채 그를 바라봤다. 그는 이미 결정을 내린 듯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요.”
별수 없이 허락하자 그는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난 양 후배가 원정을 가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 우리가 왜 사서 고생하고 있는지 몰라서 하는 말인가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하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당당하게 요구해 오니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나는 소매를 걷으며 되물었다.
“그런 걸 부탁하는 이유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왜 원정에 나서는 걸 막으시는지.”
허리춤에 손을 얹고 그의 대답을 들을 자세를 취하자, 우신이 도리어 당황한 얼굴이 됐다.
“의외네요. 화내거나 모른 척할 줄 알았는데.”
“…….”
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감정이 격앙되었다.
우신은 내 태도가 흥미로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판을 만들어 주니 저도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네, 좋아요.”
내 비장한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우신이 말을 이었다.
“양하나 헌터는 목숨이 9개라도 됩니까?”
“네?”
“나를 지키지 말라고 했던 말 아직 기억하나요.”
병실에 마주 앉았던 그 날의 일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비하면 우신 역시 많이 유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한 생각을 뒤로하고 답했다.
“물론이죠.”
에스퍼에게 자기 목숨을 최우선으로 해 달라며 돈을 찔러 주는 가이드는 봤어도 자길 지키지 말라는 가이드는 못 봤다.
그러니 그런 말은 잊기 어려웠다.
“그게 단순히 도움받기 싫은 치기 어린 말로 들렸습니까?”
치기 어린 말,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우신이 그런 말을 한 이유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양하나 헌터가 좀 더 자신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상상치도 못한 대답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몰라 두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우신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를 쓸었다.
“양하나 헌터가 누굴 돕든, 뭘 찾든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선택이니.”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리는 거 같았다.
“…….”
“하지만 내가 왜 한지원의 에너지 길을 만지고, 파일을 건네줬는지 조금이라도 그때의 내 마음에 대해 생각해 봤다면, 절대 유제이 헌터와 대련하지 않았을 겁니다.”
일 때문에 경기장에 못 갈 것 같다고 한 그가 사무실에 얼굴을 비친 이유를, 어울리지도 않게 이런 내기를 제안한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거 같았다.
“어제부터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던 게 그 이유 때문이었나요?”
“…….”
우신은 그 사실을 들킬 줄 몰랐는지 볼이 조금 붉어졌다.
본인은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무실에서부터 그늘에 오기까지 아무 말 없이 내 주변을 맴도는 모습만 봐도 그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그가 내 원정을 반대하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고작 C급 정신계가 큰 원정에 껴서 다칠까 봐 걱정하는 거겠지.’
내가 크게 다치면 내 임시 전담 가이드를 맡은 그에겐 번거로운 일이 생길 것이다.
그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거절하는 내 모습에 그는 애석하다는 듯 허무하게 웃어 보였다.
“그럴 줄 알았어요.”
무어라 더 설득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빠르게 수긍하는 모습에 나는 괜히 장난스럽게 말했다.
“알면서 왜 괜히 사람 심란하게 그런 걸 부탁이라고 말해요.”
“그야 그렇게 해서라도 포기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부탁할 생각이었거든요.”
솔직한 말을 잘도 내뱉는다.
나는 고개를 좌로 젓고는 손전등으로 앞길을 비추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럼 제 의견은 전달된 거 같으니 우선 빠르게 이곳을 나가는 게 좋겠어요. 우신 가이드님은 아는 거죠, 여길 빠져나갈 길을.”
여길 내기 장소로 제안할 정도니 그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닌 척할 생각은 말아요. 제가 악몽에 갇혀 있는 동안 혼자 멀쩡했던 거 다 아니까.”
악몽에 홀로 갇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포자를 정통으로 맞으면 함께 악몽에 빠질 수도 있었다.
내가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도 그는 멀쩡했다.
나는 출구 쪽을 턱짓하고는 새끼손가락을 그에게 내밀었다.
“몸조심한다고 약속할 테니 심술은 이쯤에서 그만두죠.”
여길 탈출하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하니 이 약속으로 그의 뜻을 꺾을 생각이었다.
큰 망설임 없이 우신이 내 새끼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 줄 알았는데, 그는 나를 꼼짝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강우신 가이드?”
내 부름에 우신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양 후배에게 제가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게 있네요.”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거요? 타이밍이 너무 불길한 거 아닌가요?”
“한지원 헌터에 관한 겁니다.”
나는 내민 손가락을 접으며 웃음기를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