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2)화 (62/183)

내 죽음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62화

유제이와 권미래가 게이트로 입장하자, 그늘 앞에 설치됐던 천막이 철거됐다.

민지민의 말처럼 출구 쪽으로 옮겨 갈 생각인 듯했다.

나는 앞 주자인 두 사람이 입장하고 작동하기 시작한 타이머를 바라봤다. 앞으로 5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 서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강우신이 옆에 서 있어서 그런 건지 10분이 까마득하게 길게 느껴졌다.

우신은 내가 입을 열지 않는 한 먼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해야 하는 상황에 이런 분위기로 그늘에 들어가는 건 좋지 못했다.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심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제안한 거예요.”

정면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신이 날 곁눈질하는 게 느껴졌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랬더니 우신 역시 정면을 바라보며 답했다.

“곤란해 보여서요.”

“곤란해 보였다고요?”

“네.”

동요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연한 목소리. 그런 목소리로 잘도 거짓말을 했다.

정말 그 이유 때문이라면 그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내기를 막으면 막았지, 냅다 이런 방안을 제시했을 리 없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분명 뭔가 못마땅한 거다.

지난번에 문제없이 그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무작정 올곧게 부딪히는 것도 곤란하지만 이렇게 태평한 얼굴로 말이 없는 것은 더 신경 쓰였다.

할 말을 입 안에서 굴려 보는데, 때마침 우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가 왜 늪이 아닌 그늘로 불리는지 양 후배는 압니까?”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우신 역시 터널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내게 돌렸다. 그러고는 입매를 부드럽게 올려 웃었다.

“그럼요. 이번 내기에 이기기 위해서는 알아야죠.”

“…….”

“앞으로 15초. 입장 준비해 주세요.”

현장 요원의 사인에 우신이 먼저 터널 입구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그를 따라 그늘로 들어갔다.

* * *

그늘에 들어서며 느낀 어지러움은 게이트에 입장했을 때 느끼는 어지러움보단 덜 했다.

아마 이미 클리어된 게이트기도 하고 도고의 능력으로 현실과의 간극이 많이 완화된 탓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조금은 그늘을 느슨하게 봤을지도 모른다.

터널 밖에서도 반대편 출구가 보였다.

과거엔 하우스형 필드였던 게이트가 도고의 능력에 의해 오픈 필드로 변이되며 입구와 출구가 마주 보게 되는 기이한 형태가 됐다고 했다.

밖에서 봤을 때, 크기가 작긴 하지만 분명 눈앞에 출구가 있었다.

그렇기에 해가 지기 전에 어렵지 않게 출구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비웃듯 우리는 벌써 5시간째 같은 곳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땅은 늪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끈적였다. 신발창에 무언가 달라붙는 듯 다리가 무거웠다.

머드 웜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진흙 자체를 말한다.

걷지 않고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으면 머드 웜에 빨려 들어가 진흙에 잠기게 된다.

‘하지만 머드 웜이 정말 곤란한 건…….’

나는 말 없이 들고 있는 손전등으로 벽면을 비췄다.

벽면을 메우고 있는 건 넝쿨 식물이었다. 입구에서 본 것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화려한 꽃이 달려 있었는데 그게 머드 웜이 성가신 이유였다.

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자가 지친 먹잇감의 몸과 정신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다.

머드 웜은 개체 수가 적고 서식지가 한정돼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앞서 걷던 내가 멈추자, 반 발자국 느리게 걷던 우신 역시 나란히 멈춰 섰다.

내가 멈춰 선 건 끝 모를 터널이 답답해서였다.

하지만 이내 가이드인 그가 지쳤을까 걱정이 되어 뒤로 살짝 몸을 돌렸다.

그런데 우신은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업어 줄까요?”

그는 대뜸 그렇게 물으며 슬며시 웃어 보였다.

“…….”

이게 무슨 가이드인지. 가끔 보면 적성 검사를 다시 하라고 권유해 주고 싶을 정도다.

나는 됐다는 의미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신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내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고 보니 밖에서 한 그 말, 무슨 뜻이에요?”

문득 그가 한 말이 떠올라 먼저 입을 열었다.

“밖에서 한 말이요?”

“아까 그랬잖아요. 여기가 왜 늪이 아닌 그늘로 불리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아느냐고.”

그 이유를 알아야 내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나는 뒷말은 삼키고 우신을 바라봤다. 우신은 마치 잊고 있었다는 듯 과장되게 낮은 탄성을 뱉었다.

“아. 그랬죠.”

연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재촉하듯 물었다.

“답을 알고 있으니까 물은 거 맞죠?”

내 물음에 우신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 대답하는 대신 질문했다.

“입사 2년 차면 아카데미에서 그늘에 방문했던 게 한 삼사 년 정도 전의 일인가요?”

나는 민지민의 입을 통해 그늘을 클리어하는 게 아카데미 2학년 과정의 커리큘럼이라고 들었던 걸 기억해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하는 내 모습에 우신은 제 아래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상하네요. 여길 한 번이라도 통과했다면 이곳이 그늘이라 불리는 이유를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텐데.”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건지, 꿍꿍이를 숨기고 빙글빙글 말을 돌리는 꼴이 그답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올 초에 게이트 클리어 중 암석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가 생겨서 기억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근래의 일은 비교적 괜찮은데, 과거 일이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요.”

나치고는 제법 그럴듯한 대답을 해냈다.

이곤에게 한 번 비슷한 핑계를 댄 덕분이었다.

“과거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고요?”

개의치 않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큰 동요 없던 그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에 무슨 말실수라도 할까 봐 말을 아끼는데 우신은 그제야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줬다.

“머드 웜은 어둠 속에 숨어 숨을 죽이고 게이트에 들어온 사람이 서서히 지쳐가길 기다립니다. 그런 후 정신적 붕괴가 일어나도록 만들죠. 감정이 과잉되게 만든다든가, 불안을 자극하는 식으로요.”

우신은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결국 악몽 속으로 끌고 갑니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트라우마와 비슷합니다. 머드 웜은 심연의 거울을 통해 먹잇감이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해요.”

“트라우마를 보게 하는 거라면 역시 그늘보다는 늪이 더 어울리는 말 아닌가요?”

“글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곳을 통과하며 트라우마를 마주한 헌터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하죠.”

“…….”

“오래전에 잃은 줄 알았던 사람이 마음의 그늘에 아직도 살아 있더라고.”

그때, 나는 타이밍 나쁘게 진흙에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걸음의 속도가 느린 탓에 진흙에 신발의 앞코가 걸린 모양이었다.

“윽.”

어금니를 꽉 물며 바닥을 짚는데, 어제 다친 복부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따로 치료를 받지 않아 며칠간 통증이 지속될 줄은 알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빙빙 도는 머리를 누르며 정신을 다잡으려 했다.

“강우신 가이드. 아무래도 저…….”

그 말과 함께 코앞에 서 있는 강우신을 올려다봤다.

“…….”

우신은 전혀 동요 없는 얼굴로 나를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강우신이 말한,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킨다는 머드 웜의 능력 탓인지 마음에 가라앉는 돌덩이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크기를 키우듯 몸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다 이내 눈꺼풀까지 감기게 했다.

천천히 움직이던 눈꺼풀이 완전히 감길 때쯤 서서히 다가오는 우신의 형태를 보는 걸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야보다 청각이 먼저 살아난 듯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이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그 목소리에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고는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흰 천을 치웠다. 머리 위에 수건이 덮여 있던 모양이다.

그것을 손으로 매만졌다. 수건을 만지고 있는데 아무런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너무나도 낯설어서 수건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남자가 다시금 나를 불렀다.

“시현 선배?”

나는 그제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가슴께에 태양이 기하학 모양으로 수놓여 있는 게 보였다.

집중 공격 팀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투박해 보이는 작업복을 입은 남자는 공격 1팀 소속의 내 후배였다.

나는 지금 성시현의 몸 안에 있었다.

“현장 도착했습니다. 이제 슬슬 준비하셔야 할 거 같아서.”

그는 내 눈치를 보며 그렇게 덧붙였다.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공격 1팀으로 활동할 당시 자주 타고 다니던 이동 수단 안이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팀원들을 보아하니 공격 1팀이 만들어지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 듯했다.

나는 무어라 대답하려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감각도 없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이게 바로 머드 웜이 보여 준다는 악몽인 듯했다.

그늘에 들어오기 전에 설명을 듣긴 했으나 직접 악몽에 빠져 보니 듣던 것보다 더 현실감이 넘쳤다.

내 트라우마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이런 것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 악몽은 더 절망적인 것들이었으니까. 그것에 비하면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는 양옆과 마주 앉아 있는 팀원들을 살폈다.

작업복을 입고 앉아 있는 팀원들은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지친 것과는 별개로 이 상황에 대한 어떤 흥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힘을 내 보자고, 혹은 잘하고 있다고, 가장 선임인 내가 한마디 했으면 좋을 텐데…….

0