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3화
당시의 나는 권태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오랫동안 전담 가이드도 만나지 못하고 게이트 브레이크로 죽어 나가는 사람을 매일 보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여력이 안 됐다.
이렇게 냉정한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 순간 가장 끝자리에 앉은, 비교적 덩치가 작은 이가 보였다.
근래 본 얼굴에 비해 너무 앳돼, 순간 못 알아볼 뻔했다.
‘소명.’
옛날이나 지금이나 눈꼬리가 잔뜩 올라간 얼굴이 퍽 인상적이었다.
소명은 공격 1팀 소속 헌터들과는 달리 주황빛이 도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그녀가 협력 팀 막내였을 때인 모양이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소명의 표정이 보였다.
지금은 현장 관리에 집공 팀까지 맡고 있으니 이때의 일이 지금보다 덜 고될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집공 팀에서 일하는 그녀의 표정이 더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눈앞에 있는 소명의 표정은 어두웠다.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
이 정도로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 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아까부터 나는 한마디도 안 하고 있었다.
그 정적이 아주 무겁게 느껴졌다. 숨 막힐 정도로 말이다.
이게 머드 웜이 보여 주는 내 악몽인 건가.
트라우마와는 달랐으나 이것 역시 달갑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무전이 흘러나왔다.
-하차합니다.
곧 차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환한 빛이 눈앞에서 터졌다.
기자들의 플래시였다. 도대체 몇 명이나 온 건지 눈이 멀 정도의 빛이 계속해서 터졌다.
‘맞아, 이맘때쯤 보여 주기식으로 날 기자들 앞에서 내려 주곤 했지.’
당시엔 이게 끔찍하게도 싫었다.
나를 비롯한 팀원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한마디도 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따라 들어가려 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성시현과 동료들의 뒷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안개가 끼듯 주변이 부예졌다. 머드 웜이 내게 보여 주고 싶은 악몽이 이것뿐만이 아닌 듯 빠르게 주변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발아래로 시커먼 구멍이 생기더니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몸이 쑥 떨어졌다.
이내 주변이 환해지며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아까보다도 눈높이가 훨씬 낮았다.
어린아이라도 된 듯 손이 자그마했다. 나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먼발치에 전신 거울이 보였다.
서둘러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11살? 12살?’
이맘때쯤 내게 트라우마가 될 만한 건 역시 각성한 그 날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긴 실내였다.
곧 거울 앞에 선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심연을 보여 준다고 했을 때 한 번쯤 의심해 봐야 했었는데…….
거울 안에 있는 건 성시현이 아닌 어린 양하나였다.
내 과거를 보는 것도 모자라 양하나의 악몽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혀를 찼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의 기억이 간혹 한 번씩 스쳐 지나가는 걸 느끼긴 했지만 설마 아예 어린 양하나가 될 줄이야.
다른 이의 기억을 훔쳐보는 듯한 곤란함에 인상을 쓰는데, 그제야 문득 입고 있는 옷이 보였다.
‘환자복?’
커다란 원피스형의 펑퍼짐한 옷 때문에 몰랐는데 자세히 뜯어보니 환자복 같았다.
‘이모 댁에서 살기 전 같은데, 어렸을 때 양하나 어디가 안 좋았나?’
그런 이력을 본 기억은 없는데…….
혼란한 상황에 적응하기도 전에 갑자기 몸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하나는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걸음이 가벼웠다.
창문 하나 없는 탓에 이곳이 어디인지 유추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부모가 연구자였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연구자인 부모님과 환자복을 입은 그들의 딸.
둘의 연결 고리를 쉬이 떠올리지 못하는 그때, 허옇기만 하던 벽면 한쪽에 통유리가 나타났다.
어린 양하나가 통유리 앞에 섰다.
“…….”
유리 너머로 온몸에 호스를 연결한 아이가 보였다.
양하나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는 잔뜩 지친 기색으로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큰 외상은 없어 보였으나 온몸에 연결된 호스와 무언가를 시시각각 기록하는 기계들까지.
나는 그것들에 압도되어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때마침 한 벽면이 유리로 된 방과 연결된 문이 보였다.
굳게 닫힌 문 옆 단말기 위로 양하나는 능숙하게 S가 적힌 카드키를 가져다 댔고, 문이 열렸다.
양하나는 병실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기대앉아 있던 아이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어딘가 묘하게 낯익은 이목구비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누구지? 왜 알고 있는 사람 같지?’
그런 내 물음에 답하듯 입이 저절로 움직이며 양하나의 밝은 목소리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오늘은 컨디션이 어때? 곤아.”
‘이곤.’
충격 때문인지 나는 그대로 양하나의 몸 밖으로 튕겨 나왔다.
그러자 땅이 뒤틀리고 모든 형상이 종이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양하나의 부름에 이곤이 다 죽은 눈으로 무어라 답하는 거 같은데, 내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게 무엇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인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 * *
이것이 머드 웜이 보여 주는 무의식의 공간임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기압이 바뀐 탓에 귀가 먹먹하게 느껴졌다. 숨을 참아 보는데 그 순간 눈앞에 작은 돌 조각들이 보였다.
얼마간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던 나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어두워.’
분절된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속에 묻혀 있는 듯했다.
손이 닿는 대로 슬쩍 힘을 줬을 뿐인데 콘크리트가 아주 쉽게 밀려났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 강인한 힘.
이번에는 양하나가 아닌 성시현으로 돌아온 거 같았다.
‘여기가 어디지.’
콘크리트 더미가 바닥에 굴러떨어지며 무거운 소리를 냈다.
동시에 흙먼지가 일었다. 덕분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나는 크게 손부채질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
여기가 어디인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주변은 엉망이었다.
건물의 철골은 아무렇게나 튀어나와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그 너머로 건물이 보였다.
11층 높이의 주상 복합단지 건물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과 수송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아주 익숙했다.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이었다.
내가 공격 1팀의 개설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당시 게이트 브레이크가 비이상적으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인력으로 클리어되지 못한 게이트의 입구가 뒤틀리다 이내 ‘현실’에까지 영향을 줬다.
그 주변은 당연하게도 초토화됐다.
게이트 브레이크의 조짐이 보일 시, 본 게이트 관리를 담당하던 현장 팀은 수송 팀에 연락해 그 일대의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늘어난 게이트 브레이크를 모두 관리하기에는 당시 인력이 너무나 부족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모든 게 얽히고설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는소리를 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 순간, 작지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생존자의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내 반응이 늦었다.
소리가 나고 한참이 지나고야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상당히 지친 모양이었다.
‘하긴 이때는…….’
몸도 마음도 죽어 가고 있었다. 날 필요로 하는 현장은 많았지만 내 몸은 하나였다.
당연하게도 구한 사람보다 구하지 못해 죽은 사람을 더 많이 마주해야 했고, 그건 상당한 무력감을 안겨 줬다.
‘혼자서 감당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문득 소명의 말이 떠올랐다.
“합 한 번 제대로 맞춰 보려고 하지 않았던 건 성시현 헌터였고요.”
서운하기만 하던 말이 지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때의 소명의 얼굴을 보고 온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일상적인 모습을 왜 악몽이라고 보여 주나 했더니, 전부 이유가 있던 모양이었다.
“…….”
기분이 이렇게 더러운 걸 보니 제대로 악몽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무너진 철골을 들고 더 깊이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흐느낌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울렁였다.
다른 건 몰라도 현장에서만큼은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최선을 다한 걸까.’
한 번 들기 시작한 의문이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켰다.
자꾸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책상 아래로 누군가 보였다.
사무용 책상 아래, 담요로 머리를 감싸고 숨은 큰 부상을 피한 듯 보였다.
상대의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니 인기척을 죽이는 모양이었다.
옹송그린 모습을 봤을 때 아직 초등학생밖에 돼 보이지 않는데, 아이가 참 영리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매뉴얼대로 입을 움직였다.
“센터 공격 1팀 소속 성시현 헌터입니다. 위급 상황이기에 신속히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담요를 푹 뒤집어쓰고 있던 아이의 시선이 내게로 천천히 향했다.
나는 그 찰나를 참지 못하고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성인도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굉장히 낮았다.
아이들의 경우 그 확률이 한 자리 대로 떨어졌다. 그래서 당시 내가 현장에서 구한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억할 법도 한데 어쩐지 이때의 기억이 희미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품 안에 안긴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눈물이 조금 고인, 아주 새카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별님?”
“…….”
아이는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 모습에 기다렸다는 듯 모든 이미지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깊은 물속에 빠지듯 처절하게 밑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